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탄생은 ‘찰나의 순간’이라는 생각을 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스쳐 갈 때 그것을 잡아 원하는 방향으로 살을 붙여 날리는 것, 그것이 나의 글이 된다. 관건은 화살처럼 빠른 생각을 붙잡는 것인데, 메모를 할 수 있을 경우 즉시 생각을 잡아넣을 수 있다. 하지만 한밤중 꿈처럼 생각이 뭉실하게 떠오르면 난감하기 그지없다. 아침에 일어나보면 기억은 이슬처럼 사라지기 때문이다.
최근, 이 ‘찰나’라는 말을 무척 자주 듣게 된다. 뉴스를 통해 접했듯이, 어느 노련한 정치가는 한 대선후보를 향해 ‘별을 잡은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찰나의 순간, 별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하고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다만, 얼마 뒤 그 정치가가 왜 돌연 마음이 돌아섰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것도 찰나의 순간이니 말이다.
또 다른 찰나의 순간은 아프게 다가왔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12층 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영화 같은 장면이다. 그 이전에는 광주 도심 철거 현장에서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시내버스가 정류장에 들어선 순간, 바로 옆 철거 현장에서 덮친 건물더미에 버스는 처참하게 일그러지고, 고귀한 생명이 희생됐다. 자그마치 9명의 사상자와 8명의 중상자를 낳은 인재(人災)이다. 2대 독자로서 미래의 음악가를 꿈꾸던 한 고교생은 할아버지에게, “곧 뵈어요.” 하며 통화를 마치고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정거장이면 닿을 거리를 이제 할아버지는 영원한 거리에서 손주를 바라보게 되었다.
부녀의 가슴 아픈 사연도 들린다. 효심이 깊어 아버지와 함께 퇴원을 앞둔 어머니를 병문안 갔던 30대 취업준비생은, 버스 잔해 속에서 참혹하게 일그러진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아버지는 중상으로 의식을 회복 중이니, 가족들은 차마 딸의 사망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장례를 치러야만 했다고 한다. 곰탕집을 운영하던 60대 여성은 아들 생일을 위해 장을 보고 돌아오다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그 밖에 희생자 대부분이 자차로 이동할 수 없는 나이 든 노인들이라 하니, 그 안타까움과 미안함은 말할 길이 없다. 이 모두가 평범하지만 소소한 행복을 일구어가던 삶이었다. 그들의 삶이 어이없는 사고로 처참하게 구겨지고, 유가족들의 가슴은 깊은 상처로 멍이 들었다.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내용을 보면, 주변인들의 우려와 민원이 여러 차례 담당 행정부서에 전해졌다고 한다. 그런데도, 담당 지자체에선 현장 점검 한번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인터뷰하는 내용을 보니 관련 부서 공무원은 “적극적으로 행정지도를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런 마인드를 가진 동구청 공무원의 인터뷰가 오랫동안 뇌리에 머물렀다.
고귀한 생명이 희생된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여러 차례 주변 사람들의 우려가 제기되었고, 철거 시 붕괴위험을 지적하는 민원이 제기되었는데도, 철거업체가 공사를 제대로 하는지 감시, 감독하는 행정조치는 없었다는 것인데……. 남 일 얘기하듯 하는 광주 동구청 공무원의 인터뷰는 그들의 마인드와 정신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직접적인 사고 유발이 아니더라도 간접적 요인이 되었다면, 큰 희생을 불러온 사고에 대해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사고 후 이어지는 수사와 조사를 통해 드러나는 사실들. 철거와 관련한 끝없는 비리와 눈감기이다. 하청에 또 하청을 주고, 하도급을 받아 철거를 시행하는 무자격 업체는 비용을 아끼려 해체계획서를 무시하고 철거를 하다 결국 사달이 났다. 조폭이 개입하고, 뇌물과 향락이 오가고, 비리를 눈감으며 현장에는 발 한번 내딛지 않은 감리와 관련 공무원. 사고를 일으킨 주된 요인이고 주범들이다. 엄히 처벌해야 한다.
모든 일은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다. 이번 참사처럼 어이없고 나쁜 사고도, 또는 로또 당첨처럼 기막힌 일도, 아니면 별을 잡는 하늘이 내려준 순간도, 다 찰나의 순간일 것이다. 남녀의 가슴에 불꽃이 이는 것도 찰나, 생명이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것도 찰나이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찰나의 순간에 많은 일이 벌어진다. 그 찰나의 순간들이 우리 삶에 내재해 있다. 불의의 사고로 많은 노동자가 세상을 떠나는 요즘, 더는 ‘찰나’의 순간으로 인해 개인과 사회가 상처받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 주변으로 관심과 시선을 넓히고, 보편적 복지와 안전이 대중의 삶을 견인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좋은 사회로 가는 첩경이며, 행복한 사회의 전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