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의 항간세설] 반항의 정신 (IV) : 異端者 카릴(Khalil the Heretic) (4)

이태상

 

덜컥 겁을 먹은 쉐이크 아바스가 카릴의 말을 막아보려고 해 보았으나, 기세를 높인 카릴이 그 더욱 힘주어 말을 계속해 나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행복의 씨앗을 심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씨앗을 파내서 자갈밭에 던져 버려, 바람이 흩뜨리고 새들이 쪼아먹게 한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번성하라고 귀여운 자식까지 낳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귀한 우리 자식들에게 진리(眞理)를 가르치고 이들의 깨끗하고 빈 마음에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중한 것들로 채워 주어야 할 우리가, 이들에게 인생의 기쁨과 풍요함을 물려주지 못하고, 가난과 구속에 얽매인 불행을 유산으로 남겨줘서야 되겠습니까?

 

제 자식을 노예로 만드는 부모는 빵을 달라고 우는 자식에게 돌멩이를 주는 것과 같지 않겠습니까? 저 하늘을 나는 새들을 보십시오. 제 새끼들한테 무엇보다도 먼저 나는 법을 가르쳐주고 훈련시키지 않던가요? 그런데 어찌 우리가 우리 자식들에게 노예의 멍에를 지고 노예의 사슬을 끄는 법을 가르쳐줄 수가 있겠습니까? 산골짜기에 피는 꽃들이 자기네 씨앗을 햇볕 쬐는 밝고 따뜻한 양지에 묻어두는 것을 보셨겠지요. 그런데 어찌 우리가 우리의 자식들을 춥고 어두운 음지에 내버려 둘 수 있단 말입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고, 카릴의 정신과 영혼이 울분으로 폭발할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카릴은 그와는 반대로 차분히 가라앉은 음성으로 하던 말을 이렇게 끝맺었다.

 

오늘 밤 여러분에게 드린 말씀은 제가 키자야 수도원에서 쫓겨나기 전에 수도사들에게 한 말과 같은 내용의 것입니다. 오늘밤 여러분의 지도자요, 스승이요, 주인이라고 하는 쉐이크와 신부에게 제가 죽임을 당하더라도, 저는 기쁘고 행복하게 숨을 거두겠습니다. 진짜 죄인과 악인이 죄악(罪惡)이라고 부르는 참된 진리(眞理)를 여러분에게 드러내 밝혀 드리는 저의 사명을 완수했기 때문입니다.”

 

카릴의 음성에는 청중을 사로잡는 무서운 마력(魔力)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여인들은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한편 몹시 당황하고 분노에 찬 쉐이크 아바스와 신부 엘리아스는 이를 갈면서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말을 끝마친 카릴이 레이첼과 미리암에게로 몇 발짝 걸어가서 멈춰섰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장내가 조용해졌다. 마치 카릴의 정신이 청중 머리 위로 날고 있는 것 같았고, 그의 의기(義氣)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전에 느껴보지 못하던 새로운 신념(信念)과 용기(勇氣)를 불어넣어 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분노심(憤怒心)와 죄의식(罪意識)에 뒤범벅이 되어, 가시방석에라도 앉아 있는 것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쉐이크 아바스와 신부 엘리아스가 두렵기는커녕, 그들의 존재조차도 이제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이때 쉐이크 아바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창백해진 얼굴로 주위에 서 있는 종들을 둘러보면서, 악을 쓰듯 소리를 내 질렀다.

 

너희들은 어떻게 된 거냐? 이 개새끼들아! 혼들이 빠지기라도 한 거냐? 이 지지리 못난 놈들아! 저 무엄(無嚴)한 죄인 이단자 놈에게 당장 달려들어 저놈을 갈가리 찢어 죽이지 못해! 저놈이 도대체 너희들을 어떻게 만들어 놓은 거냐? 이 똥덩어리 같은 놈들아!”

 

이렇게 욕지거리를 하고 나서, 쉐이크는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들고 카릴에게 덤벼들었다. 그 순간 청중 속에 있던 한 사나이가 몸을 날리듯 날쌔게 앞으로 나와 쉐이크의 손을 잡고 말했다.

