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코스미안의 거울 Cosmian Mirror

이태상

 

오늘 아침 (2021년 9월 16일자) 미주 뉴욕판 중앙일보 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칼럼 '90대10' 필자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우리 인생에서 단지 10%에 지나지 않는다"며 "나머지 90%는 우리가 그 일들에 어떻게 반응하며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태도
(Attitude)와 반응(Reaction)이 삶의 90%를 결정짓는다.  그리고 이 태도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임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최고의 태도는 감사"라고 강조한다.

아, 그래서 영국의 소설가 윌리엄메이크피스 새커리 William Makepeace Thackeray(1811-1863)도 이런 말을 남겼으리라.

"인생은 거울이다. 네가 얼굴을 찡그리면 세상도 눈살을 찌푸리지만, 네가 인상쓰지 않고 미소 지으면 미소로 돌아온다.  Life is a mirror:  if you frown at it, it frowns back; if you smile, it returns the greeting."

이를 요즘 영어로는 'What Goes Around Comes Around'라 하고 우리말로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 하는 것이리라.

이를 또 화사첨족畵蛇添足으로, 2020년 4월 22일자와 12월 22일자 코스미안뉴스에 올린 우생의 칼럼 두 편을 아래와 같이 옮겨, 부연敷衍/敷演해보리라.

[이태상의 항간세설] '이자성어(二字成語) 감사의 축사'

“감사(感謝)는 사유(思惟)의 지고지순(至高至純)한 경지(境地)이고, 감사하는 마음은 경이(驚異)로움으로 배가(倍加)된 행복(幸福) 이다. (Thanks are the highest form of thought, and gratitude is happiness doubled by wonder.)”
 
영국 언론인이자 작가 G. K. 체스터튼(Gilbert Keith Chesterton 1874-1936)의 말이다. ‘감사는 사유의 지고지순한 경지’란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감사하는 마음은 경이로움으로 배가 된 행복’이란 말은 내 성에 너무 차지 않는다. 나 같으면 행복감이 경이로움으로 ‘배(倍)’가 아니라 ‘억만배(億萬倍)’ 된다 해도 부족하다고 말하리라.
 
2020년 4월 15일자 한국일보 오피니언 페이지 ‘삶과 문화’ 칼럼 ‘베토벤, 지구의 회복을 북돋는 인간의 음악’ 필자 조은아 피아니스트 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이렇게 우리를 일깨워준다.
 
“이제 좀 정신이 들어?” 병상에 누워 있던 지구에게 다람쥐가 묻습니다. 지구는 가까스로 기운을 차려 몸을 일으킵니다. 바다 거북이와 북극곰도 침상 곁에 모여 지구를 극진히 간호합니다. 병실 밖 하늘은 먼 산이 창문 안으로 성큼 들어올 만큼 맑디 맑습니다. 위태로웠던 지구의 건강을 이만큼이나마 회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지구가 맞고 있던 링거, 코로나 덕택이었습니다. 삶의 근거지 빙하의 파괴에 몸부림치던 북극곰, 해변을 빡빡이 점령한 휴양객들로 산란의 공간마저 빼앗겼던 바다 거북이가 누구보다 지구의 회복을 기뻐합니다.
 
코로나 위기에 다시 숨쉬기 시작한 자연, 며칠 전 접했던 한 신문의 만평은 이렇듯 뼈아픈 역설을 깨우치고 있었습니다. 인간이어서 죄책감을 느꼈고 인간으로 소외되어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돌연 이 장면에 음악을 입히고 싶어집니다. 지구의 회복을 기원하는 음악, 자연의 목소리를 번역해 증폭시켜 주는 음악 말입니다. 다행히 한 얼굴이 금세 떠오릅니다. 자연의 영혼에 혼신을 다해 귀 기울였던 음악가, 올해로 탄생 250주년을 맞이했지만 어쩌면 스스로 성대한 생일잔치를 마다한 채 지구의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을 음악가, 그의 이름은 베토벤입니다.”
 
백범(白凡) 김구(金九 1876-1949) 선생의 애송시로도 잘 알려진 조선 후기 문인 임연(臨淵) 이양연(李亮淵 1771-1853)의 문집 ‘야설(野雪)’에 수록된 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어지러이 걷지 마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이와 대비시켜 미국 굴지의 사업체 아마존(Amazon)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 1964 - )의 ‘아마존 식(The Amazon Way)’으로 불리는 생활신조와 지침을 우리 다 함께 생각해 보리라.
 
조만간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세상은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경제의 구조적 변화는 물론 실물보다 사이버 공간의 중요성을 사람들은 절감했다. 소매상과 쇼핑몰이 문을 닫은 상태에서도 아마존은 크게 번창했다.
 
이 ‘아마존 식’이란 다른 사람이 이미 걸은 길이 아닌 자신의 독자적인 길을 독창적으로 개척한다는 것이다. ‘난 별난 사람(I’m peculiar)’이라는 자긍심이요 자부심이다. 이는 ‘실제로 실용적인 필요를 충당할 때 느낄 수 있는 미래지향적이고 마술적인 성취감(We’re solving a really practical need in this way that feels really futuristic and magical)’이란 뜻이다.
 
‘하늘의 별을 따겠다고 할 때 이는 참으로 도전적인 모험이 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When you’re shooting for the moon, the nature of the work is really challenging. For some people it doesn’t work.)’는 말이다.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아마존 직원들에게 범용(凡庸)하고 열등(劣等)한 용렬(庸劣)함을 기피하라는 근무작업 수칙(守則)을 세웠다. (Founder Jeff Bezos established guidelines as instructions for employees, and to stave off mediocrity.)
 
