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하루] 달빛 아래서

전승선

 




달빛 아래서  / 전승선

 

낙원동 악기상가 사거리를 지나

인사동 갤러리 숲을 헤치고 나가면

도시에 갇혀 사는 나약한 나의 의지는

종로에서 헤매다가 길을 잃고 만다

그러다가 길 없는 세상의 불온한 횡단보도를 건너

도시의 점잖은 노인 같은 견지동 조계사 뜰 앞에 선다.

건성으로 합장한 두 손 위를 에돌아 나가는 목탁 소리에

헐거운 내 정신은 삼라만상을 따라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갸릉갸릉 하는 헛숨만 허공 속을 나른다.

대웅전 대리석 계단 아래엔 달빛만 무량수 내리고

달빛처럼 가만가만 마당을 쓸고 있는 청소부가

하잘 나위 없는 내 맘까지 쓸어버릴 것 같아

바삐 발걸음을 옮기다가 다시 가만히 보니

쓸고 있는 것은 마당이 아니라 달빛이었다.

마당이 청소부인지 청소부가 달빛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 마음속을 들락거리는데

대웅전 부처님은 말없이 혼자 미소짓고 있다.

사람들은 달빛 속으로 유유히 사라져 가고

나만 홀로 뜰앞에 서서 나와 나 사이를 건너고 있었다.

 

 

[전승선]

시인, 소설가

'자연과인문' 출판사 대표

 


 


이해산 기자
작성 2020.08.22 11:45 수정 2020.08.2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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