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구 칼럼] 죽은색의 부활

문경구

 

내가 평생 그려오던 크고 작은 많은 그림들을 일단 한자리에 집합시켜 보았다. 대화를 시작하려는 내게 무슨 말을 해 줄지 듣는 차례가 핵심이다. 그들로부터 얻은 대답은 바로 나로 인하여 그들이 이 세상에 슬프게 태어났고 그래서 슬프게 살아왔다고 말한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놀라 음미해보니 나는 행복할 때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전혀 없다는 것을 그들은 물론 나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몸도 마음도 가난한 이름 없는 화가인 나에 의하여 세상에 나왔다. 나의 그림 생활은 늘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부딪칠 때마다 붓을 잡았었다. 기분이 날아갈 듯 살만했을 때는 그 기분에 따라 날아다니느라 붓이라는 존재를 잊곤 했다. 내 작은 어두운 공간에서 머물러 살았던 수많은 기억들이 거의 탈진한 몸에서 그들은 태어났다.

 

나는 지금 그런 나를 만나고 있다. 그래서 나에게 펼쳐졌던 운명을 평생 지켜본 그대로 이야기해 준다. 한 뼘 공간에서 나 혼자 살아남기 위하여 그렸던 그림들은 모두 나처럼 죽은 색의 우울한 숙명으로 살았다. 평생 그림을 그리는 일은 어린 시절 크레용으로 벽에 알 수 없는 세상을 그려갔을 때부터 그랬었다.

 

물리칠 도리가 없었던 나의 외로움은 죽은 그림의 색으로 그대로 받아들여졌고 한겨울 꽁꽁 얼어붙은 잉크병 같은 시퍼런 고독으로 가득 채워졌던 가슴이었다. 어떤 말도 써 내려갈 수 없는 외로움의 대가로 얻은 그림들은 나에게는 걸작들이다. 누구나 의도하지 않았던 삶을 인정할 수 없어도 살아내야 한다. 내 인생이 남의 인생이기를 원했던 삶 속에서 그렸던 그림들이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것이 인생이라는 예술이었다.

 

인생과 예술의 길은 통했다. 어둡고 칙칙한 죽음의 색으로 그린 그림도 누군가에겐 예술로 받아들여졌다. 화사한 그림을 그려내지 못했던 어린 시절 나의 그림에 대해 친구 늘 내가 어둡고 칙칙한 죽은 색을 많이 쓴다고 했다. 사생대회에 나가면 어두운 그림은 절대로 입상할 수가 없다. 밝고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색이 늘 부족한 것이 나의 삶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생각에 나도 언젠가 화사하고 밝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그런 그림을 그리기까지 평생이 걸렸다.

 

그래도 물리칠 수 없는 나의 외로움은 죽은 색깔의 그림들만을 탄생시켰고 추위에 떨며 쌓인 낙엽 같은 고독함으로 가득 채워야 했다. 나의 공간에서 죽은 색으로 살아갔던 그림들은 매일 매일 그 외로움의 대가를 지불하고 남겨진 작품들이다. 그런 나를 위해 함께 살아준 그림들이 이제는 나에게서 떠나 자신들의 발로 원하는 곳으로 가게 할 시간이 되었다.

 

나와의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다. 원하는 사람들이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곳으로 보내야 한다. 내가 힘들었을 때마다 나를 위로해 준 그림들과의 감사한 이별인 것이다. 그들을 나의 품에서 내어 주어야 할 때가 찾아온 것도 예삿일이 아닌가 보다. 나와의 무의미한 동거를 피해 더 넓은 세상 사람들에게 가야 할 그들과 나의 운명이 바뀌어 가는 시간이 분명 있었다.

 

이제 곧 그들을 원하는 누군가의 크고 환한 집에 걸려서 사랑을 받고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온종일 들고 나는 빌딩 벽에 걸리게 하여 매일 맞게 되는 세상의 시선으로 외롭지 않은 생을 살아가게 해 준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것은 들이마시는 산소만큼이나 흔하여 내가 몰랐던 그들의 그들의 소망이고 갈구였을 것이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나의 공간에 빼곡하게 걸린 체 뽀얀 먼지를 쓰고 힘겹게 살게 했던 내게 죄를 묻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든다.

 

죄수처럼 나에 의해 감금당했던 그림들이 나의 죄를 거두는 환상을 느꼈다. 화랑에 걸릴 나의 그림들이 하나둘 팔려나갔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들은 새로운 세상의 첫 장을 써나가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나에게 태어나게 해줘서 감사하다전하는 것 같았다. 죽은색으로 태어났지만 이제 부활하게 한 나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안녕을 고하며 떠나가는 거라고 메아리처럼 들렸다.

 

그들은 나에게 놓아주고 내려놓는 법의 커다란 선물을 해 주었다. 더불어 남은 인생에서 흔들리지 말고 지금까지의 내 모습이 바로 나였음을 알고 깃털처럼 사는 법까지 당부해 주었다. 그것이 화랑으로 갈 때 그들이 원했던 생각이었다. 그렇게 그들과의 이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하여 그들은 스스로 그 길을 가기를 원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에 나의 무지함으로 그들이 그대로 나의 공간에 남겨진 채로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면 그들에게 영원히 벗어낼 수 없는 죄의 짊을 나는 짊어져야 했다.

 

그들을 빛의 세상으로 나가게 한 지금, 그들이 물러나고 횅하니 비워진 나의 공간에 맞춰 내 가슴은 더 크게 비워졌다. 몸담고 살아왔던 공간에 있는 나도 다른 사람의 모습처럼 낯설게 보인다. 이제 빈 곳으로 찾아드는 낯선 내 모습과 친숙하게 지내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들이 하나둘 태어나면서 내 안에 들어설 때는 몰랐었는데 떠나고 바라보는 자리가 벌판만큼 넓다.

 

이제 죽은색들이 떠난 빈자리에서 만나는 영혼들과 시간을 나누어야겠다. 나는 그들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빛이 되었다.


[문경구]

미주한인크리스찬문학협회공모 수필당선

문경구 kimurgin@hot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4.06 12:22 수정 2021.04.06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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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