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한국에서의 풍경 중에 해마다 음력 정월, 동지가 되면 무속인들이 바빠지는 것을 보게 된다. 묵은 해의 궂은 일들을 보내고 새해 대운의 신을 맞는 축제인 거다. 그 즈음이면 나는 마치 한국전통 무속신앙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어 떠나곤 했다. 재미있는 자료들 속에서 저마다 다른 무속인들을 만난다.
신앙생활이 아무리 뛰어나도 오늘 몸소 실천하지 않는 종교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한다. 막무가내로 내 종교 하나뿐이라는 말이 아닌 거다. 변두리 산동네 비탈에 엉덩이만 겨우 걸터앉아 있는 허름한 무속인의 집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부산스러워지는 때이다.
연구자료들을 보면 정계 진출이나 승진 같은 출세의 기회를 알고 싶어, 또는 자식의 입시로 애를 태우는 어머니들, 새해에는 꼭 결혼 운이 있겠냐고 묻는 젊은이들 등 가슴에 묻힌 저마다의 사연을 담은 등을 밝히려 들어서는 사람들 발길로 문턱이 닳게 된다. 그들의 속내를 펼쳐놓는 찌들은 박달나무 밥상 위에는 점을 칠 때 던지는 닳아빠진 엽전 몇 개가 재미있게 구색을 갖추고 있다.
그 뒤로는 깎아 놓은 밤처럼 잘 조각된 미남형의 얼굴을 한 부처상이 금빛 물감으로 분장을 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접신을 잘 도와줄 것 같은 믿음이 갈 만큼 차분해 보인다. 나는 신년 운수를 보려는 사람들로 붐비는 때 보다는 한바탕 끝난 뒷자리에 찾아가기를 즐겼다. 직장을 위하여 어떤 길을 가야 하고 어떤 자세의 선택을 해야 하는지 주위 전문가들의 조언을 충분히 듣고 마지막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을 위하여 점집을 찾는다.
찾아갈 때의 기분은 고시공부를 하는 고시생의 심정만 같다. 가장 듣고 싶은 핵심은 ‘나’라고하는 한 실체가 원하는 일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 나에게 운의 문이 열리는 봄의 신은 나의 뜻을 허락하는가, 아니면 꽁꽁 얼어붙은 겨울날 운기에 취직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 질문 중에 하나만이라도 답을 듣기를 바라면서 나는 단단히 단도리를 하고 들어간다.
지금 씨뿌리기를 하면 곧 춘사월에 싹이 돋고 긴 하지의 여름 해로 익어서 가을에 추수하는 계절의 운이 되니 힘찬 발걸음으로 나아가도 괜찮다든가, 아니면 입춘은 왔다 해도 문밖에는 아직 잔설이 남아 있어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니 기회를 기다리면서 현실에 동안거를 하는 게 좋다는 말을 들어도 본디 내가 듣고자 했던 둘 중 하나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뻔한 사실은 점쟁이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다. 아니 온 세상 사람들, 산천초목도 사계절을 떠나 살 수는 없다는 말은 진리다. 무속인도 나도 살아서 숨 쉬고 있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다만 나와 다른 직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일 뿐이다. 무엇을 내게 던져주든 샤머니즘이라고 하는 사상에도 사람과 그리고 그 뒤를 배경으로 하는 사계절이 있고 나서야 강한 믿음이 따른다.
결정은 내가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불을 보듯 뻔한 현실이다. 세상 순리를 따르는 것이 나의 신앙이다. 사람이 그곳에 없다면 가능한 일이겠는가. 나는 점술녀를 만나러 가는 게 아니라 내 조상이 나를 위해 준비해 두었던 말을 전해 들어야 하는 인생카운슬러를 만나는 일이라 여기곤 했다. 과거는 확실하게 잊고 내게 주어질 현실들을 받아 담을 그릇이 내게 갖추어졌는지 알고 싶어서다.
어떤 결과를 거두는가는 신의 소관이 아닌 나에게 주어질 책임이라는 것을 알고 무술가의 도움을 받으면 마음도 편안해진다. 내가 선생님이라 부르는 칠십 대의 무속인은 재일교포 가정에서 성장하여 동경대학을 나온 집안이 으리으리한 남자와 결혼을 했단다. 일 년 남짓 세월 속에서 달랑 아들 하나 낳은 후 유난히도 심했던 산통은 결국 신병으로 이어졌고 소박 맞듯 아들을 끌어안고 한국으로 쫓겨 나왔다는 그녀의 삶은 무녀도 그림 속 같은 인생이었다.
