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자연이냐 예술이냐 Nature or Art

이태상

 

202184일자 한국일보 뉴욕판 문화특집 [오색 인문학] 칼럼 사랑. 죽음. 그리고 미학-지리산에 가는 이유에서 필자 김동규 한국연구원 학술 간사는 설산-운해는 바그너만큼 숭고하다고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에스트로 친구가 있다. 구자범 지휘자다. 그는 놀라우리만치 박학하고 예술적 감각이 선하며 여린 마음의 소유자다. 그가 지휘봉을 잡고 무대에 설 때의 카리스마는 가히 외경스럽기까지 하다. 한번은 지리산 산행을 떠나기 전에 그를 만난 적이 있다. 사는 얘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다가 그는 바그너 작품에 대해 평하기 시작했다. 바그너를 사상적으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바그너 작품의 몇몇 부분을 들으면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바그너 음악은 아름답다기보다는 숭고하다.

 

그것은 신을 대면한 사람이 느끼는 종교적 숭고가 아니라 음악 자체를 신성하게 만들어놓은 숭고함이다. 바그너 음악의 과장된 격정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음악 문외한인 필자는 전문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헤어질 무렵 친구는 필자에게 말했다. 왜 산에 가느냐고 말이다. 이렇게 무더운 장마철에 힘들고 위험하게 왜 산에 가느냐고. ‘산이 있으니까 간다는 누군가의 말을 인용해 답했다. 이미 진부해져버린 이 말은 친구의 마음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그런 일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자주 발생한다. 상대의 표정에서 말의 진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친구의 모호한 표정을 보는 게 안타까웠지만 당시에는 좋은 해명이 떠오르지 않았다. 임기응변이 신통치 않은 필자의 우둔함 탓이다. 그때 못한 답변을 여기서 해보기로 한다.”

 

그러면서 풀어 놓은 필자의 대답은 이렇다.

 

공자는 인()에 대한 물음에 각양각색으로 답했다고 한다. 대화의 맥락에 따라 묻는 사람에 따라 달리 대답해서 공통분모들을 통해 하나의 정의를 구성하는 것조차 어렵다고 한다. 예컨대 인에 대해 공자는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己所不欲勿施於人)’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애인(愛人)’ ‘자기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는 것(克己復禮)’이라 말했고 어떤 때는 말을 더듬는 것(其言也?)’이라 대답하기도 했다. 이들 대답에서 공통분모를 찾기는 힘들다. 공통분모를 발견해 나열하더라도 그것은 대개 김빠진 맥주처럼 맛이 없기 마련이다. 백과사전만 가지고는 절대로 타인에게 가 닿는 화법을 구사할 수 없다. 할 수만 있다면 공자처럼 질문한 사람에 대한 충분한 이해(그의 세계관, 습관, 지적 수준, 관심사 등) 속에서 답변하는 게 좋을 것이다.

 

복기를 해보면 친구의 질문에 대한 답은 그날 그가 꺼낸 단어 숭고를 열쇠말로 구성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친구가 바그너 음악에서 신성한 숭고를 느꼈고, 그래서 자주 바그너를 듣는다면 필자는 지리산에서 자연의 숭고를 체험하기에 그곳에 간다고 말이다. 통상 아름다움은 자연미와 예술미로 구분된다. 어떤 이는 자연미를, 다른 이는 예술미를 우위에 놓는다. 자연미를 우위에 놓는 전통적인 근거는 자연을 신의 작품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반면 예술미를 우위에 놓는 근거는 인간이 자연 초월적인 존재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것은 숭고도 마찬가지다. 자연에서 더 큰 숭고를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작품에서 더 큰 숭고를 경험하는 사람도 있다. 우열을 따지는 행위가 대개 유치하기에 그저 취향의 차이 혹은 경험치의 차이로 보는 게 낫다.

