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끗희끗한 잔설이 덮인 먼 산 같은 모습의 친구를 생각하는 새벽을 열었다. 친구를 초대하여 커피 한잔을 대접하고 싶은 이 아침이 간절하다. 태평양 너머에 있는 친구와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명상의 시간을 위하여 친구의 커피 한잔을 마련해 놓았다.
친구를 찾아 나서는 명상을 한다는 말을 해도 어울릴지 모르겠다. 살아 있다는 나의 존재함을 오감으로 느끼면 충분할 뿐 여기서 더 나아간다는 생각은 짊처럼 느껴진다. 무슨 수로 영상 속 수도승의 길처럼 어깨에 숄을 걸치고 명상을 할 수 있을까. 명상은 집중이 아닌 흐름이라는 말도 모르겠다.
이 순간이 세상을 사는데 가장 행복한 시간이면 그 어떤 형태의 명상은 중요하지 않다. 아마도 지금의 이 순간만이 내겐 명상의 시간일 수 있다. 마구 흐르는 생각들을 집중시키는 일이 명상이라고 믿었던 내가 옳지 않은가 보다. 세상 환경과 단절하고 숲이 있는 환경에서 마음을 닦는 수양을 위한 명상이 아니라 나는 우거진 숲이 아닌 한 그루의 자카렌다나무 그늘에서 흩어진 생각들을 한곳으로 모으는 일을 명상이라고 생각하며 늘 행복해했었다.
그래서 마음의 휴식이란 말은 잘 이해한다. 내가 바라는 휴식이면 명상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내면의 의식을 외면으로 표현한다는 명상의 의식세계로 몰입한다는 이론이 너무 어렵다. 그냥 친구 생각으로 오랫동안 머무는 시간이 내게는 명상의 시간이다. 친구도 나도 똑같은 세월의 시간을 보냈음에도 친구가 나를 위해 보낸 시간이 더 아름답기만 하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명상이 믿고 살수 있는 힘이다.
그 친구를 알고 지낸 지난 반세기의 세월이 훨씬 넘어서도 가장 아름다운 나이의 친구가 있다는 것이 생의 가장 화려한 빛이자 바로 내가 갚아야 할 빚이라는 것을 명상을 통해서 얻는다. 나는 그 빚을 잘 융통하여 지금의 내가 마음의 부를 이루었다. 비바람에도 젖지 않은 그 나이를 보면서 조금씩 갚아가는 내 모습도 그럴까 물어보고 싶어진다.
살아가면서 마음의 의지가 되어주던 친구의 빚, 그 빚은 외로움에 시달릴 때마다 담보 없이 더 많이 빌려 쓴 빚이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친구인 나를 지켜 주었던 친구를 반세기가 넘은 세월에서 한 번 만나 보았다. 바다를 찾을 때마다 친구를 불러 보는 습관도 내게는 명상의 시간이다.
세월은 태평양 파도를 수없이 쓸어 삼킬 만큼 흘러도 친구의 사랑은 그대로 있다. 함께 어린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때마다 더욱 간절하게 만나고 싶은 친구 생각은 고귀한 명상이다. 낮과 밤이 거꾸로 흘러가는 세상을 살면서 가장 믿는 구석이 바로 친구였다. 새벽 뉴스에서 듣는 한국의 날씨 소식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기록을 세워가는가든지 알 수 없다. 습도로 푹푹 찌는 더위에 그가 가장 사랑하는 전원의 밭을 일구며 지내는 그의 여름이 값지기만 하다.
그렇게 가꾼 농작물을 거두게 될 가을은 모두 그를 위한 계절이다. 추수감사절인 추석에 거두어 신의 제단인 교회에서 교인들과 함께 나눈다는 귀한 소식을 듣는다. 그에게 찾아올 풍성한 가을은 신과의 만남이다. 다시 오십여 년 전의 친구와 내가 나누던 무더운 여름으로 돌아 가고 싶다. 선풍기조차 없던 시절 부챗살이 힘겨워하던 더위를 위해 안간힘을 쓰던 무정한 여름 바람 속 그 세월이 한없이 그립다.
그와 내가 나누며 성장한 세월 속에는 그런 세파의 흔적이 있어 아름답다. 친구를 생각하는 모든 시간 속 명상으로 만나는 학창시절 함께 미아리 고개를 걸어 넘어 돈암동에서 전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명상을 멈추지 못한다. 서로 선의의 경쟁으로 가난했지만, 더없이 풍요롭게 학창시절을 나누었다. 먹을 것이 풍부하지 못하던 시절의 점심 도시락이 명상 속으로 찾아들면 식사를 위해 내 앞에 차려진 음식들이 너무도 화려하다.
그 세월을 뒤로하고 떨어져 산 수십 년의 세월에서 꼭 한번 만났어도 어제 본 사람들 같다. 서로 다른 인생의 굴레를 입고 사느라 잊고 살 수밖에 없었던 수십 년이 어제만 같다. 기다리는 시간은 잘 가지 않는다고 했다. 한평생이라는 시간이 신선의 세계에서는 한 잠속 꿈 한 번의 시간이라고 한다.
다음 반세기 후에 다시 만나도 이 모습 그대로이었으면 좋겠다는 명상을 한다. 나는 친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늘 최상의 명상을 갖는다. 망우리 너머 옹기 굽는 황촌마을에서 주어 온 일그러진 뚝배기 질그릇 속에 담긴 삶의 이유가 있기에 그 질그릇 속에는 친구의 절제와 검소가 담긴 인생이었음을 명상을 통해 만나본다.
[문경구]
화가
수필가
코스미안뉴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