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구 칼럼] 가방끈이 왜요

문경구

 

"김 여사님은 요즘 세상에도 교육을 못 받았다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런 사람 절대로 없습니다. 살고 있는 지금의 세상, 돌아가 살 저세상, 그리고 인터넷 세상인 배움의 세상이 있습니다. 제아무리 까막눈이라도 드라마 한편만 보면 세상 다 깨우칩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살면 저런 불행을 맞게 된다는 인생 교육을 확실하게 깨우칩니다. 김 여사님은 왜 말끝마다 자제분들이 가방끈이 짧다고 하세요. 자제분들이 여사님께 안부를 드리지 않는 섭섭함으로 그런 생각이 드신다면 그건 가방끈이 아니라 인성에 관한 것입니다. 자식들의 심성이 못돼 먹었다는 소리가 차라리 솔직한 표현 같네요. 쉽게 말해 가방끈 교육이 아니라 가정교육이 부족한 거죠.”

 

김 여사님의 속마음을 내가 알아차린 것이 기가 막힌 듯 자신의 짧은 끈이 달린 가방에서 무언가 꺼내다 말고 나를 뚫어지라 보았다. 일주일에 한 번은 바로 그 장소에서 커피와 이야기를 나누자는 약속을 한 김 여사의 간절한 소망이 오늘도 시작되었다. 아직도 김 여사가 나를 만나면 어린아이처럼 무작정 기뻐하는 이유에서 노년을 살아야 하는 힘든 숨소리가 느껴진다.

 

나중에 알았지만 복을 쌓아 둘 곳이 없을 만큼 많은 그녀도 예외는 없다. 평생 지탱해 준 그녀의 많은 돈은 그대로 내던져지고 이제는 외로움과 고독만이 그녀의 늙은 삶을 지탱하게 보인다. 나와의 대화에 목을 매고 싶을 만큼 아무도 그녀를 위해 있어 줄 사람이 없는가 보다.

 

산다는 게 검불 십 년 같고 건성으로 왔다가 가는 거라고 한다. 늙어지니 돈이 있고 없었던 사람,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나 적게 받았던 사람이 조금도 차이가 없어 같아지더란다. 캘리포니아 세상 빛이 자꾸만 자기를 불러대어 미국엘 온다고 한다. 일 년 중 석 달쯤 지내러 온다는 이야기와 섭섭한 자식들의 무관심을 자신의 농사에 비유한다.

 

자식들을 너무 일찍 유학을 보낸 것이 자신은 자식농사를 잘못 지은 농부라고 하는데 그 속을 어찌 알겠는가. 일전에 백화점에서 이천 오백 불짜리 가방을 사서 들고나온 바로 그 자리에서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누가 잽싸게 걷어 갔다고 한다. 기가 막히고 허무해서 한참을 서성대었다고 한다.

 

그때도 자식들을 원망하는 애착이 집요하게 느껴졌다. 돈을 바닥에 질질 흘리며 다니고 원망은 자식한테 퍼부어대는 마나님이구나 생각했다. 요즘 세상 잘못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사모님이라고 했다.

 

모든 걸 갖추시고 자식 원망을 하시는 것처럼 들립니다. 자제분들만 나무라지 마시고 자식은 키우실 때 화초처럼 충분히 즐기셨으니 이제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아요라는 나의 말에 기가 막힌 듯 쥐었던 커피잔을 그냥 내려놓았다. 옆집 비디오가게 아줌마 말 속에는 철학이 있다. 그 아줌마는 비디오를 빌리러 오는 사람 속에서 나쁜 인생 좋은 인생을 보면서 자신의 철학을 찾은 것이다. 연속극 주인공을 보고 인생 공부를 훌륭하게 마친 사모님 댁 도우미가 많은 돈을 투자해서 공부한 자제분보다 더 실속이 있지 않냐고 물었다.

