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늘 맴도는 새들 중에 비둘기와 도브는 생물학적 유전자가 같은 집안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덩치는 다르지만, 생김새가 비슷해서 마치 큰집과 작은집의 형제들 같은 외모에 울음소리가 없는 것도 같다. 새라고 하면 우선 아름다운 울음소리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법인데 비둘기와 도브는 울음소리가 없다.
이 두 새는 아무와도 친숙해지고 싶지 않은 차가운 관계의 새들이 아닌가 한다. 무슨 까닭으로 울지 않는 새들이 되었을까. 꼭 울어야 할 이유도 없고 울지 않는 새로 산다는 것도 가능한 것이 세상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사는 콘도 발코니로 새들이 요즘 분주하게 봄이 오는지 확인하러 몰려오는 것 같다. 나는 겨울이 되면 성급하게 봄을 기다리는데 새들도 나처럼 봄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아마 희망이라는 꿈을 꾸는 것은 사람과 새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내가 기억하는 한국의 초가을과 딱 맞아떨어지는 이곳 겨울을 두고 봄까지는 조금 성급하다고
말하는 나에게 새들은 더 성급하게 굴며 날아든다. 내가 매일 채워놓은 곡식통 앞으로 서너 쌍의 도브가 모여 배가 빵빵하도록 먹고 옆에 만들어진 작고 아담한 연못에 흐르는 물을 마시고는 자신들의 세상인 양 행복해하며 놀아가 날아간다.
내가 차려놓은 식탁만큼 더 편안한 곳이 또 어디 있으랴마는 그런데 이상하게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지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한 번 먹고 사방을 두렵게 돌아보고 또 한 번 먹고 돌아보는 것을 반복하는 것일까. 새들을 바라보는 내가 더 불안한 마음이 든다.
어느 날부터인가 새무리들이 날아간 자리에 딱 한 마리가 남았다. 짝수의 한 쌍이 아닌 외톨이 홀수로 혼자 남은 한 마리의 도브를 보면서 나는 이유를 모르는 가슴으로 철렁 내려앉았다. 이 우주를 꾸미는 세상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부부처럼 짝을 짓지 못하고 혼자 사는 나에게 왜 찾았든 걸까. 배우자 중 한쪽이 사고를 당해 혼자가 된 걸까 아니면 어머니가 병환으로 일찍 가시게 되자 홀로 남겨진 나의 아버지 같은 운명인 걸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 혼자 사는 곳에 찾아와 한참을 머물다 가고 또다시 오는 걸까. 오직 먹을 것을 원해 내게로 찾아온 것만 같지 않아 나는 홀로 된 새에게 마음으로 그 이유를 그렇게 물어보았다. 내 아버지가 지니셨던 고독의 비밀을 알아차리고 내게 찾아온 이유가 분명하냐고 물었다. 혹시나 아들인 나도 그 길을 가고 있을까 걱정이 된 아버지의 혼을 너의 몸에 의지하여 오시게 한 거냐고도 다그쳤다.
너도 나처럼 시간을 사는 존재가 아니냐. 너의 시간도 나의 시간처럼 똑같은 양으로 정해져 있을 텐데 이번 생에 딱 한 번만 새의 몸으로 시간을 뛰어넘어 아버지를 모시고 온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혼자 된 몸으로 찾아올 때부터 나는 감을 잡았다고 말했다. 그 많은 도브들은 다음 세대 종족을 위해 사랑도 나누고 알도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며 살아갈 텐데 그 넓디 넓은 하늘을 홀로 날아 하필 혼자 사는 내 곁에 와 있느냐고 했다.
그렇게 묻고 난 나의 가슴이 새의 가슴보다 더 작아졌다. 따뜻한 봄 햇살을 위해 겨우 버티고 있는 겨울도, 그 어떤 날의 빛도 영원하지 않은 잠시의 모습인 걸 잘 알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무런 실체도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왔다가 가는 것이 어디 인간뿐이랴 도브의 운명도 하늘을 날 수 없는 순간부터 사라질 거라고 했다.
날아가는 새, 한 생명의 존재로 인해 하늘은 매일 작품하나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천년을 산다는 학의 천년도 하루처럼 허무한 일이라고 했다. 임금님 용상의 봉황도 말은 그럴싸하게 화려하고 우아해도 결국 찰나인 것이다.
죽고 못 살 것 같은 원앙부부도 너처럼 한 짝을 잃은 신세가 되면 잉꼬부부라는말도 모두 부질없는 법. 그 속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홀로 된 것을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했다. 아무도 함께 갈 동행자란 없는 길, 쇠똥 밭에 뒹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고 하니 오고 가는 계절을 지켜보면서 눈 질끔 감고 살라고 일러 주었다.
내가 묻고 내가 답하는 말을 또박또박 알아차린 듯 새는 날아갔다가는 그 대답을 잊은 듯 다시 확인하러 다시 찾아든다. 세상은 삶과 죽음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곳이니 무엇에게도 휘둘려서는 안 된다. 관념에 갇히지 말고 틀에도 갇히지 마라. 새는 날면 된다. 네가 날지 않으면 하늘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다.
나는 홀아비가 되어버린 도브를 깍듯이 대접하려 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내게 보내시어 나를 시험하시려 한다고 생각하니 편하기 그지없다. 아버지가 내게 찾아오셨음에 정중하게 대접해야 한다. 그러니 내 아버지의 넋을 모시고 온 도브를 금쪽같이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도브의 생을 다하고 다시 만나는 다음 세상에서는 내 아버지를 모셔 오느라 수고한 감사함을 꼭 갚겠노라고 말해 주었다.
다가온 봄이 내 생애에서 맞았던 수 많은 봄들을 모두 합쳐놓은 숫자만큼 행복스럽다. 도브의 날개를 빌려 내게 날아오셨던 아버지, 왜 수많은 새들 중에, 그리고 왜 드넓은 세상 중에 내가 사는 발코니로 찾아온 것인지 이유를 나는 알 것 같았다. 혼자는 누구나 외로울 수밖에 없다지만 별난 도리가 없으니 마음법 하나로 살라고 했다.
나의 말을 귀신처럼 알아들은 도브는 자신을 단도리하며 발코니에 찾아 올 봄을 가득 담아, 내게 선물해 줄 거라고 했다. 빈 허공을 날면서 부질없이 울지 않는 따뜻한 의미가 담겨진 선물을 받게 되어 감사하다.
[문경구]
미주한인크리스찬문학협회공모 수필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