 

손에서 칼을 놓으십시오. 남을 죽이려고 칼을 뽑는 자는 바로 그 칼에 자기가 죽게 됩니다.”

 

쉐이크는 몸을 떨었고, 그의 손에서 칼이 맥없이 땅에 떨어졌다. 그래도 쉐이크는 큰기침을 한 번 하고 난 다음, 그 사나이를 꾸짖었다.

 

네 이놈, 못난 종놈이 제 주인과 은인에게 반항하는 거냐?”

 

그러자 이 사나이가 대답했다.

 

충성스러운 종놈일수록 제 주인이 죄를 짓지 못하도록 말려얍죠. 이 젊은이가 한 말이 모두 사실인데 더욱 그렇습죠.”

 

청중 가운데서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이 젊은이는 벌은커녕 상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이어서 한 여인이 소리 높여 물었다.

 

저 젊은이는 하나님을 욕하거나 성자(聖者)들을 저주하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이단자라 하시는 거죠? 이 젊은이에게 무슨 죄가 있는지 말해 보세요.”

 

이번에는 레이첼이 대들자, 쉐이크가 소리쳤다.

 

네 이년, 형편없는 과부야! 너도 네 남편 꼴을 당하고 싶어 그러느냐? 나한테 반항하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지?”

 

이 말을 듣자, 레이첼은 분을 못 이겨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인제야 자기 남편을 죽인 살인자를 똑똑히 찾아냈기 때문이다. 북받치는 눈물을 꿀꺽 삼키고 난 레이첼은 주위를 둘러보면서 소리쳤다.

 

여기 바로 내 남편을 죽인 살인범이 있어요! 제 입으로 제 죄를 자백하는 것을 방금 들으셨죠? 지금껏 자기 죄를 숨겨 온 살인자가 다른 사람 아닌 바로 쉐이크였군요. 저 쉐이크의 얼굴 좀 보세요. 저 벌벌 떠는 꼴 좀 보세요. 나를 과부로 만들고, 내 어린 것을 애비 없는 고아로 만든 저 흉악한 살인범을 우리가 지금껏 우리의 윗사람으로 모셔 왔군요.”

 

레이첼의 말이 벼락처럼 쉐이크의 머리를 때렸다. 분개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불붙은 장작개비들처럼 쉐이크의 눈앞에 떨어졌다. 이때 신부 엘리아스가 소리쳤다.

 

쉐이크 아바스 나리를 고발한 저 여인을 지금 당장 저 젊은 놈과 함께 감방(監房)에 집어넣어라. 누구든지 방해하면 죄인이 될 것이고, 저 젊은놈처럼 이단자로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로부터 파문(破門)당할 것이니라.”

 

그러나 누구 하나 아무도 꼼짝도 하지 않고 청중은 아직도 밧줄에 묶인 채로 레이첼과 미리암 사이에 서 있는 카릴을 바라보았다. 카릴이 마치 이 두 모녀를 한 쌍의 날개로 삼아 더없이 넓은 자유의 하늘로 날아오를 준비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분노에 턱수염이 떨리면서, 신부 엘리아스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인과 창피한 줄도 모르는 간음한 여인을 편들기 위해 쉐이크 나리도 몰라보다니!”

 

그러자 쉐이크의 종들 중에서 제일 나이 많은 자가 대답했다.

 

우리는 입에 풀칠하느라고 오랜 세월을 두고 나으리를 하나님처럼 섬겨 왔읍죠만, 이제는 달라요.”

 

이렇게 말하면서 입고 있던 외투와 둘둘 감고 있던 머리 수건을 쉐이크 앞에 벗어 던지자, 다른 종들도 모두 다 하나같이 따라 했다.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무리들의 얼굴에는 전에 볼 수 없던 자유의 빛과 생기가 돌고 넘쳐났다.

 

자기 말의 권위가 더 이상 서지 않는 것을 본 신부 엘리아스가 카릴이 이 마을에 발을 들여놓은 시간을 저주하면서 자리를 뜨자, 무리들 가운데 한 사람이 걸어 나와, 묶여있는 카릴의 두 팔을 풀어 주고 나서, 시체처럼 의자에 푹 꼬꾸라져 있는 쉐이크 아바스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죄인으로 당신에게 재판받기 위해 여기에 끌려온 이 젊은이가 우리를 깨우쳐 주었고, 당신이 과부로 만든 여인 레이첼이 당신의 죄상을 우리 눈앞에 드러내 보여준거요. 당신도 이제는 하늘 무서운 줄 아시겠소?”

