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구 칼럼] 축복받는 순간들

문경구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분명 하루하루가 축복을 받은 일이다. 그것을 자꾸 잊고 사는 나를 늘 깨닫게 하는 친구가 내게 있다는 것은 나에게도 분명 축복인 것이다. 여러 가지 축복 중에 가장 큰, 축복 속의 축복은 자식이 되어 부모와 함께 살아 숨 쉬는 순간들이 아닌가 싶다.

 

이는 일찍 어머니와 이별한 내게는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축복이다. 나와 가까운 백인 친구는 태어난 지 십일만에 강보에 싸인 채로 버려졌다. 아기 엄마가 소방서로 찾아가 부모이기를 포기한 법에 서명한 그날로부터 내 버려진 아기였다는데 그 기억조차도 아름답게 기억하는 친구다.

 

그 아름다운 이야기를 친구와 함께 나누는 오늘이 가장 빛나는 세상이다. 그러니까 세상이라는 마구간 거적자리에 툭 떨어진 지 열흘이 되던 날 지금의 어머니 품에 안기어 자라 온 오늘이라는 행복한 시간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친구와 친구 가족의 행복을 볼 때마다 그들이 겪고 살았던 그 어떤 어려운 일상의 성장 이야기조차도 행복이요 축복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친구가 들려주는 성장 이야기는 신의 축복이라고 꼭 집어 이야기 끝을 맺곤 한다.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기의 운명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아기가 할 수 있는 것은 배가 고파 우는 일밖에 없다.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으면 죽고 말아야 하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버려진 후 혹여 추위에 숨이 멎고 말았다면 아기는 열흘짜리 비자로 이 세상을 왔다가 열흘만을 채우고 다시 돌아갔을 거다. 그래도 작은 아기의 몸뚱이만을 남겨둔 채 떠난 세상은 그대로 굴러가고 있었을 것이다.

 

친구는 자식을 낳아 보지 못한 여자의 몸으로 아기를 키우던 과정은 그리 쉽지 않은 하루하루였음을 어머니에게서 듣는다. 갑자기 높은 열로 울어 댈 때면 날이 밝기만 기다리며 기도하였다는 성모마리아의 모습이다. 자신의 품에 안겨졌던 아기에게 행여 불행이라도 찾아와 입양된 지 얼마를 살지 못하고 죽게 되면 그 죄를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다른 양부모 곁으로 갔다면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공포감에 쌓여 얼마나 많은 날들을 보냈을까.

 

그러나 아들의 방글방글하는 얼굴만 보면 자신은 철의 여인이 되어 아들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강한 어머니의 애잔한 이야기는 끝이 없다. 아들이 대학을 가기 위하여 곁을 떠날 때 어머니의 빈 가슴은 평생 쓸쓸한 기억이었다고 회상한다.

 

아들을 기다리던 세월조차 어머니에게는 황금빛 기다림이었다. 아들의 기억이 머물던 방안의 모든 물건들을 차분히 정리하는 시간으로 겸허하게 기다리며 살았다고 한다. 마치 아들을 잉태하는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대학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을 공유하게 한 아들의 기대가 늘 자신의 곁에 있어 행복했다고 말했다.

 

사회로 나온 아들이 자신의 대학융자 학자금을 어깨에 메고 낑낑 땀을 흘리며 그 빚을 갚아 나갈 것을 생각하면 잠자리에 드는 것조차도 편치 않았다고 자식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마음으로 사셨다. 집 판 돈으로 남은 아들의 대학 학자금 융자 빚을 단번에 갚아주었을 때 날아갈 듯한 자랑스러운 어머니의 웃음꽃을 보며 가족들과 함께 신의 가호를 소리쳐 외쳤다고 한다.

 

나에게 신께서 20년이라는 시간을 허용하신다면 아기를 입양하여 아이와 함께 살고 싶어 한 나의 바램이 친구의 이야기와 같아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이의 커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삶의 보람을 느끼고 싶었던 바램은 친구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 친구가 내 꿈을 실현시켜 주려고 나와 친구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대리부(父母)의 만족을 갖게 해 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 만나 들어도 전율이 돋는다. 미국 CNN 방송의 한 유명 남자 앵커는 자신이 입양한 아기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할 때 기쁨의 얼굴은 다른 세상 속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것같았다. 요즘은 제법 TV에 나오는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고 TV 앞으로 기어가 야릇하고 이상한 얼굴로 쳐다본다고 한다. 자신의 아빠임을 알았을 때는 두 손을 들고 만세라도 부를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행복한 순간은 다시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를 지켜보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천국의 맛을 본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미국은 복지시설이 아무리 잘 되어있어도 입양가족에게 주는 특별한 혜택은 동전 한 닢도 없다. 어떤 조건 속에서든 쉬울 수 없는 과정이다. 버려진 아기를 굶주리게 하여 죽어가게 했다면 가장 큰 벌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그런 아기는 듣지도 볼 수도 없었다.

 

한국에서 일전에 들려온 진저리 처지는 뉴스는 차라리 한국말이 아닌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다른 나라 언어로 들려 졌기를 바랬다. 혹시나 해외토픽 뉴스라고 미국이라는 넓은 땅 위로 온 세상 사람들이 들을까 봐 두려웠다.

 

한국에서 한 입양된 아기가 죽어갔다. 아기는 이 세상으로 온 지 16개월이라는 짧은 여행을 마치고 다시 돌아갔다. 굶주림과 양부모의 학대로 장기는 파열되고 결국은 죽음이라는 어마어마한 고통을 고스란히 들고 돌아갔다. 세상에 와서 버려질 수밖에 없었던 아기의 운명이 참으로 처참하다. 떠나간 아기는 자신이 남겨놓은 상처로 아파할 세상 사람들을 염려하며 떠나갔을 것 같다.

 

천사가 입양아기의 옷을 입고 찾아 왔을 때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양부모를 원망하고 돌아갔을 아이를 생각하니 너무 슬프다. 아기를 갖은 부모들이나 자식을 원하는 부모들이나 슬퍼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떠난 아기를 생각하면 뉴스 속 아기가 다른 나라 이야기였기를 원했던 내가 더 큰 죄의식을 떨쳐 버리기 어렵다. 아기의 몸에 남겨진 피멍처럼 아프다. 아기는 축복을 주러 이 세상에 왔다가 아픔만 갖고 떠났다. 16개월뿐인 이 세상에서의 시간을 아무에게도 위탁받을 수 없어 고통을 그대로 뒤로하고 떠났다.

 

어떻게 탄생을 축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모정은 여자가 지닌 무한한 사랑이라는데 그런 자연이 주는 본능이라는 질서를 파괴하는 짓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제발 더 이상 이런 슬픈 뉴스는 접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싶다. 친구의 이야기처럼 사랑이라는 위대함에 짜릿한 전율을 느껴보는 뉴스 속에서 살고 싶다.



[문경구]

미주한인크리스찬문학협회공모 수필당선

문경구 kimurgin@hot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1.19 12:48 수정 2021.01.20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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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