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22일자 중앙일보 [코로나기획 혐오 팬데믹] ‘정치 양극화-청년실업이 부추긴 남녀혐오’란 제하의 기사에서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이 무고한 남성들까지 잠재적 가해자로 치부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유튜브 ‘리나’), “여성도 안전한 사회에서 남자랑 똑같이 살 수 있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얘기로 이해해주세요.” (직장인 A씨)
이상의 두 남녀의 말을 인용하면서, 지난 4월 재보선 이후 이른바 ‘이대남’ (20대 남성), ‘이대녀’ (20대 여성) 현상이 대두했다는 보도다. 이 얼마나 하릴없이 한심스럽게 딱한 일인가.
지난해 2020년 7월 28일자 코스미안뉴스에 올린 우생의 칼럼 글을 우리 남녀노소 불문하고 되새겨보리라.
곰할머니께 비나이다
최근 미국 플로리다주 제3선거구 출신 공화당 하원의원 테드 요호(Ted Yoho, 65세)가A.O.C.(Alexandria Ocasio-Cortez, 30세) 뉴욕 제14선거구 민주당 하원의원과 수도 워싱턴 국회의사당 청사 건물 층계에서 범죄와 경찰 행위에 대한 언쟁을 벌인 후 떠나면서 "개00/ 개00(a fucking bitch)"이라고 욕하는 걸 한 기자가 들었다.
미국 의회 역사상 최연소 여성 하원의원이 된 그녀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역사적인 순간이 아니었다. 지난 7월 23일 목요일 미 국회의사당에서 요호 씨 같은 몰상식하고 저질스러운 (남성) 족속(族屬)들에게 그녀는 일장 훈시(訓示)를 했다.
"요호 씨는 아내와 두 따님이 있다고 했는데, 나는 요호 씨의 작은 따님보다 두 살이 어립니다. 나 또한 어떤 누구의 딸이지요. 내가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은 나의 부모님께 내가 두 분의 딸이고 내 부모님께서 내가 남자들의 언어폭력을 포함한 성폭력을 용납하도록 키우지 않으셨다는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서입니다. Mr. Yoho mentioned that he has a wife and two daughters. I am two years younger than Mr. Yoho's younger daughter. I am someone's daughter, too…I'm here because I have to show my parents that I am their daughter, and that they did not raise me to accept abuse from men."
2015년 출간된 우생의 졸저(拙著) ‘무지코 칸타타’ 첫 장에서 내가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고(告)하는 글을 아래와 같이 옮겨 본다.
요즘 한국에서 여성 비하와 여성혐오가 전염병 번지듯 한다는 기사를 보고 팔십 노인이 같은 남성 동포 여러분에게 간곡히 한마디 하고자 합니다.
남녀성별 불문하고 우리 모든 생물의 고향은 하늘(아버지)과 그 정기(精氣) 받은 땅(어머니)의 모태인 바다라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하늘님’과 ‘땅님’이 결합한 ‘하나님’이 설혹 성별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 아버지’라 하기보다 ‘하나님 어머니’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인류학적으로 고찰해 볼 때 여성을 여신(女神)으로 숭배하고 모계사회로 출발했다 하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돌연변이의 자폐아(自閉兒)가 태어나 ‘여신은 없다’고 선언하자 초심(初心)을 잃게 된 인류가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퇴행(退行) 퇴화(退化)하면서 평화롭던 세계가 폭력과 전쟁으로 파괴되기 시작했다고 하지요.
우리 모두 남성의 씨를 받아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여성의 모유를 먹고 자랐습니다. 물론 부성애도 필요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부성애라도 하찮은 모성애의 억만 분의 일도 못되고, 아빠 없이는 살 수 있어도 엄마 없으면 살 수 없는 게 아이들입니다.
이것은 인간세계뿐만 아니라 동물세계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얼마전 지인이 보내준 유튜브 영상을 보니, 수탉은 저 혼자 먹기 바쁜데 암탉은 모이를 쪼아 병아리 먹이느라 정신없더군요. 그런데 어찌 우리 남성이 우리의 영원한 엄마, 누이, 딸, 애인, 연인, 여신을 욕보일 수 있단 말입니까. 정말 참으로 천벌(天罰), 지벌(地罰), 인벌(人罰)을 발을 일이지요.
