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구 칼럼] 수남이와 복길이

문경구

 


봄을 기다리며 겨우내 묵었던 생각들을 비우니 날아갈 듯이 마음이 가볍다. 겨울의 무게만큼 머물렀던 후회도 변명도 따라 비워져 가벼운 몸으로 날아서 마켓도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몸이 아팠던 생각조차도 버리고 나니 마음은 이차원의 세상 같다. 세상이 온통 평화롭다.

 

어릴 적 서울에 있었던 평화시장이란 간판을 보고 그곳에는 온통 평화로움이 가득할 거라고 상상했던 꼭 그때의 기분이다. 두 번째 평화로움은 내가 지켜보며 살았던 수남이와 살던 때이다. 그때 평화로움을 먹고 산 것은 전설 속 나무 같은 무화과를 비롯해 너무 흔해 구박덩어리인 오렌지와 레몬, 그리고 뽕나무 열매 오디며 똘배까지 온갖 과일나무들이 수남이와 내가 함께 누린 행복을 지켜본 시간들이다.

 

그뿐이랴 매일 한 번씩 들러가는 도브 한 쌍이 어느 날에는 새끼 두 마리도 데려왔다. 자신처럼 연약한 나뭇가지에 둥지를 지은 벌새는 아주 입주해 살았다. 모든 생명체가 허락되는 평화시장 속에서 살았다. 강아지는 커서도 생후 4주 때 들었던 사람의 첫 목소리를 기억한다고 하여 나는 수남이를 4주 때 데려왔다.

 

나 외에 어느 누구의 목소리도 기억하지 못할 수남이가 신기해서다. 어미 품을 너무 일찍 떠나와 밤새 깽깽대며 울어대던 애절한 울음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애처로움으로 몇 날 밤을 깨었던 날들과 함께 커가면서 진돗개 순종과는 다소 빗나갔지만, 영리함이 나를 지켜준다는 믿음직스러움이 늘 자랑스러웠다.

 

먼 거리의 차 소리와 나의 심장 소리를 듣던 수남이였다. 그해 캘리포니아의 겨울날은 하늘이 곪아 터진 듯 비가 하루도 빠짐없이 내릴 적이었다. 방에 있던 수남이가 창문 쪽을 향해 끙끙대던 의미를 나는 눈치 못했다. 문을 긁어대며 더 크게 뒹굴며 울어대자 영문도 모르고 나는 문을 열어주니 빗속으로 뛰어가 숲에서 급했던 용변을 본 일로 나는 수남이의 영특함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일을 하러 가거나 여행을 떠날 때 수남이를 외롭게 두고 떠나가는 것이 가장 힘들었었다. 그때 수남이한테 찾아 온 아이가 바로 복길이다. 이미 경험한 바로 복길이를 데려오기 며칠 전에 복길이 어미 품에 깔았던 수건 한 장에 싸서 데려오니 복길이는 첫날 나의 집에서 어미를 찾지 않고 새근새근 잠을 잘 잤다.

 

복길이가 커가면서 수남이와 서로 쳐대는 장난은 나도 셈이 날만큼이다. 종일 나만 기다리던 수남이도 복길이와 노는 재미로 나를 아주 쉽게 생각했다. 복길이는 진돗개 순종과 흡사하긴 한 데 영리함이나 민첩함은 산비둘기를 따라잡는 수남이를 못 따라 간다고 구박을 받곤 했다.

 