 

숭고 대상은 절대적으로 크고 강력하다는 느낌을 환기시킨다. 숭고는 불쾌감으로 시작한다. 엄청난 크기와 위력을 지닌 존재에게 짓눌리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시무시한 공포다. 아직 숭고는 아니다. 공포가 강렬한 즐거움으로 전환될 때 비로소 숭고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전환의 계기에 대한 여러 학설이 있지만 에드먼드 버크에 따르면 두려운 대상으로부터 자신이 안전하다고 확신할 때 불쾌했던 감정이 유쾌함으로 변모된다. 공포 영화에 몰입해 강렬한 두려움이 일었다가도 이건 가짜야!’라는 각성을 통해 가슴을 쓸며 안도했던 어릴 때의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반면 자연의 숭고는 진짜위험하다. 그 숭고를 경험하려면 고된 노력이 요구되기도 한다. 인적 없는 설산(雪山)이나 운해(雲海)의 숭고를 경험하려면 악천후를 뚫고 두 다리로 걸어 입산해야 한다.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고되고 위험해도, 아니 그렇기에 그 체험이 더 리얼할 수밖에 없다. 더 강렬할 수밖에 없다. 그 경험을 통해 압도적인 타력에 대한 맨몸의 저항력도 생기며 무력한 이에게는 더욱 더 공감할 수 있다. 이것은 예술적 숭고가 따라잡기 어려운 미덕이다. ‘친구여, 이래서 난 지리산에 오른다네.’”

 

우와, ‘자연미예술미에 대해 내가 지금까지 접해 본 그 어느 누구의 해설보다 명쾌, 상쾌, 장쾌하며 통쾌한 선언이다. '자연'이냐 '예술'이냐, 아니면 ''이냐 '예술이냐' 또는 무엇이 '진짜'이고 뭣이 '가짜'인지 우리 다 함께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 좀 해보자고 지난 20181129일자와 202041일자 코스미안뉴스에 올린 우생의 칼럼 글 '예술이냐 삶이냐''덩실덩실 춤출뿐이리오' 그리고 지난 가을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 출간된 영문판 졸저 'Cosmian Rhapsody'Chapter 31. The Phantom(?) of Art and Religion을 아래와 같이 옮겨보리라.

 

예술이냐 삶이냐 Art or Life

 

지난 20181025일 세계 3대 경매회사 중 하나인 크리스티에서 인공지능(AI)이 그린 에드먼드 벨라미의 초상화가 432,500 달러에 팔렸다.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제작한 초상화가 경매에 나와 팔린 것은 그림 경매 250년 역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이미 인공지능이 소설을 쓰고, 악기를 연주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동안 의사나 법률가, 투자 상담사 등 고액의 보수를 챙기던 전문 직업인들이 전담하던 일도 인공지능이 더 정확하고 효율적이면서도 저렴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일찍이 아일랜드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 - 1950)모든 전문적인 직업은 일반인들을 등쳐 먹는 공작이다. (All professions are conspiracies against laity.)”라고 갈파했듯이, 그동안 사회적 또는 문화적 경제적 특권층으로 재미를 톡톡히 보던 귀족들은 크게 한탄할 일이지만 우리 민초들은 쌍수를 들어 반겨야 할 것 같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그리스와 로마의 웅장한 신전과 성당, 중국의 만리장성, 인도와 동남아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수많은 사찰 등을 위대한 문화유산이라고 침이 마르도록 예찬하지만, 이것들을 만드느라 얼마나 많은 노예와 (신부나 승려가 아닌) 인부들의 희생이 있었는가!

 

따지고 보면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우리가 사는 하루 하루의 삶, 숨쉬는 순간 순간 이상의 경이롭고 기적 같은 예술은 없다. 그 이상의 예술작품이 결코 있을 수 없는데, 우리는 어찌 모조품에 불과한 그림자를 실물보다 더 애지중지 할 수 있단 말인가.

 

꿈에서 인지 생시에서 인지 어디서 본 듯한 말이 떠오른다. "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더 흥미롭게 하는 것이다. (Art is what makes life more interesting than art itself.)" 이 말은 세상에 열심히 삶을 사는 인생 예술가말고 다른 예술가란 있을 수 없다는 뜻이 아닐까. (There is no other artist than ‘the artist of life itself’.)