그러니 우리 모두 고향을 잊지 말고, 연어처럼 회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궁창 오물통에 빠진 채 문전걸식(門前乞食)하다 문전객사(門前客死)하지 말고 사랑이라는 무지개를 올라타고 하늘하늘 코스모스바다로 돌아가십시다. 정, 남성들이 끝끝내 개과천선(改過遷善) 못 하겠다면 최후의 방책(方策)으로 극약처방(劇藥處方)이라도 있어야 하리라.
그래서 2016년 출간된 졸저 <가슴은 사랑으로 채워라(Fill Your Heart With Love)>의 28장(Chapter 28): ‘윤동주와 마광수, 사마귀 타령’을 나는 다음과 같은 말로 끝맺었다.
“특히 간절히 빌고 바라건대 교미 후에 수놈을 잡아먹는 사마귀 (praying mantis)처럼 전쟁과 폭력을 일삼는 모든 남성을 성교(性交) 후엔 인정사정(人情事情)없이 잡아먹어 치울 여성들의 출현을 죽도록 고대해 마지않는다.” 그러다 보니 정말 진실로 ‘꿈은 이루어지는 것일까.’ 2019년 9월 2일 코스미안뉴스 [항간세설]에 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릴 수 있었다.
‘여성인류(Womankind)’가 부활하는 ‘코스미안시대’
2012년 출간된 ‘남성의 종말과 여성의 천지개벽 (The End of Men: And the Rise of Women)’이란 책이 오늘의 시대상을 정확히 진단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의 지성 월간지 ‘애트랜틱 (The Atlantic)’의 칼럼니스트인 한나 로진(Hanna Rosin, 1970 - )이 쓴 이 책은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 1921-2006)의 ‘여성의 신비성(Feminine Mystique)’이나 시몬 드 보봐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의 ‘제2의 성(The Second Sex)’ 그리고 나오미 울프(Naomi Wolf, 1962 - )의 ‘미의 신화(Beauty Myth)’를 무색케 할 역사적인 저서로 지금까지 수천 년 지속되어 온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권력 이동의 맥을 짚어 부계사회가 끝나고 모계사회가 도래하고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섹스는 세상살이를 흥미롭게 하는데 필요한 전부를 제공한다며 2004년에 나온 서적 ‘여성의 성과 진화론(Sex, Time and Power: How Women’s Sexuality Shaped Human Evolution)’의 저자 레오나드 쉬레인(Leoanrd Shlain 1937-2009) 박사는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욕망의 부조화를 탐구해 보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약 15만 년 전부터 인간 두뇌가 커지고 다른 동물들처럼 기는 대신 일어서서 걷기 시작하면서 우리 신체구조가 변하게 되는데 이것이 남자에겐 별 문제가 안 되지만 여자에겐 큰 위험부담이 되었다고 한다. 임신 후 몸보다 머리가 큰 아이를 협소한 질을 통해 출산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일이 많이 생기게 되었고 따라서 여성은 배란 주기에 섹스를 본능적으로 기피하게 되고 남성은 정반대로 더 굶주리게 되었다는 말이다.
흥미롭게도 쉬레인 박사는 그의 첫 저서 ‘예술과 물리학(Art & Physics: Parallel Visions in Space, Time & Light, 1991)’에서 예술이 언제나 과학에 앞선다며 피카소 같은 예술가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실마리를 풀어주었음을 그 한 예로 든다. 그 다음으로 쓴 그의 두 번째 저서 ‘알파벳 대 여신(The Alphabet Versus the Goddess: The Conflict Between Word and Image, 1998)’에서 저자는 더욱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펴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를 둘러보라. 무엇이 제일 큰 문제인지 곧 알게 된다. 그것은 곧 배타적인 종교의 폐쇄성이란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 한 권의 책 속에 일자일획의 오류도 없이 기록되었다고 사람들이 굳게 믿게 되자 인간은 이 ‘말씀’ 때문에 서로 죽이기 시작했다”고 그는 주장한다. 인류는 본래 여성을 여신으로 경배해 왔다. 그러나 한 뿌리에서 생긴 고대종교인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가 나타나 ‘여신이란 없다’고 선언하자 문화가 부계사회로 바뀌면서 공격적이 되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종교 때문에 ‘사랑’을 빙자한 살육지변(殺戮之變)이 벌어지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문자가 서구문화에 끼친 엄청난 해독을 분석하면서 저자는 그 해독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절망하고 비탄만 할 일이 아니며 희망의 서광이 비치고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최근에 와서 TV와 예술, 그림, 화상, 영상, 조각상 등 이미지의 폭발적인 파급으로 추방됐던 여신이 돌아오고 시각적으로 구전적으로 인류사회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편다.
