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작은 금강산 홍성 용봉산

여계봉 선임기자



마음이 번거로우면 세상이 번거롭고 마음이 밝으면 세상이 밝다. 코로나19로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홍성 용봉산으로 향한다.

 

홍성 용봉산은 만만해서 좋다. 밑에서 보면 밋밋하기 그지없어 산행 욕구가 발동하지 않지만, 일단 올라가면 설악산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기암괴석이 빼어난 산이다. 산 전체가 바위산으로 옹골찬 암릉 길이지만 위험하지 않을 뿐더러 코스도 길지 않아 누구나 부담 없이 산행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산의 좌우 중턱에 고려시대 불상 미륵불과 백제시대의 고찰 용봉사, 마애석불 등의 문화재가 있고, 산 아래에는 자연휴양림이 있어 산행과 문화 유적 탐방을 마치고 자연 속에서 힐링까지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충남 내포 지방에 솟아난 용봉산은 내포의 수호신 가야산(678m)과 고찰 수덕사를 품은 덕숭산(495m)의 그늘에 가려져 그다지 알려진 산이 아니었다. 해발 381로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산 전체가 화강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산세가 옹골차고 수려하여 여느 명산에 못지않다.

 

‘용의 형상에 봉황의 머리를 얹어 놓은 형국’이라 하여 용봉산(龍鳳山)이다.
용봉초등학교-투석봉-정상-노적봉-악귀봉-용봉사-휴양림 입구(5km, 3시간)

 


 

산행 들머리 용봉초등학교 앞 주차장에 주차한 후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지불하고 민가와 식당을 지나 용봉산 자락으로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소나무가 좌우로 도열한 가파른 신작로를 500m 정도 오르면 왼쪽으로 거대한 석불이 서있는 작은 암자 용도사가 나타난다. 전체 높이 7.2m의 홍성 상하리 미륵불은 용봉산 서쪽 기슭의 절벽 밑의 자연 화강암을 그대로 활용해 만든 불상이다. 부리부리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눈과 큰 귀, 서글서글하며 시원한 인상, 좌우가 완전 대칭이 아니어서 균형미가 약간 부조화를 띠는 것이 오히려 동네 마을 아저씨 같이 친근하고 넉넉한 모습을 보여준다.

 


상하리 미륵불. 고려 중기에 세워진 불상으로 우리나라 3대 미륵불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암자 오른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능선에 있는 팔각정 전망대가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시야가 터지면서 예당평야와 홍성 시가지가 발 아래로 펼쳐진다. 암릉 길을 따라 경사가 가파르고 제법 크고 높은 바위를 올라서면 첫 번째 봉우리 투석봉을 만나게 된다. 투석봉에서 정상가는 능선에는 소나무 길 사이로 진달래가 활짝 피어있다.


팔각정 전망대에 서면 예당평야와 홍성 시가지가 발 아래로 펼쳐진다.

 


편안하고 아늑하기 그지없는 소나무 숲길이 끝나는 곳에 큰 바위가 있고 그 위에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해발 381m의 정상에 서면 홍성과 예산의 평야지대와 충남도청을 비롯한 교육청, 경찰청이 자리 잡고 있는 내포신도시를 조망할 수 있고 서산의 가야산, 예산 수덕사의 덕숭산, 예당평야도 한 눈에 볼 수 있다. 투석봉과 백월산 너머로 서해가 보인다. 북으로는 가야할 노적봉과 악귀봉이 보인다.


용봉산은 8개의 산봉우리로 형색을 갖췄다고 해 팔봉산이라고도 불린다.

 

북서 방향으로 서산의 가야산, 예산 수덕사의 덕숭산이 보인다.


 

용봉산은 특히 곳곳에 암봉이 빼어나다. 특히 정상에서 노적봉, 악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아기자기한 암릉으로 되어있어 지루함을 느낄 새 없이 산행을 이어갈 수 있어 일 년 내내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산자락은 연두 빛 보자기로 둘러싸여 있다.


휴양림에서 올라오는 능선. 최영 장군이 소년 시절 활을 쏘며 무예를 연마하던 활터가 있다.