 

몇 년 전 직장 동료인 아랍어 법정통역관의 딸은 신혼여행 중 파도가 세게 치는 바닷가 바위에 올라 포즈를 취하는 신랑의 사진을 찍는 순간 파도가 덮쳐 남편을 일찍 잃고 말았다. 그러니 현실이 가상현실보다 훨씬 더 이상하고, 자연이 그 어떤 인위적인 업적보다 더욱 위대하다고 해야 하리라.

 

우리는 결국 돌아갈 것이다. 코스모스 바다로.

Art or Life

 

On October 25, 2018, the portrait of Edmond Belamy, the first piece of AI-generated art to come to auction at Christe’s, was sold for $432,500, signaling the arrival of AI art on the world auction stage.

 

This is no news in the light of the fact that novels are already being written and musical instruments are being played by AI.

 

Furthermore, professional jobs performed by highly paid-physicians, lawyers, stockbrokers, etc. are gradually going to be replaced by much more accurate, efficient and cheaper services rendered by AI.

 

As Irish Nobel Prize winning writer George Bernard Shaw (1856-1950) remarked, “All professions are conspiracies against laity,” this trend may be direly deplored by all the heretofore culturally, financially and socially privileged aristocrats. But this should be enthusiastically greeted by grassroots!

 

Edifices like Egyptian Pyramids, Greek and Roman Pantheons and Colosseums, European Cathedrals, Chinese Great Wall, Indian and other Asian Hindu/Buddhist temples, etc., have been treasured as great assets of cultural heritage. Nevertheless, alas, one cannot forget the hard facts that so many slaves and laborers were sacrificed for them, with the connivance of high priests and monks.

 

Come to think of it all, there are no more miraculously wonderful ‘naturefacts’ than nature as it is, and no greater ‘artifacts’ than life as lived in earnest, breath by breath. If so, how then could one worship the immitated images of nature and life, pursuing the shadows instead of here-and-now entities?

 

I’m not sure where and when I noticed this sentence:

‘Art is what makes life more interesting than art itself.’

I’d interpret this as to mean that there is no other artist than ‘the artist of life itself’.

 

A few years ago, the daughter of a colleague of mine, an Arabic court interpreter, lost her newly wed husband on their honeymoon, while taking a photograph of him standing on a rock against the roaring sea.

 

Therefore, perhaps, one has to say that reality is so much more stranger than virtual reality and that Nature is infinitely greater than any human achievements.

 

So we’ll be going back to the Sea of Cosmos, after all.

 

덩실덩실 춤출 뿐이리오


2007년에 전자책으로 나오고 2014년 개정판으로 다시 발간된 플라멩코 이야기가 있다. 고향인 마산에서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는 카페 소사이어티의 작가 김준형씨가 영어로 플라멩코와 판소리의 만남을 자전적 소설형식으로 쓴 플라멩코 여정(Flamenco Journey)’의 한국어판이다. ‘역자의 변에서 저자 김준형 씨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이 플리멩코 이야기는 글 속의 ’, jh라는 이니셜의 한 여행자가 미국인 플라멩코 댄서 로레나(Laurena)에게 보낸 편지들의 번역문이다. 그가 스페인 여행 중에 그녀에게 보낸 이메일을 필자가 우리말로 번역하여 이에 살을 적당히 붙여 편집하였던 것이다. 이 글은 jh의 편지 모음이므로 엄격히 말해 그의 창작물이란 뜻이다. 필자는 단지 그의 편지들을 우리말로 충실하게 옮긴 역자일 뿐이다.”


스페인의 한 애송시 어느 사랑의 이야기(Hisoria de un Amor)’의 일부다.


모든 아름다운 것과 모든 어두움을 일깨워 준,

세상 그 어디에서도 다시는 있을 수 없는,

어느 사랑 이야기.

그 밝은 빛으로 나의 삶을 뒤흔들고,

이렇게 다시 그걸 거두어 가버리다니

, 삶은 이토록 어둡기만 할까!

나 이제 살 수가 없어, 너의 사랑 없이.


