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열전 靑年 列傳] 버퍼링으로 채워가는 지소연

쉬어가기

 



천장에 한 사람이 서로 맞잡을 수 없는 두 끈이 매달려있다. 테이블 위에는 약간의 도구들(망치, 가위 등)이 놓여있다. 미션이 주어졌다. ‘두 끈을 연결해라!’ 독자들은 어떤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는가?

 

이 실험은 사람들의 문제 해결 능력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미국 심리학자 노먼 마이어Norman Maier두 줄 실험이다. 그의 실험 결과는 어떠했을까? 참가자의 39.3% 만이 문제의 해결책을 발견하였다. 또한 실험 환경에서 책상 위에 가위만 놓여있을 때, 문제 해결에 있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위의 상황에서 천장에 매달려 있는 두 개의 끈을 묶으려 하면, 손이 조금 모자라 다른 하나의 끈을 잡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두 끈을 연결시킬 수 있었을까? 마이어 박사가 원했던 답은 피실험자가 책상 위에 놓인 도구를 밧줄에

묶어 시계추처럼 흔들리게 한 후, 다른 쪽의 밧줄을 잡고 흔들리는 밧줄을 잡아 연결하는 것이었다.

 

쉬어가기

 

여기서 눈여겨 볼 부분은 참가자들의 문제 해결 방법이다. 실패를 거듭하던 참가자들에게 지갑, 핸드폰 등 소지품을 모두 버리고 실험 장소에서 벗어나 걷도록 유도했을 때, 번뜩이는 답을 가지고 돌아왔다. 문제의 장소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각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문제 해결과 관련 없는 전혀 다른 경험, 걷기 혹은 휴식이 오히려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 것이다. 정해진 답이 없는 우리의 인생 여정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루하루, 일분일초가 크고 작은 문제에 맞닥뜨리며 변화무쌍하게 흘러가는 듯싶다가도, 때로는 적응의 굴레, 매너리즘에 빠져 문제 해결에서 멀어져 간다. 그러다 잠깐의 산책부터 멀리 떠나는 여행이라는 쉬어가기를 통해 문제해결에 도움을 받는다. 답을 찾지 못할지언정,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나도 매너리즘이라는 단어에 스스로를 가두고, 일반적이고 당연하게 여겨질 것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늪에 빠진 적이 있다. 3자가 바라본 늪에 빠진 나는 시간낭비나 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한심하고 철없는 아이로 여겨졌을지 모른다. 사실 얼마 전까지 제3자가 아닌, 내가 바라본 나의 모습에 대한 평가였다. 지금의 평가는 다르다.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시간은 쉬어가기의 일부였고 내가 살아온,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로 하여금 39인의 한 명으로써, 이렇게 모르는 누군가를 향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25년간 스스로 만들어 놓은 늪은 단지 질서 없이 섞여 가끔 썩은 물처럼 보였을 뿐, 생각보다 깊었고, 생각보다 많은 자아ego와 생각보다 풍부한 영양분을 품고 있었다. 늪은 에서 시작되었다. 중학교 시절 아버지는 내게 과학 영재반에 들어갈 것을 권유하셨다. 그 시절, 아버지가 본 딸, 지소연은 과학 다큐멘터리를 찾아 즐겨보고, 이에 함께 의견을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과학도의 길을 가지 않을지라도 인생에 과학을 공부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아이라고 생각하셨다.

 

사실, 나는 주변 사람들이 던지는 멋있다는 한마디에, 그저 있어 보여라는 이유로 과학 영재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물론 그 당시의 자기소개서에는 장차 세상을 바꿀 과학 소녀인 냥 온갖 미사여구로 나를 포장했었다. 그래도 대수롭지 않은 이유에서의 시작이었지만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영재반에서는 기존 학교에서 진행되던 수업과는 달리, 새로운 생각을 요하고 토론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신선했고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수업에서 큰 경쟁이 없었기에 부담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영재반 생활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그 후, 성적이 우수하다는 이유로 외고, 과학고 진학을 권유 받았고 또 다시 선택을 해야 했지만 쉬운 문제였다. 일반고보다는 있어 보이고, 중학교 때의 나름 스펙인 과학 영재반을 써먹을 수 있는 과학고로 진학했던 것이다. 그 이후에 찾아오는 선택의 갈림길에서는 모두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결정을 했다. 과학고를 나왔으니 이공계 대학으로 진학을 하고, 한 학년이 100명뿐인 대학생활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주변 사람들이 다 대학원을 가니까 나도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대학원을 진학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이 그냥 흘러갔다. 도전의식은 없었다. 대학 때까지만 해도 내 선택 방식이 잘못되었을지라도 크게 타격을 입을 만한 사건이 없었다. 하지만 좀 더 넓은 학교로 대학원을 진학하면서 순탄하게만 흘러갈 줄 알았던 내 인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도 나름 누구한테 싫은 소리 안 듣고 잘한다는 소리만 듣고 자라왔는데, 상황이 달라졌다.

