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의 느낌과 생각은 비슷한 것 같다. 다시 말해 길은 달라도 도달점은 같으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성서에서도 이런 구절이 있지 않나.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 새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전도서 1: 9-10)
What has been will be again,
what has been done will be done again;
there is nothing new under the sun.
Is there anything of which one can say,
“Look! This is something new”?
It was here already, long ago;
It was here before our time. (Ecclesiastes 1: 9-10)
그렇기에 사람들 깨달음의 내용은 물론 그 표현방식도 유사한 것 같다. 우리 동양의 선현先賢들은 이렇게 일찍이 느꼈어라.
“한 포기 풀잎에서도 온 우주를 감지할 수 있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 William Blake (1757-1827)는 이렇게 촉구促求, 권고勸告한다.
“모래 한 알에서 세상을, 들꽃 한 송이에서 천국을 볼 수 있도록 네 손 안에 무한無限을 한순간에 영원永遠을 잡으라. To See a World (Fragments from “Auguries of Innocence”) 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 And a Heaven in a Wild Flower, Hold Infinity in the palm of your hand And Eternity in an hour.
예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익은 벼가 고개 숙인다’ 했듯이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한 영국의 수학자/과학자 아이작 뉴톤Isaac Newton (1643-1727)은 이렇게 고백한다.
“세상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난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좀 더 예쁘고 매끄러운 조약돌과 조가비를 줍고 노는 어린애일 뿐 진리의 대양은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다. 내가 (남보다) 멀리 보았다면 거인巨人들의 어깨에 내가 올라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I do not know what I may appear to the world; but to myself I seem to have been only like a boy playing on the sea-shore, and diverting myself in now and then finding a smoother pebble or a prettier shell than ordinary, whilst the great ocean of truth lay all undiscovered before me If I have seen further it is by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
또 어떤 선장船長은 그의 항해일지航海日誌에 이렇게 기록해 놓고 있다.
“오, 신神이여, 당신의 바다는 너무도 큰데 내 배는 너무나 작습니다. O, God, Thy sea is so great and my boat is so small!”
같기는 오늘날에 와서도 마찬가지이리라. 다음과 같은 시詩는 만고천추萬古千秋 우리 모두의 참모습과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그대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그대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에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그대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
이 나무 속에
이 나무 속에 또 하나의 나무가 있고
이 돌 속에 또 하나의 돌이 있다.
그 빛깔 색조色調는 달라도
똑같은 껍질과 무게를 지닌 같은 하나로.
그리고 내 몸 안에 또 하나의 몸이 있다.
기다림으로 내 연륜年輪은 노래한다.
또 다른 몸이 없고
또 다른 세계가 없다고.
Within This Tree
Within this tree another tree inhabits the same body;
within this stone another stone rests,
its many shades of grey the same,
its identical surface and weight.
And within my body, another body,
whose history, waiting, sings;
there is no other body,
it sings, there is no other world.
-Jane Hirshfield (1953 - )
이 미국 시인의 말 몇 마디 우리 깊이 음미吟味해 보자.
“선禪(불교의 선을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 한국에서는 ‘선’, 중국에서는 ‘첸’으로 발음. 그 뜻을 우리말로 표현하면 정결함이나 깨끗함이 됨)은 간단 단순하게 요약하면 세 가지다. 모든 것은 변한다. (무상無常), 모든 것은 관계 맺음 연결이다. (인연因), 마음속에 새겨두고 잊지 말아라. (명심불망銘心不忘)”
Zen pretty much comes down to three things everything changes; everything is connected; pay attention. Jane Hirshfield
나무는 그 뿌리로 산다. 그 뿌리를 바꾸면 그 나무를 바꾸는 거다. 문화文化는 사람 속에 존재한다. 사람의 마음을 바꾸면 그에 따라 문화도 달라진다. A tree lives on its roots. If you change the root, you change the tree. Culture lives in human beings. If you change the human heart the culture will follow.
-Jane Hirshfield
이 일을 해도 좋다, 나 그대에게 이르노니, 허락된 일이다. 그대 삶의 이야기를 (새롭게) 다시 시작하라. You may do this, I tell you, it is permitted. Begin again the story of your life.
-Jane Hirshfield
말이란 생각의 끝이 아니고 그 시작일 뿐이다. Words are not the end of thought, they are where it begins.
-Jane Hirshfield
슬플 때는 겁 없어 보이고, 행복할 때는 두려워하라. In sorrow, pretend to be fearless. In happiness, tremble.
-Jane Hirshfield
글을 쓸 때면 나는 어떤 글이 쓰여질지 모른다. 전적으로 미지 未知의 상태, 개념과 목적이 벌거숭이 상태에서 시작한다. 그러노라면 한 단어가 떠오르고 또 한 단어가 나타나 하나의 이미지 형상을 이룬다. 그러면서 미스테리 신비神秘 속에 진입 進入한다. When I write, I don't know what is going to emerge. I begin in a condition of complete unknowing, an utter nakedness of concept or goal. A word appears, another word appears, an image. It is a moving into mystery.
-Jane Hirshfield
역사와 신화와 민속설화民俗說話는 온통 진실을 말하다가 벌 받는 사람들 이야기다. 사회법규社會法規에서 제외된 바보만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History, mythology, and folktales are filled with stories of people punished for saying the truth. Only the Fool, exempt from society's rules, is allowed to speak with complete freedom.