따라서 많은 직원들이 마음을 크게 먹고 아직 그들이 가능성의 표면조차 건드리지 못한 상태임을 절실히 느끼는 일이다. 이를 한 마디로 줄인다면 우리말로는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고 영어로는 ‘모험 없이 아무것도 얻을 수없다 (Nothing ventured, nothing gained)’가 되리라. 참으로 인생은 모험이고, 사랑은 모험 중의 모험이어라.
 
그러니 ‘코로나’를 포함해서 세상에 우리 모두가 깊이깊이 감사하지 않을 일이 어디 있을까. 우리 개개인마다 각자의 시원(始原)부터 생각해 보리라.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생일, 그것도 엄마 혼자 산고를 치른 날을 축하하지만, 그 이전 엄마 아빠가 함께 사랑을 나누며 즐거워하다가, 다시 말해, 생명의 음악(音樂/淫樂)을 통해, 엄마 몸속에 잉태된 ‘임신일(Conception Day)’을 축하할 일 아닌가.
 
우리 모두 각자가 하나같이 하늘의 별처럼 많은 정자 중에서 선택받은 황태자 정자가 난자와 결합해서 탄생한 새 별들이 아닌가. 그 이후로 우리가 숨 쉬고 살아온 순간순간이 더할 수 없이 기적 같은 축복의 연속이 아니었나. 또 그러니 우리 각자가 언제나 감사할 일이, 경이로움을 느낄 일이 어디 한둘인가.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하늘의 별보다 많지 않은가. 우리가 삶을 살면서 흔히 느끼는 실망 또는 절망이란 것이 우리 기대에 못 미쳤거나 미칠 가능성이 없어 보일 때 느끼게 되는 감정이고 이런 실망감 또는 절망감으로 인해 불행해지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 실망감이나 절망감을 미리 예방하는 것이야말로 묘책 중의 묘책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 기대치(期待値)를 낮춤으로써, 더 바람직하기는 더이상 내려갈 곳 없는 맨밑바닥 부터 출발하는 것이리라. 그러면 항상 기대보다 웃도는 결과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언제나 어떻든 매사가 놀랍고 감사할 일뿐 아니랴.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라지만 우리 모두 삶이라는 산을 한 발짝 한 발짝씩 오르는 흥분과 자극, 스릴과 쾌감, 그리고 가슴 뿌듯한 성취감까지 느낄 수 있지 않은가.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햇빛이 나면 나는 대로, 별빛이 반짝이면 반짝이는 대로, 산천초목과 더불어 춤추고 기뻐할 일 아닌가. 천둥과 번개마저도 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황홀지경이 아니겠는가. 무엇이고 없을 무(無)보다는 있다는 존재(存在) 자체가 기적 이상이 아닌가 말이어라.
 
어디 그뿐이랴. 일체개공(一切皆空)을 주장하는 공사상(空思想)은 불교를 일관하는 교의 또는 사상을 말하는데, ‘공(空)’은 산스크리트어 ‘순야타 (Sunyata)’ 비어있음을 번역한 것으로, 인간을 포함한 일체 만물에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일체의 존재를 상의상대 (相依相待) 서로 의존하는 연기(緣起)의 입장에서 파악, 일체의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을 배격한 무애자재(無礙自在), 곧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即是色)이고,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이며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라고 중생의 미견(迷見)으로 보면 미망(迷忘)의 주체인 번뇌와 각오(覺悟)의 주체인 보데가 딴판이지만 깨달은 눈으로 보면 두 가지가 하나이고 차별이 없으며 열반에도 열반의 모양이 없어서 온전히 하나라고 하지 않는가.
 
몇 년 전 미주판 한국일보 오피니언 페이지 ‘환경과 삶’ 칼럼 ‘내 마음의 명왕성’이란 글에서 수필가 환경 엔지니어 김희봉 씨는 이렇게 우주의 섭리를 이해한다.
 
“태양계의 끝, 햇빛은 스러지고 별들만 숨 쉬는 곳, 불 꺼진 변방의 간이역처럼 홀로 떠 있는 우주의 섬, 그 외로운 명왕성에서 기척이 왔다. 지난주 미국의 우주 탐사선 뉴호라이즌스호가 근 10년을 날아 근접한 명왕성에서 사진을 보내온 것이다. 2006 년 태양을 등지고 날아간 무인선이 보내온 첫 영상엔 놀랍게도 커다란 하트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달 표면의 계수나무처럼 명왕성엔 하트가 선명했다. 명왕성이 보낸 연서(戀書)였다.
 
알다시피 우주의 가장 큰 법칙은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다. 우주의 별들이 수없이 명멸하고 원자의 수가 증감해도 총량 에너지양은 변하지 않는다. 또 있다. 빛의 속도나 만유인력 상수(常數), 전자의 전하 등도 변하지 않는다. 우주의 법칙은 작은 눈으로 보면 모든 게 변하나 큰 눈으로 보면 하나도 변하지 않는다. 조물주의 섭리도 그럴 것이다. 그 섭리를 이해하고 탐험선의 운행에 운용하는 것이 과학이요. 그 섭리를 인간관계에 적용하는 것이 사랑일 것이다.”
 
옳거니, 그렇고 말고, 여부가 있으랴! 우주처럼 시작도 끝도 한도 모를 무궁무진한 사랑으로 태어나 사랑으로 숨 쉬다 사랑으로 돌아갈 삶에서 이 사랑이란 경이로움의 극치에 우리는 무궁무진 감사할 일뿐이어라. 이 사랑의 불꽃을 고두현 시인은 ‘만리포 가다가’ 발견한다.
 
