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021년 6월 8일) 출간된 ‘확장擴張된 정신精神: 두뇌 頭腦 밖에서 생각하는 능력能力The Extended Mind: The Power of Thinking Outside the Brain’에서 저자 애니 머피 폴Annie Murphy Paul은 “우리 머리 두뇌 속에서만 (생각할) 시대는 지났다. The days when we could do it all in our heads are over”고 역설力說/逆說한다.
그동안 인류 (특히 서양에서는) 우리 두뇌를 혹사酷使해왔다며 인간의 지성知性(과 감성感性)은 우리 두뇌에만 있지 않고 우리 신체 각부분과 우리 주위 사람들과 자연환경과의 관계 속에 있음을 상기想起시킨다.
오늘날 인류가 겪고 있는 모든 불행이 이렇게 본말本末이 전도 轉倒된 사고방식의 결과라고 진단診斷하고 어서 이렇게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近視眼的이고 소아병적小兒病的인 안목眼目을 넓히고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스위스의 정신병학자이며 분석심리학자였던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1875-1961)이 선사시대로부터 지금의 미국 뉴멕시코와 아리조나주에서 농사짓고 살아온 아메리카 원주민 부락을 뜻하는 푸에블로Pueblo촌으로 여행 중 한 추장을 만났다.
“당신은 아시오? 백인들이 우리 눈에 얼마나 잔인하게 보이는지. 입술은 얇고 콧날은 날카로우며 얼굴은 밭고랑 같이 주름지고 뒤집혀 있지 않소. 눈으로는 무엇인가를 노려보며 늘 찾고 있단 말이오. 도대체 무엇을 찾는 것이오? 백인들은 언제나 뭘 원하고 항상 초조하고 불안해하고 있소. 백인들이 무엇을 그토록 탐내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오. 우리가 보기에는 백인들이 미친 것 같소.”
이 추장 말에 융이 물어보았다. 왜 그렇게 백인들이 미쳤다고 생각하느냐고. 그러자 추장이 대답하기를
“다들 그러는데 백인들은 머리로 생각한다고…”
“거 무슨 말이오? 사람은 물론 머리로 생각하지 당신들은 무엇으로 생각한다는 말이오?”
이 말에 융이 놀라 되묻자 추장이 말했다. 자기 가슴을 가리키며
“우리는 바로 여기에서 생각한다오.”
이 추장의 말대로 진짜 생각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하는 것임에 틀림 없어라.
2016년 3월 1일 출간된 우생愚生의 졸저拙著 <사상이 아니고 사랑이다> (자연과인문) ‘여는 글 진주’를 아래와 같이 옮겨보리라.
사상이 아픔이라면 사랑도 아픔이다.
머리가 아픈 게 사상이라면 가슴이 아픈 게 사랑이다.
사상은 파괴와 착취와 살생의 괴로움을 주는 아픔이지만
사랑은 양육과 양생과 희생의 기쁨을 주는 아픔이다.
세상의 모든 싸움과 다툼이 서로 다른 사상 때문이라면
사랑은 모든 슬픔과 아픔을 치유하고 평화를 가져온다.
사상은 우리를 갈라놓지만
사랑은 우리를 하나로 만든다.
사상은 우리에게 서로의 다른 면만 보여주지만
사랑은 우리에게 서로의 같은 면만 보여준다.
사상은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고 우리를 세뇌시키지만
사랑은 네가 살아야 나도 산다고 우리를 깨우쳐 준다.
사상은 카오스를 불러오지만
사랑은 코스모스를 피우리라.
우리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1883-1931)의 우화집 <방랑자 THE WANDERER>(1932)에 나오는 ‘진주THE PEARL’ 이야기 좀 들어보자.
어느 굴조개가 이웃에 있는 다른 굴조개에게 말했다.
“내 안에 아주 큰 아픔이 있어. 무겁고 둥근 것인데, 그래서 몸이 많이 불편해.”
그러자 자신은 다행스럽고 만족스럽다는 말투로 다른 굴조개가 대답했다.
“하늘과 바다를 칭송하리라. 나에게는 아무런 고통도 없고 난 안팎으로 아픈 데 없이 온전하고 건강하니까.”
바로 그 순간 게 한 마리가 지나다가 이 두 굴조개가 하는 말을 듣고 안팎으로 아픈 데 하나 없다고 좋아하는 굴 조개에게 말했다.
“그래 넌 건강하고 온전하지. 그렇지만 네 이웃의 수고는 굉장히 아름다운 진주를 배고 있는 까닭이야.”
THE PEARL
Said one oyster to a neighboring oyster,
“I have a very great pain within me. It is heavy and round and I am in distress.”
And the other oyster replied with haughty complacence,
“Praise be to the heavens and to the sea, I have no pain within me. I am well and whole both within and without.”
At that moment a crab was passing by and heard the two oysters, and he said to the one who was well and whole both within and without,
“Yes, you are well and whole; but the pain that your neighbor bears is a pearl of exceeding beauty.”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