-Jane Hirshfield
‘그리고’란 말이 내게는 가장 근사치 近似値로 보인다. 현실적인 사실에 근접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사고에서의 균형감) 관점의 시각을 얻는 방도方途/方道이다. 더 좀 많은 다른 시각과 관점에서 사물事物을 보고 느낌으로 그 모두가 다 옳다는 걸 알기 위해서, 이해할 수 없는 것들까지, 심지어 서로 모순당착矛盾撞着인 것들까지 말이다. ‘And’ seems to me closest. ‘And’ nods toward the real. And ‘and’ is the path to perspective. To feel and see from more angles and know all of them true, even the incomprehensible ones, even the ones that contradict one another.
-Jane Hirshfield
그대의 운명은 그대가 그대 자신이 되는 거다. 다시 말해 (그럼으로써) 벌罰과 죄罪(가 되더라도). Your fate is to be yourself, both punishment and crime.
-Jane Hirshfield
뭣이든 얻으려면 먼저 모든 걸 잃어야 한다. In order to gain anything, you must first lose everything
-Jane Hirshfield
가을 기온은 여름의 열기와 다르다. 하나는 사과를 익게 하고 또 하나는 사과를 사이다로 만들어 준다. The heat of autumn is different from the heat of summer. One ripens apples, the other turns them to cider.
-Jane Hirshfield
존재함이란 경이驚異로움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다. 좋은 시詩란 이 경이감驚異感을 일깨워주는 거다. Existence itself is nothing if not an amazement. Good poems restore amazement.
-Jane Hirshfield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면 어떻게 이 두 사람의 몸과 몸 사이에 상처가 생기는지 관찰하라. 어떻게 두 몸이 더 강해지고 색깔이 진해지며 자존自存/自尊스러워지는지를, 어떻게 두 사람을 잇는 검은 줄이 하나의 천 실로 두 사람을 엮어 그 아무것도 그 누구도 이 둘 사이를 찢거나 고칠 수 없게 만들어 주는 것을 보라. And when two people have loved each other see how it is like a scar between their bodies, stronger, darker, and proud; how the black cord makes of them a single fabric that nothing can tear or mend.
-Jane Hirshfield
(내 인생의) 어느 한 시점時點에서 나는 깨닫게 되었다. 삶의 그 어떤 한 끝부분이라도 떼어버리려고 한다면 그대 삶을 충만하게 살 수 없다는 걸. 일어나는 모든 일, 겪게 되는 모든 경험을 전부 다 수용受容/受用, 만끽滿喫해야 한다는 걸 말이다. At some point I realized that you don't get a full human life if you try to cut off one end of it, that you need to agree to the entire experience, to the full spectrum of what happens.
-Jane Hirshfield
해석 풀이 번역 불가능한 생각이야말로 가장 정확 확실한 생각이다. The untranslatable thought must be the most precise.
-Jane Hirshfield
이상의 여러 마디를 한 마디로 줄인다면 모든 것이 같은 '하나(님)'이고, 세상에 버릴 것, 마다 할 것, 하나 없이, 전부다 좋은 것이며, 너무 너무도 경이로운 기적이요 축복으로 감사히 받아 누릴 일 뿐이라는 것이리라.
자연과 세상이 다 우리 자신의 거울이듯 문학과 예술 또한 그렇다고 할 수 있으리라. 말하자면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1564-1616)의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1957)’을 통해 우리도 연인戀人들이 되고, 그의 ‘햄릿 Hamlet(1603)’은 우리를 회의懷疑와 사색思索에 잠겨 우유부단 優柔不斷한 성격의 소유자로 만들며, 스페인의 풍자소설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 Miguel de Cervantes(1547-1616)의 ‘돈키호테 Don Quixote(1605)’는 현실을 무시한 과대망상증적誇大妄想症的인 공상空想을 실현實現하려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예전에 들은 얘기로 한국판 돈키호테라 할 수 있는 김삿갓인지 봉이 김선달인지가 하루는 지체 높은 양반집 마님들을 모아 놓고 ‘밤에 영감님 귀인의 귀중한 물건을 너무 꼭 잡고 자면 손바닥에 사마귀 생긴다’고 말하자 모두들 하나같이 제각기 제 손을 펴보더라고.
모름지기, 이때 이 ‘사마귀’란 사랑 ‘사’ 자字, 마음 ‘마’ 자, 귀할 ‘귀貴’자였으리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至極하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눈에 잘 띄는 손바닥에 아주 작은 하나의 상징적인 귀한 몸으로 강생降生, 현신現身한다는 뜻이었겠지.
이와 같은 일심동체一心同體의 표본이 ‘로미오와 줄리엣’이고 ‘살기냐 죽기냐 TO BE OR NOT TO BE’로 고뇌 苦惱하는 인간상人間像이 ‘햄릿’이라면, 어떻든, 진정眞正 우리는 모두 우주 나그네 우주인 코스미안으로 이 지구별 여정旅程을 한恨/限 없이 즐길 일 뿐이어라. 사랑타령 '사마귀' 별곡을 뽑으면서.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