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구 칼럼] 봄의 교향곡

문경구

 

아침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 뒤로 비치는 스튜디오 창밖 풍경은 싱그러운 농촌의 전원을 도심 한복판에 그대로 가져다 놓은 모습이다. 다발로 묶어낸 풋풋한 농부의 손길처럼 금방이라도 모판에 담긴 푸릇푸릇한 벼 모종들이 던져질 것 같다.

 

유리창을 때리는 봄비의 숫자를 세워보고 싶도록 영롱한 빗방울이 내린다. 그 빗방울은 사람들이 쓴 우산 위로 청명한 리듬으로 들려준다. 이 모두가 봄의 신비가 잉태되기 시작되었다는 소식이다.

 

턱 앞에 도착한 봄을 맞이하기 위하여 만물은 바삐 준비한다. 아직은 차가운 빗방울에 움츠려져 봄의 정을 만끽하기에는 다소 어설프지만, 틀림없이 봄이다. 그렇게 두 번째 내리는 비에 봄은 겨울의 두꺼운 옷을 벗어 내고 세 번째 비에는 고치를 벗어던진 나방처럼 겨우내 움츠렸던 새들을 하늘로 날 수 있게 준비를 할 것 같다.

 

그런데 스튜디오 창밖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온 세상 만물이 몸을 툭툭 털고 일어서게 하는데 봄은 깊은 수심에 젖어있는 모습이다. 내리는 비도 이 봄을 불러오기 위한 자신의 몫을 다하지 못하여 불안해하고 앵커의 목소리는 예전의 그 봄의 목소리가 아니다. 앵커는 불안한 목소리로 지금 빗속에 아직도 머무는 역병으로 인해 봄이 몸져누워있다는 소리를 한다.

 

밖으로 길게 줄지어 선 사람들은 봄을 맞이하는 어느 예술가의 콘서트 입장을 위한 줄이 아니라 생과 사의 줄을 당겨내어 한 뺨씩 줄어가는 자신들의 생명과 싸우는데 활을 겨누는 모습이다. 긴 줄 속 사람들은 역병을 위한 백신 예방접종 주사를 맞기 위해 서 있다.

 

어디선가는 몇 시간을 기다리다 뚝 끊어진 줄 앞에 서게 된 씁쓸함과 절망의 발걸음을 돌렸다는 뉴스가 있는가 하면 어디선가는 어렵게 백신을 접종받은 사람 중에는 혈전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백신접종을 취소한다는 말이 들려왔다.

 

봄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두근거리는 마음 대신 백신의 부작용으로 숨 가쁜 증상과 두통으로 이어져 더욱 불안한 눈빛이다. 부작용으로 인해 사망자도 발생했다는 뉴스를 전하는 앵커도 듣는 사람들도 어찌할 바를 몰라한다. 모든 것은 이 봄이라는 세상부터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말인가 보다.

 

백신이라는 신약을 믿을 수 없어 불안한 마음은 차츰 커가고 봄은 그대로 멈춰진 것 같다. 세상 사람들을 깨우는 강렬한 봄의 신비는 이미 바이러스라는 역병의 부작용으로 그 힘을 잃은 것 같다. 무슨 이유로 앵커의 뉴스도 믿지 못하게 하는 불안을 만드는 것일까. 창밖에서 서성대던 역병은 곧바로 스튜디오 안으로 뛰어들어 앵커에게 제일 먼저 바이러스를 옮겨 주고 곧바로 앵커의 입을 통해 전파를 탄 바이러스는 세상 사람들에게 전파할 것 같다. 그리하여 온 세상이 불같은 고열로 앓아눕게 될 것 같다.

 

그래서 봄도 세상도 믿을 수가 없다. 감기백신이 믿음을 받은 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에나 맞을 수 있을까. 잠든 세상을 깨우는 봄비가 더 혹독한 바이러스가 되어 찾아들 것 같아 불안해 한다.

 

봄은 자신의 18번인 봄의 교향곡을 더 이상 세상에 들려줄 수가 없을 것 같다. 어느 해든 이때쯤이면 서둘러 외출을 하고 싶어지는 사람들의 성급한 발길들이 올해는 역병으로 모두 묶였다. 뉴스 속의 앵커는 바이러스 점령군에게 모두 내어주고 떠난 도시의 빈 거리에 나와 중계를 할 것 같다. 바이러스가 도시를 덮었고 엄청난 사람들이 거리를 쓸고 지날 거라는 방송을 할 것 같다.

 

내생에 이런 봄의 굴레가 있었는가 헤아려 보기엔 올봄이 너무 두렵다. 많은 사람들이 딸자식들 손을 잡고 식장을 들어서게 되는 일도 이 봄이고 딸과 함께 보냈던 봄의 숫자를 헤아리며 봄의 왈츠를 추고 싶은 것도 이 봄이다.

 

결혼을 앞둔 선남선녀들이 저마다의 봄을 그렇게 아름답게 맞이해야 하는데 그런 그리움의 추억이 될 사람들에게 봄은 너무 큰 죄를 짓고 있다. 그 어느 계절 어느 한 날 아름답지 않은 날이 없었지만 사람들을 공포에 빠지게 하고 목숨마저 앗아가는 바이러스라는 역병으로 가득한 이 봄을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이 봄 모든 사람들이 시련을 잘 극복하고 여름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가을 수확을 이루고 겨울의 동면을 이어갈 때까지 자연의 순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봄은 위대하다. 목련은 수줍게 피고 웃음 짓는 산마다 연분홍 철쭉이 바다를 이루며 노란 병아리 떼처럼 피어난 개나리가 봄의 고향곡을 부를 수 있는 그런 봄이 되어야 한다.

 

봄은 자연의 순리를 알고 있듯 역병의 섭리도 알고 있으면서 차마 말로 전하지 못하는 앵커의 속셈같이 입을 다물고 있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도 알고 있으리라. 그래도 이제까지 평생을 누렸던 소중한 봄의 고마움을 생각하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앓아누운 봄을 어떻게 위로하고 언제 다시 자신의 교향곡을 연주하게 될지 그런 날만을 기다려야 하겠다.


[문경구]

미주한인크리스찬문학협회공모 수필당선

문경구 kimurgin@hot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4.20 12:09 수정 2021.04.20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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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