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에 만물상을 찾으면 누리게 되는 만 가지 기쁨이 있다. 한가한 여유로움이 바로 내게는 특별한 휴식의 시간이다. 없는 물건이 없는 지금의 마트를 나는 그 옛날의 만물상이라고 부른다. 하루를 바쁘게 달려온 사람들이 쇼핑하면서 마지막 정열을 느낄 수 있게 차분하게 들리는 발라드풍 음악도 그 만물상에 차려진 만물 속 풍경이다.
마스크를 고르면서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여유로움을 나누는 대화 속 두 중년 부인들의 이야기에 나는 그만 눌어붙게 되었다. 긴병에 효자까지 어떻게 기대하느냐며 얼마 전에 떠나신 시아버지를 위해 산소를 쓰지 않고 화장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하는 말이 더 나를 사색으로
빠지게 했다.
나는 참 잘했다고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고 싶었다. 눈이 부시게 쏟아지는 캘리포니아 햇살 아래 파란 잔디 이불을 덮고 누워 계시게 하려고 산소를 쓰는 일만이 대수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자식들이 부모의 산소를 돌보지 않는다는 말에 그건 자식들 나무랄 일이 아닌 떠날 사람이 확실하게 해 놓고 갈 일이라는 말에도 나는 목소리를 높이고 싶었다.
그곳에도 정해진 시간이 있다. 산소를 써놓고 일정한 세월의 시간이 가면 도시화 계획에 의하여 불도저로 밀어버리게 되는 흉한 꼴까지 왜 만들어 놓고 가냐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니까 산소를 쓰는 건 효자 자식들이 결국엔 부모를 그냥 들에다 내다 버려 놓는 고려장이나 다름없는 불효가 되는 게 아니냐고 했다.
이승에서의 시간이 멈춰지면 떠나왔던 우주의 본향인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 빈 몸을 가둬두지 말고 그냥 보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심지어 사람을 깡통 속의 생선처럼 쌩으로 담아두느냐 말이다. 바람의 속도로 빨리 날려 보내는 방법이 최상의 이치라고 거들어주고 싶었다.
파키스탄의 어느 자치 국가의 화장문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곳에서는 시신을 바위 위에 그대로 놓아두는 일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매장을 피하고 화장을 해서 뿌려 드렸다며 자신들도 자식들에게 미리부터 깔끔하게 신신당부를 해 놓았다는 두 사람의 대화를 모두 찬성을 해 놓고 순간 나는 울컥했다.
내가 없는 세상에 어머니 혼자 그대로 누워계시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나도 십여 년 전에 한국에 나가 어머니 산소를 이장해 드렸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를 위해 해드린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선물일 거라는 생각과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최상의 선물을 어머니는 내게 주셨던 거였다. 너무 일찍 내 곁을 떠나가셨기에 나의 능력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는 이유로 잊고 살았던 전설 같은 어머님의 산소를 이장하여 말끔하게 정리해 드리고 돌아왔다.
어린 시절 턱받이 수건을 걸쳐 주시고 바닥에 놓인 대야 물로 나의 얼굴을 씻겨주시던 그 기억이 남아 있어 이번에는 어머니의 세안을 내가 시켜드리고 뽀얀 얼굴로 나를 쳐다보시던 모습을 그려 보았다. 몇 개의 뼛조각이 전부가 되어버리신 어머니의 모습처럼 세상사 모든 일은 시간이 가면서 그렇게 퇴색된 허무로 끝나고 마는 법이다.
그런 의미로 그럭저럭 살게끔 되어있다는데 어머님에 대한 기억만은 전혀 아니다. 잊었던 기억들까지 다가온다. 방송에서 치매에 걸린 부모를 간병하는 자식들의 힘든 이야기를 들으면서 치매에 걸린 어머니라도 계셔서 나를 힘들게 해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그보다 더 심하신 식물인간이 되시어 나를 못 알아보셔도 괜찮으니 어머니가 계시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한을 갖고 살아왔다.
반세기를 사셨던 영혼의 고가를 열고 다시 만난 어머니 모습이 주신 허무투성이 한 줌의 재에서 어머니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축복이었다. 인제 그만 일어나시어 나와 같이 미국으로 가시자고 했다. 그렇게 모셔와 평소에 내가 자주 떠나는 카멜 바다에 뿌려 드렸다.
어머니의 재를 뿌려드리던 그 날, 서슬 퍼렇게 출렁이던 파도도 잠시 숨을 죽이며 바라보았고 툭 치면 모두 쏟아낼 것 같은 청아한 하늘빛도 아무 말이 없었다. 이런 아름다운 하루가 선택 되어진 것도 어머니가 복이 많은 탓이라고 말씀과 이렇게 모실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이번에는 내가 어머니로부터의 마지막 탯줄을 내 손으로 끊어 드렸다. 한곳에 머물지 마시고 바람 따라 물결 따라 어디든지 가시라며 나는 내게 남아 있는 모든 눈물을 뿌려 드렸다.
이제 내게는 눈물이 없다. 한국을 나가도 찾아뵐 어머니의 자취가 더는 없어 영혼 없는 집시가 되어 방황해야겠다. 지금 떠나셨다면 산소를 쓰는 일로 어머니를 두 번 힘들게 해드리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부모에게 자식은 일생에 보탬이 안 되는 존재라는 생각을 다시 했다.
철없는 세상에 나와 동생을 덩그러니 두고 가시기에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죄스러운 생각들은 그날의 파고처럼 번져가는 영원한 아픔인 거다. 수없이 탈색되고도 남은 시간이 흘러갔건만 어머니의 기억은 내가 떠나는 날까지 매일 새롭다. 만물상에서 들었던 두 사람의 대화에서처럼 문제는 바로 내가 되는 일이다.
받아들고 왔던 이승에서의 시간을 모두 쓰고 난 뒤 내가 벗어놓고 온 자리로 다시 돌아가는 날 내 영혼도 홀가분해야 한다. 누구에게 매매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두고 갈 수도 없는 나의 낡은 육신의 집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쩌면 매장을 하는 일은 사람이 해야 하는 일 중에 가장 잘못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나는 지금도 한다.
철저하게 화장을 하여 내가 떠나고 없는 세상에서 외롭게 누워계실 어머니를 이장하여 떠나보내 드리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 그 생각만 하면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데 모든 해답이 있다. 어차피 어느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없는 길에서 아무도 찾지 말아야 한다. 그 어떤 미련의 그림자까지도 모두 모른 척해야 하는 거다. 별나라로 돌아가게 되면 어머니의 흔적을 말끔하게 지워 드리고 왔다는 말이 너무 하고 싶다. 어머니가 들으시면 가장 기뻐하실 생색을 낼 비장의 카드가 나에겐 있다. 만물상에서 오늘 나는 그 비장의 카드 한 장을 구입했다.
[문경구]
미주한인크리스찬문학협회공모 수필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