따로 각각 밥을 주면 수놈인 수남이는 후딱 해치우고 복길이 밥그릇으로 간다. 밥그릇을 뺏긴 복길이는 내게 다가와 역성을 청하곤 했다. “복길이한테 그러면 못쓴다"고 수남이를 야단치면 그때서야 안심을 하던 복길이였다. 그렇게 셋이서 행복하게 지내서 나도 외로움을 몰랐다. 다른 들짐승들도 자주 찾아와 부러운 듯 들여다보며 가곤 했다. 솔나무 숲을 비집고 내리는 가을비 속에 아침 문을 열면 죽은 쥐 한마리를 보게 된다. 밤새 잡아놓고 둘이 공놀이하다가 내 버려진 쥐를 들이대면서 '절대로 산목숨을 가지고 장난하지 말라고 했지' 누가 그랬냐고 물으면 눈을 흘기면서 무슨 소릴 하냐며 서로 모른다고 잡아뗀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게 세상사라는 말은 그들과 나에게도 어김없이 찾아들었다. 모두가 그 인연 하나 지켜내지 못한 나의 욕심이란 변명만 남는 인생사가 된 거다. 어쩌면 수남이와 복길이도 듣고 있었는데 나에게 묻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 된다. 나의 장난이 두 생명의 죽음을 부른 죄인이 아닐 수 없다. 나도 욕심을 위해 사랑하는 존재를 너끈히 버릴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나의 이익만을 위한 행복들이 모두 죄악처럼 느껴졌다. 숲이 우거진 큰집에서 잊을만하면 터지는 수리비에 노이로제가 되어 사느니 팔고 간단히 사는 연습을 하자는 그럴듯한 궁리가 그들과 이별을 하게 했다. 무슨 까닭이었을까 집을 내놓은 지 하루 만에 팔리고 나는 그 뒤처리와 앞으로의 일로 나의 수족처럼 아끼며 살던 수남이와 복길이의 미래를 잊고 있었다.

 

저 애들을 사회기관으로 데려가야 하는가 하는 죄책감투성이의 나의 마음을 그들은 벌써 읽었고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다행한 일이 우리 모두에게 순간적으로 찾아 들었다. 부동산중개인 말로는 집을 보러 다니다 보면 집안 곳곳에 개똥이 눈에 띄게 마련인데 어떻게 개가 두 마리씩이나 있는 집에서 전혀 개똥을 볼 수가 없네라고 했다. 나도 그들의 배설물을 보지 못하고 숲속 보이지 않는 풀섶에 그들의 화장실을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옆에서 듣던 구입자가 재미있게 놀라면서 자신들이 입양하게 한 것을 요청했다.

 

나는 큰 짊을 벗게 된 것만 좋아했지 옆에서 듣고 있던 수남이와 복길이는 그때도 의식하지 못했다. 철딱서니 없이 신이 나서 새 주인에게 애들 이름과 수남이를 정식으로 소개할 때 그들은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키워준 내게 누를 끼치지 않고 마지막까지 모른 척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 집과 인연이 다해 떠나간다면 그들은 아직 그 집에 남은 인연으로 새로운 주인과 남은 행복을 누리며 살 거라는 안도의 숨을 쉰 것도 나의 맹랑한 변명이었다.

 

정리하는 대로 그들을 찾아보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나를 두고 지인들은 절대로 찾아가지 말라고 했다. 나를 보면 미친 듯이 날뛰며 따라가겠다고 하면 그들에게 또 저지르는 몹쓸 짓이라는 말에 그 말을 또 따랐다. 그 후 그들과의 정을 나 혼자 정리해 버린 죄책감으로 집주인에게 안부나 묻고 싶어졌다. 주인 말은 그들이 물 위의 기름처럼 겉돌고 새집 주인인 자신들은 먹을 것이나 주는 사람 정도였다며 누가 키운 개는 절대로 맡을 일이 아니라는 푸념을 했다.

 

심지어는 밥을 먹고 있는 수남이를 쓰다듬어 주려 했는데 귀찮다고 주인의 손을 물어 정이 떨어졌다고 했다. 나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컸으면 복길이는 독이 든 풀을 바닥에 토해놓고 죽어갔고 수남이는 나를 찾아 뛰쳐나와 교통사고를 당해 둘 다 모두 그곳에 없다고 했다. 짐승에게조차 정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아주 싸구려 망상 정도로 잊고 살았지만 저세상으로의 여행에서 수남이와 복길이를 만나 물어보면 그들은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떠났다고 할 거다.


아무리 지워도 그들의 죽음은 영원히 그 자리에 있는데 나 혼자 비웠다며 떠들어 댄다. 예쁘다고, 잘했다고 쓰다듬어 주던 나의 손길을 나도 그들도 비워내지 못한 억겁이 되었다. 모두를 내려놓고 산다는 것조차 그들에게 지은 업보였다.


 

[문경구]

미주한인크리스찬문학협회공모 수필당선

문경구 kimurgin@hot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1.25 11:25 수정 2021.01.25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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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