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만이 지닌 재능의 정의를 내려보고 싶지만 일상을 흉내 내거나 따라 해 본 재능에 대한 정의에 대하여 다소 주저할 거다. 같은 창조적 일이라도 음악은 붕어빵틀 형식에 콩나물 음표 작업을 하다 도돌이표를 따라 돌아오는 예술이지만, 그림은 그런 틀이 없다. 풍파 속 밤바다 위를 항해하는 조각배로 나를 찾아 나서는 일이다.
예술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인생의 정의를 내리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다. 오죽해서 한 치 앞도 허용치 않는 것이 인생이라 하겠는가. 그 한치의 순간을 찾아내는 것이 예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중국 최고의 서예가 왕휘지의 손에 들려진 멋진 붓으로 글을 쓰는 일도 예술이고 나처럼 싸구려 부지깽이 같은 붓으로 그림을 표현하는 일도 예술이라고 편하게 표현하는 거다. 말하자면 태평양 시퍼런 파도 위에 바늘 하나를 던지는 일도 예술이고 그 바늘로 인어가 옷을 어떻게 지어 입을지 상상하는 것도 예술이니 예술은 인생 그 자체를 풀어가는 일일 것이다.
예술을 동경하는 순간의 눈에는 모든 세상이 예술로 느껴진다. 한국 상점 모퉁이에서 김밥을 말고 있는 여자를 보고 장인의 경지를 넘는 예술을 보았다. 정교한 손놀림으로 말아내는 솜씨가 어찌 예술이 아닐 수 있을까. 예술의 정의를 내리게 한 그 사람에게 말했다. "김밥을 만드시는 솜씨가 예술이시네요” 나도, 다른 사람들도 마음에서 우러나온 찬사였다.
예술은 그림 그리는 화가나 노래하는 가수한테나 하는 말인데 어떻게 김밥 장사한테 붙일 수 있냐고 그 여자는 겸연쩍어했다. 이십여 년 같은 일을 매일 하다 보면 다 그렇게 된다면서 그렇게 말을 하는 내가 오히려 예술가 같다고 말했다. 말은 더없이 겸손한 것 같아도 그녀 역시 자신이 하는 일이 정말 예술이 될 수 있는지 의심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그 눈빛조차도 예술처럼 느껴졌다.
흰 쌀밥으로 이부자리를 곱게 펴 깔면 대기하던 고명들이 차례로 올라가 눕는다. 다소곳이 누워있는 고명들의 조화로 김밥이라는 작품을 몇 초 만에 탄생시킨다. 신비로운 김밥의 비밀을 풀어가는 그녀의 손길은 분명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김밥 아줌마의 공간은 예술가의 화실이며 배우의 무대로 여겨진다.
그녀 자신도 미처 감지하지 못했던 세월은 예술의 장인으로 살아가게 하고 있는 거다. 그녀가 시간이라는 공간을 채워가며 예술의 경지에 어떻게 도달했는가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녀처럼 무던하게 김밥을 만드는 일에 온 정성을 쏟아부으면 창작의 경지를 향해서 가는 예술 그 자체다.
사람들은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김밥을 꾹 한번 찍어내는 거라고 생각하며 그 앞을 휙 지나갔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그녀의 장인정신에 발길이 멈춰진 것 자체가 이미 그녀는 예술가라고 인정하고 싶다.
그럼 나는 누구인가. 그동안 나에게 예술이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 긴 세월 속의 과제를 김밥 아줌마의 치열한 예술정신을 보면서 숙제를 해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힘들었던 나의 인생길이 모두 예술이었다는 깨달음이 바로 인생이고 그 인생이 준 숙제인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마무리해야 할지 몰라 인생이라는 예술을 놓고 또 망설여진다. 어쩌면 그것이 인생이고 삶이고 일상일 것이다.
태평양 시퍼런 파도 위에 바늘 하나를 던지는 일도 예술이고 그 바늘로 인어가 옷을 어떻게 지어 입을지 상상하는 것도 예술인데 언젠가 세상에서 제일 멋진 옷을 만들어 입고 나설 인어를 생각한다. 인어가 최상의 의상을 지어 입고 세상에 나서서 예술가로 사는 현실의 꿈을 이루어 인어가 모델이 되는 날 화가들이 벌떼처럼 달려올 것이다.
수많은 화가들이 서로 다른 상상의 인어 누드화를 그려낼 것이다. 그야말로 헤아려 낼 수 없는 서로 다른 무한대 세상에서 헤아려내는 예술을 창조해 낼 것이다. 김밥을 만드는 예술가도 상상의 인어 느드화를 그리는 예술가도 그들이 살아내는 삶 그 자체가 예술이 되는 거다.
바깥세상을 몰랐던 인어가 누군가 빠트린 바늘로 옷을 지어 입고 세상으로 나왔지만 화가들은 상상의 나래를 펴고 인어의 누드화를 그려내듯이 김밥 아줌마가 풀어내는 손끝의 삶이 예술로 승화되듯이 누구나 저마다의 삶이라는 화폭에 그림을 그리며 사는 예술가이다.
내가 선택한 인생은 하루하루의 그림을 완성해 하나의 삶을 이루어 내어 마지막 그림 앞에 서게 된다. 움직이는 나의 붓끝에는 영혼의 동작이 마음의 색깔을 입히고 살아있음의 존재를 확인하는 희열을 느끼게 해준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만이 최고의 예술로 알고 그를 넘어선 예술작은 전혀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역사이래 그 어느 예술가도 뛰어넘을 수 없는 작품은 바로 부모가 낳은 자식이라는 예술품이다. 생명은 예술의 다른 이름이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다 위대하고 아름다우며 경이롭다. 생명만큼 위대한 예술은 없다.
인생이라는 길에서 만났던 김밥집 아줌마도 예술가이고 천지창조를 그린 미켈란젤로도 예술가다. 허구도 예술이고 진실도 예술이다. 그래서 인생은 짧고 예술은 끝이 없는가 보다.
[문경구]
미주한인크리스찬문학협회공모 수필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