이 같은 스페인 플라멩코의 노래 속에, 그 춤꾼 로레나의 매력적인 손놀림과 발놀림에 폭 빠진 여행자는 죽는 그 날까지, 아니 죽어서도 우물보다, 그리고 바다보다 더 깊은 플라멩코와 로레나를 끝내 잊지 못하리라. 한마디로, 열정의 플리멩코와 우리나라 남도의 신명나는 설장고와의 혼()적 만남의 과정을 그린 러브스토리다.


유럽 서남단의 이베리아반도,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집시의 한(), 그 떨리는 소리, 아이! 아이! Ay! 깊은 노래가 우리 판소리와 너무 닮아서일까. 플라멩코를 추는 여성 댄서와 한국인 남성 여행객이 스스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운명적으로 만나 서로 상대의 문화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소설에는 주인공인 한국 남성이 플라멩코의 마력에 사로잡혀 스페인 그라나다와 세비야 등을 여행하면서 김민기의 아침이슬을 번역한 곡에 맞춰 댄서가 플라멩코를 추는 장면도 나온다. 그리고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을 플라멩코로 춰달라는 부탁까지 하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 생각 좀 해보자집시의 한()을 관능적인 춤으로 발산하는 것이 플라멩코라면 아프리카 대륙에서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의 아픔을 노래한 넋두리가 흑인영가(Negro Spiritual) 일 테고 같은 나라 백성이면서도 반상적서(班常嫡庶) 계급으로 나뉘어 종노릇 해온 민초(民草)들의 슬픔을 승화시킨 것이 판소리가 아니었던가.


어디 그뿐 일까. 몇 년 전 스페인의 사회주의 정부 때 에스트레마두라(Extremadura) 지방에선 한바탕 미디어 소동이 났었다. 공립학교 성교육 교과과정에 13세 이상의 소년 소녀들을 위한 자위행위 워크숍(Masturbation Workshop)을 도입했기 때문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즐거운 쾌감은 네 손 안에 있다 (Pleasure is in your hands)’라고 불렸다. 항의가 빗발치자 이 지방 당국은 미성년 아동들의 임신과 더 큰 불행을 예방하기 위한 성교육(性敎育)의 일환으로 자위행위 수업(Masturbation Class)’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뿐만 아니라 안달루시아 지방정부도 같은 프로그램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친대중당(Popular Party) 단체에서 법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폐기시키려고 했으나 이 지방검찰청에서 항의를 접수조차 해주지 않아 실패했다. 흥미롭게도 이 법적 도전은 깨끗한 손(Clean Hands)’이라고 명명되었었다.


이에 대해 페루의 2010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Mario Vargas Llosa 1936 - )는 미국의 지성 월간지 하퍼스 매거진(Harper’s Magazine July 2015)에 실린 성애예술(性愛藝術 ARS EROTICA-The Art of Sexual Love)’이란 에세이에서 아래와 같이 술회(述懷)하고 있다.


옛날 가톨릭 학교를 다닐 때 성기(性器)를 잘못 만지면 눈멀고 폐병 걸리며 미치게 된다는 신부님들 말씀에 잔뜩 겁먹었었던 내 어린 시절로부터 60여 년이 지나 학교에서 용두질 수업시간이 생기다니 이것이 진보다. (How things have changed since my childhood, when the Salesian fathers and La Salle brothers who ran the schools scared us with the idea that ‘improper touching’ caused blindness, tuberculosis, and insanity. Six decades later schools have jerking off classes. Now that is progress.)”


그는 이어서 이렇게 묻는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이와 같은 프로그램의 좋은 의도와 원치 않는 임신사례를 줄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나는 인정한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섹스(Sex)에 관한 미신(迷信)과 거짓말 그리고 잘못된 편견으로부터 어린애들을 해방시켜주는 대신 이런 마스터베이션 워크숍(Masturbation Workshop)은 그러지 않아도 성행위(性行爲)가 별 것 아닌 것으로 취급되는 현대사회에서 그 더욱 하찮은 짓으로 치부(置簿)하게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키워준 쾌락의 원천을 미래세대로부터 박탈해 성행위를 아무런 신비감도 정열도 없이 단순한 신체적 운동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는 말이다.