 

연구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힘들고 싫다면서도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확실한 목표 없이 흘러흘러 진학하게 된 대학원 생활은 스스로 자꾸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며, 내실이 없는 채로 척만 하게 됐고 결국, 마음에 병을 만들었다. 맑은 하늘을 보다가 날이 좋다며 울고, 주변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밤낮없이 울었다.

 

매일 팅팅 부은 눈으로 꾸역꾸역 출근하던 모습에 누군가는 좀만 참아라, 빨리 졸업만하면 과장 달고 떵떵거리면서 행복할 수 있는 걸또 다른 누군가는 좀만 더 힘내라, 지금껏 잘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텐데라고 말했다. 그때의 나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였다. ‘쉬어, 싫은 걸 왜 해? 그만둬라는 말이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 아무도, 원하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앞으로 잘할 자신도 없고 버틸 자신이 없어, 결국 자퇴서를 가지고 지도교수님께 찾아갔다. 부모님과 일말의 상의도 하지 않았다. 내 인생 최고의 무모한 용기였다. 그때 감사하게도 교수님께서는 휴학으로 돌려라.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 뒤에 자퇴해도 늦지 않다. 쉬면서 생각을 계속 해보아라.’ 라며 기회를 주셨다.

 

그렇게 내 인생의 첫 쉬어가기가 시작되었다. 정말이지 이제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세상에 부딪히며 맨땅에 헤딩을 해보겠다는 휴학은 생각보다 암담하고 불안했다. 편한 마음으로 쉬고 싶었지만 내일 해야 할 일은 없는데 찾아오는 밤은 두려웠고 잠 못 이룬 날이 더 많았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보겠노라, 도전 의식을 갖고 새로운 것을 시작해보겠노라는 다짐은 한 분야만 바라보고 살아온 나에게 생각에만 그칠 뿐이었다.

 

제대로 쉬는 법을 모르고, ‘쉬어가기의 탈을 쓴 도망이라는 단어에 발목 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눈을 감고 외면만 했다. ‘앞으로 내가 알아서 할게. 아빠는 날 잘 몰라. 나는 그 동안 좋아하는 척, 있어 보이는 척만 한 거야. 정말 원한 적은 없었어. 그냥 아빠한테 많이 의지하고 조언을 구했지만 거의 아빠 의견에 따르는 꼴만 되었고, 지금은 내가 힘드니까 자꾸 원망스러워. 나중에 아빠를 탓하고 원망하고 싶지 않아.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질게. 그냥 지켜봐 줘.’ 라더니 실패처럼 보이는 휴학 앞에, 내 결정에 대한 책임을 피하고 싶어 또 다시 아빠한테 덤터기 씌우는 괘씸한 짓도 했었다.

 

결국 5개월 정도의 짧은 휴학은 졸업이라는 작은 목표를 가지고 끝이 났다. ‘도망에서 일의 마무리라는 마침표를 찍고 다시 제대로 쉬어가기를 실천하리라 마음먹었다. 불완전한 이전의 쉬어가기휴학은 내게 명확한 해답을 주진 않았지만 후회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무사히 졸업이라는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고, 지금의 새로운 자아 여정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와 지금 모두 같은 백수지만 지금의 행복은 불안함의 연속이었던 전과는 비교할 수 없다.

 

누군가는 스펙의 단절, 뒤쳐짐이 두려워 쉬어가기를 거부한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은데 이렇게 쉬어도 되나 싶고, 내가 쉴 때 경쟁자가 달린다는 생각을 하면 숨이 턱턱 막힐 것이다. 뻔한 얘기일 수 있지만 인생이 달릴 때도, 걸을 때도, 때로는 쉴 때도 있지. 내 인생, 내 여정의 주인공은 나인데 꼭 누군가와 비교하면서 쫓고 쫓기며 달려야만 할까? 쉬어가며 꽃도 보고 바다도 보고 하늘도 보고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해보고 온몸으로 세상을 만끽하고 즐기면서 새로운 경험으로 인생의 활력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한번 사는 인생 한 숨 돌리면서 천천히 끝까지 가보자!