만리포 사랑
 
당신 너무 보고 싶어
만리포 가다가
 
서해대교 위
홍시 속살 같은
저 노을
 
천리포
백리포
십리포
 
바알갛게 젖 물리고
옷 벗는 것
보았습니다.
 
장석주 시인은 이 사랑의 불꽃 때문에 ‘세상은 살 만한 것이다’라고 한다.
 
“사는 게 진절머리난다면 천리포 만리포 가다가 서해대교 위에 멈춰 서서 홍시 속살 같은 타는 노을을 보라! 저 노을이 만물에게 바알갛게 젖 물리는 모습을 보라. 자연은 젖을 물려 만물을 길러낸다. 해는 아침에 뜨고 저녁엔 서쪽으로 지는데, 이 해의 은총 속에서 식물들은 꽃을 피우고 사람은 사랑을 하며 아기들을 낳고 산다. 괴테는 태양 속에 존재하는 신(神)의 빛과 생산 능력을 숭배한다고 말했다. 여전히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는 이들이 있고, 도라지밭에서는 도라지꽃이 피고 감자밭에서는 감자알들이 커간다. 세상은 살만한 것이다.”
 
2015년 미국에서 출간된 책 두 권이 오늘의 우리 시대상을 잘 관찰하고 진단한다. 그 하나는 ‘과소평가되고 있는 인간: 놀라운 기계들이 결코 알지 못할 것을 아는 우등생 인간들(Humans Are Underrated: What High Achievers Know That Brilliant Machines Never Will)’로 저자 조프리 콜빈(Geoffrey Colvin, 1953 - )은 현재 컴퓨터가 인간이 해오던 일들을 인간보다 더 신속 정확하게 훨씬 더 능률적으로 수행하게 되어 인간을 도태시키고 있지만 절망할 일이 아니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된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지성 아닌 감성으로 서로를 돌보고 보살피는 인간관계를 맺는 일이란다. 기술적인 면은 기계에 맡기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하는 일에 치중하면 된다는 얘기다.
 
또 하나는 ‘자신과 영혼: 이상옹호론(Self and Soul: A Defense of Ideals)’인데 저자 마크 애드믄슨(Mark Edmundson, 1952)은 이렇게 관찰하고 진단한다.
 
“서구 문화는 점진적으로 더욱 실용적이고 물질적이며 회의적으로 진행되어왔다. 그러나 (석가모니나 예수 같은) 성인 성자들은 의미 있는 자비심 충만한 삶을 추구한다. 재화를 획득하고 부(富)를 축적하노라면 인간의 참된 도리에서 벗어나게 된다. 성스러운 삶이란 욕망 이상의 인류를 위한 희망이다. 이것이 일찍부터 생각하는 인간으로서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만족감이다. (Culture in the West has become progressively more practical, materially oriented, and skeptical,…(like Buddha or Jesus) The saint seeks a life full of meaningful compassion. The acquisition of goods, the piling up of wealth, only serves to draw force from his proper pursuit. The saint lives or tries to live beyond desire. Even early on, as they enter the first phase of their lives as thinkers, they’ll have one of the greatest satisfactions a human being can have.)”
 
이 두 권의 책 내용을 내가 한 마디로 줄여보자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건 ‘사랑’이란 말이다.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으랴. 자연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게 곧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고, 나 자신을 사랑할 때 내가 진정 행복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영어의 사자성어(四字成語) ‘love’는 우리말의 이자성어(二字成語) ‘사람’과 ‘사랑’이라는 동음동의어(同音同意語)가 돼야 하리라.

[이태상 칼럼] 무한긍정 백일몽 3제(題)

​“행복이란 문제가 없는 게 아니고 어떤 문제에든 대처(對處) 해결(解決)하는 능력(能力)이다. Happiness is not the absence of problems, it’s the ability to deal with them.”

-작자 미상
 
“네 삶을 사는 두 가지 방식과 태도가 있을 뿐이다. 하나는 세상에 기적이란 없다고, 또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는. There are only two ways to live your life. One is as though nothing is a miracle. The other is as though everything is a miracle.”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
 
“(촛/등) 불을 들고 가는 아이 보고 그 불을 어디서 가져왔느냐 물었다. 아이가 이 불을 혹 불어 끄더니 말했다: ‘자, 이제 말해 보세요. 불이 어디로 갔는지’… 이 세상은 3일이다: 어제는 어제 있었던 모든 것과 함께 사라졌고, 내일은 네가 볼 수 없을지도 모르며, 오늘만 네 것이니 오늘을 만끽하라. I saw a child carrying a light. I asked him where he had brought it from. He put it out, and said: ‘Now you tell me where it is gone’… The world is three days: As for yesterday, it has vanished, along with all that was in it. As for tomorrow, you may never see it. As for today, it is yours, so work in it.”

-바스라의 하산 (옛 무슬림 학자 AD 641-728)
 
1. 어떻게 낙천주의자 초인(超人) 코스미안이 될것인가
니체는 우리 모두 나그네가 되라고 한다. 그것도 어떤 목적지를 향해 가는 여행객이 아닌 나그네 말이다. 왜냐하면 인생의 최종 목적지란 없기 때문이다. 니체는 또 이렇게 말한다.
 
“너 자신을 위한 높고 고상한 목표를 세워라. 그리고 그 목표를 추구하다 죽거라.”
 
이 말은 성취할 수 있는 이상은 이미 이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아닌가. 니체가 이상주의자라면 에픽테토스는 현실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고대 그리스의 노예 출신으로 스토아학파 철학자인 에픽테토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내가 죽어야 한다면 당장 죽겠다. 그러나 좀 있다가 죽으라면, 난 점심부터 먹을 것이다. 점심때가 되었으니까. 죽는 일은 그다음이니까."

