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게 흔들리는 일상과 조금씩 어긋나는 관계, 감춰진 삶의 진실을 포착해내는 독특한 글쓰기로 '소설가들의 소설가'로 불리는 미국 작가 '레이몬드 카버(1938-1988)', 헤밍웨이, 체호프와 비견되는 그의 '미니멀리스트'적인 문체의 매력을 마음껏 맛볼 수 있는 단편 소설 22편이 들어있는 그의 소설집 '제발 좀 조용히 좀 해요' 중의 하나인 '뚱보'라는 작품을 통해 마음 가는 대로만은 살 수 없는 현대인의 아픔과 고뇌, 삶의 짐 등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나는 친구 리타네 집에서 커피를 앞에 놓고 담배를 피워가면서 내가 일하는 식당의 내 담당 테이블에 앉아서 엄청난 식사량을 과시한 한 뚱뚱한 남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중이다. 뚱보를 보았을 때 가장 인상적인 것은 ‘길고 두껍고 말랑말랑하게 생긴 보통 사람 크기의 세 배는 되어 보이는 ‘손가락’이다. 이 남자는 숨이 가쁜 듯 때때로 조금씩 쌕쌕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시저 샐러드로 시작해서 수프에 빵과 버터를 곁들여 양고기 요리와 사워크림 얹은 구운 감자를 주문하고, 시저 샐러드와 빵과 수프를 순식간에 먹어 치우고 다시 빵과 수프를 다시 갖다 주기를 두 번, 세 번. ‘쌕쌕거리’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아주 맛있게 올려놓는 족족 다 먹어치운다. ‘소스를 얹은 푸딩 케이크’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고 먹기에 앞서 변명처럼,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우린 언제나 이렇게 먹지는 않아요." 라고 말하면서 디저트를 먹고 갔다는 것이 다라고 말한다. 주방에서 일하는 나와 함께 사는 남자 루디와 집으로 와서, 루디는 어렸을 때 한 동네에서 살았던 뚱보 둘을 떠올리고 나에게 말해준다. 그리고 둘은 잠자리에 든다.
"불을 끄고 침대로 들어가자마자 루디가 시작하는 거야. 나는 원치 않았지만 바로 누워서 몸의 힘을 뺐어. 그런데 바로 그거였어. 그가 내 위로 올라왔을 때 난 갑자기 내가 뚱뚱하다고 느낀 거야. 내가 끔찍하게 뚱뚱하다고, 너무 뚱뚱해서 루디가 조그맣게 되어버리고 날 제대로 안지도 못한다고. 말도 안 된다고 리타가 말하지만 나는 그녀가 그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알 수 없어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우울해진다. 하지만 그녀와 그 얘기를 계속 하지는 않을 것이다. 벌써 그녀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말했다.
그녀는 우아한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매만지면서 기다리고 앉아 있다. 친구 리타는 ‘우아한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매만지면서 기다리고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데 나도 그것을 알고 싶다고 한다. 친구 리타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말했지만 그녀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고 친구지만 마음이 통하지 않는다. 친구와의 불통이 나의 우울의 원인으로 보인다.
식당에서 만난 뚱보는 길고 두껍고 말랑말랑하게 생긴 손가락 (long, thick, creamy fingers)을 가지고 먹을 것을 기다리고, 나의 친구 리타는 ‘우아한 손가락’(dainty fingers)을 가지고 나는 알 수 없는 것을 기다린다. 뚱보의 손가락은 음식을 들어서 입으로 가져가는 데 사용되고 친구 리타의 손가락은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데 사용된다. 결국 리타와 뚱보와의 공통점은 소통 불능의 상대라는 것이다. 주인공이 뚱뚱하다고 느낀 순간부터 남자 친구와도 소통이 불가하며 친구 리타와도 소통이 불가하다고 느낀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살아내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 뚱보와 같이 내가 뚱뚱하다고 느낀 것이 아닌가. 루디가 침대로 들어오자마자 시작하지만 주인공은 원치 않았다는 것과 친구는 뭔가를 기다리고 있지만 나는 선택할 수가 없으므로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 저마다의 삶은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내는 것은 뚱보가 힘들게 숨을 ‘쌕쌕’거리면서 음식을 먹어치우고 자기 스스로도 고통스럽게 자기를 바라보는 그러면서도 자기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처럼 시간의 흐름 속에 함께 흘러가는 것이 아닌지 묻고 있다. 그냥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서, 직장은 계속 다녀야 하니까, 봐도 못 본체, 들어도 한 귀로 흘리고, 때론 비굴하게 세상과의 소통은 외면하면서 살기 위해 살수밖에 없는 아픔에 대해 위로하고 있다.
뚱보 손님이 리타에게 한 말이 떠오른다.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살찌지 않는 게 좋아요.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지요"
[민병식]
인향문단 수석 작가
대한시문학협회 경기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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