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 년 전부터 구석기 사람들이 한반도에 살기 시작하였다. 한반도 호남지역에서 3만 년 전쯤에 농사짓기 시작한 신석기 민족이 고인돌 세우기 시작하였다. 겨울을 극복하고 육로를 개척하여 북상하며 요하지역에 이르렀음은 2만 년 전쯤이었다. 2만 5천 년 전쯤에 농사짓는 한반도민족은 짚배를 만들어 바닷가에 생활하며 항해하였다. 동아시아 해변을 따라 강 하구마다 정착하기 시작하여 요하, 황하, 장강, 메콩강, 갠지스강까지 정착하였다. 7천 년 전부터 홍산문화를 이루기 시작하여 사기그릇을 굽고 옥돌을 다듬기 시작하였다. 옥돌은 땅의 신이요 거울은 하늘의 신으로 여겨졌다. 5천 년 전쯤에 고인돌 마을은 석탄불에서 금속도구와 금속무기가 출산되며 고조선(朝鮮 Joseon, 아침 해의 나라, BC 2333~108) 국가체제가 세워졌다. 한반도 생활풍습은 한반도민족이 이르는 곳마다 새로운 문화를 일으켰다.
요하지역 석탄불에서 시작한 금속문화는 황하유역 상나라에 이르러 청동문화가 발달하였다. 1937년에 상나라의 궁전구와 왕릉구가 발굴되면서 상나라 황하문명이 세상에 알려졌다. 도기,청동기, 석기, 옥기, 골기, 24,918점의 유물이 발굴되고 16,000여 건의 갑골이 대량으로 발굴되었다. 1950년부터 10여 년의 발굴연구로 무덤과 제사갱 1만 여좌, 차마갱 100여좌, 거주지터 100 여좌, 공방유적 10 여좌, 등을 발굴하였다. 중국은 1961년에 허난성 안양시에 은허박물관을 지하에 설립하여 전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발굴된 15만 편의 갑골 중에 4,500 글자를 식별하고 1,500 글자를 해석하였다. 상나라의 청동제기는 현대 각국 박물관에서 흔히 전시되어 있다.
요하지역의 한반도민족 고조선은 영토가 이미 황하 지역에 이르렀기에 요하 남쪽으로 하(夏 Xia BC 2070~1600)나라를 세우고 다시 황하 유역에 상(商 Shang BC 1600~1046)나라를 세웠다. 한반도의 생활풍습이 조선, 하, 상, 3 나라의 문화로 이어졌다. 중화족 주(周, Zhou BC 1046~256)나라가 나타나기 이전에 한반도민족의 조선, 하, 상나라의 문화는 짚배를 타고 바다길 따라 세계 여러 대륙으로 전해졌다. 요하 지역에서 말을 기르고 말과 두 바퀴 수레로 거마(車馬 Chariot)가 나타남은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하늘에 천궁이 있고 북극성이 천황으로 여겨지며 그 옆에 북두칠성은 천황의 거마로 여겨졌다.
한반도에서 궁성이나 사찰건물이 남북으로 축을 세워 좌우대칭으로 가람을 이루었다. 요하지역에 이르러 거마의 발달은 격자형 도시계획으로 성장하였다. 한반도민족의 대도시는 모두 격자형으로 계획된 도시모습이다. 중국의 산서성에 서안(장안성), 만주지역 발해의 상경부(上京府), 한반도 고구려의 장안(長安; 평양), 신라의 왕경(王京; 경주), 백제의 사비성(호남에 부여), 일본의 평성경(平城京; 나라)과 평안경(平安京; 교또) 등의 동아시아 도시와 미국 원주민의 고대 도시 팔렝케와 테오티후아칸, 파키스탄의 모헨조다로(Mohenjodaro)와 하라파, 등의 도시계획이 한반도민족의 격자형 도시들이다. 하나라 거마전술은 메소포타미아로 전해지고 상나라의 옥돌문화와 석탑문화는 중미의 마야와 아스텍으로 전해졌다. 고조선에서 계급제도가 나타나고 황하유역에 인구가 증가하며 상나라에서 인신공양과 순장제도가 나타났다. 상나라의 신에게 바치는 인신공양이나 순장 제도는 중미 마야와 아스텍에 전해져서 피라미드 신전에 돌접시 위에 사람의 심장이 꿈틀거리는 순장 절차로 보여준다. 고조선의 적석총은 이집트의 피라미드로 전해졌다. 지구상의 인류문명은 조선, 하, 상, 한반도민족 나라들의 동아시아에서 시작하여 여러 대륙으로 전해졌다. 인류문명은 한반도의 문화에서 시작하였다.
