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맹 가리(1914~1980)는 20세기 프랑스의 유대계 소설가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조종사로 활약했고 종전 이후에는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드골 장군 밑에서 군 생활을 했으며 무공으로 레종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지극한 희생과 헌신으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에는 비극과 유머, 냉소주의에서 나오는 휴머니즘에 대한 추구가 압권이며, 프랑스에서 콩쿠르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고 미국에서는 최우수 단편상을 받았다.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도 매우 유명하다.
그의 단편 ‘벽’은 그의 단편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의 16편 중 하나로 콩트 만큼이나 짧지만 충격적인 결말을 담고 있다. 어느 빈민가에 청년이 살고 있었다. 그는 옆방의 여성을 남몰래 흠모하고 있었는데 한 해가 가는 12월 31일 찬 바람이 거세게 불고 몇 시간만 있으면 새해가 다가오지만 그는 돈도 없고 희망도 없는 고독과 외로움에 둘러싸인 잉여인간일 뿐이었다. 그때 옆 방에서 신음 소리가 들려온다. 남녀가 격렬하게 사랑을 나누는 소리.. 예뻐서 감히 쳐다 볼 수도 없었던 그녀가 애인과 사랑을 나누는 줄 알고 삶의 의미를 잃고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다. 그리고 다음날 경찰은 옆 방에서도 주검을 발견한다. 알고 보니 전날 홀로 있던 그녀가 외로움을 못 이겨 극단적 선택을 했고 사인은 비소 중독이었다. 결국 청년이 들었던 신음 소리는 죽어가는 그녀의 고통에 못이긴 소리였던 것이다.
만약 그 오해가 발생하기 전에 청년이 그에게 용기를 내어 고백했다면 둘의 운명은 180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참 아이러니하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심지어 가족이 있는 사람조차도 말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데 말을 뒤집으면 이는 곧 외로움을 못 견딘다는 이야기도 된다. 현대사회의 발달은 편리함과 문명의 이기, 부를 가져다 주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근원적인 벽, 어쩔 수 없는 심리적 단절을 가져다 주었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벽을 쌓고 나를 가리고 있을까. 불편하고 힘든 이에 대한 단절이 가져오는 인간 소외현상,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 사랑보다는 물질을 택한 현실로 인한 단절, 직장 내 괴롭힘, 왕따 등 인간성의 파괴로 인한 우리 삶의 단절은 셀 수 없이 많다. 누구나 모두 외롭다. 외롭지 않은 척할 뿐이다. 당신이 허물고 싶은 단절의 벽은 무엇이며어떻게 허물 것인가. 바로 인간인 우리가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숙제인 동시에 인간 본성인 휴머니즘에 얼마나 다가서느냐에 대한 노력이며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추구해야할 공통의 목표이기도 함을 로맹 가리는 말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에 생긴 벽은 중장비로 허물 수 없다. 오로지 인간만이 스스로 허물 수 있다. 바로 그 방법은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기 위해 개개인이 거짓되지 않으려는 마음과 순수로의 회귀가 그 답이 될 것이다. 더 나은 삶의 대안은 물질의 축적, 신분의 상승 등 외관이 아니다. 인간답게 살아가는 모습이다.
[민병식]
인향문단 수석 작가
대한시문학협회 경기지회장
문학산책 공모전 시 부문 최우수상
강건 문화뉴스 최고 작가상
詩詩한 남자 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2020 코스미안상 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