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의 삶의 향기] 코카서스의 달

김희봉

 

코카서스에 달이 뜬다.

러시아의 지붕인 코카서스 산맥. 만년설을 인 연봉 사이로 눈썹 같은 그믐달이 뜬다. 우크라이나와 슬라브족의 자존심 같은 코카서스 최고봉 엘부르스. 유럽 최정상으로 알프스의 몽블랑 보다 무려 3천피트나 더 높다. 러시아 양대 산맥 중, 코카서스가 젊고 피 끓는 청년 같은 험산이라면, 우랄산맥은 풍화된 노년기의 낮은 구릉에 불과하다.


우랄은 유럽과 아시아를 동서로 구분 짓는다. 반면, 코카서스는 두 대륙을 남북으로 가른다. 북의 우크라이나 평원과 남쪽의 터키를 빗장처럼 차단하고 있다.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보면, 코카서스는 히말라야 대간과 이어진 줄기인 듯 보인다. 코카서스의 맥이 중동으로 뻗어오다 파미르 고원 근처에서 한 줄기는 몽고 북쪽으로, 또 한 줄기는 히말라야로 빨려 들어간다.

 

코카서스의 젊은 기개는 유명한 몽고계 훈(Hun)족의 아틸라 왕을 연상케 한다. 흉노족으로 알려진 용감무쌍한 아틸라 군대는 370년경, 코카서스와 러시아의 발상지 북해 연안을 휩쓸었다. 그리고 노도같은 기세를 몰아 유럽의 심장부, 로마제국까지 침공했다. 흉노들의 족적은 지금 헝가리(Hungary) 나라 이름에도 남아 있을 정도다. 아틸라는 그보다 약 800년 후에 나타난 또 하나 불세출의 영웅, 칭기즈칸과 함께 러시아와 유럽을 굴복시킨 전무후무한 몽고족들이었다.

 

코카서스 지역의 또 하나 기상 높은 민족은 코사크(Cossack)족이다. 그들은 우크라이나 변방에 살면서 전설적인 기마술과 용맹으로 외침을 막아냈다. 독립심 강하고, 조국에 대한 충성심과 기독교 신앙으로 뭉쳐진 투사들이었다.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를 충직하게 지키며 스탈린과 맞서 싸웠다. 그들은 전쟁 때마다 놀라운 전술로 적을 패퇴시켰고, 시베리아까지 영토를 늘이는데 공헌한 주력 부대들이었다.

 

코카서스의 이런 놀라운 정기(精氣)는 산맥 양쪽에 펼쳐진 대() 내해(內海)-카스피해와 흑해 그리고 아랄해-에서 발원된 것인지도 모른다. 카스피해는 세계에서 제일 큰 호수다. 북미 오대호를 다 합친 면적보다 넓다. 흑해는 카스피해보다 더 커서, 캘리포니아만큼 넓다. 깊이도 7천 피트 이상 심해로 내려간다. 옛날 세계 4번째로 컸던 아랄해도 러시아의 젖줄 호수다.

 

흑해는 지중해로 빠지는 한 가닥 출구를 제외하곤, 사면이 육지로 둘러싸여 호수 같은 바다이다. 기름진 우크라이나 평원을 살찌우는 돈강과 다뉴브강의 저수지요, 러시아 문명의 발상지다. 한편, 카스피해와 아랄해는 드물게도 짠물 호수다. 그러나 바다보다 낮은 염도로 짠물, 민물고기가 함께 서식해온 특이하고 소중한 생태지역이다. 가장 유명한 것이 캐비아를 낳는 진귀한 철갑상어. 전 세계 철갑상어의 80% 이상이 카스피해에서 자란다. 특히 벨루가라고 불리는 러시안 종은 세계 모든 민물고기 중 제일 커서 무게가 3천 파운드까지 나가는 것도 있다.

 

그러나 흑해, 카스피해도, 아랄해도 시들어가고 있다. 오염과 공해로 인한 기후변화로 생태계가 빠른 속도로 변질해 간다. 철갑상어의 과잉 포획은 말할 것도 없고, 북해와 카스피해 주변의 유전개발, 공해 시설로부터의 방출 등으로 물과 땅이 못쓰게 돼 가고 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호수로 들어오는 젖줄인 강물 줄기를 틀어, 이 지역이 점점 사막으로 변해 가는 점이다.

 

카스피해와 아랄해는 매년 크기가 줄어든다. 농사와 면화 재배를 위해 카스피해로 들어가는 볼가강, 아랄해로 유입되는 아무다리야, 시르다리야 두 강의 물줄기를 돌려 수자원의 균형이 깨진 지 오래다. 아랄해의 경우, 수십 년 전만 해도, 년 유수량 55입방 Km 와 강수량 6입방 Km가 유입되고, 61입Km 가 증발함으로써 절묘한 균형을 이뤘다. 그러나 강물 유입이 대폭 줄자, 수위는 계속 낮아지고 사막이 나타나고 있다.


아랄해의 크기는 40년 전보다 3분의 2로 줄어들었다. 염도는 3배나 증가하고 머지않아 호수가 사라질 위험에 처했다. 물이 증발한 곳에선 화학비료, 중금속과 소금이 바람에 날리고 주민들의 건강에 악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각종 암. 유산, 기형아 출산 등이 높은 비율로 나타난다. 환경단체들은 아랄해를 세계 최악의 환경 재해 지역 중 하나로 꼽고 있다.

 

러시아의 대문호, 리오 톨스토이는 1862년 '코사크족'이란 단편을 썼다. 세련된 주인공, 올레닌이 코카서스 산록에서 자연과 더불어 검소하게 사는 코사크족들의 삶을 통해 감명을 받는 줄거리다. 톨스토이는 실제 땅을 손수 갈고, 농부의 아이들을 가르치며, 자족하며 산 자연주의자였다. 그는 삶의 의미를 검소하고 도덕적인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에서 찾았었던 듯싶다. 그것이 충직하게 검은 흙을 손수 갈던 러시아인들의 정신이요, 코카사스의 정기로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코카서스의 달이 지고 있다. 희끄므레 걸린 그믐달이 삭막하게 흩날리는 카스피해와 아랄해의 소금바람 속에 떨고 있다.

 

이 어두운 밤에 고향을 떠나는 어느 코사크의 말발굽소리...



 

[김희봉]

서울대 공대, 미네소타 대학원 졸업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캘리포니아 GF Natural Health(한의학 박사)

수필가, 버클리 문학협회장

1시와 정신 해외산문상수상

김희봉 danhbkimm@g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2.03 12:44 수정 2021.02.03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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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