지난 20세기의 대표적인 중국 문필가 임어당(林語堂Lin Yutang 1895-1976)이 지적했듯이 서양문명이 남성적이고 동양문화가 여성적이라면 평화와 사랑의 화합작용으로 생명을 만드는 동양의 음기가 전쟁과 폭력의 파괴행위로 목숨을 앗아가는 서양의 양기를 다스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유치하고 상스러운 남성인류 (mankind)가 어서 사라지고 성숙하고 자비롭고 고상하고 우아하며 아름다운 여성인류(womankind)가 부활하는 코스미안시대(Cosmian Age)를 열어보리라.
1993년 바티칸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파문 조치를 받은 신학자로 미국의 도미니코 수도회(Dominican Order) 신부 매튜 폭스 (Matthew Fox, 1940 - )는 그동안 68개국어로 번역되어 수백 만 권이 팔린 ‘원복(原福 Original Blessing, 1983)’과 ‘우주 그리스도의 도래(The Coming of the Cosmic Christ, 1988)’를 포함한 35권의 저서를 통해 신(神 God)을 아버지가 아니고 어머니라 부르며 인간의 ‘원죄(原罪 Original Sin)’가 아닌 본래 면목(本來面目), 본래성불(本來成佛)로서의 본래축복(本來祝福)인 ‘원복(原福 Original Blessing)’을 주장한다.
따라서 그의 주된 관심사는 공해(公害)로부터 자연환경 보호와 사회정의(社會正義)를 구현(具現)하는 것이다.
“만일 내가 인류와 자연의 신비로운 기원과 내력을 부정하는 남성지배, 인간중심, 그것도 백인위주의 권위와 특권이란 보수적인 전통을 보존코자 했었다면 유감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라고 파계승(破戒僧)이 된 데 대해 그가 한 말이다.
“습기(濕氣), 그것이 바로 삶이며 생명이다. 늘 축축하게 젖어 있고 변하는 것이. 사람이고 집단이고 간에 건조해지면 굳어져 금이 가고 부스러진다. 그러면 파시즘(fascism)이 기어든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민속신앙의 마법을 쓰는 마녀나 아프리카 토인부락의 북치는 고수(鼓手)나 아메리카 인디언 마법사나 동양의 무당들을 서양의 신부나 목사와 동일시하고 이들 모두 다 인간의 영적 (靈的)인 영성(靈性)을 다루는 사람들로 서로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다시 말해 ‘문화인’과 ‘미개인’이 따로 없다며 어쩌면 ‘미개인’이 되레 인간 심신(心身)의 공해(公害)를 모르도록 축복받아 개명한 사람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그런데 그 더욱 신기하게도 그의 첫 저서로 그의 처녀작 (총각작 이라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 되겠지만)은 그 제목이 ‘음악적으로 신비한 곰 한 마리가 되는 것: 미국식 영성(靈性) On Be- coming a Musical, Mystical Bear: Spirituality American Style, 1976)’이다.
아, 옳거니, 우리 모두 어서 단군신화로 돌아가야 하리라. 세계 인류 모두가 말이어라. 아, 정녕, 단군 할아버지, 아니 우리 곰 할머니 만세로다.
‘검은 고라니 사슴(Black Elk)’이라 불린 북아메리카 인디언 마법사(Hehaka Sapa, commonly known as Black Elk, 1868-1950)가 병든 사람이나 동식물을 위해 외던 주문(呪文) 가운에 이런 것이 있다.
‘땅 할머니시여,
내 말 좀 들으시오.
