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강의 인문으로 바라보는 세상] 담장 고치기

신연강

사진=신연강


따스한 햇볕과 싱그런 바람이 겨우내 잠든 발길을 깨운다. 굳게 닫혔던 대문이 열리고 추위와 코로나로 묶였던 몸과 마음에 봄이 찾아온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니 사람뿐 아니라 이삿짐 트럭 또한 분주하다.

 

봄은 바야흐로 이사의 계절인가 보다. 오래전부터 우리 선조들은 이사하는 날(()없는 날)을 콕, 집어 이사를 감행(?)할 만큼 이사를 중요한 일로 여겼다. 단순히 몸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모든 것(가족, 가구, 주소, 증명서, 주변인 등)을 바꾸는 것이어서 그만큼 중대사로 생각한 것이다

오래전 어느 작가가 한 말이 떠오른다. “이사란 몸만 옮기는 것이 아니고, 함께 했던 추억을 묻고, 지내 온 시간을 떠나보내는 것이라고”. 그처럼 이사란 자라난 뿌리를 단절하는 일이기에 큰 변화를 동반하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몸뿐 아니라 마음도 쉽게 담아서 옮기고, 일 년에도 몇 번을 옮겨가는 유목민의 삶을 살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에게 이사하는 일은 아직도 고민스럽고 수고로울 것이다.

 

이사 말고도 수고스러운 일이 더 있다. 옛사람들에게 집을 고치는 일 또한 힘겹고 버거웠을 것이다. 지금처럼 운송과 이사 수단이 발전하지 못한 때에는, 한번 살던 집을 보수해서 살고, 다시 고치고 하는 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을 테니. 집수리 또한 전문업자의 손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각자 손수 집을 개보수하고, 때로는 마을공동체의 손을 빌리기도 했을 것이다.

 

꽤 오래전 일로 생각되는데, 시골의 먼 친척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었다. 사유인즉, 기와를 고치러 지붕에 올라갔다가 낙상으로 인해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참 인자한 분이셨는데, 한창 바쁠 때 일이라 그만 가보지를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왜 그런 위험한 일을 직접 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었다. 집을 손보는 일에 있어서 그 같은 안타까운 기억이 있는 반면에, 프로스트의 담장 고치기는 소소한 즐거움과 마음의 여유로 다가온다.

 

담장 고치기

 

담장을 좋아하지 않는 어떤 것이 있는가 보다.

그것이 담장 밑 언 땅을 부풀게 하여

위쪽 둥근 돌들을 햇볕 가운데 떨어뜨린다.

그리고 거기엔 두 사람이 지나갈 틈이 생긴다.

사냥꾼들도 담장을 부순다.

나는 그들이 떠난 곳에서 차곡차곡 돌을 쌓아

부서진 담장을 수리했다.

 

Something there is that doesn't love a wall,
That sends the frozen-ground-swell under it
And spills the upper boulders in the sun,
And makes gaps even two can pass abreast.
The work of hunters is another thing:
I have come after them and made repair
Where they have left not one stone on a stone,

 

-로버트 프로스트, <담장 고치기> 부문-

 

현대인의 삶에서 주거는 매우 기능적이고 시스템적으로 이루어진다. 앞으로 이러한 양상은 AI나 스마트 시티 구현으로 인해, 더욱 수월하고 편해지리라 전망한다. 반면, 오래된 주거지나 외떨어진 전원주택 단지에서는 여전히 담이 존재하겠지만 이 또한 없어지거나 얕아지는 경향을 띨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곳에서는 여전히 봄에 집을 고치고, 대청소하며, 담장 고치는 일을 두루 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나로서도 담장을 고칠 일은 없다. 아쉬운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론 번잡하게 시간을 빼앗길 일도 아니어서 안도를 한다. 간혹 붉은 벽돌 사이로 솟아오른 검푸른 이끼를 걷어내고, 어쩌다 돌 틈에 뿌리를 내려 잎을 펼쳐내는 이름 모를 풀의 강인함을 보면서, 생명을 생각하고 세 개의 집짓기를 떠올려본다.

 

아직 늦지 않았다면 세 개의 집짓기를 잘해보고 싶다. 아니, 아직 늦지 않았기에 열심히 해보고 싶다, 몸을 담고, 육체를 담고, 정신을 담는 일을. 그 집은- 하우스(몸을 뉘는 집), 건강(육신을 담는 집), 문화(정신을 쌓는 집)-로 구성된 세 개의 집이다.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으나, 그중 제일이라면 건강이며, 그다음으로는 문화(정신)의 순으로 관리해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한때 심하게 앓았거나, 투병했거나, 가족이 질병으로 고생하는 것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건강의 소중함을 알겠기에, 정신을 담거나 몸을 뉠 집에 앞서 육체의 집인 건강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데 동의할 것이다. 돌아보니, 한때는 생각했다-병원에서 일하고, ·형사상 소송을 담당하는 일(의사나 변호사처럼 육체적 환자며 사회적 갈등을 다루는 것)은 가장 거칠고 건강하지 않은 일로. 오늘날 다시 멀리 바라보며 생각해보니, 내 집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집(, 건강, 사회적 난제)을 돌보고 고쳐주는 일은 상당히 보람 있고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담장을 고치는 것의 중요함. 그것은 마음을 정돈하고 흐트러진 자세를 부여잡는 일이다.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으로 시선을 확대하는 일이다. 그 작업을 하면서, 담뿐 아니라 흐트러진 내면과 허물어진 정신을 세워갈 일이다. 담장을 고치면서 프로스트가 왜 즐거워하고 보람을 느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담장을 고치는 것은, 허물어져 가는 나를 고치며 몸을 세우고 마음을 다듬는 일과 다르지 않다. 내 집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집 고치는 일에도 관심을 두고 힘을 보태리라. 이제 완연한 봄이니, 장터로 향하는 발길도, 터전을 찾아오고 가는 사람도 많아질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살 터전을 가지고 장난친 사람들로 인해 나라가 벌집을 쑤셔놓은 듯 시끌시끌한 때에, 몸과 마음을 담을 소중한 집을 생각하게 된다.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박사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3.20 12:05 수정 2021.03.20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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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