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헤르만 헤세(1877~1962)의 청소년기 시절 체험들이 곳곳에 가득 담겨 있는 성장 소설이다. 1877년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크주의 소도시 ‘칼프’에서 태어난 헤세는 그 자신 역시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주 시험에 합격하여 1891년 마울브론 신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규율과 인습에 얽매인 신학교 생활을 이겨 내지 못하고 7개월 만에 학교에서 도망쳐 나왔다. 작중에서 몰래 신학교 기숙사를 도망쳐 나와 퇴학을 당하게 된 하일너의 탈주 사건은 이때 그의 체험을 반영한 것이다.
이후 자살 기도를 하기도 하고 신경 쇠약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등 방황을 거듭한 헤세는, 우여곡절을 거쳐 김나지움에 입학했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1893년 학업을 중단했다. 그 후 그는 시계 부품 공장과 서점 등에서 수습 직원으로 일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며 작가의 꿈을 키워나갔다.
이러한 인생 여정을 거쳐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20대의 헤세가 쓴 초기 작품으로, 자신의 쓰라린 사춘기 시절을 돌아보는 그의 아픔과 향수가 짙게 배어 있는 소설이다. 신학교를 그만둔 후 고향으로 돌아와 어린 시절 뛰놀던 숲을 떠돌면서 은밀하게 자살 계획을 세우는 ‘한스’의 모습이나 마음을 다잡고 기계공 일을 배우기 시작하며 어떻게든 현실과 타협하여 살아가려 애쓰는 모습 등은 특히 학업을 중단한 후 위태롭게 발버둥 치던 10대 시절 헤세의 방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는 시골 마을의 모범생으로 마을 사람들과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아이였고 그들의 기대에 따라 당연히 출세의 관문인 기숙 신학교에 입학을 했다. 신학교에서 한스는 낭만 시인 하일너와 친구가 되었고 그와 어울리면서 모범생에서 문제아로 바뀌게 된다. 그 시대의 모범생이란 현대 우리 사회와 같이 열심히 공부하고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고 부모와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착실히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신학교에서 만난 하일너는 규율과 구속보다 자유를 갈망하고 신학보다 시를 사랑했던 문제아였는데 그러던 중 획일적인 학교 시스템을 견디지 못한 하일너가 학교 기숙사에서 탈주하여 퇴학 처분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신학교의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겨우 의지했던 친구마저 잃은 한스는 점점 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
고향으로 돌아온 한스는 시계부품공자의 견습공이 되지만, 공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와는 달리 '신학교 대장장이'라면서 냉대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받는 상처도 크다. 친구 아우구스트와 가정부 안나 아줌마만이 한스를 돌볼 뿐이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공장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헤어진 후 취한 채 강가를 걷다가 물에 빠져 자살인지, 사고인지 모를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다음날 시체가 발견되어 장례 치러지고, 장례식장에서 구둣방 주인 ‘플라이크’ 아저씨는 교장선생과 학교 교사들을 가리켜서 한스를 죽인 공범'이라고 비판한다.
"그럼 그래야지. 아무튼 지치지 않도록 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 깔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일탈을 하던 한스에게 교장선생님이 한 말이다
무엇이 일탈인가. 어른들의 비뚤어진 욕심과 교육 제도에 희생되어 비극을 맞게 되는 한스의 이야기를 통해 어린 나이에 학업과 입시 경쟁에 내몰려 좋아하던 모든 여가 활동을 빼앗기고 공부에만 몰두하며 제대로 성장기를 누리지 못하게 청소년들을 몰아붙이는 이 시대의 부모와 교사들을 비롯한 기성세대들이 개인의 개성과 자유를 억압하고 성적에 따라 규격화된 인물만을 양산하는 사회와 교육 제도의 모순의 주범임을 비판하고 있다.
오로지 입시를 위해, 입시에 성공한 후엔 또다시 경쟁에서 앞서 나가야 한다는 강박감 속에서 공부에만 몰두하는 한스의 모습은, 성적 위주의 교육과 치열한 입시 경쟁 속에 끊임없이 시달리며 인생의 다른 기쁨들을 포기해야 하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안쓰러운 자화상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통해 한스의 이야기와 다를 바 없는 우리의 현실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는 비극 속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민병식]
인향문단 수석 작가
대한시문학협회 경기지회장
문학산책 공모전 시 부문 최우수상
강건 문화뉴스 최고 작가상
詩詩한 남자 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2020 코스미안상 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