당신 품 안에서
우리는 관계를
맺고 있지요.
두 다리, 네 다리, 날개 달린 짐승,
그리고 당신 몸 안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 다 당신의 자손들이지요.
그러니 우리 모두 다
서로 친척임을 알지라오.
미대륙의 원주민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우리 한민족과 같은 몽고족이라 하지 않나. 그렇다면 단군 할아버지 아니 우리 곰할머니께 빌어 볼거나.
비나이다
비나이다
물아일체
피아일체
홍익인간
인내천
우주인
나그네
코스미안
동식광물
하늘과
별들과
바다와
그 속에
숨 쉬는
모든 것
숨 멈춘 듯 한
무생물까지도
나 자신으로
느낄 수 있게
깨우쳐주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어떻든 남녀는 말로도, 몸으로도, 맘으로도 다툴 사이가 아니고 서로 사랑하고 위해가면서 하나로 '하나님'이 될 '코스미안' 입장에서 지난 2013년에 나온 우생의 졸저 《코스미안 어레인보우 Cosmian Arainbow》에 실린 글 '호好 호好 하리라'를 우리 다 함께 되씹어볼거나.
호好 호好 하리라
"판사님, 날 죽이려 한 아저씨 많이 혼내 주세요." 집에서 잠을 자다 이불에 싸인 채 납치돼 성폭행 당한 전남 나주 초등학생 A양(8)이 판사에게 쓴 편지 내용이다. 딸이 써준 편지를 읽어 내려간 어머니는 곧 있으면 새 학기인데 학교 가기도 싫어하고 엄마 뱃속으로 다시 넣어 달라며 지금도 잠을 자면서 소리를 지르고, 사건 당시 목졸림 당한 것이 생각난다고 울먹인다며 흐느꼈다. 나주 성폭행 사건 범인 고정석(24)에 대한 결심공판(2013년 1월 10일)에서 있었던 일이다.
시종일관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던 고 씨는 최후 진술을 통해 '나로 인해 피해를 입은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죄송하다. 반성하고 있다. 용서를 바란다'고 말했으나 검찰은 이날 고 씨에게 법정최고형인 사형과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30년, 성충동 약물치료 15년, 피해자 및 가족 접근금지 명령 등을 구형했다.
최근 한국에선 성매매특별법의 위헌 여부가 심판대에 올랐다. 성매매 자체의 불법성이 아니라, 착취 강요가 없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성을 파는 행위가 법으로 규율하는 것이 옳은지가 쟁점이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는 매춘과 성적 상대를 제한한 결혼제도에 대해서 우리 잠시 생각해보자. 하룻밤 몸을 파는 남녀를 소매상 창녀, 남창이라 한다면 상대방의 재산, 지위, 직업 등을 보고 일생을 파는(?) 행위는 도매상 매춘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징집이 아닌 자원병으로 자신의 목숨을 포함해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는 직업적인 군인이나 용병, 또는 조폭이나 청부살인업자의 만행에 비한다면 매춘행위는 자비롭기까지 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고 죄를 지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단죄하는 것은 신의 몫이다. 인간의 몫이 아니다. 인간은 단지 서로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제의 '사마리아'로 김기덕 감독은 지난 2004년 제54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한국인으로선 처음으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사마리아는 성서에 나오는 지명으로, 이 영화는 그리스도가 죄 없는 자가 나와서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말했다는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에서 착안한 것이다.
매춘을 통해 불교 포교를 했다는 인도 매춘부의 설화를 모티브로 원조교제 여고생을 다룬 '사마리아'에서 우리가 타락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질문하고 있다. 원조교제를 소재로 했지만 우리 사회의 이해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을 이 영화는 말하고 있으며, 모두가 공범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만다. 모두가 공범이라면 다 같이 살아야 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뉴스에서나 듣고 보던 끔찍한 살인사건이 내 주변에서 몇 년 전 벌어졌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유학 온 한 아가씨와 결혼한 재미동포 청년이 살해당한 일이다.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들이 좋아서 한 결혼이었다는데, 한창 단란했어야 할 신혼생활이 어처구니없는 비극으로 끝나버린 것이다. 임신 중이던 아내가 큰일을 저지르고 조산한 아기까지 남겨진 너무도 슬프고 괴로운 이야기이다.
