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필의 인문학 여행] “역병구휼救恤 활인서”

김용필

 

(역병과 재난의 팬데믹은 국가가 책임지고 구휼해야 한다. 중세기 유럽 국가들은 역병이 일어났을 때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백성들의 원성이 커지자 책임을 모면하려고 이민족과 이단 종교로 탓을 돌려 마녀사냥을 하였다. 그런데 조선은 가장 현명하게 국가가 나서서 책임지고 역병을 치료하고 구휼하였다.)


1. 조선의 역병 역사

역병은 인류사에서 전쟁보다 무서운 재앙이었다. 조선 땐 역병이 10년에 한 번쯤 일어났고 30년마다 큰 재앙을 일으켰다. 치료 약이 없던 시기에 콜레라, 홍역, 천연두. 장티푸스, 나병, 흑사병 등의 역병을 앓으며 별수 없이 죽음을 맞았다. 1400년부터 1800년까지 (세계 대유행) 400년 동안 79차의 역병이 돌아 300만 명이 죽었다. 이는 총인구의 20%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가장 크게 피해를 본 해는 1445(흑사병 3,500) 사망. 1524(흑사병 6,700). 1582년 천연두(10만 명). 1609(홍역). 1660(장티푸스). 1798(천연두), 1851(천연두)에 많은 사람이 죽었다. 국가가 긴급한 대처를 세워 할 수 있는 최상의 노력을 다하였으나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가장 역병을 잘 대처한 나라였다.

 

2. 국가가 책임지는 조선의 역병치료 활인서

(활인서는 역병으로 죽어가는 생명을 구하는 병원이다)

인류는 역병과 더불어 생사를 같이해 왔다. 따라서 기근과 역병은 불가분의 관계로 국난을 가져왔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전국적으로 홍역이 창궐하여 엄청난 백성들이 죽어 나갔다. 1392년 태조는 역병과 기근을 구제하는 국책으로 활인서(活人署)를 세워 전염병으로 고통받고 굶어주는 백성들을 보살폈다. 태조는 한성에 동서 활인서를 만들었다. 활인서는 역병으로 죽어가는 환자를 궁 밖으로 데리고 와서 집단 치료를 하고 죽은 시신들은 장사까지 치러주는 곳으로 동소문로 밖과 서소문 밖에 활인서를 세웠다. 세종과 현종 때 가장 많은 역병이 창궐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다.

 

활인서에선 어떤 일을 했을까? 병든 환자나 무의탁 환자를 데리고 와서 음식과 의약, 의복과 이부자리들을 제공하여 보살펴 주었다. 그러나 활인서에 와서도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 동서 소문밖엔 시체가 인산을 이루었다. 마포구 아현동(아현중학교 정문)에 서활인서가 있었다. 아현동은 아기고개(애오개)라고 한다, 지명의 유래는 이곳 서활인서에서 죽은 아이들을 인근 산에 묻었다. 그래서 서활인서는 아기 무덤이 많아서 애오개라고 하였다.

 

3. 숙종은 진휼소(軫恤所)를 지어 아사자를 구원하였다.

(죽을 쒀서 굶어 죽는 기근 자를 먹이다.)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 조선 현종 11년에 경신 대기근(1670-71)이 있었다. 8대 재해(가뭄, 수해, 냉해, 풍해, 충해, 혹한, 역병 가축병)가 모두 일었던 해였다. 기근과 역병으로 수많은 백성이 죽어갔다. 강도와 도둑이 성행하고 대낮에 먹는 밥까지 빼앗아 갔다. 게다가 당파 싸움이 절정에 달했던 경신환국의 도륙이 있었다. 노론과 남인이 대결하는 상황에서도 영의정 정태화는 진휼소를 만들어 기근과 역병으로 고통받은 백성들에게 죽을 끓어 먹였다. 한양성 사대문 밖에 진휼소를 만들어서 죽을 끓여 나누어 먹였다. 전국에서 가난한 백성들이 찾아와서 죽으로 연명하였다.

 

그리고 김육이 제창한 대동법을 써서 정부나 관청의 곡물을 농한기에 빌려 먹게 하고 농사 후에 갚는 제도로 구휼하였다. 이렇게 영의정 정태화 같은 훌륭한 재상이 있었는데 그가 환국으로 정가를 떠나고 남인의 허적이 영의정이 되면서 진휼소을 없애버렸다. 이때 천연두 역병이 돌아 숙종의 왕비 인경왕후(김만기의 딸 김만중의 조카)가 천연두로 죽었다. 그런데 허적은 역병을 다스리지 않고 자신의 사리사욕만 챙겨 분노한 숙종은 이를 단호히 처결하였다. 숙종은 역병을 가장 잘 다스리고 구휼했던 왕이었다. 숙종은 외조부인 영의정 김우명(김육의 손자)을 시켜 대동법을 시행케 하여 가난을 구제하였다.

 

4. 역병. 기근을 구제하는 복지정책

(재난지원금은 어렵고 가난한 백성을 구완하는 보편적인 복지여야 한다.)

조선 때 역병을 막기 위하여 개인과 국가가 발을 벗고 나섰다. 1635년 안창경 의관은 벽온신방 (辟瘟新方) 을 만들어 역병 치료법을 백성에게 널리 알리고 환자를 치료하였다. 벽온신방은 오늘날 정부의 중대방(전염병 관리청) 같은 기능을 하였다.

 

더 나아가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생계가 어려운 백성은 국가가 적극적인 방역을 하듯이 세심한 복지정책을 펴야 한다. 지구촌 선진국은 보편적 복지로 모든 사람이 같이 누리는 복지 정책을 펴고 있지만 저개발국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선별 복지정책을 써서 백성을 구휼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기업과 소상공인을 돕는 복지정책을 쓰고 있지만 전 국민을 위한 보편적 복지정책을 펴는 것도 시장경제를 활성화하는 방법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코로나 19의 팬데믹을 잘 방역하는 나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이제는 방역만큼 국가 재정으로 어려운 국민을 돕는 복지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포츌리즘이란 생각은 버려야 한다. 국가는 어려울 때 쓰려고 재정을 확보한다. 비축한 재정을 풀어 쓰고 모자라면 다른 정책 사업을 줄여서 경제적인 도움을 줘야 경제가 살아난다. 그것이 국가이다.



[김용필]

KBS 교육방송극작가

한국소설가협회 감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마포 지부 회장

문공부 우수도서선정(화엄경)

한국소설작가상(대하소설-연해주 전5)

김용필 danmoon@hanmail.net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1.08 11:46 수정 2021.01.0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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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