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이 죽었을 때 장자(莊子)가 한 행동은 유명하다. 그는 부인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기는커녕 항아리를 두들기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친구 혜시가 놀라 물었더니 “나도 처음엔 슬펐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슬퍼할 이유가 없더군. 사람은 원래 혼돈 가운데 섞여 있다가 천천히 기(氣)가 생기고 그 기(氣)가 모여 몸이 되고, 몸이 생명으로 변한 것뿐이네. 이제 죽었으니 원래의 모습을 회복한 것에 지나지 않아. 이것은 춘하추동 사계절의 순환과 같은 거야. 이제 우리 마누라는 천지라는 큰방에서 편히 누워 쉬고 있는 참인데 내가 곁에서 방성통곡을 해보게. 천명을 모르는 것 아니겠나? 그래서 곡하지 않는 거라네.”라고 대답했다.
인류 문명의 여명 기원전 4세기에 살았던 장자의 답이 2400년 후 20세기의 독일의 한 생태학자의 죽음관과 너무나 흡사하여 놀랍다.
“베른트, 난 얼마 전에 심각한 병을 진단받았어. 그래서 내 바람보다 더 일찍 죽을 경우에 대비해서 내 장례 절차를 적어 놓으려고 해. 나는 죽음이 다른 종류의 생명으로 바뀌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죽음은 무엇보다 재생에 대한 야생의 찬양이지. 우리 몸으로 파티를 여는 거야. 야생에서 동물은 죽은 장소에 그대로 누운 채 청소동물의 재순환 작업에 몸을 맡기지. 그 결과, 동물의 고도의 농축된 영양분이 파리, 딱정벌레 등의 대이동을 통해 사방으로 퍼진다고 그에 비해서 매장은 시체를 구멍에 넣고 밀봉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인간 육체의 영양분을 자연계로부터 박탈하는 것은, 인구가 65억 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지구를 굶기는 일이잖아? 관에 넣어서 매장하면. 화장도 답이 아니야, 온실 기체가 누적될 테니까. 3시간 동안 시체를 태우는 데 드는 연료를 고려해도 그렇고 말이지.”
이 편지는 세계적인 생태학자 베른트 하인리히가 동료이며 친구에게 받은 편지로 그의 저서 ‘생명에서 생명으로’에서 공개한 것이다.
나는 미국에서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의 장례를 치렀다. 생애의 마지막 한 번 경찰차의 호위를 받으시며 장지로 실려 간 운구는 시멘트로 철저하게 차단된 공간 속으로 들어갔다. 방부제로 채워진 시신이 고은 화장하시고 가장 좋은 옷을 입으시고 평소의 온화하신 얼굴로 관속에 누우셔서 그 공간 속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 후 우리가 찾아간 무덤에는 금속판 위에 새겨진 이름 밑에는 생년월일과 사망연월일이 적혀지고 그 두 날짜 사이에 하이폰(-)이 그어져 있다. 두 분이 나셔서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우리와 함께 노년을 보내신 그 생애가 하나의 하이폰(-)으로 함축되어 있었다.
기독교식 장례라 목사님 주재하에 하관식은 엄숙하게 이루어졌다. 뻥 뚫어진 땅으로 아버님의 관이 내려갈 때 우리 육 남매의 오열은 극에 달했다. 주재하시는 목사님께 장녀인 내가 가족 대표로 감히 부탁드렸다. “목사님 우리가 아버님께 이 자리에서 절을 하게 해주세요.” 목사님의 대답은 단호했다.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아버님과 마지막 하직을 우리식으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리다. 왜냐하면 방부제가 몸속에 들어가 화학약품이 만든 미소로 그 단단한 방에 갇혀 있는 것은 나라의 법이라 어쩔 수 없이 참았지만 기독교라는 옷이 입혀지지 않은 아버님과 우리만의 마지막 인사의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가디언지에 따르면 해마다 미국의 2만 2천 5백 곳의 장의사에서 4천3백만 갤론의 방부액, 1.5백만 톤의 시멘트, 10만 톤의 강철, 3천 톤의 구리와 브론즈, 3천만 보드피트의 나무판자를 땅에 묻는다고 한다. 화장할 경우에는 시신 한 구당 28갤론의 석유, 50lb의 이산화 탄소가 발생한다. 일 년에 25만 톤의 이산화탄소와 함께 다이옥신과 같은 유독가스가 같이 배출된다.
우리는 철저하게 우리도 동물이고 생명 순환의 일부라는 물리적 사실을 부정한다. 수십 수백억 마리의 동물을 죽여 우리의 먹이로 삼고 우리의 먹이를 얻기 위하여 생태계의 무수한 생명이 의지할 수 있는 자원을 영구적으로 제거하면서 우리 자신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는다. 지구의 생명그물망, 대 자연이 하나의 커다란 한 가족이라는 과학적 사실을 부정한다.
현대과학은 우리가 별의 아들이라고 한다. 빅뱅으로 폭발된 에너지는 별이 되고, 불타는 별들은 우주의 물질을 만드는 원소를 만들었고, 원소들은 어울려 행성이 되고, 그 행성의 하나인 지구에서는 별들이 만든 원소로 생명이 생겨나고, 그 생명들이 바로 우리의 몸이다. 우리 몸의 구석구석은 모두 별들이 만든 원소로 채워져 있다. 이는 장자가 “사람은 원래 혼돈 가운데 섞여 있다가 천천히 기(氣)가 생기고 그 기(氣)가 모여 몸이 되고, 몸이 생명으로 변한 것뿐이네”라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계절은 생성과 죽음을 반복하는 자연의 순환이다. 그 순환 속에서 우리가 태어났으니 순환 속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2400년 전 장자가 말한 천명(天命)이 아니었는지.
장자는 제자들에게 “내가 죽으면 들에다 내다 버려라”라고 하였다. 제자들이 당황하여 땅에 묻겠다고 하자 “들에 버리면 날짐승과 길짐승이 먹을 테고 땅에 묻으면 땅강아지나 두더쥐가 먹을 텐데 다를 것이 무엇인가. 땅에 묻으면 나를 넣은 관이 있겠지만 들에다 버리면 하늘과 땅이 내 관이고 해와 달과 별이 그 속에 들어 있는 부장품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하늘과 땅을 관으로 삼고 해와 달과 별을 자신의 관 속의 부장품으로 넣은 장자의 큰 마음이 놀랍고도 아름답다.
[김은영]
숙명여자대학교 졸업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석사
오크라호마주립대학 박사과정
시납스인터내셔날 CEO
미국환경청 국가환경정책/기술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