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31일자 미주판 한국일보 [젊은 시각 2030] 오피니언 칼럼 필자 정윤정 페이스북 프로덕트 매니저는 ‘시절 인연’을 떠올려보자고 한다.
시절인연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사물의 현상이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말이다. 이 말은 본래 불교 용어로서, 모든 사물의 현상은 업과 인과의 법칙에 의해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환경이 맞아 떨어져야 된다는 뜻이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오늘날 범용적인 표현으로서 ‘시절인연’은 때가 맞고 운이 따르면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노력하고 신경써도 일이 풀리지 않으니 무리하여 집착하고 괴로워 하지 말라는 뜻으로 쓰인다.
‘시절인연’이란 말은 인간관계에서 많이 인용되기도 한다. 살다 보면 다른 무엇도 아닌 사람 때문에 마음이 힘든 시기가 있기 마련이다. 이렇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 많은 일에 대해 우리는 “아직 때가 아닌가 봐. 시절인연 이랬으니 너무 실망하지마 와 같은 말을 하게 된다. 이를 일차원적으로 해석하면 당장의 어려움과 괴로움을 회피하려는 것 같이 들리지만, 사실 이 말은 집착하는 마음은 비우되 노력하던 일에서 완전히 손 놓으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미 벌어진 일에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앞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는 것, 영어로 하면 “let’s move on”에 가깝겠다.
마음을 비웠더니 더 좋은 결과가 따라오는 경우를 겪어본 적 있을 것이다. 욕심을 버렸더니 시험 성적이 더 잘 나오거나, 집착을 멈추었더니 몇 달 후 헤어졌던 연인이 다시 연락을 해온다거나 하는 일 말이다. 하지만 이런 행운과 같은 일들은, 목표를 달성하려는 혹은 부족했던 부분을 메우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수반될 때 자연스레 시절인연이 되어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 만약 내가 낙방의 충격에 공부를 게을리했거나, 이별의 슬픔에 폐인처럼 지냈다면 반전이 가능했을까?
여기서 세계관을 확장해보자면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우리 조상님들은 ‘운칠기삼’을, 그리고 요즘 세대는 ‘될놈될 (될 놈은 된다를 줄인 속어)’ 등 조금씩 다른 표현들이지만 비슷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거 같다. 결국 최선의 노력을 하되, 이에 대한 응답이 항상 긍정적일 수는 없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해서는 너무 집착하지 말고, 언젠가 올 때를 대비하다보면 자연스레 일이 풀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가끔 마음대로 안 되는 일과 인간관계에 속상할 때면 모든 것은 ‘시절인연’ 임을 떠올려 보고자 한다.”
이 ‘시절인연’을 나는 이를 이렇게 표현해보리라.
있을 이 이슬 맺혀 이슬이던가
삶과 사랑의 이슬이리
아니
기쁨과 슬픔의 저슬이리
이승의 이슬이
저승의 저슬로
숨넘어가는
Was the grass wet with early morning dew
to pay your dues of life and love?
Were they dewdrops of joy and sorrow?
Was that for breathing in this magic world to the full,
and breathing it out to the last,
before transforming back
into the mystical essence of the Cosmos?
살아오면서 점차로 내가 더욱 더 절실히 깨닫게 되는 것이 ‘모두가 다 경이로운 요행 All’s wondrous serendipity’이란 것이다.
우리 상상해보자. 우리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고. 늙지 않고 영원히 젊다고. 그럼 삶과 청춘의 소중함을 알 수도 삶을 사랑할 수도 없어 그 건 사는 것도 젊은 것도 아니리라. Let’s imagine we live forever. Let’s imagine we are young forever. Then that wouldn’t be living or being young. Then we wouldn’t appreciate life and youth, to love life.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 Walt Whitman (1819-1892)은 ‘나 자신의 노래 Song of Myself’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죽는다는 건 그 어느 누가 상상한 것과 다르고 더 다행한 일이리라. To die is different from what anyone supposed, and luckier.”
