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구 칼럼] 바랑 속 전설

문경구

 

"벼르는 제사에 물도 못 떠 놓는다"는 말은 딱 나를 두고 한 말이다. 지난 30년을 일하면서 "지닌 것이 너무 버겁다, 비워야 한다"는 개념을 자그마치 30년을 벼르고만 살았다.

 

탁발하러 나가는 스님들이 메고 나서는 바랑이라고 하는 백팩을 가볍게 메고 다시 떠나온 여행길이 날아서도 올 만큼 가벼웠다. 은퇴 전에 다시 찾아 며칠을 머물던 애리조나 호텔 벽에 걸렸던 시계가 먼저 나를 알아보고 맥박 소리로 답했다.

 

밖을 오가며 화단을 정리하던 멕시칸들의 손길도 그대로이다. 여름이 늦게까지 머물렀던 기억도 그대로이고 모두가 그대로인데 그동안 나만 변한, 낯선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왔다. 은퇴를 앞두고 첫 여행에서 나는 비우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비우고 사는 삶의 홀가분함에 대한 위안을 신앙처럼 여기며 살고 싶었다. 어느 스님께서는 몸에 지닌 것이라고는 방을 밝히는 등잔 하나, 앉고 계신 방석 하나 그리고 앉은뱅이 밥상 하나만으로도 빈 충만의 기쁨으로 사셨다는 말에 처음에는 그렇게도 일상이 가능할까 하는 수수께끼 삶만 같았는데 의문이 풀린 것인지 내가 꼭 그 흉내를 내고 있었다.

 

불편함보다는 더 큰 편안함의 위력을 갖게 된다. 흉보다 닮아 간다면 그것은 내가 처음 가져 본 깨달음만 같아 내가 낸 흉내 중에 가장 잘해 낸 최고의 위안이었다. 으레 그만큼 걸치고 살아야 하는 줄 알았던 번거로움의 옷들을 비어내니 그 공간이 제일 크게 다가왔다. 셔츠를 벗어 의자에 걸쳐만 놓아도 텅 빈 나의 공간이 바로 공간예술을 하는 장소이다.

 

그동안 입지도 않으면서 걸어 두었던 타인의 모습 같던 옷들을 정리해 미안한 마음과 함께 떠나보냈다. 갈아입을 속 옷 몇 개를 바랑에 담아 입은 채로 떠나온 나를 보면서 갑자기 옛 동창들과 나누었던 기억이 그 공간 속으로 찾아 들었다.

 

, 임마 넌 옷이 그것 하나밖에 없냐. 어떻게 만날 때마다 똑같은 옷이냐, 돈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자 갑자기 평소에도 눈이 큰 다른 친구가 더 큰 눈을 하면서 ", 그건 네가 몰라서 하는 말이야. 쟤는 화가잖아, 예술가야. 화가치고 옷 잘 빼입고 다니는 거 보았어, 그럼 그건 가짜 예술가야, 진짜들은 잘 입고 잘 먹고 사는 게 뭔지도 몰라. 아니 신경도 쓸 줄 몰라, 오직 예술에 미쳐서 바지에 구멍이 났는지, 머리에 둥지를 틀었던 새가 새끼를 낳았는지도 모르고 오직 아는 것은 그림밖에 모르는 환쟁이라 그래. 그게 바로 쟤잖아. 우리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저놈만의 도달하고 싶어하는 인생의 경지라는 게 있는 것이겠지.

 

그리고 아무리 돈이 많은 부자의 예술가라고 해도 왜소하고 초라한 모습이 더 멋져 보이는 게 예술가의 진짜 고정관념이 아니겠니. 왜 정치하는 놈이 돈맛부터 알면 이 기업 저 기업 기웃거리면서 군침을 흘리다가 끝내는 영창에서 잿밥 먹는 것과 같지. 옛날 진짜 정치에 미친 정치꾼들은 그런 치사한 정치인들이 절대로 아니지.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은 정의심에 불타서 늘 약자 편에서 목소리를 내는 정말로 멋져 보이는 정치인이지. 심지어는 집에서 처자식이 죽을 쑤는지 밥을 먹는지 신경 쓸 줄도 몰라, 오히려 아랫사람들이 쌀을 팔아다 주기도 했다는 일화도 있지. 대기업들이 축적한 돈은 말단 노동자들이 이룬 예술이라는 것을 알아야지. 시장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장사하는 상인들이 이루어낸 돈이라는 예술 작품의 귀중함이란 것을 아는 정치인들을 요즘엔 몇이나 될까. 그러고 보면 쟤야말로 괜찮은 예술가네. 하루 노동치고 나머지 시간으로 그림을 그리며 소일한 자체가 인생 한번 살면서 해볼 만한 작업이 아닌가.

 

프로가 남긴 명작이라는 그림도 살아 숨 쉬지 않는 박재 같이 박물관에 멀뚱히 걸려서 사람들의 발걸음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하면 너무 어려운 인생 예술이 아닌가. 저잣거리에서 언제든 볼 수 있는 아마추어 작품이 더 살아 있다는 말이지. 그게 바로 예술의 세계라고 하는 거지. 재는 숨소리도 예술적으로 쉬어 댈걸, 하하하 알았지 이상 끝. 술이나 마시자.”라며 저잣거리의 여러 놈들이 나를 가지고 찧고 까불어 대던 기억들이야말로 내게는 멋진 기억의 명작이다.

 

그들이 감탄하는 눈으로 보는 나의 아마추어 그림을 사랑해 준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나보다 먼저 은퇴를 하는 직장 동료들에게 선물로 그려 준 그림은 아마도 수십 점은 되지 않을까 한다. 생일을 맞아 그려준 나의 작은 그림들은 그들을 따라 떠나서 미국 여러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30년 전에 태어난 동료의 아들을 위해 전해준 축하의 그림이 그 아이가 성인이 되어 또 한 가정을 이루었다는 소식에 나는 프로 예술가가 아님을 자부했다.

 

중풍으로 쓰러진 동료가 요양원 침대에 누워서 바라보던 나의 그림을 관속에 넣어 그의 영혼의 집으로 영원히 가지고 떠났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때 나를 고뇌에 들게 했던 동료의 아름다운 죽음이 내게 전해준 불멸의 작품이라고 이름 지었다. 내가 지은 업으로 동료는 관속에서 결코 혼자가 아닌 거다. 모두가 내 그림과 행복해 하고 있다. 내가 프로화가가 되기 위해 사투하고 도달할 수 없는 경지에 지쳐 실의로 살았었다면 나는 오늘 아마추어 화가로 왜 살아야 했는가를 알 수 없었을 거다.

 

팔자가 예술이란 것도 내가 둘러맨 가벼운 바랑 속에 있다. 나의 그림과 함께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혼을 정화 시키며 살아갈 거다. 앞으로는 비운다고 말하고 뒤로는 채우기만 하던 어리석은 탁발스님 어깨에 걸러진 바랑을 나의 전설로 또 채워 간다.


[문경구]

화가

수필가

코스미안뉴스 칼럼니스트

문경구 kimurgin@hot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6.15 11:43 수정 2021.06.15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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