영화 대사 하나가 떠오른다.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이 1811년에 쓴 소설 ‘이성과 감성’을 각색해 만든 미국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From Prada to Nada (명품에서 쪽박 인생으로)’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베벌리 힐스의 부유한 가정에 살던 노라와 메리 자매가 갑작스러운 부친의 사망으로 빈촌에 사는 외숙모 집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어떻게 사느냐고 묻자 노라는 이렇게 말했다.

“아시겠지만, 나는 바퀴벌레처럼 어디서든 잘 살 수 있어요.”

아! 이처럼 큰 그림에서 보자면 매사는 사소한 일이다. 그리고 양면이 있으며, 모든 것이 경이롭고 아름다울 뿐이다. 이상주의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현실주의자가 될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 사항이겠지만, 동시에 둘 다 됨으로써 낙천주의자가 될 수 있다. 이런 낙천주의자가 다름 아닌 코스미안이리라.
 
“말하면 없어진다. Explaining something makes it go away.” 미국의 삽화작가 에드워드 고리(Edward Gorey, 1925-2000)가 생전에 남긴 말이다. 이는 말만 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성과가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글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문인이고, 그림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화가라면, 소리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음악가다. 그러면 삶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 그것도 사랑으로 삶을 사는 사람은 뭐라 해야 할까?

니체는 우리 모두에게 “너 자신이 되라. Become who you are!”고 했다. 이는 ‘초인(Übermensch)’이 되라는 뜻이다. 그러면 그가 말하는 ‘초인’은 어떤 사람일까? 사람을 가리키는 한자어 인간(人間)은 ‘인생세간(人生世間) 곧 사람이 사는 세상을 의미한다. 이는 천계(天界)와 하계(下界) 사이에 인간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니체의 ‘초인(超人)’이라는 말 속에는 우리가 지상에 머물다 몸은 헌 옷을 벗어 버리듯 땅속에 묻거나 화장해 태워버리더라도, 우리의 심혼(心魂)은 하늘로 비상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지 않은가.
 
이것은 바로 우리 모두 ‘코스미안(Cosmian)’이 되라는 말이어라.

1. How to Become an Optimist-U” bermensch Cosmian
Friedrich Nietzsche (1844-1900) urges us to be wanderers,
 
“though not as a traveler to a final destination: for this destination does not exist.”

Nevertheless, young Nietzsche instructs:
 
"Set for yourself goals, high and noble goals, and perish in pursuit of them.”
 
This must mean that what can be achieved cannot be your ideal. Doesn’t it?
If Nietzsche is an idealist, Epictetus (50AD-135 AD) may be called a realist. A version of the story by the Ancient Greek Stoic philosopher, who was born a slave, it goes:

"I have to die. If it is now, well, then, I die now; if later, then now I will take my lunch, since the hour for lunch has arrived-and dying I will tend to later.”

I recall what Nora says in ‘From Prada to Nada’ - a 2011 American romantic comedy based on Jane Austin(1775-1817)’s 1811 novel ‘Sense and Sensibility’- when the spoiled sisters Nora and Mary have to move in with their Aunt Aurelia in East L.A.’s Boyle Heights after their world of wealth and privilege in Beverly Hills crashes, following their father’s sudden death.
When asked how she is doing, Nora replies:
 
"Well, you know, like a cockroach I can accommodate anything and thrive anywhere."

So, perhaps, one can say that when looked at from the big picture, everything is trivial, has two sides, and just beautiful and wonderful.

Although to be an idealist or a realist is one’s choice, at the same time, by combining the two, one can become an optimist. 

Such an idealist is a Cosmian.
 
Edward Gorey (1925-2000), the American writer and artist noted for his illustrated books was quoted as saying:

“Explaining something makes it go away.”
 
I’d interpret this as to mean that just the words alone without action are in vain.

If those who draw in letters are writers, those who write in drawings are artists, those who paint in sound are musicians, what should we call those who draw, paint, and write in living, especially those who live in loving?

Nietzsche challenges us “to become who you are.” He must be urging us to be ‘Übermensch’. What kind of man would it be?

Man, ‘인간’ in Korean and '人間' in Chinese characters, is the abbreviation for '인생세간' in Korean and '人生世間' in Chinese characters, the world where s/he lives between ‘천계(天界) meaning the heavenly world’ and ‘하계(下界) meaning the nether earthly world.

If so, then, there must be the clear message in Nietzsche’s Übermensch that one has to soar/sail into the Sky/Sea of Cosmos, after a short stay on earth, leaving one’s shell of body behind in dust or ashes.

That’s the way to become what we are, Cosmians!
 
2. 어떻게 불사조(不死鳥) 선구자(先驅者) 코스미안이 될것인가
 
2020년 미국 대선은 민주당 후보 조 바이든과 카말라 해리스가 46대 대통령과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아직도 도널드 트럼프가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대선 결과는 결정된 상태이다. 이 시점에서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1913-1994)이 남긴 말 좀 음미해보리라.

'패배를 당할 때 사람은 비로소 제 약점을 파악하고 앞으로 그 어떤 패배에도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성공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된다. 매사가 순조로​울 ​때는 누구나 제가 얼마나 강한지 모른다. 역경에 부닥쳐 봐야 자기 자신도 갖고 있는지 모르던 힘을 발휘하게 된다.'

"A man is not finished when he's defeated. He's finished when he quits."

"I can take it. The tougher it gets, the cooler I get."

"Only if you have been in the deepest valley, can you ever know how magnificent it is to be on the highest mountain."

