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는 체코 현대 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보흐밀 흐라발 (1914-1997)의 대표작으로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이른 1945년 체코의 작은 간이역을 배경으로, 독일에 점령당한 채 무의식으로 힘없이 살아가던 체코인들의 애처로운 삶을 사실적이면서도 유쾌하게 그려낸 1965년 출간이다.
무대는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 체코의 어느 간이역이다. 총각딱지 떼기에 여념 없는 스물두 살 청년 밀로스 흐르마는 여자 친구와의 첫 경험에 실패한 뒤 자살을 기도했다가 벽돌공의 도움으로 살아나 휴직 후 3개월 만에 기차역으로 복귀한다.
그곳은 늘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가 드나드는 곳이고 신호를 잘못 보냈다고 총살당할 뻔하며, 화물 차량에 빼곡하게 실려있는 죽기 직전의 가축들을 보아야 한다. 비둘기를 돌보며 승진에 목말라하는 역장에 기이한 행동만을 일삼는 후비치카로 인해 독일 감독관이 파견되기도 하는 등, 사건이 끊이지 않는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기차역이다.
이러한 기차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여자 친구와의 첫 경험의 실패로 자살 시도를 한 밀로시와는 달리 후비치카는 전신기사 아가씨와 쉽게 밀회를 즐기며 심지어 옷벗기기 게임을 하다 역의 직인을 전신기사 아가씨의 엉덩이에 마구 찍어대기도 한다. 이 일로 조사를 받게 되는데 이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독일인의 관점은 너무나 자신들 위주로 사고하는 것이 명백해서, 허탈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소설 속에서 밀로시는 여자 친구와 성관계를 갖고자 하지만 발기가 되지 않는 현상을 겪고 있었으나 처음으로 여성과 성관계에 성공하고 그 뒤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에 폭탄을 투척하는 모습을 보인다. '성관계'라는 과정은 일반적으로는 미성년이 아닌 성년의 상징인데 이 소설의 중심은 압제받는 권력에 대해서 항거하지 않던 주인공이 성관계에 성공한 이후 압제받는 권력에 대한 항거하는 인물로 변하는 것이다.
보후밀 흐라발은 나치 치하의 체코의 모습을 애써 비장하게 그리는 대신 성적으로 아직 미숙한 한 소년의 성에 대한 호기심을 집어넣었다. 밀로스가 접하는 풍경이 에로틱하기도 하지만 그의 성적인 성장이 그의 조국 체코의 운명에 관한 비유로 쓰였다. 즉, 자아실현을 위한 자유를 얻기 위해 많은 부담에도 불구하고 불의에 대해서 항거하는 인물로 변화함을 그리고 있는데 첫 성관계라는 과정을 자아 각성의 메타포로 쓰고 있다.
현실의 상황은 늘 우리를 막고 있다. 분명 그 한계는 어려운 것이 맞고 이겨내는 것도 어렵다. 하지만 그것을 끊임없이 이겨내 가려는 고통의 과정을 겪어내야 진정한 자유와 자아실현에 다다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소설 속에서 발기가 되고, 레지스탕스 아가씨와 첫 성관계를 하게 되고 용기 있게 열차에 폭탄을 던질 수 있는 밀로스가 그랬다.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는 계속 달린다.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는 독일군이나 독일군에게 필요한 물품을 실은 기차다. 체코만이 아니라 점령지 곳곳에서 달리며 내키지 않으면 총을 쏘아대며 체코인들을, 점령지의 사람들을 공포로 몰고 갈 것이다. 여전히 이러한 기차가 칙칙폭폭 마구 내달리는 체코, 기차역에서 일하는 밀로시는 이러한 공포를 어떻게 견디며 살아가고 있었을까.
"천만에요. 이렇게 편안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아! 저도 이제 남잡니다. 후비치카 씨처럼 그런 남자가 됐다니까요. 너무 멋진 일이라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그동안 제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모든 짐을 벗어 버린 느낌입니다.“나는 책상 위에서 긴 가위를 집어 들어, 날을 벌렸다. 철컥! 소리 나게 닫았다.
이렇게 제 과거를 싹둑 잘라 버렸습니다."
그는 첫 경험을 성공한 것이다. 그것이 밀로스로 하여금 전환을 이루게 했다. 두려움을 가지지 않고 폭탄을 던져 엄중히 감시받는 기차를 폭파시킬 행동력과 함께 그 행동력을 강화할 정신까지 갖추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첫 경험의 실패 때에는 근방의 폭격이 있었고 첫 경험의 성공 후에 그는 폭격을 하러 떠난다. 눈이 아름답게 내리는 밤, 밀로스는 최선을 다해 폭탄을 던지지만, 독일군 병사에게 발각되어 총에 맞는다. 첫 경험에 실패한 것에 충격을 갖는 소심한 청년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졌다.
우리나라도 권력을 가진 자들의 더 큰 권력욕이 불사른 전쟁과 테러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삶에서 쓰러져 갔다. 멀게는 한국전쟁이 그랬고 가까이는 연평해전, 천안함 폭침이 그랬다. 지금도 여전히 제 야욕과 엉터리 정의로 세상을 지배하려 드는 독재자들이 있다. 제3세계의 독재자들이 그렇고 미얀마의 군부가 그렇기도 하거니와 강대국의 힘의 논리에 근거한 압제가 그렇다. 어떤 방법으로 우리의 주권과 자유를 지킬 것인가. 결국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를 제지할 방법은 국민의 깨인 의식과 진영논리를 배제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별과 자유를 향한 외침이라는 것을 이 작품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민병식]
인향문단 수석 작가
대한시문학협회 경기지회장
문학산책 공모전 시 부문 최우수상
강건 문화뉴스 최고 작가상
詩詩한 남자 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2020 코스미안상 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