 


 

삼거리에서 노적봉까지는 불과 300m에 불과하지만 빼어난 주변 풍경이 발목을 잡아 걸음이 더딜 수밖에 없다. 온통 바위로 뒤덮인 노적봉(350)은 봉우리 전체가 볏단을 수북하게 쌓아놓은 듯하다. 간이매점에서 칡즙 한잔 하면서 땀을 식히는데 노적봉에 걸터앉은 거대한 바위 절벽 틈에서 좌우로 누워 옆으로 자라는 소나무가 유난히 시선을 끈다. 노적봉에서 내려서는 험난한 바위 절벽 길옆에는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솟대바위와 행운바위가 등산객을 반긴다.



능선 암릉에 설치된 계단 뒤로 노적봉과 악귀봉이 보인다.
솟대바위. 노적봉 근처에는 아름답고 기묘한 바위들이 지천이다.

 

 

용의 몸통을 닮은 노적봉에서 악귀봉까지의 능선 길은 전후좌우로 기암과 소나무가 멋진 풍경을 연출하여 산행의 즐거움은 더해진다. 이따금 험난한 암릉 길과 마주하지만 계단과 데크가 설치돼 있어 산책하듯 악귀봉 정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중간에 물개바위, 삽살개바위 등 기기묘묘한 바위에 넋을 빼앗겨 발걸음은 더뎌진다. 악귀봉은 마치 작은 울산바위처럼 생겼다. 악귀봉에 오르면 용봉저수지와 수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잘 보이고, 내포신도시와 예당평야의 시원스런 조망은 가슴을 후련하게 한다.

 

흔들바위. 주위는 기암괴석들이 연출하는 수석전시장이다.

 

악귀봉(369m). 산봉 전체가 기암괴석의 집합체다.


 

악귀봉에서 오솔길을 따라 400정도 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능선을 따라 직진하면 수암산으로 계속 이어지고 용봉사 쪽으로 길을 잡고 내려가면 신경리 마애여래입상을 만나게 된다. 높이 4, 1.4인 마애석불 얼굴은 몸에 비해 크고 풍만하다. 수인(手印)을 보면 다른 지역 불상과 달리 오른손을 쭉 펴서 다리에 붙이고 왼손은 굽혀 들었다. 부처는 인간으로부터 기도의 대상이 되는 존재인데 오히려 인간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이 얼마나 이타적 삶의 겸손한 자세인가.


병풍바위. 밑에서 올려다보면 넓은 화폭처럼 펼쳐졌다고 해서 붙여졌다.
마애여래입상(보물 제355호). 자연암석의 앞면을 파서 부조한 고려 초기의 석불이다.

 


마애석불 돌계단을 내려가면 너른 공터에 무덤이 하나 나온다. 이곳은 백제 말에 창건된 용봉사 절터였다. 고려때는 승려 수가 1천여 명에 달했고 조선 후기까지 근처 수덕사에 견줄 만한 큰 절이었는데, 조선 후기 평양 조씨 가문에서 조상 묘를 이곳으로 옮기는 바람에 절은 폐사되고, 주민과 신도들이 본래의 위치에서 약간 동쪽 아래로 옮겼다고 전해진다.

 

세도가의 횡포로 절에 무덤이 들어서는 바람에 용봉사는 아래로 옮겨진다.
병풍바위를 등지고 앉은 용봉사의 모습이 단아하면서도 힘이 있다.

 


 

다산 정약용은 용봉산의 기암괴석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해 용봉사에 들러’(過龍鳳寺)라는 시를 남긴다. 용봉산 유람을 마친 다산은 하루 머물 요량으로 용봉사에 들리지만 주지로부터 거절당한다.

 

서해의 지역이라 명산은 적고 기름진 넓은 들만 깔리었는데

뜻밖에도 본질을 탈바꿈하여 머리 빗고 몸 씻어 평지에 나와

뭇 봉우리 드높이 솟아오르니 가팔라 투박한 살 털어버렸네

절간 누각이 나뭇가지 끝에 삐죽하여 시린 그 정경 눈을 즐겁게 한다만

노승은 절이 퇴락했다며 묵어가기에는 곤란하다네

 

한낮에 독경 소리 대신 딱따구리 나무 찍는 소리가 절집의 고요가 깨운다. 용봉사 보물 영산회 괘불탱을 구경하고 아름드리나무들이 늘어선 진입로를 콧노래 부르며 내려오다 마애불 부처님과 딱 눈이 마주친다. 일주문 직전의 작은 암벽에 새겨진 잘생긴 마애불은 잘 가라고 봄바람처럼 훈훈한 미소를 건넨다.






여계봉 선임기자

 

 












여계봉 선임기자 yeogb@naver.com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5.02 12:25 수정 2020.05.02 12:28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편집부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