"The finest steel has to go through the hottest fire."
“잊지 마라. 언제나 너의 최선을 다할 것을.  절대로 낙담, 낙심하지 말고, 좀팽이, 좀생이가 되지 마라. 더러 사람들이 너를 싫어해도 네가 그들을 미워하다 너 자신을 네가 스스로 파멸시키지 않는 한 그들은 너를 이길 수 없다. Remember, always give your best. Never get discouraged. Never be petty. Always remember, others may hate you. But those who hate you don't win unless you hate them. And then you destroy yourself.”

“결코, 절대로 고개를 떨구지 말고, 포기하고 주저앉아 슬퍼하지 마라. 다른 길과 방법을 찾을 일이다. 비가 와 날이 궂다고 기도하지 마라. 해가 나 날씨가 좋을 때도 네가 기도하지 않거든. Never let your head hang down. Never give up and sit down and grieve. Find another way. And don't pray when it rains if you don't pray when the sun shines.”
“역사적으로 가장 큰 영예는(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평화를 이룩한 사람으로 기록되는 것이다. The greatest honor history can bestow is the title of peacemaker.”
오래전 내가 젊었을 때 본 영화 '장고(Django)가 생각난다. 1960년대 이탈리아산​(産)​ 서부활극인 이 영화는 할리우드산 서부극과 대조적인 ​'마카로니/스파게티 웨스턴'이라 불린 변종​(變種)으로 ​세르지오 코르부치(Sergio Corbucci 1927-1990) 감독의 1966년 작인데 말을 타고 황야를 달리는 대신 관을 끌고 다니는 프랑코 네로(Franco Nero, 1941 -​ ​) 주연의 반영웅(anti-hero) 장고의 최종 결투장면이 압권(​壓卷​)이었다.

한 패거리 악당들 말발굽에 총잡이 손목이 무참히 짓밟혀 더이상 총을 쏠 수 없게 된 장고는 복수심에 불타 절치부심(切齒腐心) 끝에 어느 한 묘지에서 그 악당들과 재대결, 방아틀을 떼낸 기관총을 못 쓰게 된 손 대신 팔목으로 쏴 대면서 처절한 복수를 하고 마는 것이었다. 

내가 어려서 들은 이야기들 가운데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다.
일정시대 학병으로 끌려나간 어떤 한국의 한 젊은이가 일본군 병사로 어느 동남아 섬에서 전투 중 심한 총상을 입고 패잔병으로 낙오되어 피를 흘리며 밀림 정글 속을 기어가다 표범이 달려들자 그야말로 죽을 힘을 다해 뒹굴면서 싸운 끝에 이 사나운 표범의 아가리를 찢어 죽이고 살아났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젊은 날 코리아타임스 기자로 취재한 화재현장에서 내가 직접 목격한 장면으로 불이 난 집안에 살던 가족 중에 몸 성한 사람 들은 다 불에 타죽었는데 폐병 결핵 말기로 각혈을 하며 몸져 누워 있던 환자 한 사람만 불길을 뚫고 뛰쳐나와 산 실화가 있다. 

아, 그래서 우리말에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라고 하는 것이리라.
미국의 석학(碩學) 철학자 교육가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도 이렇게 일깨워 주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고 난 자신들의 가능성의 극히 제한 한정된 범위 안에서만 살고 있다. 자신들의 가능한 의식과 영혼의 아주 작은 분량만 사용하고 있다. 마치 자신의 온몸 기관 중에서 새끼손가락만 까딱거릴 줄 아는 사람처럼 말이다. 다시 말해 많은 사람들이 각자 타고난 잠재능력을 몇십 몇백 분의 일도 다 써보지 못하고 만다는 뜻이다.
Most people live in a very restricted circle of their potential being. They make use of a very small portion of their possible consciousness, and of their soul's resources in general, much like a man who, out of his whole organism should get into a habit of using and moving only his little finger.”
참으로 큰 역경과 난관에 부닥칠 때 이에 걸맞는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면 큰 불행과 위기일수록 그 더욱 큰 축복과 좋은 기회로 삼을 수 있지 않으랴. 깊은 골짜기에 내려가야 다시 높은 산을 오를 수 있고 절망의 깊은 밤을 지나야 동트는 희망의 새 아침을 맞을 수 있듯이.
 
저 아라비아 사막에서 수백 년을 산 다음 화장하는 불더미/불덩이에 올라 스스로 분신(焚身), 타죽었다가 바로 그 잿더미 속에서 새로 태어나 되살아난다는 이집트 신화(神話)에 나오는 신조(神鳥) 피닉스(Phoenix)같이 말이어라.
 
우리말에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있다. 현대 서양의학에서도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라고 약성분이 전무한데도 약품이라고 믿으면 그 어떤 약 못지않게 약효가 있다고 한다. 이것은 곧 믿음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앙을 통해 어떤 신을 발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반대로 신앙을 포기함으로써 좀 더 참다운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럴 때 신앙이란 마음 문을 닫느냐 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독선과 아집으로 편애하는 신답지 못한 신을 믿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몇 년 전 한국에서는 ‘없다’ 시리즈가 유행했었다. ‘예수는 없다’, ‘붓다는 없다’를 비롯해서 ‘한국은 없다’, ‘한국사는 없다’가 있었는가 하면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깨달음은 없다’라는 책까지 나왔었다. 어떤 목사님이 쓰신 ‘교회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는 역설적으로 ‘예수는 없다’가 되었다. 이쯤에서 스님이 ‘절이 죽어야 부처가 산다’는 책을 쓸 법도 하다.
하버드대 펠레그리노 석좌교수이며 미국 학술원 회원으로 20여 권의 과학 명저를 저술해 미국 국가과학메달과 국제생물학상을 수상한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 1929 - )의 저서들은 한마디로 ‘생태계 없이는 인간도 없다’로 요약될 수 있다.