평생을 자신의 신끼 팔자로 가정 풍파를 겪고 죄가 된 운명을 원망하던 그 신을 지금은 정중히 모시며 그 덕에 밥을 먹고 산다고 했다. 장성한 아들이 국내 최고의 학업을 마치고도 백수인 것도 모두 그녀가 섬기는 신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초여름 한날은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앉은 채로 깜박 잠에 떨어진 순간에 모시는 불상에 벼락이 떨어지는 꿈에서 깨여보니 부엌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단다. "늦게까지 밥도 못 얻어 처먹고 어딜 까질러 다녔냐"고 아들을 향해 욕이 담긴 고함을 힘껏 쳤단다. 그 순간 부엌에서 구척장신의 도적놈이 후다닥 어둠 속으로 빠져나갔다고 했다. 긴 숨을 내쉬며 부뚜막에 모셔진 보살님 덕분으로 공을 돌리고 몇 번이고 절을 드렸단다. 그 도적놈과 마주쳤었다면 어떤 일이라도 벌어지고 말았을 거라는 말에 나도 같이 놀라는 얼굴을 했다. 전통 무녀도 그림 속 인물만큼 초승달 눈썹의 얼굴은 아니지만 사람을 쳐다보는 동공에는 아직도 신병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눈빛이 있었다.
새파랗게 젊은 이십 대 청춘의 나 같은 사람이 점집을 찾는 것이 의아하다며 무언가 마음에 든 말을 했다. 그때 나는 생로병사의 의문을 쥐고 애쓰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선택하고 싶어졌다. 청승맞게 쪼그리고 앉아서 점괘를 뽑는 것을 넘어 내가 내 점을 직접 칠 수는 없는가를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 생과 사에 얽혀진 영과 사투할 때 작품을 이루듯 점쟁이는 그 사람 조상의 영혼을 부르는 작업을 한다고 했다. 정신적으로 심취해야만 끌어낼 수 있다는 작업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나는 늘 신비로워했다.
점괘를 부르기 위해 손을 떠는 무당의 예술이야말로 그 어떤 무대예술가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차분하게 앉은 내 모습도 신을 영접하려는 과정일 수 있다고 믿고 싶다. 내 몸에 신열 조짐이 시작되는 날 나는 내림굿이라도 받아 무당이 되는 길로 서슴없이 나서고 싶다. 무당 수업을 받아 용한 족집게 점술가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 나도 샤갈이나 백조의 호수 속 발레리나 같은 세기의 유명한 예술가 같은 점술의 예술가가 되는 거다. 맨발로 작두 위에 오르는 종목도 있다고 하니 그보다 더 극치의 예술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 위에서 접신을 하는 예술의 작업이다.
그때 제일 먼저 해내야 할 일은 내 영혼의 점괘로 어머니의 영혼을 불러 만나 뵙고 싶다. 여름밤이 모두 타버리고 가을 산마저 타버리고, 나의 가슴 영혼도 모두 타버린 세상에서라도 어머니를 언제든지 부를 수 있는 예술가로 산다면 나는 세기의 천상예술가인 거다. 어머니를 위한 성대한 진혼굿 콘서트를 열어 멋진 안무도 곁들인 무대 위에서 승무춤을 추며 나비처럼 훨훨 날고 싶다. 아직도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은 간절함이다. 불나비는 불인 줄 모르고 불 속으로 뛰어든 것이 아니다. 불 속에서 만나야 할 운명을 위해 불 속으로 뛰어든 거다. 떠나버린 시간들을 거부하지 못하고 불나비는 영원한 영혼으로 날고 있다.
무언의 세월 속, 백 살은 족히 먹어 보이는 자카렌다 고목나무가 허리를 죄인처럼 땅에 굽히고 있는 고즈넉한 교회 벤치에 앉아서 나는 불나비가 날아간 의미를 지켜보고 있었다.
[문경구]
미주한인크리스찬문학협회공모 수필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