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뉴월, 그 좋은 계절 속 화초도 옮겨 심으면 주접이 드는 법인데 하물며 사람이 살던 집터를 옮겨간다는 것은 내렸던 뿌리를 거두고 다시 새 자리에서 뿌리를 내려야 하는 일이니 그럴만하다. 조상님의 허락도 받아야 한다는 이사하는 일이 지금은 전화 한 통화에 잽싸게 달려와 일사천리로 실었다 내렸다 한다.
내가 자랄 적엔 친구들 친척들, 동네 형들이 팔 걷고 도와주곤 했다. 일을 마치고 어른들은 짜장면 한 그릇에 곁들인 막걸리 한 대접이 전통적인 이삿날이다. 이사하는 날 요강을 솥에 담아 제일 먼저 신주단지처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는 민화 같은 재미있는 풍습도 있었다고 들었다.
그렇게 통상 하루 이틀이면 모두 옮길 수 있는 이삿짐을, 석 달, 삼 년이면 아마도 집조차도 들어다 놓기 충분한 시간이다. 그런데 일본은 자그마치 삼십 육 년이란 세월을 통해 작정을 하고 조선의 모든 재산을 일본으로 실어 날랐다. 금은보화 국보급 보물을 한 개도 남김없이 도둑질해갔다. 전쟁물자를 위해 쇠붙이 되는 거라면 대문에 달린 문고리까지 떼어갔으니 문고리가 없어 열 수 없는 조상들의 가슴속에 얼마나 많은 한이 담겨 있는가를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모든 물자는 막론하고 조선의 시퍼런 청춘들을 전쟁의 불쏘시개로 날려버렸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이사’라고 하면 태어난 국적을 산 넘듯 넘고 또 넘으며 다니다가 종말엔 떠나온 뿌리조차 잃은 채 남의 나라 공원에 홀로 앉은 한 많은 한국 여인이 되는 길이다.
나는 오늘 아침 산책길에서 그 소녀를 만났다. 아무도 오지 않는 호젓한 공원에 앉아 있는 그녀 곁에는 어제 비추다 남은 캘리포니아의 강렬했던 태양의 온기가 아침까지 있어 주었다. 푸릇한 잔디 빛이 반사되어 그녀를 비춰주니 화사한 웃음으로 나를 반기는 듯했다. 아직도 귀에 우리나라 독립의 외침 소리를 떨쳐 버리지 못하고 이곳에 와 혼자 앉아 있는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은 상처도 전혀 없어 보였다.
오늘은 나도 소녀 곁에 얌전히 앉아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다. 어느 님이 놓고 갔는지 소녀 앞에 놓인 시든 꽃다발조차도 그녀에게 웃음을 보낸다. 어떻게 위안부 소녀를 위로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소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말은 일본은 늘 기고만장하지만 결국 죄를 다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하는 것을 들려주고 싶었다.
몇 차례 난 지진 같은 것은 맛보기일 뿐, 일본이란 섬 자체가 그대로 바닷물에 쏘옥 가라앉아 잠겨버린 채 일본 사람들 머리만 물 밖으로 남게 하는 방법은 없는지 알고 싶다고 재미있게 말해주었다. 그 말에 소녀가 깔깔대며 웃었으니 그런대로 나는 그 소녀를 위안한 것 같았다. 소녀의 아픔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이야기라면 무슨 이야기라도 하고 싶었다.
굳어진 백 년의 세월로 소녀도 이젠 웬만한 말에는 눈물을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생각해 봐라. 태곳적에 조선의 한민족이 동해나 서해로 배를 타고 들어왔겠는가, 아무래도 중국에서 대륙을 타고 걸어 내려와 한반도에 정착하지 않았을까 하는 물음과 일본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걸까 아니면 땅에서 솟았단 말인가. 도공으로 기술을 전하러 일본을 건너갔던 남편을 기다리다 죽은 도공꾼 아내의 이야기도 들었잖는가. 그때 그 여인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죽어간 백제의 여인이었다.
일본은 자신들이 어디서 왔는가를 까맣게 잊고 요즘 중뿔나게 뛰고 있다. 까치 발바닥 같은 소리로 독도를 찝쩍거리는 일은 상습적이다. 인원파악을 할 때 꼭 자신은 빼놓고는 한 사람이 모자란다고, 탈영병이 생겼다고 소란을 피우는 덜 떨어진 영구도 그런 억지 계산으로 날뛰는 일은 없다.
그러니 위안부 소녀를 위로하는 일은 일본이란 나라가 지구에서 통째로 사라졌다고 알리는 뉴스가 아니면 해결 방법이 없으니 임시변통이라도 애물단지의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국땅 남의 나라 공원에서 망부석이 되어 비바람 맞아가면서 언제까지 위안만 받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옛날 나라 없이 수백 년을 떠돌아다니던 유대인처럼 방랑의 길이라도 떠나라고 했다. 해방되자 일본 사람들이 ‘쪼리’라고 부르는 그들의 신발에 발가락조차 제대로 꿰지 못하고 쫓겨간 그 길 뒤로 남겨진 숱한 원성은 패망의 낙진이 되어 그들에게 떨어지고 있으니 안심해도 괜찮다고 했다.
몸 바쳐 나라를 위해 희생한 소녀, 당신은 위대하기에 온 국민의 보훈의 동상이 되어 영원히 그 빛을 내고 있지 않은가. 안타까운 것은 달랑 몇 분 남은 위안부들을 이용해 먹고 재판을 기다리는 정치인들을 두고 일본은 뭐라고 할까. 여태까지 위안부 앵벌이였다고 그들이 말해도 무슨 수로 대꾸를 할 수 있을지 속수무책이 아닌가. “조선 놈들은 패야 해” 그들이 입에 담고 살았던 그 잔혹한 말의 대가로 조선의 청년들은 위안받아야 할 위안부 소년들이다.
이제는 우리가 끌어안고 살아온 내면의 모습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지금의 내 나라의 자태가 눈부시니 이제 마음 놓고 이쯤에서 위안부 소녀와 소년은 역사관에 자료로 남겨 두기로 하자. 한순간도 지나면 과거 속 역사다. 슬프지만 그 모두가 역사 속 이야기다. 모두 덮어두고 잠시나마 국익을 위하여 일본과 외교를 나누며 살면서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아기들이 태어나면서 하루하루 그들의 꿈의 역사를 만들어간다. 공원에 놀러 온 아이들이 재잘재잘 웃음으로 역사를 만들어가다가 위안부 소녀상 앞에서 역사의 희생을 눈치채고는 그 재잘댐을 소리 없이 끊어낸다. 침략을 당했던 나라 이야기는 많다. 그러나 슬프도록 가냘픈 위안부 역사 이야기는 공원을 찾아온 아이들에게만큼은 읽혀지기 싫다.
힘들고 지친 영혼들을 위해 웃음을 만드느라 수고한 영구도 그의 본래 모습으로 떠났다. 내가 사는 도시 공원에 살던 그 소녀는 한때 화려했던 여배우처럼 영구를 따라 떠났다는 소문이 파다했으면 좋겠다. 웃음을 피워대던 영구도 갔고 소녀도 따라 떠난 공원에는 새로운 발걸음으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그때처럼 공원을 가득 채우며 비추고 있는 햇살만이 역사를 잊은 채로 사는 것 같다.
[문경구]
미주한인크리스찬문학협회공모 수필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