요하지역 석탄불에서 손칼을 제작한 후부터 바위에 그림을 그리고 흙 그릇에 그림을 그려 불에 구웠다. 바위의 그림은 한반도와 만주초원에 수없이 많은 유적을 남기었다. 그림은 그리는 사람의 뜻이 보는 사람에게 전해져서 문자로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바위에 문자는 중미에 마야 문자로 전해지고 흙에 그려 불에 구운 문자는 메소포타미아 스메르 문자로 전해졌다. 상나라의 문자 발달은 상나라 문명에 한반도 문화발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반도 호남지역에서 농사 지으며 성장한 생활풍습이 상나라에 전해지고 문자의 형성에 그 모습이 들어난다. 한반도의 윷놀이도 점을 치는 풍습이었으며 윷판의 원형은 하늘의 상징이며 윷나무 작대기는 문자의 형태로 나타났다고 한다.
한반도에서 거북점을 치는 풍습은 상나라에 이르러 갑골의 안쪽 면에 불에 달군 나무를 눌러 급속히 팽창시키면 표면에 국부적인 균열이 생기는데, 그 균열의 상태를 보아 점을 쳤다. 주요 내용은 주로 조상신이나 자연신에 대한 제사의 여부, 전쟁의 가부, 농사의 풍흉, 바람과 비의 유무, 수렵이나 재해의 유무 등 왕의 통치와 관련된 다양한 사안들이었다. 한반도의 짐승 어깨뼈에 점을 찍어 갑골문(胛骨文)의 모습이 나타남도 상나라 풍습에 나타난다. 상나라의 갑골문자가 발견되고 내용이 알려지면서 중국의 역사는 상나라에서 시작되었다.
사마천의 사기에 한나라의 사마천 자신이 동이족이며 춘추시대 공자 역시 동이족이라고 하였다. 한국에 동이한국사 저자, 이기훈 교수의 이론에 근거하면 갑골문자는 동이족의 문자이며 한자의 시작이었다. 황하유역에 갑골문(甲骨文)유물은 수없이 많은 문자의 발달과정을 보여준다. 한반도민족의 거주지역, 한반도, 일본, 황하유역, 산동반도, 일대에 나타나는 갑골문은 한자가 상형문자로 발달하는 모습이다. 한자(漢字)는 한반도민족(동이족)의 문자로 시작하였듯이 중국의 문명은 한반도민족 문화의 뒤를 따랐다. 산동반도는 한반도민족의 거주지이며 한자(漢字)의 고향이 되었다.
한반도의 생활풍습에 남자는 머리에 상투를 매고 여자는 처녀 때 뒤로 따서 내렸다가 시집가면 머리를 올리고 비녀를 꽂았다. 남자는 등에 지게를 메고 짐을 날랐다. 소를 몰아 쟁기를 끌고 밭골을 파며 가래질을 했다. 여자는 아기를 등에 업고 머리에 짐을 올렸다. 흰옷을 즐겨 입고 빨래하면 다듬잇돌에 접어 올려 나무 방망이로 다듬이질했다. 명주나 모시는 홍두깨로 두들겼다. 방바닥에 앉아 무릎을 꿇어 어른에게 겸손히 존대어를 사용하였다. 무릎 꿇고 엎드려 절하는 예절을 갖추었다. 두 손으로 주고받는 예의 바른 풍습이 호남에서 시작하여 고조선, 하나라, 상나라로 전해졌다. 짚으로 새끼줄을 엮어서 허리와 머리에 두르고 모시옷을 입고 일하며 살았다. 아이 낳으면 대문에 새끼줄(금줄)을 걸었다. 사내아이면 고추와 숯을 엮고 계집아이면 솔가지와 숯을 엮었다. 이러한 생활풍습이 글자 모양으로 그려지며 한자로 발달하였음을 이기훈 교수는 설명한다.