인도의 과학, 기술, 생태계연구재단의 대표로서 개발과 세계화란 명목으로 자연을 약탈하고 있는 서구 문명을 비판해 제3세계의 노벨상인 ‘올바른 삶을 기리는 상(Right Livelihood Award)’ 수상자인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 1952 - )의 저서들은 ‘자연=여성, 과학=남성’으로 해석, 이성과 합리성 맹신이 생태 재난의 주범이라며 직관과 포용의 여성성 회복을 주장한다. 과학은 어머니인 대지를 죽였으며 ‘과학(남성)이 죽어야 자연 (여성)이 산다’는 것이다. ‘자연 없이 인류문명도 없다’는 결론이다.
이른바 ‘사랑의 복음(福音)’을 전파한다는 세계의 모든 종교인들이 교리를 초월해서 사랑으로 대동단결하기는커녕 수많은 교파로 갈라져 파쟁만 일삼아 왔으니 이교도와 이방인 정벌에 나선 십자군이 또한 분열하여 혼란을 일으킨 나머지 진정한 사랑의 개념을 타락시키고 말았다.

‘종차별주의, 곧 인간이 다른 생물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은 인종 차별주의(racism)이며, 시대착오적인 사상이다. 잡아먹거나 실험대상으로 삼기 위해 동물을 사육하는 것은 노예제도만큼이나 나쁜 짓이다.’ 이것은 20년 전(1999년) 프린스턴대학에서 생물 윤리학 강좌를 맡도록 선임되어 물의를 빚었던 피터 싱어(Peter Singer, 1946 - )교수가 ‘동물 해방(Animal Liberation, 1975)’이란 그의 저서에서 주장하는 말이다.

이제 서력기원 21세기를 맞은 지도 벌써 20년이 지났는데도 자연환경은 물론 정치 사회 경제 환경이 점차 악화되고 있다. 하지만 동트기 직전이 가장 깜깜절벽이 아니던가. 결코 비관하고 절망만 할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만시지탄을 금할 길 없으나 근년에 와서 소위 선진문명 사회의 동향이 180도로 급선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서양사람들이 동양으로 눈을 돌려 우리 동양 고유의 오래된 노장철학과 원효의 화쟁사상 그리고 단군의 홍익 인간사상 등에서 인류의 구원과 진로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수백 년 동안 서구사회는 월등한 물질문명의 힘으로 전 세계를 식민지로 지배하고, 지구생태계를 파괴, 인류의 자멸을 재촉해 왔다. 이제 더 이상 기존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 즉 정복의 대상으로서의 자연관, 착취대상으로서의 대인관(對人觀), 아전인수식(我田引水式)의 선악관(善惡觀)이나 흑백 이론(黑白理論)의 이분법(二分法)으로는 그 해답이 없음을 깨닫기 시작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종교, 사상, 철학, 과학, 의학, 문학, 예술 각 분야에서 서양의 선각자와 석학들이 이구동성으로 마치 종전의 주기도문 외우듯 물아일체(物我一體), 피아일체(彼我一體), 물심일여(物心一如)를 읊조리는 것을 종종 듣고 보노라면 우리는 절로 회심의 미소 완이일소(莞爾一笑)하게 된다.

얼마 전 서양의 세계적인 과학자와 천문학자들이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평생을 두고 과학과 천문학에 전념해온 결과로 얻게 된 결론이 동물, 식물, 광물 가릴 것 없이 ‘생명은 하나(unity of life)’라는 것과 또 하나는 본질적으로 별의 원소와 인간의 원소가 같은 물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이 만고의 진리를 우리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알았는데 말이다.
여름밤 시골 마당에 돗자리 깔고 누워 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을 보면서 ‘별 하나 나 하나’라고 노래하지 않았나.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믿어왔듯이 우리가 죽으면 별이 되는 것이리라.
 
이미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우리는 더 이상 로봇이나 노예처럼 재미없고 흥미롭지 않은 일을 하지 않고 흥미진진(興味津津)하고 신나게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으니!
 
그렇다면 어떤 삶이 창조적인 삶일까. 말할 것도 없이 각자가 각자의 가슴 뛰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각자의 그리움을 그리고 쓰는 그림과 글, 각자의 혼(魂)불을 지피는 노래와 춤을 미치도록 죽도록 부르고 추어보는 일이리라.
 
우리 각자는 각자의 선구자(先驅者)가 되는 것이리. 

칼릴 지브란(Kahlil Gribran1883-1931)의 우화시집(寓話詩集) <선구자(The Forerunner: His Parables and Poems, 1920> 제1장(章) ‘선구자(The Forerunner)’ 같이 말이어라.
 
선구자(先驅者)
 
그대는 그대 자신의 선구자이고, 그대가 지어 쌓아 올린 탑(塔)은 그대의 큰 자아(自我) 대아(大我)의 초석(礁石)일 뿐. 그리고 그 주춧돌조차 또 다른 하나의 토대 기초가 되리.
 
나 또한 나 자신의 선구자리오. 해 떠오르는 아침에 내 앞에 길게 드리우는 그림자는 한낮에는 내 발밑에 밟힐 테니까. 하지만 내일 아침이면 또 다른 그림자가 내 앞에 드리웠다가 또 낮 열두 시가 되면 내 발아래로 거두어지리.
 
우리는 언제나 우리 자신들의 선구자였고 언제까지라도 그러하리. 우리가 거두었고 앞으로 또 거둘 것들은 다 아직 일구어 갈지 않은 논밭의 씨앗들이리오. 우리가 논밭이고, 농부이며, 농작물을 거두는 수확인(收穫人)인 동시에 수확물(收穫物)이리오.
 