그리고 그는 ‘풀잎 Leaves of Grass’에서 성聖과 속俗이, 영혼靈魂과 肉體가 결합結合된 하나의 메타포 은유 비유로 자신이 열망하는 ‘또 다른 위대한 자신自身의 몸을 노래한다. In ‘Leaves of Grass’ he wrote:
“I sing the body electric” -as a scintillating metaphor- “내 살과 피는 나 자신과 다를 바 없는 내 몸에 번갯불이 되리.”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극작가이며 소설가 제임스 매슈 배리 경 Sir James Matthew Barrie(1860-1937)은 그의 유명한 판타지 아동극 ‘피터 팬’(1904)에서 이런 선견지명先見之明을 제시한다. Scottish writer Sir James Matthew Barrie(1860-1937) presents the foresight in his internationally and abidingly famous children’s play, Peter Pan:
“죽는다는 건 엄청난 모험이리라. To die will be an awfully big adventure.”
아, 그래서 이슬람의 신비주의 수피파에서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리라. No wonder, the Sufis say.
“삶은 꿈이고 죽음은 (잠에서) 깨어나는 거다. Life is a dream, and death is waking up.”
고대 그리스 속담에 ‘인생은 느끼는 사람에겐 비극이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희극’이라고 하지만 삶이란 뭣보다 모험이고 사랑은 모험 중의 모험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There ‘s an old Greek saying that life is a tragedy to a feeling person and a comedy to a thinking person. Shouldn’t we say that life is, above all, an adventure and that love is the adventure of adventures?
지금껏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건대 참으로 놀랍고 경이로운 일들은 언제나 예기치 못했던 순간에 발생했고, 꼭 일어나리라 예상했던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실제로 희망했던 대로 이루어진 일들도 내가 바랬던 것보다는 훨씬 늦게 성사成事가 되더란 것이다. In retrospect, all the truly wonderful things in my life always happened to me in the most unexpected moments. Things I was quite sure that would happen never did, and what did, usually happened much later than I wished.
그래서 경험을 통해 나는 배웠다. 실망하지 않고 기대 이상의 성과成果를 얻는 최선의 방책方策은 최선의 결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처음부터 최악의 경우를 각오한다는 거였다. 그럼 내가 낙관론자가 아니고 비관론자란 말인가? So I learned by experience that the best way not be disappointed and preferring instead to be happily surprised is to be prepared right from the outset for the very worst, rather than hoping for the best. Am I then a pessimist, not an optimist?
나는 나 자신이 낙관론자도 비관론자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찍부터 추진하는 일이 어찌 풀리고 돌아가든 그 결과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생긴 대로 나 자신에게 진실되고 충실하게 그때 그때 할 수 있는 나의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만족하겠노라는 ‘만족론자滿足論者’가 되기로 나는 작심한 것이었다. I think I’m neither. Early on I decided to be a ‘contentist’ contenting myself with doing my very best and utmost, being true to myself, the way I was born to be, be the outcome what it may.
좀 조숙早熟했던 것일까. 이 세상에 탄생한 것부터 거의 모든 것이 내 선택이나 통제 밖에서 이루어졌음을 깨닫고 어떤 일이 일어나든 매사에 감사하며 행복하게 모든 걸 최대한으로 선용善用, 이용利用, 활용活用하는 법을 배웠다. Precociously realizing that almost everything from birth onwards was beyond my choice and control, I learned to be happy and thankful for anything and everything by making the best and most of it all.
내 인생 85년 살아오면서 세상에 순전히 우연이란 있을 수 없고, 신적神的 하늘의 섭리攝理라 하든, 운명 또는 숙명이라 하든, 그 어떤 필연적 必然的 인연因緣에 따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In the course of living my life for 85 years, I’ve come to think that nothing happens by pure chance; that there must be some force guiding us-call it God’s/Heavenly Providence, destiny, fate.
‘학생이 배울 준비가 되면 스승이 나타난다. When the student is ready the teacher will appear/As soon as a pupil is ready, a teacher appears, not a moment sooner or not a moment later’는 말은 그 근거가 부처라고도 하고 노자의 도덕경이라고도 하지만, 학생이 스승을 찾아 주유천하周遊天下하노라면 반드시 스승을 만나게 된다는 이 우주의 조화를 우리는 모두 믿을 수밖에 없으리라. If you are willing to travel around the world to meet a teacher, one will appear; and then we all have to believe in the cosmic harmony of it all.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려면 온 우주가 공모해야 한다. For anything to happen anytime anywhere, the whole Cosmos has to conspire’가 되리라. 이를 단 한 단어로 요약하면 ‘요행 僥倖’이 되리라. This sentence may be summarized in one word, ‘serendipity.’ 돌이켜 볼 때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리고 태어난 이후로 일어난 모든 일들을 그 어느 누가 어찌 달리 설명할 수 있으랴. Looking back, everything that occurred before birth and onward seemed to have come about by virtue of serendipity. How else can anyone explain it?