한반도민족만이 존경어를 사용하는 언어를 가졌다. 엎드려 절하는 예의는 인도 갠지스강에 전해져서 검은 머리에 상투 묶은 석가의 불교로 전해지고 석가의 무덤은 한반도의 동그란 묘지 모양이다. 절하는 풍습은 힌두교와 회교도로 전해져서 서남아시아에서 지금도 볼 수 있다. 인도 사람들이 흰옷을 즐겨 입는다. 한반도에서 농사지으며 기저귀 옷을 입기 시작하고 치마를 입기 시작하였다. 요하에 이르러 말을 길러 타기 시작하며 바지를 입기 시작하였다. 남자의 바지 옷은 고조선 풍습에서 시작하여 상나라와 흉노, 고구려로 전해졌다. 고구려 고분의 벽화에서 의상 발전의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1만 년 전쯤에 인도 북방에 나타난 인도아리안 중화족은 해변의 한반도민족을 피해서 내륙으로 북상하기 시작하였다. 황하 상류에 이르러 이미 정착한 한반도민족에 흡수되기 시작하였다. 서주(西周, Western Zhou BC 11세기~기원전 771년)는 한반도민족에 흡수된 중화한족 나라의 기원이다. 황하 상류의 서주가 황하 하류에 한반도민족의 생활지역 상나라를 침략한 때는 기원전 700년쯤이었다. 상나라 주민이 원래의 고향인 북쪽으로 도피하며 분산되는 민족 대이동이 일어난다. 남쪽 사천성으로 이동한 부류는 초나라를 세워 삼성퇴 금속문화의 절정을 이루고 고도의 문화를 간직한 묘족(苗族)으로 한반도의 농사짓는 민족의 후세로 전한다. 한반도 남동부에 이주한 상나라 후예는 신라를 건국하고 바닷길 따라 멀리 중미에 이른 부류는 마야와 아스텍 국가들에 이르렀다. 서북쪽으로 이주한 부류는 훈족에 가담하였다.
그때부터 산서성 지역은 중화민족과 한반도민족의 혼혈 지역으로 중화역사에 4대 미인들, 서시. 왕소군, 양귀비, 초선이 모두 이 지역에서 태어난다. 두 민족의 경제적 교류가 이 지역을 동아시아의 경제 중심지를 이루었다. 주나라는 도읍을 서안지역에서 낙양지역으로 옮기고 동주의 이름으로 지속되었지만 한반도민족에 흡수되어 춘추전국시대의 춘추 5패와 전국 7웅의 재후국들로 분산된다. 공자의 저서 춘추에서 설명하듯 전국시대는 기원전 403년 진(晉) 나라에서 분열되어 나온 삼진(三晉:조나라, 한나라, 위나라)이 주나라에서 제후의 지위를 인정받으면서 본격화되었다. 보통 전국칠웅(戰國七雄)이라고 해서 일곱 개의 강대국, 진(秦), 초(楚), 연(燕), 조(趙), 제(齊), 한(韓), 위(魏) 나라가 시대를 이끌었다.
제후국의 군주들이 더 이상 공(公)이 아니라 왕(王)을 본격적으로 칭하기 시작한 것도 더 이상 주나라를 천자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생각이었다. 전국시대의 나라들은 국력을 증진시키고 철기무기와 거마전쟁이 일반화되며 철기 농기구가 농업에 일반화되었다. 약 170년 지속된 전국시대는 서쪽에 성안지역에 진(秦) 나라가 한반도민족, 시황제가 나타나면서 그 막을 내린다. 시황제의 유적은 1974년에 서안시 외곽에서 발굴된 병마용갱 유적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상나라의 민족이동은 지중해지역에 변화를 가져와서 기원전 5세기에 지중해에 동아시아 문화를 가진 백인의 나라 그리스가 나타나며 유럽의 역사가 시작한다.
한반도민족의 언어구성은 주어-목적어-동사의 문장이다. 하지만 중화 언어는 인도아리안 영어처럼 주어-동사-목적어의 문장이다. 중화족이 나타나고 주나라가 상나라를 침략하여 춘추전국시대로 이어지는 동안 동이 한자는 중화 문장으로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시황제가 동아시아 모든 민족을 통일하며 한족(漢族)이 나타나고 시황제를 이어서 한(漢)나라가 통치하는 동안 한반도의 풍습과 전통은 차츰 중화와 절충하기 시작하였다. 오늘의 한국어와 중국어로 전해 왔다. 한반도민족은 중국역사를 통틀어 한(漢)나라 이후부터 진(晉), 남조, 남송, 명나라에 국한된다. 대부분의 동아시아 역사는 동한, 수, 당, 송, 원, 금, 청, 등으로 이어지는 한반도민족이 지배한 역사이다. 고조선의 단군신화로 시작한 동아시아 대부분의 역사는 한반도민족이 꾸려왔다. 현재 중국의 수도 베이징(북경)도 고조선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한반도민족의 근거지였으며 지금도 동이족의 후예들이 중화민국을 다스리고 있다. 중국, 일본, 몽골, 대만, 월남, 티베트를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뿌리가 한반도민족이며 동아시아는 인류 문명∙문화의 어머니이다.
[최용완]
건축가·시인·수필가
서울공대 건축과 졸업
미네소타 주립대 대학원 졸업
오하이오주 건축회사 대표
전 문교부 문화재전문위원 역임
미주문협 신인상 수상
자유문학 신인상 수상
에세이포레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