그대가 안개 속에서 방랑(放浪) 유랑(流浪)하는 욕망(欲望) 욕심(欲心) 욕정(欲情)이었을 때 나 또한 그러했다오. 그러면서 우린 서로를 찾아 헤매다 우리의 열망(熱望)에서 꿈들이 태어났다오. 그리고 이 꿈들은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무한한 것들이리오.
 
그리고 그대가 삶의 떨리는 입술에 떠오른 소리 없는 말이었을 때 나 또한 그 입술에 말 없는 소리였다오. 그러자 삶이 우리를 내 뿜자 우리가 억겁의 세월을 타고 내려와 어제의 기억들과 내일의 그리움으로 우리 가슴 뛰기 시작했다오. 어제는 정복된 죽음이고 내일은 추구(追求) 고대(苦待)한 탄생(誕生)이니까.
 
그리고 이제 우린 하늘 우주의 손에 있다오. 그대는 그의 오른손에 있는 해로, 나는 그의 왼손에 있는 땅으로. 그렇지만 그대가 나에게 햇빛을 비춰준다고 해서 그대의 햇빛을 받아 쬐는 나보다 그대가 나보다 낫거나 나 이상은 아니리오.
 
그리고, 해와 땅, 우리는 우리보다 더 큰 해와 땅의 씨앗일 뿐. 언제까지나 우리는 시작일 뿐이리오.
 
그대는 그대 자신의 선구자로 내 뜰 문 앞으로 지나치는 낯선 나그네이리.
 
그리고 비록 나무들 그늘에 앉아 내가 움직이지 않아 보여도 나 또한 나 자신의 선구자리오.
 
THE FORERUNNER
You are your own forerunner, and the towers you have builded are but the foundation of your giant-self. And that self too shall be a foundation.

And I too am my own forerunner, for the long shadow stretching before me at sunrise shall gather under my feet at the noon hour. Yet another sunrise shall lay another shadow before me, and that also shall be gathered at another noon.

Always have we been our own forerunners, and always shall we be. And all that we have gathered and shall gather shall be but seeds for fields yet unploughed. We are the fields and the ploughmen, the gatherers and the gathered.

When you were a wandering desire in the mist, I too was there a wandering desire. Then we sought one another, and out of our eagerness dreams were born. And dreams were time limitless, and dreams were space without measure.

And when you were a silent word upon life’s quivering lips, I too was there, another silent word. Then life uttered us and we came down the years throbbing with memories of yesterday and with longing for tomorrow, for yesterday was death conquered and tomorrow was birth pursued.

And now we are in God’s hands. You are a sun in His right hand and I am earth in His left hand. Yet you are not more, shining, than I, shone upon.

And we, sun and earth, are but the beginning of a greater sun and a greater earth. And always shall we be the beginning.
You are your own forerunner, you the stranger passing by the gate of my garden.

And I too am my own forerunner, though I sit in the shadows of my trees and seem motionless.
3. 웃을 일: 웃지 못하겠거든 죽어버려라 (Funny Stuff: Laugh or Die)
 
제44대 미국 대통령 (2009-2017) 버락 오바마(Barack Obama)의 연설 담당 선임 비서관으로, 주로 대통령의 농담과 유머 수석 작가로 불린 데이빗 리트(David Litt)는 그가 24세였던 2011년 백악관에 입성해 2016년 1월까지 근무하다 2월 유머 전문 코미디 제작사 ‘웃기지 못하면 죽어버려라(Funny or Die)’로 자리를 옮겼다.
 
그 당시 뉴욕타임스 등 미국 뉴스매체들은 이 소식을 전하면서 앞으로 미국의 정치풍자가 더 재미있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뿐만 아니라 역대 성공한 미국 대통령들은 모두 국민을 웃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하나같이 ‘웃기는 대통령’이었다.
 
1996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밥 돌(Robert J. Dole, 1923 - ) 전(前) 상원의원은 2000년 ‘위대한 대통령의 위트(Great Presidential Wit: Laughing (Almost) All the Way to the White House)’란 책을 펴내고 역대 대통령 순위를 유머감각을 기준으로 매기기도 했다.
 
1위에 오른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이 ‘두 얼굴의 (two-faced) 이중인격자 (二重人格 者)’란 비난에 “내게 얼굴이 둘이라면, 이 못생긴 얼굴을 하고 있겠습니까? If I were two-faced, would I be wearing this one?”라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처럼 유머의 진수(珍羞/珍秀/眞髓)는 남의 약점을 이용하지 않고 자신의 약점을 들춰내 스스로를 낮추고 망가뜨리는 데 있는 것이리라. 요즘 미국에서 유행하는 농담 10개만 읊어 보자.
 
-남자 눈사람과 여자 눈사람의 차이는? [눈 불알]

-수학자(數學者)의 무덤 비석에 뭐라고 적지? 
[그는 이렇게 죽을 걸 계산 안했다]

-여자친구 말이 나는 백만 명 중에 하나라는데 그녀의 문자 메시지를 보니 맞는 말이더라.

-대학에서 여러 해 공부한 끝에 마침내 PhD(Doctor of Philosophy) 철학박사가 됐다. 사람들은 나를 피자집 배달원(Pizza Hut Delivery-man)이라 부른다.

-비관론자: “사정이 더이상 나빠질 수는 없어!”

-낙관론자: “아니야, 물론 더 나빠질 수 있어!”

-한 나체 여인이 은행을 털었다. 그런데 아무도 이 여자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하더라.

-정치인들과 기저귀의 공통점은? 
[둘 다 규칙적으로 갈아야 한다]

-꼬마 조니가 아빠에게 묻는다.

“바람은 어디서 오는 거야?”

“난 몰라.”