 

잇달아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의롭고 용감한 이 젊은이를 따라, 레이첼의 집으로 가서 그의 지혜로운 말을 더 좀 들어봅시다.”

 

우리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저 젊은이에게 우리의 앞날을 의논해 봅시다.”

 

아미르에게 가서 아바스의 죄상을 고발하고, 아바스 대신에 이 훌륭한 젊은이를 우리 마을의 새 쉐이크로 임명해 달라고 진정해 보십시다. 그리고 신부 엘리아스가 공범(共犯)이었던 사실도 주교(主敎)에게 알립시다.”

 

이 여러 소리가 화살처럼 쉐이크 아바스의 가슴에 꽂히고 있는데, 카릴이 두 손을 번쩍 쳐들어 군중들을 진정시키면서 말했다.

 

제 말씀 좀 들어 주십시오. 아미르나 주교에게 가 보셔야 소용없는 일입니다. 그들이 다 한통속인 줄 아셔야 합니다. 저를 이 마을의 쉐이크로 임명해 달라고 하지 마십시오. 저는 악한 주인을 돕는 종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바라고 원하는 것은 두 팔 걷어붙이고 여러분과 함께 일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제 쉐이크 아바스가 홀로 남아서 스스로 양심의 심판을 받게 내버려 두고 댁으로들 돌아가십시오.”

 

이렇게 말을 하고 카릴이 자리를 뜨자, 군중들도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모두가 다 떠나가고, 무섭게 고요한 가운데 폐허에 무너져 있는 탑처럼 쉐이크 혼자 남았다. 군중들이 마을 성당 뜰에 이르렀을 때, 마침 둥근 달이 구름장 밖으로 나와 은빛 광선을 내리쏟고 있었다.

 

어진 목동이 양떼를 지켜보듯, 군중을 바라보는 카릴의 마음속에, 압정(壓政)에 신음하는 백성을 상징하는 이들에 대해 말할 수 동정과 연민(憐愍/憐憫)의 여울이 일고 있었다. 마치 동방의 모든 나라들이 텅 빈 머리와 무거운 마음으로 노예의 사슬을 질질 끌면서 불행의 골짜기를 걷고 있는 것을 본 예언자처럼, 한참을 말없이 서 있던 카릴이 두 손을 높이 들어 하늘을 향하고서, 성난 파도가 울부짖듯 하늘에 호소했다.

 

, 자유(自由)의 신()이여!

우리를 굽어살피시고

자비(慈悲)를 베풀어 주소서.

깊은 골짜기에서 그대를 부르나이다.

 

우리 조상의 피 묻은 옷을 몸에 걸치고,

우리 조상의 뼈가 묻힌 무덤의 먼지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우리 조상의 목을 벤 칼을

허리에 차고,

우리 조상의 가슴을 찌르던

창을 손에 들고,

우리 조상의 발목을 묶던

사슬을 끌면서,

우리 조상의 피를 토하게 하던

비명소리를 지르면서,

우리 조상이 부르던

구슬픈 패배(敗北)

노래를 되풀이하면서,

우리 조상이 드리던

기도를 되뇌면서,

우리가 지금 그대의

옥좌(玉座) 앞에 서 있나이다.

 

, 자유의 신이여!

우리의 호소에 귀 기울여 주소서.

나일강에서 유프라테스강가에 이르기까지

신음하는 영혼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깊은 나락(奈落)으로부터 울려 나오고

동쪽 끝에서 서쪽 끝에 이르기까지

죽음 앞에 떠는 영혼들이

그대에게 손을 뻗치고 있나이다.

바닷가에서 사막에 이르기까지

유리방황(流離彷徨)하는 영혼들이

그대를 우러러보고 있나이다.

 

, 자유의 신이여!

우리를 버리지 마시고 구하여 주소서.