(But is it really? I acknowledge the good intentions behind the program and I concede that campaigns of this sort might well lead to a reduction in unwanted pregnancies. My criticism is of a sensual nature. Instead of liberating children from the superstitions, lies, and prejudices that have traditionally surrounded sex, might these masturbation workshops trivialize the act even more than it has already been trivialized in today’s society? Might they continue the process of turning sex into an exercise without mystery, disassociating it from feeling and passion, and thus depriving future generations of a source of pleasure that has long nurtured imagination and creativity?)”


, 이쯤 해서 우리 국경과 이념, 종교와 신앙, 인종과 성 정체성 등 모든 인위적(人爲的)인 경계를 허물고 전 인간가족을 아우르는 플라멩코 여정(旅程)에 올라보리라.


아시안 최초로 나 홀로마라톤으로 201521일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해변을 출발, 114일만인 525일 미()대륙횡단 3,150마일(5040km) 거리를 완주, 워싱톤 DC 백악관 앞에 도착한 강명구(당시 57) 씨는 그동안 뉴욕 중앙일보에 연재해온 칼럼 삶의 뜨락에서: 대륙횡단 마라톤 일기백악관에서 통일을 생각함이란 글을 다음과 같은 말로 끝맺었다.


통일의 경비는 대륙횡단 마라톤을 하는데 지불한 경비보다 더 엄청난 경비가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휴전선이 무대의 막이 걷히듯 열리는 순간 우리의 새로운 역사의 무대가 펼쳐질 것이다. 한반도는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이라는 공연이 펼쳐지는 커다란 극장이 될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복()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조각보를 만들었다. 통일은 비슷한 사람끼리 뭉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모든 이질적인 것들을 공들여 마르고 꿰매어 무지갯빛 조각보를 만드는 것이다.”


몇 년 전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1984 - )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of Facebook)가 가장 기대를 걸고 있는 미래 커뮤니케이션 유형으로 텔레파시(telepathy)를 꼽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조만간 기술을 이용해 내 생각 모두를 상대방에게 직접 보낼 수 있게 되리라고 나는 믿는다. 여러분이 뭔가 생각하면 여러분의 친구들이 즉각 이를 알게 되는 것이라고 2015630일 페이스북을 통해 온라인 타운홀 미팅(Online Town Hall Meeting)’을 열고 페이스북 사용자들과 문답 형식의 대화를 진행하면서 마크 저커버그는 밝혔다.


201411월부터 한 달에 한 번꼴로 페이스북 사용자들과 직접 소통하기 위해 온라인 타운홀 미팅을 열어왔는데 이날 행사에는 영국의 세계적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1942-2018)과 할리우드 배우 출신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아놀드 슈워제네거(Arnold Schwarzenegger 1947 - ), 허핑톤 포스트(Huffington Post) 창립자인 애리애나 허핑톤 (Arianna Huffington 1950 - ) 등 유명인사 다수가 참여했다.


중력과 다른 힘들을 통합하는 이론을 알고 싶다는 호킹은 저커버그에게 당신도 과학적으로 궁금한 것들이 있는가. 있다면 뭔가라고 묻자 어떻게 하면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지금보다 100만 배 더 많은 것을 배우도록 할 수 있을까등이 궁금하다고 저커버그는 대답했다.