어려서부터 아빠의 가정폭력을 보고 자란 신랑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익숙한 말을 신부에게 뇌까리면서 신혼 초부터 아내를 구타했었다고 한다. 결혼하기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님의 18번 노랫가락 '북어와 마누라는 사흘에 한 번씩 두들겨 패야 한다'를 복창하면서.
부부간에 다툴 때마다 '아무 일도 아니라'며 어머님을 안심시키던 '효자' 아들이 그 몇 달 전부턴 '이혼해야겠다'는 걸 어머니는 물론 주위에서 극구 만류했었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유행하던 우리말 그대로 '아니면 말고' 억지 쓰지 말았어야 했을 것을...결과적으로 모두가 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가 되고 말았다.
예부터 서양에서 '살인보다 이혼이 낫다 Better divorce than murder'라 했고, 대서사시 '실낙원Paradise Lost' (1667)의 영국 시인 존 밀턴John Milton(1608-1674)은 이혼의 교의敎義와 규율이란 주제로 1643년 영국의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신이 의도한 결혼의 가장 숭고한 주된 목적은 서로 잘 맞는 대화라며 이런 대화가 불가능할 경우에는 이혼이 당연한 공민권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설혹 남의 이목이나 자신의 체면 그리고 아이들 때문에 이혼을 못하거나 후환이 두려워서 살인을 감행하지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마지못해 같이 살면서도 배우자가 어서 죽어 없어졌으면 하는 경우라면 이야말로 살인 아니 암살을 날마다 반복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존 밀턴이 장님으로 눈이 멀었을 때 발견한 것이 시 Poetry is what John Milton found when he became blind란 말을 곱새겨 반추해보자.
상대방을 진정으로 사랑할 때는 상대의 단점과 불행까지 사랑하게 되는 것이며 이런 사랑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 것이지 마음 먹는다고 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저 비틀즈의 노래 제목 그대로 'Let it be'라고 할 수밖에...그렇다면 종교나 도덕, 윤리 그 무엇으로도 억지를 써서는 안 될 일이다. 실로 사랑 이상의 종교도 철학도 진실도 없다고 할 것 같으면 말이다.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1894-1963)가 일부일처란 가장 부자연스러운 성도착증이라고 갈파했듯이 어쩜 일부일처란 것이 좀 억지가 아닐런지 모르겠다. 같은 동물들을 살펴볼 때 예를 들어 물개는 수컷 한 마리가 수많은 암컷과 교접하고 여왕벌은 수많은 수벌을 상대하지 않는가. 사람의 경우 임금님이 삼천궁녀를 거느리는 것은 옛날얘기로 돌리고, 오늘날에도 일부다처제나 일처다부제가 실시되는 곳이 있다. 그 예로 중동지방에서는 남자가 부인을 공식적으로 넷까지 둘 수 있고, 인도 북부 히말라야산맥 인근 지방에서는 형제가 다섯이면 신부를 하나만 얻어서 같이 산다고 한다.
이와는 다른 뜻에서 '5형제 신세 진다 FIVE AGAINST ONE'는 남자들 자위행위(여자도 비슷하겠지만)를 일컫는 말이 있다. 어느 여성 독자의 어머, 어머나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고, 아니면 호호호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이때 한자로는 좋을 호好 아름다울 호好라 해야할 것 같다. 세상에서 서로 좋아하는 남자 여자 아니 여자 남자가 같이 있을 때 제일 좋고 가장 아름답지 않은가. 우리말에 '열 계집 싫다는 남자 없다'면 그 반대로 아니 똑같이 게다가 한 술이 아니라 열 술 쯤 더 떠서 '백 사내 싫다 할 여자 없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생리적으로 볼 때 일부다처보다는 일처다부가 더 자연스럽고 더 좀 가능한 일일 테니까.
삶이란 그림의 떡이 아니고 내 몫을 남김없이 시식하고 또 아낌없이 보시하는 실험일.뿐일 테니까. 희희낙락해 보리라. 일부일처가 되었든, 일부다처가 되었든, 일처다부가 되었든 다 좋고 아름다울 뿐이어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