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드림의 싫존주의] 정말 신조어를 쓰면 세종대왕님이 노하실까

'최애', '할말하않', '갑분싸', '롬곡옾눞', 'TMI', '띵작'...... 요즘 예능에서는 곧잘 청년들의 신조어를 맞추는 코너가 등장하곤 한다. 그리고 신문 사설에서는 청년들이 사용하는 신조어가 올바른 언어생활을 해치는 악화임을 지적한다. 이따끔씩 마치 그것이 '세종대왕님이 통탄할 일이다' 따위의 사자후를 토하는 늙은 어른들도 보인다. 한 번 생각해보자. 과연 신조어가 지금 시대에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현상이기라도 하단 말인가?

멀리 갈 것도 없다. 아래는 지금 서른 살이 훌쩍 넘었을 80년에서 90년사이 태어난 세대가 2000년대 초반 인터넷에서 사용했던 신조어다.


이건 가히 신조어를 넘어서 새로운 문자체계라 할만 하지 않은가. 한글에 상형문자의 기법을 도입한 그야말로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문체혁명에 가깝다. 물론 그 당시의 언론도 그러한 청년들의 언어생활에 대해 입에 거품을 물고 비판을 하곤 했다. 그리고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저러한 문체를 쓰는 이는 아무도 없다. 저 시절 한창 저런 문체에 탐닉하던 소년 소녀들은 지금은 사무적이기 그지 없는 보고서를 쓰거나 정자로 또박또박 가계부를 쓰고 있을 것이다. 청소년기에 그토록 해괴한 문체를 썼다지만 그들의 삶은 현재 전혀 해괴해지지 않았다.

조금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지금은 마흔이 넘은 70년대 생들은 90년대에 어떤 문체를 썼을까. 대표적인 것이 바로 '당근'이다. 물론 야채 당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당연하다'는 말 대신에 '당근이지'라는 말을 썼다. 이에 모자라 여기서 조금 앞서갔던 이들은 '말밥이지'라는 말을 썼다. 지금 저런 말을 쓰면 겸상은 물론 상종도 안 할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 시대착오적인 표현이나 당시에는 꽤나 잘나가던 강남의 오렌지족들이 사용하던 세련된 표현법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현재 그런 표현을 쓰는 이는 마찬가지로 아무도 없다.

이번에는 조금 세게 올라가서 일제강점기로 가보자. 아래는 한국의 대표문인으로 평가받는 이상의 '오감도'라는 작품이다.


이건 문자도 아니고 그냥 하나의 패턴이라 할 수도 있을 정도다. 해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 보인다. 당시의 젊은이들이 이런 문장으로 소통을 했다는 사실은 확인이 되지 않는 바 신조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개화기 조선 젊은이들의 관념을 유추해 볼 수 있진 않을까. 저런 말도 안될 것 같은 기호체계를 의미 없이 나열한 것을 시로 발표할만큼 혼란하고 암울한 시대였음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신조어를 통해서 우린 그 시대를 읽어내야 한다. 가령 '최애'(최고로 아낀다) 같은 표현은 요즘 젊은이들에게 자신만의 취향, 기호 같은 것들이 그만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의 반증으로 볼 수 있다. 또 '할말하않'(할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같은 표현은 피곤한 논쟁 대신 멀찌감치서 팔짱끼고 세상을 관조하겠다는 조금은 냉랭한 사회참여 의지로 해석될 수 있다. 일일히 할 말을 떠들기엔 이미 신경써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은 세상이니까.

신조어는 그 시대 젊은이들이 무슨 한글에 억하심정이 있어서 벌이는 파괴공작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고유한 성격을 언어생활에 담아낸 하나의 문화흐름으로 이해해야 한다. 어느 시대나 젊은이들은 기성 세대에 대해 반감을 갖는다. 그러기 때문에 기성 세대와 구분되는 자신들만의 언어생활을 가짐으로써 그들과 자신들을 구분짓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시대에 상관없는 신세대의 어쩔 수 없는 특징이다.

과연 요즘 청년들의 신조어를 보며 혀를 끌끌 차고 있는 바로 당신은 과연 젊은시절에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착한 문장만 썼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강드림

다르게살기운동본부 본부장

대한돌싱권익위원회 위원장

비운의 베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편집부 기자
작성 2019.01.02 12:50 수정 2019.01.08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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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