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구 칼럼] 길조는 정말 찾아올까

문경구

 

나의 공간에 찾아든 도브새 새끼 한 마리를 보면서 나는 그를 자연으로 되돌려 보낼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나와 도브새 새끼의 운명으로 깊은 고심을 했다. 어미 품에서 많은 시간을 더 보내야 하는 새끼새, 너무 어려 날지도 못하는 것은 고사하고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새끼새가 왜 내 곁을 찾은 것일까. 새들은 어미새가 먹은 음식을 위 속에서 잘게 부수어 새끼새에게 먹인다고 알고 있는데 생명을 잇는 가장 기본요소조차 갖추지 못한 채로 나를 찾아왔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숨을 멈추기만 기다려야 하는 일밖에 없어 안타깝다. 그것이 새끼 새의 운명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것보다 더 무서운 생각은 밤이 되면 새의 천적인 날짐승들과 길을 오가는 코요테라도 만나게 되면 새끼새는 더 일찍 죽어야 한다. 나는 이 안타까운 생명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해 들은 바로는 야생조류 학자들은 자연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성장해 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한다. 새끼 새를 보면서 야생조류학자의 삶을 상상해 보았다. 자연에서 자연 치유자가 되어 새들을 연구하면서 새들의 생명을 치유하고 또 구하는 직업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직업이던가.

 

생명은 생명 있는 모든 존재는 다 존귀하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 생명의 귀천은 없다. 내 앞에 놓인 새끼새의 운명을 생각하니 나는 야생조류학자가 되었다가 자연 치유자가 되었다가 동물구조자가 되었다가 하면서 새끼새를 살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생각해 보며 가능한 일이 있을지 이런저런 궁리를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얌전한 작은 도시는 종일 길을 걸어도 마주치는 사람이 하나둘일 만큼 조용한 도시다. 줄지어 선 가로수도 자연의 정서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자연스러운 곳이다. 그 길들을 따라오면서 보면 까치 소리도 들리고 까마귀 떼가 헬리콥터처럼 머리 위로 얕게 나른다. 사람의 키 높이로 나르는 도브새의 귀한 울음소리도 듣는다. 지구상에는 8천여 종의 새들이 산다는데 내가 아는 새는 이들이 전부이다.

 

그 운명의 날에도 여느 때처럼 커피 내리는 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집을 나섰다. 먼 곳으로부터 조금 남았던 어둠이 사라져가는 흔적을 보며 아침 길을 걷는 똑같은 날이었다. 순간 재활용품을 거둬 가는 시청공무원 운전사의 차 시동을 끄는 소리가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곧바로 그는 손에 쥔 작은 도브새 새끼 한 마리를 내보이면서 자신은 지금 일하는 시간이라 어려우니 내게 가져가기를 권했다. 잔디 위에 떨어져 있는 새끼 새를 보고 그도 마음이 혼란스러웠었던 것 같았다. 나는 왜 가져왔느냐고 하며 아마도 어미새 둥지에서 떨어진 것 같은데 그 자리에 그대로 있게 했다면 어미새가 찾아와 데려갔을 거라고 말하니 그는 이미 4마일을 멀리 왔다고 했다.

 

나는 그 공무원의 부탁을 말없이 받아 주었다. 그가 기뻐하며 일을 계속하기 위해 자리를 떠날 때 다음에 만나면 꼭 새의 안부를 들려 달라는 더 기가 막히는 소리를 내게 했다. 신은 한 생명이 마침표를 찍는 모습을 보게 하시려는 걸까 하는 생각도 내겐 참 막연했다. 데려다가 죽을 시간만 지켜보는 일이 전부인 일을 왜 받게 했던 걸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커다란 상자 안에 먹이와 물을 주고 그 상자를 발코니로 옮겨 놓는 일뿐이다. 그 다음은 새끼 새의 운명에 맡겨 놓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렇게 내 곁으로 찾아온 새끼 새는 스스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너무 여린 생명이었다. 나는 편치 않은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새끼 새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떠 들여다보니 웅크리고 숨은 쉬고 있었다. 참으로 생명이란 말 할 수 없는 신비로움이다. 어제 새를 손에 받았을 때의 온도와 느껴진 맥박을 생각하니 새의 생명과 인간의 생명이 한치도 다름이 없다는 걸 느꼈다.

 

산을 헤집고 다니다 만나는 조류학자들도 나와 똑같은 생명의 맥박 소리를 간직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볼일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잠시 후 돌아와 나는 그 맥박보다 더 벅찬 감동을 지켜보게 되었다. 이것이 현실로 가능한 일일까. 나는 마치 환상 중독환자가 된 듯 내 눈을 의심하며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생명을 주신 조물주에 대한 기적의 기쁨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떻게 어미새는 자신의 새끼를 찾아온 것일까. 어미새가 자신의 먹이를 토해내 가며 새끼새를 먹이고 있었다. 휴대폰을 꺼내 그 목격들을 저장해놓았다. 새끼새를 잃은 어미새의 심경은 어떤 것이었을까. 새끼를 찾기까지 어미는 얼마나 절규하는 마음으로 하늘 구석구석 날며 새끼새를 찾고 다녔을까. 내가 풀어낼 수 없는 의문을 남겨놓고 어미새는 그 다음날도 찾아왔다. 매일 먹이를 먹이는 모습이 나의 어머니께서 내게 젖을 물리시던 바로 그 따뜻함 같았다.

 

새끼새는 나의 공간에서 눈을 뜨고 뒤뚱거리며 날갯짓도 하면서 커갔다. 이제 어미새를 따라 날아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새끼를 보호해 준 나를 어미새는 알고 있을까. 나의 휴대폰 속에는 귀중한 생명의 숨소리가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길조가 바로 이런 의미일까. 아니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길조임을 부인할 수 없게 이미 내 가슴에 저장되었으니 길조는 영원한 나의 소유가 되었다.

 

생명에 대한 희열, 삶에 환희라는 의미를 느끼는 순간들로 충만하다.

 


[문경구]

미주한인크리스찬문학협회공모 수필당선

문경구 kimurgin@hot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3.02 14:13 수정 2021.03.0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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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