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강의 인문으로 바라보는 세상] 참, ‘드라이’ 하군요!

신연강

사진=신연강


헤어지고 나서 그 의미를 곰곰이 새겨보았다. 돌아와서 사전을 들춰보니, 드라이(dry)의 의미는 마른, 건조한, 무미건조한, 좀 더 나아간다면 멋없는’”등의 부정적 뉘앙스를 가진 단어였다. 물론 일상에서 많이 쓰는 드라이(젖은 머리카락을 말릴 때 쓰는 미용 도구-drier), 또는 말리다라는 동사 내지는 세탁소에서 행하는 세탁(유기용제로 때를 빼내는 세탁의 한 방식)의 의미도 있다.

 

어쨌거나 상대방이 툭, 던지는 말이 , 드라이하군요.”라면 내색은 안 해도 불쾌하면서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젊은 시절 지인의 소개로 한 이성을 만났을 때의 얘기이니 오래된 일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예기치 않은 질문이나 갑작스러운 일에 지금처럼 능수능란하게 대응하는 수완도 부족했고, 상대를 설득하거나 즐겁게 해주는 언변도 분명 부족했을 것이다. 그런데 청춘남녀의 만남에서 불붙기는커녕, “, 드라이하시네요.”라며 내뱉은 이 한마디는 마른하늘의 소나기처럼 작은 불씨 위에 찬물을 확, 끼얹고 말았다.

 

오래된 일임에도 그 일이 생각나는 것은 드라이(dry)’ 하다는 그 부정적 의미가 오랫동안 잊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단어를 생각하며, 그 대척점에 선 말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아마도 생기 있는, 훈훈한, 인간적인등의 말이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절기가 절기인 만큼 추석을 맞게 되었다. 민족 고유의 명절, 추석이 갖는 의미가 그런 것 아닐까. 모든 존재가 존재가치를 발휘하는 행사.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하나하나 소중한 존재로서 고유한 가치를 가진다. 혹 누구 하나라도 오지 않거나, 못 오거나, 빠진다면 그의 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그를 향한 모두의 관심과 궁금함이 커간다. 그러니 추석은 가족공동체가 함께 사랑을 나누고 우애를 확인하는 집단의식으로서 뿐만 아니라, 개개의 존재가 고유한 존재가치를 지니는 구성적 측면에서도 의미가 각별하다.

 

숲속의 한 거목이 커다란 그늘을 드리우면 그 아래 많은 작은 나무들은 영향을 받는다. 다양한 종들이 광합성을 하지 못하고 시들어 사라지기 마련이다. 생태계의 다양성이 사라지는 측면에서 이 상황은 드라이한 경우가 된다. 사회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다양한 부분이, 많은 작고 활기찬 것들이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사회는 한, 두 개의 큼직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시선이 온통 그곳으로 향한다. 대권 관련한 뉴스가 블랙홀이 되어 모든 것을 빨아들일 때, 사회의 키 작은 다양한 구성요소들이 햇빛조차 받지 못하고 사그라진다. 승자독식(Winner takes all) 구조가 낳은 폐해임을 알면서도 그러한 성향이 커져만 가고 있다.

 

한편 법률 만능주의’, ‘정책 만능주의로 인해 모든 것을 법으로 규정하고 다스리고자 하는 성향은 없는지 돌아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법 집행과 정책 입안이 결코 나쁠 리 없지만, 모든 것을 법과 정책집행으로 해결하고자 하면서, 이에 대한 심리적 의존과 사회적 의존이 인간적 정으로 훈훈했던 사회와 공동체를 뒷전으로 밀어내고, 주체로서의 사회적 존재를 피동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오래전 어느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다. “‘좋은 정치란 물 흐르듯 하여, 무슨 일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듯 행하여지는 통치라는 내용이었다. 정치는 큰 물줄기를 물 흐르듯다스리면 된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정치로 올인하는 세상이며, 정치 이슈가 모든 것을 압도하고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는 상황이며, 모든 뉴스가 정치로 종결되고, 대권을 향한 사람과 만남과 사건만이 눈에 들어오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정치가 이 사회의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이 상황이야말로 드라이한 것 아니겠는가.

 

모두 왕의 말들 All the King’s Horses이라는 소설이 떠오른다. 신비평 학파의 일원이었던 로버트 펜 워런(Robert Penn Warren)이 쓴 모두 왕의 신하 All the King’s Men과 유사한 제목을 가진 커트 보네것(Kurt Vonnegut)의 단편소설이다.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열두 명의 병사와 임지로 향하던 주인공 켈리 대령은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아시아 내륙에 불시착하게 된다. 포로가 되어 게릴라 두목 피 잉과 체스를 하면서 켈리 대령은 감추어졌던 자기 모습을 보게 된다. 늘 정의롭고 효과적으로 전쟁을 수행했다고 확신했던 켈리는 자신의 과업이 언제나 타인의 희생을 전제로 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이데올로기 대립, 전쟁의 윤리, 죽음과 희생, 선택과 결정의 문제를 제기하며, 체스 게임을 통해 이를 풍자하고 비판한다.

 

왕과 그의 모든 말들이 사는 세상. 왕이 모든 말을 끌어간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변화된 세상에서는 왕이 말을 끌고 갈 뿐만 아니라, 말이 왕을 끌고 가는 시대가 되었다. 떠오르는 변함없는 진리는- 역사는 늘 진실을 드러내고, 현재는 그러한 진리를 삶에 투영한다는 점이다. 블랙홀이 회오리치는 시대에 초원의 말들은 모두 어디 갔을까(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망각된 것일까). 초원 위에 왕과 몇 마리 말들만 달려가고 있다면, 그 세상을 향해 한마디 던진다면, “, 드라이 하군요.”라는 말이 제격이지 않을까 싶다. 푸른 초원에서 크고 작은 여러 말들이 어울려 한가히 풀을 뜯는 광경, 불어오는 바람에 생기 있고 윤기 나는 갈기를 날리며 신명 나게 달리는 모습을 꿈꿔본다.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박사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9.25 11:08 수정 2021.09.25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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