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구 칼럼] 줄탁동시

문경구

 

만약에 사람이 매일 매일 새롭게 태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성스러운 성전에서도 그렇게는 이루어질 수 없을 거다. 어제의 노동 속에서 빚어진 노곤함과 사람들과 얽힌 이해관계를 털어버리고 오늘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이 새로운 시작은 모두의 바람일 거다.

 

나는 그런 바람으로 매일 새롭게 태어난다. ‘줄탁동시라고 하면 나는 벌벌 떨며 아낄 만큼 이 말의 의미를 사랑한다. 이 말의 의미를 아는 순간부터 나는 작은 알 속에서 깨어나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영혼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자신의 껍데기를 깨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침 식탁에 오르는 흔해 빠진 계란후라이가 되거나 점심 도시락을 열면 밥 위에 누워있는 후라이 반찬밖에는 못 된다. 하지만 작은 미물이라도 세상을 향해 껍질을 깨고 나오려는 노력을 한다면 반드시 병아리가 될 수 있다.

 

줄탁동시어미 닭이 알을 품은 지 21일이 되는 날 알 속의 병아리들은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그러나 혼자의 힘으로는 벅차지만 끊임없이 알을 쪼며 발버둥 친다. 그 신호를 알아들은 어미 닭은 알을 쪼아주며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런 노력의 과정을 통해 어미 닭과 병아리가 동시에 알을 쪼고 드디어 밖으로 나와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하나의 생명 탄생은 경이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질서다. ‘줄탁동시라는 병아리의 신비로움은 내 자신의 가치를 매일 깨닫게 한다. 늘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줄탁동시를 가슴에 품고 살면서 내 인생의 등대로 삼고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새롭게 시작한다. 내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가치 있는 일을 손에서 놓지 않고 열정하고 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매일 알에서 깨어나는 병아리의 새로움을 잊지 않고 살고 있다. 세상의 결점만을 탓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늘 깨어서 산다.

 

그해 늦여름 그날은 지독히도 더웠던 날. 나무에 앉은 새들도 더위에 지친 듯 낯선 나를 보고도 그 어떤 내색도 하지 않던 날이었다. 바람은 어디로 갔는지 나뭇잎 하나 흔들림이 없이 무심했다. 가을 농사 거두어들이는 준비를 하던 사람들도 더위에 지쳐 어디론가 가버린 텅 빈 날 같다고 혼자 궁시렁대던 날이었다.

 

나는 북가주 여행길에서 나의 깨여짐의 확실한 의미를 만났다. 그동안 내가 품고 살았던 어미 닭과 병아리의 만남을 거기서 보았다. 운전 중에 잠시 쉬어 볼일을 보고 갈 요량으로 후리웨이에서 첫 번째 만나게 되는 가까운 도시에서 내렸다. 도시라고 하기엔 좀 작은 마을이다. 산밑을 돌고 돌아 하나씩 만나는 몇 채의 집들을 끼고 포도농장이 전부인 전원 풍경 그대로이다.

 

우연히 나는 한 농장 입구에 붙여진 병아리 부화장이라는 싸인을 보았다. 차 창문을 열어둔 채로 정문 옆에 세워두고 걸어 들어가자 어디에선가 삐악대는 병아리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누구를 부르는 소리일까. 부화장이라고 하면 대량으로 생명을 부화하는 공장일 줄 알았는데 분명 깨어난 순서대로 세상에 차분하게 와서 기다리고 있는 생명들이다. 상자마다 담겨 나와 있었다. 내 귀에는 어미 닭을 찾는 울음소리로 들렸다. 구멍이 몇 개씩 뚫린 상자에는 무슨 품종의 병아리며 태어난 날짜와 시간이 적혀있었다.

 

그날, 내가 만나 본 첫 상자 속 병아리들은 바로 두 시간 전에 태어났다고 쓰여있었다. 두 살짜리 병아리가 아닌 두 시간짜리 병아리들이었다. 그러니까 상자 안에 꽉 찬 병아리들이 알 밖으로 나와 세상 속 나를 만난 지 두 시간이 흘렀다. 아직 잠에서 덜 깨어서인지 서로 붙어서 삐악대기만 했다.

 

샛노란 빛깔로 울어대는 병아리의 부름이 없이는 아마도 봄도, 개나리꽃도 피어날 수 없었을 것 같았다. 어떻게 이토록 신비스러운 노란색을 띠고 나왔을까. 내가 그리는 그림 속에서 도저히 풀어낼 수 없는 색이다. 나는 상자 안 병아리들과 삐악대는 소리까지도 사진에 가득 담았다. 사진 속은 온통 노란 병아리들이 알을 깨고 모인 부활절 식구들이다. 곧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온 고통을 세상에 알리는 부활절 행사를 알릴 것 같았다.

 

그 순간 내게 번쩍 든 생각이 있었다. 병아리들이 엉켜있는 모습을 그대로 캔버스 안에 담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벅차게 감동적으로 다가와도 그 감정을 동적으로 캔버스 위에 그림으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한계가 있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림이라고 하면 산이나 바다 등 풍경화 위주의 그림을 많이 선호한다. 특별한 그림 소재를 고집하는 나에겐 병아리가 분명 특별히 선택되는 소재이지만 한 마리의 병아리가 아닌 수백 마리 병아리의 주제는 특별함을 넘어 난해하여 나를 혼란 속으로 빠뜨릴 것 같았다.

 

동물 중에도 병아리는 내가 고심하던 특별한 소재로 내게 다가왔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는 생각하지 못했던 난관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 이젤 앞에 앉았다. 찍어온 사진을 보며 과연 지구상에 딱 하나뿐인 그림의 소재인 금방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들을 어떻게 그림의 화두에 옮길 수 있을까 번뇌하는 마음을 부활절 바구니에 담아 놓고 속죄의 길을 떠나는 자가 되어도 보고 그 해답을 찾으려고 애썼다.

 

수십 마리의 병아리는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부담으로 따라와 고해성사했다.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 그림은 내가 표현하고 싶은 세상의 평화로움이다. 고통이 없는 세상을 사는 일이다. 병아리들은 나를 속죄하는 사람으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병아리들의 시간도 나의 시간처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그림은 이미 그들이 나를 만났던 2시간짜리 운명이 아니다.

 

나는 그런 운명을 생각하며 그렸다. 그리고 그 그림은 화랑에 내어 걸린 지 몇 시간이 안 되어 팔려나갔다고 한다. 나를 떠난 병아리들이 어느 하늘아래선가 나처럼 생명의 태어남에 벌벌 떠는 사람을 만나 가슴에서 비약되며 살아갈 것이다. 나와는 영원한 이별이지만 줄탁동시의 철학을 내게 준 것이다.

 

줄탁동시를 사랑하는 내 마음이 담긴 "2 hour old chicks"라는 제목의 그림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생명의 신비로움과 자연의 위대함을 깨우치길 바라는 마음이다.


 

[문경구]

미주한인크리스찬문학협회공모 수필당선

문경구 kimurgin@hot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2.16 11:39 수정 2021.02.16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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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