가난에 찌든 오막살이에서

무지(無知)에 얽매인 백성들이

그대 오실 날만을 기다리고,

압제와 독재의 먹구름이

무겁게 내리 앉은 배움의 터전에서

절망에 찬 젊은이들이

그대를 부르고 있나이다.

성당(聖堂)과 사원(寺院)에서 버림받고 있는

그대의 성서(聖書)와 성전(聖典)

그대를 찾아 통곡하고

법정과 궁전에서 무시당하고 있는

그대의 법률과 법칙이

그대를 향해 호소하고 있나이다.

 

좁은 우리의 거리에서는

착취와 약탈을 일삼아 온

서양(西洋)의 해적(海賊)들에게

우리의 간()과 쓸개까지 빼서

공물(貢物)을 바치느라고

귀중한 우리 세월을

헐값에 팔아먹는 자는 있어도

우리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 주는 이 없나이다.

 

메마른 우리의 들에서는

우리의 뼈로 땅을 갈고

우리의 눈물로 씨를 뿌리고

우리의 땀으로 키워도

우리가 거두는 것은

가시덤불밖에 없고,

버려진 우리의 벌판에서

헐벗고 굶주린 우리가

갈 길을 알지 못하고

맨발로 헤매어도

우리에게 참된 길을

가르쳐주는 이 없나이다.

 

, 자유의 신이여!

그만 침묵을 지키시고

말씀 좀 해주소서.

우리를 가르쳐주시고

우리를 깨우쳐 주소서.

 

우리의 어린 양들이

풀없는 풀밭에서

흙을 핥고,

우리의 송아지들이

벌거숭이 산에

몇 그루 남지 않은

나무뿌리를 갉아 먹고,

독버섯을 뜯어 먹는

우리의 망아지들이

미쳐 날뛰고 있나이다.

 

, 자유의 신이여,

어서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소서.

우리는 오래도록

당신의 빛을 보지 못한 채

깜깜한 어둠 속에서

살아오고 있나이다.

죄수처럼 한 감옥에서

또 다른 감옥으로 옮겨 다니면서

길고도 긴 밤의 행렬을 짓고 있을 뿐입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동트는 새벽이 오겠나이까?

수많은 돌을 등에 져 왔고,

수많은 멍에를 목에 메어 왔나이다.

언제까지나 우리는 이 모든 인간의

횡포(橫暴)를 참고 견뎌야만 하나이까?

 

고대(古代) 이집트의 노예제도로부터

바빌로니아의 유수(幽囚),

페르시아의 학정(虐政),

그리스의 용역(用役),

로마제국의 폭정(暴政),

유럽 여러 나라의 식민지 정책,

이 모든 것을 우리는 참고 견디어 왔나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우리의 고달프고 험한 여정(旅程)

언제나 끝나겠나이까?

파라오 왕에서 시작해서

네부카드네자르 왕과

알렉산더 대왕과

헤롯 황제에 이르기까지

이들 손아귀에서

언제나 우리가 벗어나겠나이까?

이들에게서 해방되는 길은

죽음밖에 없겠나이까?

 

언제까지나 우리는

성전(聖殿)의 돌기둥을 세우고

성벽(城壁)을 쌓고

피라미드를 짓기 위해

우리의 허리뼈를 부러지게 해야 하며,

궁전을 짓기 위해

오막살이에 살아야 하며,

부자들의 곡간을 좋은 곡식으로 채우기 위해

마른 쭉정이 찌꺼기로 연명해야 하며,

상전들이 입을 비단옷을 짜기 위해

누더기를 걸쳐야 하나이까?

 

포악한 저들의 간악한 계교 때문에,

무지하고 미련한 우리는 우리 내부로

우리끼리 분열되어 있나이다.

