[이경수 칼럼] 실망한 고객은 돌아선다

이경수

13년 동안 타던 승용차를 suv로 교체한 게 2014년 여름이다. 새 자동차를 인수 받기 위해 계약했던 부산의 어느 영업점 뒷마당을 찾아갔을 때 도어 아래쪽을 빙 돌아가며 붙여진 검은색 플라스틱 가니쉬가 먼저 눈에 띄었다. 거기엔 하필이면 비포장도로에서 튀어 오른 듯한 붉은 황토물이 꽤나 묻어 있었다. 그와 상관없이 언제든 세차를 하면 지워질 것이란 생각으로 기분 좋게 자동차를 인수 받았다.

 

나중 세차를 하면서 그 황토 물방울 자국을 지우기 위해 꽤나 신경 썼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마른 뒤에 보니 희미한 얼룩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와 비슷한 보기 흉한 흔적은 계속 늘어만 갔다. 도저히 그냥은 두고 볼 수가 없어 세차를 끝내 놓고도 그 부분만 따로 닦아 보았으나 결과는 별 차이가 없었다. 이 자동차는 무광택인 검정 플라스틱 가니쉬 특성상 얼룩이 쉽게 남고 잘 지워지지 않는 단점이 있었다.

 

할 수 없이 지인이 추천한 약품을 구입하여 가니쉬 전체에 코팅을 하였다. 코팅 전 약품 설명서에 나와 있는 대로 세차를 꼼꼼하게 했음에도 결과는 만족스럽질 못했다. 지금까지 자동차 외관은 세차를 하면 깨끗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그런데 얼룩이 잘 없어지지 않아 뒤늦은 코팅을 해도 큰 차이가 없기때문에 이와 비슷한 종류의 차량을 소유한 운전자는 이 자동차를 바라볼 때마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자동차 회사는 이처럼 운전자가 세차를 해도 지워지지 않을 정도의 제품이란 걸 알고 판매하였다면 미리 코팅을 해서 출고시키던가 추후 고객들에게 최소한의 관리 방법이라도 알려 줬어야 옳다. 이번에는 조립 결함 얘기다. 어느 날 운전석 뒷바퀴 위쪽 가니쉬가 바로 옆에 붙여진 것과 4mm 정도 단차가 나도록 잘못 조립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대로 둘 순 없어 시간을 내어 가까운 정비소를 찾아가 바로 잡아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곳에선 가니쉬는 해체도 않고 바퀴 위쪽에 숨어 있던 고정 볼트 하나를 풀었다가 힘으로 밀며 다시 소리만 요란스럽게 조이는 것으로 끝내고 말았다. 이곳에서 나는 잘못 조립된 가니쉬 단차를 바로 잡지 못했으므로 도움을 받았단 생각은 단 1도 들지가 않았다. 그날 처음으로 자동차를 판매한 영업직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자신은 자동차 회사의 정직원이기 때문에 오로지 판매 수당에 목을 맨 계약직 영업사원들과는 다르단 말을 연신했다. 그래서인가 자동차의 단점과 제작 결함을 볼 적마다 내게 했던 그 사람 말이 내 귓가를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자기는 현재 수십 년째 장기근속자이기 때문에 급여도 상당해서 굳이 얼마 안 되는 수당을 받기 위해 자동차를 판매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단 말까지 하였다.

 

그럼에도 나는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그가 내놓은 서류에다 구매 결정을 하고 말았다. 이제야 그때의 일을 자책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동차 출고 이후 6년이 지나도록 그로부터 어떤 연락을 받은 적도 없다. 가끔씩 자동차 영업을 하시는 분들이 방송에 나와선 고객이 찾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나가야 한단 말을 자주 했었다.

 

크게 잘난 사람도 그토록 과한 서비스를 바라진 않는다. 다만 자동차 회사에선 수천만 원짜리 자동차를 판매하였으므로 고객을 끝까지 책임지고 있다는 믿음은 갖게 해야 한다. 고객과 자주 접하는 영업직원의 역할은 그래서 중요하다. 자동차 회사는 평소 이분들을 통해 현재의 고객들이 어떤 불만이 있으며 개선할 점은 무엇인지 귀담아들어둘 필요가 있다.

 

아무리 사소한 불만이라 하더라도 고객은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 한 잊지 못한다. 그런데도 자동차 회사는 무슨 배짱인지 고객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으려 하질 않는다. 복잡한 절차와 굳이 실명을 밝혀야 하는 전화 상담으론 부족할 수밖에 없다. 말로 하고 싶은 고객이 있고, 글로 억울한 심정을 전달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분명 있기 마련이다. 여기엔 그리 큰돈이 들지도 않는다.

 

불과 몇만 원 하는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중소 규모의 회사도 고객 게시판을 운영하는 것을 쉽게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수천에서 억대가 넘어가는 자동차를 생산 및 판매하는 회사가 운영하는 고객 게시판이 없다는 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런 불통은 고객의 잔소리를 일절 듣지 않겠다는 것과 똑같다. 최근 국내에서 자동차를 다룬 뉴스가 나올 적마다 좋지 않게 평을 쓰는 분들이 크게 늘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리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단 생각이다. 이들은 해외에서 판매하는 자동차는 내수용보다 두꺼운 강판에 품질도 더 좋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무상 A/S 기간도 훨씬 길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판매 가격마저 저렴하다고 할 땐 나도 모르게 계산기를 두드리며 분노할 때도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런 의문을 시원하게 풀어주진 않는다. 이것을 누가 해야 마땅한가. 바로 자동차 회사다.

 

수출로 살아남기 위해 과거엔 잠깐 그랬다 치더라도, 현재 그러지 않다면 국민에게 어떤 식으로든 공식 해명을 하는 것이 옳다. 최근 국내 언론은 기아자동차가 엔진 멈춤과 화재 위험 때문에 미국에서 2011~2015년에 판매한 자동차 295천대를 리콜한다고 보도했다. 기아차에선 제조 결함은 발견되지 않았다면서 화재 발생 위험을 줄이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바로 전날 현대자동차가 이와 비슷한 이유로 129천 대를 리콜한다고 발표한 뒤에 나온 대책이어서 주목을 끈다고 했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국내에서 판매한 자동차에 관한 내용은 없다. 어느 누가 보더라도 심한 차별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요즈음 다양한 규격의 수입차가 들어와 있고 가격 또한 크게 낮아졌다. 이 때문인지 수입차 점유율은 매우 큰 폭으로 높아졌다.

 

이처럼 요한 시기에 국내 자동차 회사들이 고객의 불만을 무시하며 침묵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소비자의 등 돌림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것이란 생각이 우세하다. 나 역시도 가슴에 멍이 든 소비자 중 한 사람이다. 세 번째 구매 땐 애국심 따윈 생각지 않을 것 같다.

[이경수] 26ks@naver.com


전명희 기자



 


전명희 기자
작성 2020.12.09 10:25 수정 2020.12.09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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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