 

관점의 차이

 

, 다시 처음 주어졌던 미션으로 돌아가 보자. 왜 책상 위에 가위가 놓여있을 때 문제 해결에 있어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을까? ‘가위자른다, 짧게 한다라는 고정관념에 해결책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그 대상이 가지고 있는 기능적인 측면에 강하게 얽매여 다른 활용방법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기능적 고착functional fixedness에 사로잡힌 것이다. 고정관념과 반복학습 등의 방해요인은 기능적 고착 현상을 더 커지게 하고 편협한 생각만을 하게한다.

 

따라서 이에 벗어나, 생각을 유연하고 창의적으로 해야 한다. 문제의 시점에서 벗어나 (앞서 말한, ‘쉬어가기와 일맥상통) 기존의 생각을 비우고 멀리 떨어져서 좀 더 추상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위를 가까이에서 그 자체로만 바라보면, 날카로운 날과 손잡이를 지닌, 물건을 자르는데 쓰이는 도구로 보인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서 보거나 가위가 낯선 이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가위의 뾰족한 부분이 무언가를 가리키는 이정표로 보일 수도 있고, 쇠붙이 부분이 손잡이가 되어 원을 그리는데 사용하는 도구로 보일 수도 있다.

 

한 걸음 떨어져 온전히 비워내고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다각도로 새로운 것들과 접하며 열린 생각을 하는 것, 이것은 복잡한 문제를 생각보다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과장된 표현이라 여길 수 있지만, 이렇게 생각의 전환, 관점을 바꾸면 인생도 변화시킬 수 있다. 그 예로 즐겨보는 어쩌다 어른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 편에서 사람이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 중 하나가 행복이다.’라는 다소 충격적이면서 재미있는 내용을 보고 적어본다.

 

학자들이 행복은 타고난다고 말하는 이유로 몸속에 아난다마이드를 말한다. ‘행복이라는 뜻의 산스크리스트어인 아난다에서 따온 이 화학물질은 불안을 낮추고 화학 작용을 통해 행복함을 느끼게 한다. 결국, 이 물질이 많은 사람은 행복함을 더 잘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아난다마이드가 중국한족은 14%, 북유럽은 21%, 나이지리아 45%로 민족마다 인체 내 비율이 다르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드는 의문점 하나, 타고난 성격이 비관적이라면 그냥 성격대로 살다 죽어야 하는 걸까? 당연, 아니다. 성격을 바꾸지 못한다면 관점과 자세를 바꿀 수 있다. 관점을 다각화할 수 있다면, 공감능력이 향상되고 화낼 일도 줄어들며 결국, 행복을 쟁취할 수 있게 된다.

생각보다 작은 변화, 관점의 차이가 우리에게 큰 힘을 발휘한다. 징크스도 마찬가지이다. 간혹, 어떤 큰일을 앞두기 전에 신호등, 엘리베이터가 원하는 대로 된다면 은근히 자신감이 차오른다.

 

전혀 무관한 경험의 성공이지만 생각하기 나름으로, 일에 있어 자신감을 높여주고 성공을 이끄는데 도움을 준다. 한 사람을 울고 웃게 할 수 있는 큰 힘을 가진 관점의 차이는 몇 달 전, 가족행사에서 그 중요성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다. 어른들과 술을 한잔하고 계시던 아버지가 내 또래 사촌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금수저니, 흙수저니?” 아버지가 어떤 의도로 이 질문을 했을 지에 대해 생각하며 왠지 모를 슬픔에 빠지려던 찰나, 한 살 어린 내 친척동생이 말했다. “당연히! 금수저죠. 제가 행복하면 금수저 아닌가요?” 정말 별거 아닌데 와, 한대 맞은 기분이더라.

 

요즘 흔히 말하는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의 기준은 무엇인가? 타인의 시선에서 정해지는 물질적인 것일 것이다. 물론, 나는 돈이 다가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지만,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정말 생각하기 나름으로 내 시선에서 마음만은 편안하고 풍요로운 금수저가 될 수 있다.

 



전명희 기자
작성 2018.08.16 10:01 수정 2018.08.16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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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