“등잔불을 들고 가는 어린애보고
그 등잔불을 어디서 갖고 오느냐
그 어린애 보고 내가 물었더니
등잔불을 혹 불어 끄고
그 어린애가 말하기를:
‘자, 이제 말씀해보세요
등잔불이 어디로 갔는지.’”
“I saw a child carrying a light.
I asked him where he had brought it from.
He put it out, and said:
‘Now you tell me where it is gone.’”
-Hasan of Basra
지난해 2020년 3월 4일 코스미안뉴스에 올린 우생의 칼럼 글 우리 다 함께 반추反芻해보자.
무위지도(無爲之道), Let It Be
얼마 전 인터넷에 용도폐기 고려대상 목록이 떴다. 이론의 여지 없이 당연시 해온 여러 개념들이 이 목록에 포함되었다. 예를 들면 인간성(human nature), 원인과 결과(cause and effect), 자유 의지(free will), 실증된 약품의 효력(evidence-based medicine) 등 모든 것의 이론(the theory of everything)과 수많은 현대사상이 있다.
출판 대리인(literary agent)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문제 제기자 (provocateur)인 존 브록맨(John Brockman(1941 - )은 그가 1998년 창설한 ‘엣지(The Edge Foundation, Inc.)’를 통해 흥미로운 여러 가지 문제들을 제기해왔다. 말하자면 증명할 수는 없지만 무엇을 당신은 믿는가. 인터넷이 어떻게 모든 것을 바꾸고 있는가. 당신의 어떤 생각이 바뀌었는가 등이다.
총 166명의 철학자, 사상가, 과학자, 작가, 예술인 등 서구 사회의 최고 지성을 대표하는 인사들의 에세이를 요약해 12만 단어가 넘는 개론(槪論)을 온라인 살롱 ‘엣지(edge.org)’에 올려 공개토론이 진행 중이다.
과학자들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언제 어디서나 적용될 수 없는, 사실과 허구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고, 논리학과 수학자들이 옳고 그르다고 정의한 것도 상황과 형편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죽음조차도 생명이 사라진 물체 몸덩이가 다른 물질로 변화해 다른 방식으로 생명이 이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같은 것은 용도폐기해야 하지 않나, 심지어 인과(因果)나 무한(無限) 또는 우주(宇宙) 같은 개념이 없어도 좋지 않은가 하는 의문을 갖는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과학과 학문의 참된 요체는 믿음(faith)이나 진리(truth)가 아니고 의문(doubt)이라는 각성을 촉발시키고 있는 것이리라.
우문(愚問)이란 있을 수 없어
다시 말해 우리 모두 매사에
너무 곧이곧대로 융통성 없이
중차대(重且大)한 막중대사로
지나치게 심각할 필요 없음을.
그 어떤 교리나 이론으로도
바람처럼 자유롭게 부는 삶을
무지개처럼 하늘에 서는 빛을
이슬처럼 맺히는 사랑의 꿈을
결코, 옭아맬 수 없다는 사실을.
돌아가는 지구가 둥글다면
동서남북 위아래가 어디며
네 왼쪽이 내 바른쪽인데
옳은 쪽 그른 쪽 없지 않나.
그러니 무위이화(無爲而化)
무위지도(無爲之道) 따르리.
여기서 우리 비틀즈의 노래 ‘Let It Be’의 가사(John Lennon과 Paul McCartney의 공동작사)를 음미해 보리라.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
Mother Mary comes to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And in my hour of darkness
She is standing right in front of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Whisper words of wisdom
Let it be
And when the broken-hearted people
Living in the world agree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
For though they may be parted there is
Still a chance that they will see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Yeah,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Whisper words of wisdom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Whisper words of wisdom
Let it be
And when the night is cloudy
There is still a light that shines on me
Shine until tomorrow
Let it be
I wake up to the sound of music
Mother Mary comes to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yeah, let it be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yeah, let it be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yeah, let it be
Whisper words of wisdom
Let it be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