자기네 왕좌를 영원무궁토록 보존하기 위해 아랍사람들과 드루우즈파(시리아의 레바논 산맥 중의 드루우즈 지방에 사는 호전적好戰的인 광신파)의 사람들을 무장시켰고, 수니파 (마호메트의 언행에 따라 만든 회교의 구전법률口傳法律 수니를 코란과 똑같이 정전正典으로 믿는 정통파 회교도)를 침공하도록 시아파(회교의 이대종파二大宗派의 하나로 마호메트가 죽은 뒤 그의 후계자를 둘러싸고 마호메트의 사위 알리와 그의 아내의 자손만을 이슬람 교단敎團의 정통 후계자로 삼고 역대의 다른 후계자 칼리프의 전통을 부인하여 갈라져 나온 파)를 선동했고, 쿠르드(터키 동남부, 이란 서북부 및 이락 북부에 걸친 고지高地 쿠르디스탄) 사람들을 부추겨서 베두인 사람(아시아 및 아프리카의 사막지방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아라비아 사람을 가리킴)들을 학살케 하고, 기도교인과 싸우도록 회교도를 응원했나이다.

 

언제까지나 우리 인간은 같은 어머니의 품 안에서 형제끼리 죽이기를 계속해야만 하나이까? 언제까지나 같은 하나님 앞에서 기독교의 십자가와 회교의 초승 달(여기서는 그리스도교의 십자가에 해당하는 회교의 상징으로서의 초승달을 의미함)이 서로 등지고 있어야만 하나이까?

 

, 자유의 신이여!

우리 중에 어느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말씀 좀 해주소서.

큰불도 하나의 작은 불에서

시작되지 않나이까?

 

, 자유의 신이여!

그대의 날개 스침으로

단 하나의 마음과

단 하나의 정신만이라도

일깨워 주소서.

한 조각의 구름 속에서

저 깊은 산골짜기와

저 높은 산꼭대기를

다같이 밝게 비춰주는

번개가 있지 않나이까?

 

, 자유의 신이여!

그대의 권능(權能)으로

우리 머리 위를 뒤덮고 있는

시꺼먼 먹구름을 흩뜨리고

벼락 치듯 내려오셔서

우리 조상의 뼈와 해골들 위에 세워진

옥좌(玉座)들을 모조리 파괴해 주소서.

 

, 자유의 신이여!

우리의 절규(絶叫)

귀 기울여 주소서.

 

, 아테네의 딸이여,

우리에게 긍휼(矜恤)

자비(慈悲)를 배풀어 주소서.

우리를 구원(救援)해 주소서.

 

, 모세의 동료(同僚)!

우리에게 충고(忠告)해 주소서.

 

, 마호메트의 애인(愛人)이여!

우리를 도와주소서.

 

, 예수의 신부(新婦)!

우리를 가르쳐 주소서.

우리를 강하게 하셔서

우리의 적을 멸하게 해주시든가,

아니면 우리의 적을 강하게 하셔서

우리를 영원히 멸하게 하소서.

 

이렇게 화산이 폭발하듯 쌓이고 쌓인 울분을 하늘을 향해 내뿜고 있는 카릴을 바라보면서,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다 한마음 한뜻이 되었다. 하늘로부터 군중에게로 눈길을 돌린 카릴이 조용히 말했다.

 

깜깜한 밤이 지나면 햇빛 찬란한 아침이 찾아오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절망(絶望)의 밤이 깊어갈수록 희망(希望)의 새벽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 이제 모두들 댁으로 돌아가셔서 주무시고, 내일을 맞을 준비를 합시다.”

 

이렇게 말을 하고 난 카릴이 레이첼과 미리암을 따라서 그들의 집으로 향하자 군중들도 다들 흩어져 각기 집으로 돌아갔다. 이들은 마음속이 후련하고 정신이 맑아진 것을 느꼈다. 모두가 다 새사람이 되어 새 세상을 맞게 된 것 같았다.

 

이윽고 집집마다 등불이 꺼지고, 고요가 온 마을을 집어삼킨 듯싶었다. 모두들 꿈나라로 깊이 들어갔으나, 쉐이크 아바스만은 어두운 밤의 유령(幽靈)들과, 자기가 지은 죄악의 망령(亡靈)들이 줄을 지어 난무(亂舞)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한잠도 자지를 못했다.

 

8.

