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창궐하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과 악화일로에 있는 기후 변화는 물론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분쟁 등 이 모든 것이 인재재난(人災災難)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지구별 자체가 ‘세월호’처럼 침몰하지 않으려면 그 어떤 미봉책彌縫策으로는 어림없는 일이고, 이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우주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문자 그대로 ‘우주적宇宙的’ 발상發想의 전환轉換을 통한 정신적 내지 영적 ‘코스미안 혁명’이 일어나야만 할 임계점臨界點에 도달한 시점時點이 아닌가 말이다.
벌써 6년 전 미국에서 출간된 신간 두 권이 오늘의 우리 시대상을 잘 관찰하고 판단한다. 그 하나는 ‘과소평가되고 있는 인간 : 놀라운 기계들이 결코 알지 못할 것을 아는 우등생 인간들 Humans are underrated : What High Achievers Know That Brilliant Machines Never Will (2015)’로 저자 조프리 콜빈Jeoffrey Colvin(born in 1953)은 현재 컴퓨터가 인간이 해오던 일들을 인간보다 더 신속 정확하게 훨씬 더 능률적으로 수행하게 되어 인간을 도태淘汰/陶胎시키고 있지만 결코 절망할 일이 아니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된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지성知性이 아닌 감성感性으로 서로를 돌보고 보살피는 인간관계를 맺는 일이란다. 기술적인 면은 기계에 맡기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하는 일에 치중하면 된다는 얘기다.
또 하나는 ‘자신과 영혼 : Self and Soul : A Defense of Ideals (2015)’인데 저자 마크 에드믄슨Mark Edmunson(born in 1952) 은 이렇게 관찰하고 진단한다.
“서구 문화는 점진적으로 더욱 실용적이고 물질적이며 회의적으로 진행되어왔다. 그러나 (석가모니나 예수 같은) 성인 성자들은 의미 있는 자비심慈悲心 충만한 삶을 추구한다. 재화를 획득하고 부富를 축적하노라면 인간의 참된 도리道理에서 벗어나게 된다. 성聖스러운 삶이란 욕망慾望/欲望 이상의 인류를 위한 희망이다. 이것이 일찍부터 생각하는 인간으로서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만족감滿足感이다. Culture in the West has become progressively more practical, materially oriented, and skeptical…(like Buddha or Jesus) The saint seeks a life full of meaningful compassion. The acquisition of goods, the piling of wealth, only serves to draw force from his proper pursuit. The saint lives for hope. Even early on, as they enter the first phase of their lives as thinkers, they’ll have one of the greatest satisfactions a human being can have.”
이 두 권의 책 내용을 내가 한 마디로 줄여보자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건 ’사랑’이란 말이리라.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으랴. 자연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게 곧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고, 나 자신을 사랑할 때 내가 진정 행복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영어의 사자성어四字成語 ‘LOVE’는 우리말의 이자성어 二字成語 ‘사람’과 ‘사랑’이라는 동음동의어同音同意語가 돼야 하리라.
유엔인구기금(UNFPA)이 4월 14일 발간한 2021년 세계인구 현황 보고서 ‘내 몸은 나의 것 My Body Is My Own’에 실린 통계표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와 같은 1.1 명으로 198개국 중 198위에 그쳤다. 2019년 1.3명으로 192위였던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처음으로 꼴찌로 떨어진 뒤 2년 내리 최하위에 머물렀다.
몇 년 전 연애를 공부하는 청춘들이 늘고 있어 ‘연애 토크콘서트’ 행사가 유행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우리 생각 좀 해보자.
연애가 사랑을 위한 것이라면 그 방법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것일까? 사랑이 빛光과 열熱 같은 것이라면 아무리 가려도 어느 틈새로라도 뚫고 나와 날이 새듯 그 밝은 빛은 비추게 되고, 어떤 물질을 통해서라도 열은 그 더운 기운을 발산發散하게 되지 않든가. 첫눈에 반하면 반하는 것이지, 내가 좋아하겠다고 해서 좋아지지 않는 일이다. 물론 상대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렇게 서로 좋아하게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 테지만 이런 요행 僥倖의 두 사람은 그야말로 ‘천생연분天生緣分’이리라.
하지만 나는 좋아하는데 상대방이 날 좋아하지 않거나 어느 누가 날 좋아하는데 내가 ‘별로인’ 예가 흔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럴 경우 나 혼자서만 계속 짝사랑하면서도 상대방을 결코괴롭히지 않고 그 사람의 행복을 늘 빌어줄 수 있다면, 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서로 거의 똑같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 일 테니 일찌감치 적당히 편의상 결혼까지 했다가 울며 겨자 먹기로 마지못해 계속 같이 살거나 아니면 이혼해 헤어지는 수도 있다. 그리고 결혼을 하건 안 하건 또 이미 했든 안 했든 간에 그 누구와도 순간순간 숨 쉬듯 언제나 사랑은 하고 살 수 있지 않은가. 한 사람도 좋고 백 사람도 좋고, 어린애도 좋고 어른도 좋고, 이성도 좋고 동성도 좋고, 우주 만물을 다 좋아할 수 있지 않으랴.
연애가 시詩라면 삶은 산문散文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 반대로 산문으로 시작해서 시로 변하는 수도 있으리라.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인간수업人間修業이 필요할 것 같다. 한 인간이 온 인류의 축소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수업 말이다. 이는 나 자신이 소우주小宇宙이듯 한순간이 곧 영원의 결정체임을 알게 되는 인생수업人生修業을 통해서만 가능하리라. 이것이 바로 우리 모든 코스미안의 우주행로宇宙行路이리.
공교롭게도 6년 전에 또 한 권의 스티브 잡스 전기가 나왔다. 브렌트 쉬렌더Brent Shlender와 릭 텟젤리Rick Tetzeli 공저의 ‘스티브 잡스가 된다는 것 Becoming Steve Jobs: The Evolution of a Reckless Upstart into a Visionary Leader (2015)’은 2011년에 나온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의 ‘스티브 잡스Steve Jobs’보다 더 좀 긍정적인 평가다. 한 가지 공통점은 두 책이 다 스티브 잡스의 천재성天才性에 대해서는 전혀 이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디 스티브 잡스에게만 적용될 수 있을까.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면,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 식물 가릴 것 없이, 아니 생물뿐만 아니라 광물을 포함한 우주 만물이 다 그렇지 않으랴. 동물은 동물대로, 식물은 식물대로, 광물질은 광물질대로, 제각기 개성과 특성이, 형태와 구조가, 빛깔과 냄새가, 그 수명과 지속성이, 제각기 타고난 천재성이 다 다르지 않은가.
그러니 꽃은 제각각의 꽃대로, 풀도 나무도, 벌과 나비도, 새와 사람도, 바람과 구름도, 산과 바다도, 모든 별이 제각기 제 식과 제 스타일로 반짝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말이다. 이것이 하늘과 우주의 섭리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그렇다면 그 어느 누구도 나와 같지 않다고, 남과 다르다고, 탓할 수도 없고, 또 내가 남 같지 않다고, 남과 다르다고, 스스로의 개성과 특성, 자신의 천재성을 무시하거나 망각해선 절대 절대로 안 되리라. 넌 너대로 난 나대로 만만세萬萬歲를 불러보리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