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구 칼럼] 짜장면 연가

문경구

 

날이 밝는 데로 이슬 선물을 내리려고 온밤을 새워 바람은 풀섶을 서성대었나 보다. 어제 도착했을 때 우연히 내 눈에 띄어 만났던 한 마리의 딱정벌레는 날도 밝기 전에 풀섶을 먼저 떠났다면 어디를 급히 간 것일까. 이 새벽 먹을 것도 변변치 않아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아침거리를 찾아 떠난 것이 분명하다. 굶주림의 상처를 껴안지 않고 떠났어야 할 텐데.

 

오늘 침침한 눈으로 보아도 이렇게 영롱한 이슬방울을 그때는 왜 보질 못했을까. 말라버리는 시간이 창졸지간 밖에 안 된다는 이슬에게 영롱이라는 작위는 어떻게 내려진 것일까. 어떻게 살면 인생도 그런 이슬 같은 말끔한 윤회의 길을 만날 수 있을까.

 

짧고 고귀한 인생의 영롱한 기억의 소리가 들린다. ‘보릿고개나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보리가 많이 생산되는 고장의 산세를 넘다 생긴 전설 같은 아름다운 옛 이야기인 줄 알았었다. 속절없는 가난에 가뭄까지 합세하여 모두를 굶게 했다는 피할 수 없었던 허기짐의 이야기는 나도 한참 후에 들은 바 있다.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가난 이야기는 인제 그만 멍석에 둘둘 말아 굴려 보내도 충분한 세월이 흘렀다. 그 멍석 같은 카펫이 깔린 뷔페레스토랑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 옛날 배고파 굶주리던 가난의 기억 속으로 나를 자꾸 끌고 갔다. 생전 음식 구경 못 한 식사처럼 수북하게 쌓아 올려진 접시를 보면서 나는 그 옛날 배가 고파 게걸스럽게 먹고 싶어하던 때가 오버랩으로 포개졌다.

 

육십년대쯤인가 옥수수와 찐 감자는 농촌이 아닌 씨 한 톨도 없는 도시에서 더 귀했던 식량이었으니 허기진 배로 살았던 아이들의 모습이 오죽하랴. 아침거리가 없어 빈속으로 학교를 갔던 기억도 그때의 일이었다. 책을 싼 보자기를 허리에 매고 빈 세월을 따라 오늘까지 걸어왔다. '고뿌'라고 불렀던 컵들이 동그란 쟁반에 엎어져 있고 그날 주번이 떠다 놓은 우물물을 빈속에 마셔대던 아이들이 많았던 그때를 도대체 나는 무슨 생각으로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속이 비면 목이 더 탄다는 것을 모르던 아이들에게는 물 만큼 배를 채워주는 것도 없었을 것 같던 세월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때가 나의 인생에서 가장 간절하고 값진 보석 같은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요즘 금수저들에게서는 부모 밑에서 돈이 많아 호강했다는 소리 외엔 인생의 아무런 메아리의 응답을 들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 나를 살아가게 한 힘은 그때의 가난만이 빚어낼 수 있는 절제의 작품이 아니었을까. 나는 병풍 속 소나무 같은 껍질을 벗겨 식량을 대신했다던 때는 아닌 것 같다.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벌판을 걸어 돌아오는 길에 잡초 속으로 까맣게 올라오는 '깜부기'라고 하는 풀을 씹어 먹던 나의 시절은 아마도 그다음 세대인 것 같다.

 

깜부기를 맛나게 먹고 서로 바라보던 까만 입술로도 전혀 가난이라는 단어를 말하지 않았던 세월이었다. 그때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 중에 부자는 되어야 먹는 줄 알았던 짜장면이 있었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았고 평생 짜장면만 먹으며 살고 싶다고 노래하던 그 착한 아이들은 지금 이 나이가 되도록 은인으로 따라 다닌다.

 

하나는 해외에서 또 하나는 회사사원으로 그날을 잊지 못하는 연가를 부른다. 서로의 호주머니 속 돈을 털어서 산 한 그릇의 짜장면을 나누어 먹던 시절이었다. 짜장면은 또 다른 이름으로 짱깨라고 불렀다. 그리운 짱깨의 고향은 역전 앞 중국집이다. 삐그덕 거리는 도르레 선반으로 올라오는 짱깨를 위에서 기다리던 시간이 지금도 애지중지한 귀한 추억이다.

 

역전 중국집 앞에는 구두닦이 아이들이 서성대었고 열차가 내려놓은 손님들의 짐을 지고 가는 지게꾼이 걸어가는 애잔한 풍속도가 걸린 곳이다. 빗속에서나 눈속에서나 그 풍경 그대로 짱깨와 살고 싶었던 고전명화 같은 이야기였다. 그 다음 장에는 꼭 기억해 내는 군대생활의 허기짐이라는 또 다른 현실을 맞이하게 된다.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을 위한 음식배급은 열정이 폭발하는 군인들에게는 택도 없는 꼬꼬닭 모이 분량이었다. 단번에 넘기던 꿀맛 같은 단팥빵의 추억이 있는 그립던 전방이 이젠 더이상 배고픈 곳이 아니라고 했다. 군인들 급식메뉴가 변해가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던 팔십년대를 뒤로 두고 떠나왔다.

 

가난한 밥상만 따라 다니는 세월의 숟가락을 놓고 떠나온 뒤 지금은 배가 불러 넘쳐 죽는 풍요 속의 가난이 또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다시 꽁보리밥에 찐 된장도 배불리 못 먹던 밥상의 그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니 심상치 않은 일이다. 그 시절 햇볕에 모여든 아이들의 얼굴에 돋아난 버짐병 그리고 못 먹어 생기는 폐병이 아닌 잘 먹어서 넘치는 기름병이라고 한다.

 

이제는 밥상을 앞에 놓고 기름병이라는 질병으로 꼼짝없이 당하게 생겼다. 맛난 음식만 찾아 즐기던 사람들이 병원을 찾아 나서야 한다. 위장이라고 하는 양동이에 정해진 눈금만큼 만물을 길어 와야지 넘치는 물들은 그대로 당뇨나 고혈압이 되어 혈관질환으로 갑자기 쓰러져가는 병이라고 한다.

 

다소 뚱뚱한 중년을 보면 복이 많아 보인다고 하던 말이 이제는 상식을 떠난 말이 되었다. 어려서는 없어서 못 먹던 음식을 어른이 되어서는 갖가지 이유로 더욱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일생의 삼분의 일도 배불리 먹지 못하고 허기진 배로 살았던 나에게 전에는 없어서 못 먹던 맛 난 음식들 모두가 그림의 떡으로 굳어버렸다.

 

그 시절 허기진 배로 종일 학교에서 보낼 거라는 아들 생각에 어머니의 가슴은 얼마나 허탈하셨을까. 그 생각이 떠오르면 목이 조여와 아무것도 삼킬 수가 없다. 그때 어머니의 모진 하루가 억겁의 날들로 채워져 내 가슴에 빚이 되었다. 소를 잡아먹느라 빌려 쓴 돈쯤이야 몸을 저당 잡혀서라도 갚을 수 있겠지만 어머니의 가슴에 쓰여진 외상빚은 이 세상이 다하는 날 안에서는 도저히 탕감해 드릴 수 없는 빚으로 남겨져 있다.

 

그 대신 굶주림과 허기짐이 이슬이 되어 영롱하게 빛나는 것은 내 가슴속 흙수저의 세월이 아름다웠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문경구]

화가

수필가

코스미안뉴스 칼럼니스트

문경구 kimurgin@hot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7.13 11:41 수정 2021.07.14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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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