“개는 왜 짖어?”

“난 몰라.”

“지구는 왜 둥글어?”

“난 몰라.”

“많이 물어봐서 귀찮아?”

“아니야, 아들아. 물어봐. 안 물어보면 넌 영원토록 아무것도 모를 거야.”

“할아버지, 왜 생명보험 안 드셨어요?” [내가 죽으면 너희들이 다 정말 슬퍼하라고]

-내가 북한 친구에게 북한에 사는 게 어떠냐고 물었지. 그가 말하기를 

“불평할 게 없이 다 좋다”고 하더군.
 
자, 이제 우리 진지하게 생각 좀 해보자.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또 아무리 힘들고 슬픈 일이 많다 해도, 안 태어난 것보단 낫지 않은가. 그러니 너무 심각해할 것 없이 모든 걸 웃어넘길 수 있지 않으랴. 웃다 보면 모든 게 다 깃털처럼 가볍고 구름처럼 덧없으며 바람처럼 스쳐 가는 게 아니던가. 어차피 꿈꾸듯 하는 게 인생이라면 말이다.
 
매년 해가 바뀌게 되면 사람들은 서로 새해에 복 많이 받아 행복 하라고 인사를 나눈다. 그런데 행복이란 무엇일까? 찾는 것일까 아니면 창조해야 하는 것일까. 이미 있는 복이라면 찾아 발견해야 할 것이고 없는 것이라면 새로 창조해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복 중에 재미와 웃음과 사랑 이상의 그 무슨 복이 있을 수 있을까. 행복의 동의어로 ‘재미’를 좀 생각해보자. 

어른들도 소꿉놀이하는 아이들처럼 산다면 그 얼마나 더 우리가 삶을 즐길 수 있고 세상이 그 얼마나 더 좋아질 수 있으랴!
 
하나의 롤모델이 생각 난다. 미국의 사우스웨스트 항공사 공동창업자 겸 회장이었던 허버트 데이빗 켈레허(1931-2019) 씨가 남긴 말 몇 마디 우리 함께 음미해 보자.
 
“우리에겐 전략적인 계획이 있다. 행동(行動)으로 실시(實施)한다는 거다.”

“작게 생각하고 작게 행동하면, 우린 커질 것이다. 크게 생각하고 크게 행동하면 우린 작아질 것이다.”

“사랑으로 묶인 회사는 공포로 운영되는 회사보다 튼튼하다.”

“우리가 구직 지원자에게서 찾는 가장 중요한 자질은 그의 유머 감각이다.”
 
포춘 잡지는 그를 ‘하-하- 사제(司祭)’라 불렀고’ ‘사우스웨스트 항공기 타기는 얼마나 재밌는 일인가!’가 사우스웨스트 항공사의 구호(口號)가 되었다. 

이 항공사의 기내 방송 내용 한두 개를 예로 들면 이런 것들이다.
 
“우리 비행기 기내 서비스를 못마땅해하실 때를 대비해 6개의 비상 출구가 있습니다…”

“우리 비행기에는 끽연(喫煙) 섹션이 날개 위에 있습니다. 그 날개 위에서 현재 상영 중인 영화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입니다.”
 
살아생전 이렇게 재미를 내는 최고 경영자(CEO)는 엘비스 프레슬리나 부활절 토깽이 복장을 하고 직원들을 즐겁게 해주었고, 다른 회사와의 분쟁을 두 회사 회장 간의 팔씨름으로 해결하기도 했다.
 
아, 이처럼 국가 간의 분쟁도 지도자들 사이에 이런 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뿐더러 올림픽 경기에서도 너무도 야만스럽고 살벌하게 난폭한 권투나 레슬링 경기 대신 ‘사랑놀이’ 종목이 새로 생겼으면 그 얼마나 더 흥미로울까 상상해 본다.
 
3. Funny Stuff: Laugh or Die
 
At the beginning of each year, people exchange greetings, wishing each other a happy new year with many blessings.
 
What’s happiness? Is it something to be found or to be created? If blessings are already there, they should be found. If not, they should be created. Isn’t it?
 
Amongst blessings, what would be more blissful than fun, laughter, and love?
 
Let’s consider ‘fun’ as a synonym of happiness. If we grown-ups too can enjoy life like children playing house, how much better our world will be!
 
We can find a role model in Herbert David Kelleher(1931-2019), the co-founder, later CEO, and chairman emeritus of Southwest Airlines until his death on January 3, 2019.
 
Here are a couple of Herbert Kelleher quotes:
 
“We have a strategic plan. It’s called doing things.”
 
“Think small and act small, and we’ll get bigger. Think big and act big, and we’ll get smaller.”
 
“A company is stronger if it is bound by love rather than by fear.”
 
“What we are looking for, first and foremost, is a sense of humor,” 
Kelleher- dubbed by Fortune magazine as the “High Priest of Ha-Ha-” has been quoted as saying.
 
And consequently, it’s been recited: “How Fun Flies At Southwest Airlines!”
 
To cite a couple of in-flight announcements, for example:
 
“In case you are displeased with our service, there are six exits aboard this aircraft…”
 
“There is a smoking section, over the wing, or that the movie that was currently playing was, 'Gone with the Wind.'”
 
The fun-loving CEO Herb Kelleher himself dressed up as Elvis Presley or the Easter bunny, just to keep his employees smiling, or settled a business dispute with an arm-wrestling contest.
 
Wow, how I wish all the disputes between nations could be settled like this between the leaders and how I fancy there would be love-making games in the Olympics instead of the most barbaric, cruel and violent sports called boxing and wrestling. Ha-Ha-.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1230ts@g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9.17 10:05 수정 2021.09.1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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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