두 달이란 세월이 흘렀다. 카릴은 아직도 마을 사람들의 무지를 깨고 그들을 깨우쳐 계몽하기에 바빴다. 카릴의 지혜로운 말들은 메말랐던 땅에 내리는 단비처럼,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적서 주었고, 다 죽어 있던 그들의 정신과 기상을 북돋아 주었다. 신부 엘리아스는 땅에 떨어진 자신의 권위(權威)와 신망(信望)을 되찾아 보려고 갖은 아양을 다 떨면서, 마을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 애써보았으나, 아무도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우리 안에 갇힌 병든 호랑이처럼, 쉐이크 아바스는 그의 휑하니 큰집 안을 서성거리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도, 대리석 벽에 부딪혀서 메아리쳐 오는 소리 외에는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고, 고통에 몸부림쳐도 아무도 찾아주는 이가 없었다.

 

사순절(기독교 신자들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禁食과 속죄를 贖罪를 행하도록 규정한 기독교 교회력敎會曆의 정진精進의 계절로서, 현재는 일요일을 뺀 부활절 전 40일 동안을 말함)이 되고 봄빛이 짙어지자, 쉐이크 아바스의 세상도 겨울과 함께 사라졌다. 단말마(斷末魔)의 고통에 오랫동안 신음하던 끝에, 쉐이크 아바스는 죽고 말았다.

 

모르긴 해도, 그의 영혼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는 없으나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하나님의 심판대에 벌거숭이로 서기 위해, 그가 이 세상에서 지은 죄를 몽땅 담은 들것에 그도 함께 실려 갔으리라. 쉐이크 아바스가 어떻게 죽었는가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돌았다. 화병에 미쳐 죽었다고도 하고, 낙담과 절망 끝에 그가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었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 마을 농부들 못지않게 갖은 설움과 구박만 받고 살아온 그의 조강지처 부인에게 조문하러 갔던 아낙네들 이야기로는, 레이첼의 죽은 남편 사아만 레이미의 망령(亡靈)이 밤마다 나타나서, 그가 그만 겁에 질려 죽었다고 했다.

 

꽃이 만발하고 초목이 무성해지는 6월이 되자, 그동안 은밀히 싹터서 자라온 카릴과 미리암 사이의 사랑이 온 마을에 알려졌다. 카릴이 이 마을에 계속 있어 줄 것을 다짐해 준 이 좋은 소식에,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 기뻐했다. 이 기쁜 소식이 전해지자, 그들은 카릴이 자기네의 다정한 이웃이 되는 것에 다 같이 감사의 축배를 들었다.

 

추수 때가 되자, 농부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들에 나가 즐거운 마음으로 거둔 곡식단을 타작마당으로 옮겼다. 이제는 농부들의 곡식을 빼앗아 갈 쉐이크 아바스도 없어져, 추수한 전부가 농부들의 것이 되었다. 집집마다 곡간에는 곡식으로, 독과 그릇에는 포도주와 기름이 가득 찼다.

 

카릴은 농부들을 도와 곡식을 거두어들이기도 하고 포도도 따면서, 이들과 추수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었다. 이때로부터 이 마을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가 농사지은 것을 기쁨으로 수확하기 시작했고 자기가 가는 땅과 가꾸는 포도밭은 모두 다 자기 소유가 되었다.

 

이로부터 50년이 지난 오늘날, 레바논 삼나무(杉木)가 울창한 곳으로 여행하는 나그네의 눈길은 절로 신부(新婦)처럼 아름다운 이 마을 풍경에 자신도 모르게 발길을 멈추게 되리라. 초라하던 오막살이가 이제는 기름진 들과 포도밭 사이에 아담한 집들로 변해 있고, 아름다운 정원으로 둘러져 있다.

 

이 마을에 사는 아무에게나 쉐이크 아바스의 이야기를 물어보라. 그러면 그는 돌무더기와 무너진 벽들이 쌓여 있는 곳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여기가 바로 쉐이크 아바스의 궁전 같은 집이 있던 곳이고, 이것이 그가 남기고 간 흔적입니다.’

 

이번에는 카릴에 관해 물어보라. 그러면 그는 하늘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기에 우리의 다정한 벗 카릴이 있고, 그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우리들 마음속에 써주신 것이기 때문에, 세월이 가도 지워지지 않는답니다.’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코리아헤럴드 기자

뉴욕주법원 법정통역관

전명희 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6.24 10:25 수정 2020.09.13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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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