 

나는 잃어버렸다는 가방값에 괜스레 심사가 틀어진 사람 같았다. 손에 낀 옥가락지가 내는 빛 속에서 그녀가 지녀온 삶의 무게가 느껴졌다. 자신의 가슴을 철통같이 잠가둔 세월마저 그녀를 힘들게 하는 것같아 보인다고 말했다. 나의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갑자기 끈끈한 한국의 여름이 싫어 날씨 좋은 곳에서 명상을 즐기러 미국에 왔다고 말을 바꿔 쳤다.

 

그녀의 나이는 이제 비우고 내려놓는 일밖에 없다고 하자 한국의 고집스런 추위로 겨우내 방안에 있기 싫어 온화한 이곳의 겨울을 즐기러 온다고 또 다른 동문서답을 했다. 그녀의 회한도 감 잡을 수 있었다. 그녀에게 만만하기만 한 캘리포니아 날씨만이 그녀를 알고 있을 것 같다.

 

한국 집에는 집사 외에 세 명의 "식모"를 거느렸다고 한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식모라는 말에서 여사와 친근함을 느꼈다. 지적인 분위기도 한때는 만만치 않았을 것 같았고 여러 명의 도우미, 그때 그 식모들 중 잊지 못하는 한 사람 이야기를 꺼낼 때는 나름의 정서도 있어 보였다.

 

사모님 말대로 부리시던 가사도우미의 몸으로 학업을 마친 아가씨를 누가 며느리로 삼는데 보증서를 서겠다고 하시면서도 도우미라는 출신이 흠이 된다는, 여사님부터가 인성보다 배경을 우선하시잖아요. 그렇다면 사모님도 도우미로부터 이미 큰 은혜를 받으신 겁니다라고 말하자 두 사람의 공간에 잠시 알 수 없는 침묵이 살짝 머물다 빠져나갔다. 사모님은 내가 하는 말들이 시건방져 귀에 거슬리고 나는 사모님의 인생관이 거슬린 침묵이었다.

 

내가 가끔 만나 흉허물없이 뱉는 나의 말을 재미있다고 하는 여사님의 모습에서 말로만 듣던 그녀의 팔십짜리 세상 나이를 나는 읽었다. 그것이 가방끈이 아닌 인성의 문제라는 내 말을 듣는 여사의 모습이 다르게 보였다. 세상 부귀영화 누릴 대로 모두 누리고 또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던 저녁, 그 다음 날 월요일 낮 비행기로 갔다가 한국을 다녀오면 꼭 만나자는 메시지를 집을 관리해 주는 집사에게 남겨놓고 돌아간다고 했다.

 

집사의 말로는 부인이 미국 공항을 들어설 때마다 따로 이민국 직원에게 불려가서 왜 미국을 자주 드나드냐고 통역관 앞에서 자존심 상하는 일이 싫어 아주 영주권을 내어 갖고 있다는 말을 뜬금없이 했다. 영문모를 영주권 이야기는 부인에게 꼭 어울리는 뜬금의 비밀 같았다. 지금은 세상 떠난 어느 회장 부인의 가득 채운 돈 가방이 아닌, 나처럼 빈 가방의 소유자로 볼 수 있는 사모님을 기다리며 잠시 살아보라는 의미로 새겨놓았다.

 

여사님과 나누었던 인성의 가방끈은 시간의 몫으로 남겨둘까 한다. 대형백화점 끝자락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마실 것 하나를 사면서 백 불짜리 돈을 낸 여사에게 종업원들이 어이없는 웃음으로 깔깔댈 때 뒤에 서 있던 내가 그들을 향해 두 눈을 부릅뜨는 모습을 본 김 여사와의 인연은 시간이 갈수록 그 액수가 백 불씩 불어나는 것 같다.

 

캘리포니아의 날씨는 두고 떠났지만 자식의 짧은 가방끈을 원망하는 어머니라도 살아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간절하게 원하는 나의 속내를 알 길 없는 여사와 그 집사를 태운 비행기가 내 머리 위로 날아갔다.

 

[문경구]

미주한인크리스찬문학협회공모 수필당선

문경구 kimurgin@hotmail.com


전명희 기자

전명희 기자
작성 2020.12.28 12:37 수정 2020.12.28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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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