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칼럼] 도래춤

김은영

남편은 첫 데이트에서 춤을 추러 가자고 했다. 청천벽력같은 제안이었다. 유학자 할아버지 엄한 아버지, 이란 절대로 내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이었다. 그는 남자가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참 어렵지만 춤으로는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혼을 하여 사는 일은 두 사람이 각자의 몸을 버리고 제3의 몸이 되어 춤을 추는 일이다. 운명의 춤 말이다.”라고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말했다. 아들러는 지그몬트 프로이드의 문하생이었지만 프로이트가 심리학의 기간을 성()에 두는 것에 동의할 수 없어 결별하고 독자적인 개인 심리학을 구축했다.

 

댄싱(Dancing)”이라는 유튜브 동영상에 마음을 온통 빼았겼다. 한 미국 남자가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세계 방방곡곡에서 혼자 춤을 춘다. 아주 단순한 춤, 리듬에 맞추어 팔 다리를 오므렸다 폈다 하는 춤이다. 뭄바이의 좁은 골목에서, 부탄의 가파른 절벽 불교 사원 앞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막에서 똑같은 춤을 춘다. 그가 추는 춤과 함께 나오는 음악은 타고르의 키탄잘리 69, ‘프란(Praan)’이라는 곡으로 벵골어로 삶의 조류라는 뜻이다.

 

나의 혈관을 따라 밤낮없이 흐르고 있는 이 생명은 세계 속으로 흘러들면서 율동적인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습니다/ 생명은 대지의 먼지 속을 지나면서, 무수한 풀잎으로 싹트거나 나뭇잎과 꽃들의 격렬한 파도로 변하는 것입니다/ 생명이 탄생과 죽음의 바다에 떠 있는 요람 속에서 조류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습니다/ 나의 몸이 생명으로 가득 차 있는 세계의 촉수에 의하여 영광스럽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나는 느끼고 있습니다/ 나의 핏속에서 춤추고 있는 여러 세대의 생명이 나를 자랑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세 살배기 어린 손자는 TV에서 음악이 나오면 거기에 맞추의 춤을 춤다. 음악이 주는 느낌대로 박자에 맞추어 표정과 몸짓이 제법 심각하다. 참을 수 없는 사랑스러움과 함께 그의 내재적인 율동, 그것이 바로 타고르가 노래한 그 작은 몸에 흐르는 생명의 율동이라고 생각해 본다.

 

봄의 정원으로 오라

이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으니

만일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만일 당신이 온다면

이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

 

페르시아의 사랑의 시인 루미의 시이다. 루미는 수피춤의 창시자이기도 한데 수피춤은 신과의 합일을 목적으로 한다. 수도승들이 치마 같은 흰옷을 입고 빙빙 돌면서 춘다. 1분에 60회전을 하는데 몰아의 경지에 들어서야 출 수 있는 춤이라고 한다.

 

니체는 나는 춤을 출 줄 아는 신만 믿는다고 했다. 그는 저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나의 덕은 춤추는 자의 덕이다. 그리고 무거운 것이 가볍게 되고, 모든 몸이 춤추는 자가 되며, 정신 모두가 새가 되는 것. 그것이 내게 있어서 알파이자 오메가이다라고 한다. 그는 아모르 파티(amor fati)를 추구했다. 아모르 파티는 희랍어로 자신을 사랑하고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이다.

 

신은 죽었다로 시작하여 기존의 철학을 다 두들겨 부순’ ‘망치의 철학자니체의 생애는 병으로 시작해서 병으로 끝났다. 어렸을 때부터 두통, 복통, 그리고 후에는 정신병에 시달리다가 결국 마지막 10년을 정신상실자로 죽어간 그의 생애를 생각하면 춤을 출 줄 아는 신아모르 파티가 그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얼마 전 동양정신문화연구회의 노영찬 죠지 메이슨대학 교수는 군자의 즐거움과 일상성이라는 강의에서 각종 교의 삶에 대한 관점을 비교하셨다. 불교는 삶을 ()’로 보고 기독교는 ()’로 보고 유교는 즐거움을 삶의 목적으로 한다고 한다. 유교의 즐거움은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말한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든가 유붕자원방래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벗이 있어서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와 같은 것이다. 인부지이불온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니 어찌 군자가 아니겠는가) 에서 보듯이 자신을 긍정하고 자신 있게 살아가는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말한다고 하신다. 이것이 어째 니체가 말한 아모르 파티가 아닌가도 생각된다.

 

댄싱의 후편은 세계의 여러 곳에서 여러 사람과 같이 춤을 춘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청년들과 마다가스카르에서 가방을 멘 초등학생들과 발리섬에서 발리 댄서들과, 도쿄의 한 식당에서 유니폼을 입은 웨이트레스들과 평양의 거리에서 주민들과 각양각색의 장소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같이 춤을 춘다. 그런데 춤을 추는 사람들 얼굴이 어디서나 하나같이 천진한 환희에 넘친다. 여러 곳이지만 모든 사람이 한 몸 같다.

 

어렸을 때 배운 도래춤이 생각났다. “어리얼사 도래춤을/주렁주렁 출거나/이 세상도 처자들이 모두 손을 쥔달시면/넓은 바다 빙빙 돌며/도래춤도 출거외다/도래춤도 출 거 외다/ 빙빙 빙빙 바다 돌며.” 마치 이 평범한 미국 남자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도래춤으로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을 주렁주렁 엮은 듯하다.

 

첫 데이트를 춤으로 시작한 우리는 결혼했고 아들러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자신의 몸을 버리고 제3의 몸이 되어 운명의 춤을 추고 있는 셈이다. 니체가 말한 대로 삶을 가볍게 하여 새가 되어 날지 못했고 삶의 중력에 눌리어 보낸 날이 더 많은 것 같다.

 

후두득후두득 밤비가 창문을 때린다. 자연의 율동이다. 이 밤에 모든 지구의 리듬에 맞추어 그 품에 안긴 모든 생명체들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율동을 느껴본다. 내 혈관 속에서도 흐르는 생명의 율동, 세포 속에서 영양분을 주고받으며 움직이는 미생물들의 춤, ‘라는 생명체, 나를 춤추게 하고 싶다. 나의 핏속에서 춤추고 있는 여러 세대를 내려오는 조상님들을 자랑스러워하며 도래춤을 추고 싶다. 지구의 모든 사람들과 한 몸이 되어 도래춤을 추고 싶다. 지구를 살리는 운명의 춤 말이다.


 

[김은영]

숙명여자대학교 졸업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석사

오크라호마주립대학 박사과정

시납스인터내셔날 CEO

미국환경청 국가환경정책/기술 자문위원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7.02 11:18 수정 2021.07.02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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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