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드림의 싫존주의] 정말 대학에 가면 이뻐질까

곧 입학철이 다가온다. 올해도 변함없이 이 나라는 대책없이 50만명이 넘는 대학생들을 양산할 것이다. 이 50만명은 문득 궁금해지지 않을까? 그동안 이 사회의 학부형들이, 교사들이 걸핏하면 늘어놓던 '대학가면 이뻐진다'는 소리의 진위여부에 대해서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학가면 이뻐지는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이뻐질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가 맞는 말이다.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는 나라지만 이 나라에서 청소년은 공교육을 받는 동안 이뻐질 권리조차 박탈당한다. 그리고  초등학생들이 싸구려 화장품을 구매하는 것에 대해 화학적 성분을 핑계로 우려를 떨곤 한다. 왜 초등학생이 사용해도 괜찮은 화장품을 만들라고 촉구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을까. 이 사회의 학교는 도대체 왜 이토록 겉모습을 꾸미는 행위에 대해 죄악시 할까. 그리고 이 사회의 학교를 나와 취업을 할 때는 미모가 하나의 능력으로 평가 받는다.


한국의 초중고에서는 학생지도라는 명목하에 학생의 외모를 제한해 왔다. 두발자유화라는 것이 교육부의 이름으로 인정된 것이 불과 5년이 채 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권리로 이 나라의 학교는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버젓이 학생의 인권을 짓밟아 왔을까. 그러면서도 별다른 고민과 죄책감도 없이 말이다. 이유는 늘 비슷했다. '공부에 방해가 된다.'


이 시회에는 수 만가지 직업이 있다. 그 중에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있다. 디자이너의 일은 분류 기준에 따라 매우 다양하겠지만 대체적으로 뭔가를 아름답게 꾸미는 경우가 많다. 똑같은 기능의 제품이라 하더라도 얼마나 예쁜가에 따라 그 가치는 천차만별이 된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이다. 자연히 거기에는 가치가 붙고, 그것은 하나의 산업이 되어 그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동력이 된다. '꾸미는 행위를 공부로 보지 않은 것'은 이 나라의 교육계가 저지른 가장 큰 착오이자 패착이다. 쉬는 시간에 참고서를 보는 것은 허용되지만 만화책을 보면 빼앗겼고 심지어는 불태워지기도 했다. 그리고 불과 20년이 못 되어 이 나라에는 1조원이 넘는 웹툰시장이 생겨났다.


학생이 외모에 신경쓰다 보면 공부를 등한시하게 된다는 논리는 이토록 시대착오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외모에 신경을 쓰는 것도 진로와 충분히 연계되는 중요한 공부라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마땅하다. 늘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머리스타일을 요구받다가 사회에 나갈때가 되니 기업에서는 창의적인 인재를 원한단다. 그리고는 왜 한국에서는 아이폰을 못만드냐고 늙은 정치인들은 투정을 부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학생에게서 멋부릴 자유를 막은 당신들 때문이다.


머리가 좀 길다는 이유로, 치마가 좀 짧다는 이유로 학생에게 몽둥이질을 가하고, 인권을 모독하고, 가위질을 했던 수많은 교사들이 이 나라에 있었다. 어쩌면 지금도 있을지 모른다. 문제는 그런 통제를 당해 온 인간은 커서도 그 억눌림이 몸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늘 주변과 자신을 맞추는데 급급하다. 남들 입는 옷을 따라서 입고, 남들 하는 헤어스타일을 따라한다. 제일 비극적인 그것이 외적인 스타일 뿐 아니라 삶의 스타일에까지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남들 눈에 적당해 보이는 회사에 들어가고, 적당해 보이는 여자와 결혼을 하고, 적당해 보이는 집을 사고, 그렇게 영원히 남들 흉내내면서 살아간다. 이들이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얼마나 매력적인 인간인지 알지 못하고 그저 그렇게 늙어가는 것은 바로 그 교사들의 악령 탓이다.


학생주임 교사들이여.

더 늦기 전에 석고대죄를 하시라.
내가 잘못했다고.

더 늦기전에 너만의 아름다움을 찾기 바란다고.
말이다.


편집부 기자
작성 2019.02.18 10:36 수정 2019.02.18 10:52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편집부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