그러면서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이 최근 시작한, 모바일 웹(the mobile web)보다 10배나 빠른 뉴스 서비스 인스턴트 아티클스(Instant Articles)’가 앞으로 뉴스 구독자들의 주요 소비 경로가 될 것이라고 내다 봤다. 최근 발표된 퓨 리서치(Pew Research) 조사에 따르면 미국 50대 미만 세대는 뉴스를 구독할 때 TV나 신문, 뉴스 사이트, 인터넷 포털보다 페이스북을 더 많이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컴퓨터 과학자들은 머지않아 그동안 사람이 하던 다른 언어들 사이의 통역이나 번역 서비스를 기계가 더 신속 정확하게 수행하게 되고, 더 나아가 언어 자체가 불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그런 날이 오면 저커버그가 언급한 텔레파시로 모든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게 아닌가. 그렇게 되면 인류 유사 이래 지금껏 있어 온 말 다르고 맘 다른온갖 속임수가 없어지게 되지 않겠는가. 연애하는 남녀 간은 물론 특히 거짓말을 밥 먹듯 해온 정치인들을 비롯한 여러 가지 직업인들의 입지가 아주 곤란해지리라. 어디 그뿐인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뿐 아니고 인간과 다른 동식물 심지어 광물과도 자연스럽게 소통이 가능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전부 자기가 혼자 힘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이 우리는 10분도 숨 쉴 수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의 생명이지 내 생명이 따로 없다는 것을 알고 나면 모든 것은 투쟁보다는 상생(相生)으로 갑니다. 그것이 중도연기 (中道緣起).”


한국 간화선의 대표 선승인 혜국 스님(금봉선 원장)201572일 충북 충주 석종사(釋宗寺) 조실채에서 하안거 중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스님이 쓴 책 신심명(信心銘)’ 출간을 기념한 것이었는데 신심명1,400년 전 선종 시대 조사 승찬 대사가 불교철학의 원리를 74구절 짧은 글로 담아낸 선어록이라고 한다. ‘신심명을 통해 오늘날 되새길 정신이 무엇이냐는 기자들 질문에 혜국 스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결국 상생입니다. 떠다니는 구름이 만든 비와 대지에서 나오는 음식이 내 몸 만든 것인 줄을 알 때 남을 어떻게 내 몸처럼 대접할까를 고민하게 되니, 지구와 인류가 살아날 수 있는 원리가 되죠. 그걸 깨치고 나면 구절마다 덩실덩실 춤이 나옵니다"


실로 피아일체(彼我一體)

물아일체(物我一體)라면

나와 나의 분신들 사이에,

소우주(小宇宙)로서의

소아(小我)인 나와

대우주(大宇宙)로서의

대아(大我)인 나 사이에

무슨 말과 글이 필요하리오.

애오라지 깨달음의 느낌이면 족하리오.

이를 우리말로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이니

심심상인(心心相印)이라 하고

영어로는 텔레파시(telepathy)라 하는 것이리오.


따라서 저커버그의

어떻게 하면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100만 배 더 많은 것을

배우도록 할 수 있을까란 궁금증과 의문도

자연스럽게 풀리게 되리오.

그럴 때 비로소 우리 모두

우주인 나그네 코스미안으로서

우주의 삼라만상(森羅萬象)과 더불어

덩실덩실 춤출 뿐이리오.

 

The Phantom(?) of Art and Religion

 

In Korean, there is an expression mocking the self-chosen one as 'living on dewdrops and passing droppings of clouds. Such a person believes that "Art is long and life is short' or that 'Religion is the only truth in life.'

 

There is a parable as a refreshing reminder for us all from 'The Forerunner' by Kahlil Gibran (1883- 1931):

 

Poets

 

Four poets were sitting around a bowl of punch that stood on a table.

 

Said the first poet, “Methinks I see with my third eye the fragrance of this wine hovering in space like a cloud of birds in an enchanted forest.”

 

The second poet raised his head and said, “With my inner ear I can hear those mist-birds singing. And the melody holds my heart as the white rose imprisons the bee within her petals.”

 

The third poet closed his eyes and stretched his arm upwards, and said, “I touch them with my hand. I feel their wings, like the breath of a sleeping fairy, brushing against my fingers.”

 

Then the fourth poet rose and lifted up the bowl, and he said, “Alas, friends! I am too dull of sight and of hearing and of touch. I cannot see the fragrance of this wine, nor hear its song, nor feel the beating of its wings. I perceive but the wine itself. Now therefore must I drink it, that it may sharpen my senses and raise me to your blissful heights.”

 

And putting the bowl to his lips, he drank the punch to the very last drop.

 

The three poets, with their mouths open, looked at him aghast, and there was a thirsty yet unlyrical hatred in their eyes.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1230ts@g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8.06 10:25 수정 2021.08.06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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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