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의 두 얼굴
이웃에 표리부동한 두 얼굴이 있다면 과연 우린 친해질 수 있을까? 어느 날 아버님께서 아들의 유학 생활을 보려고 일본에 왔었다. 그런데 무도복을 입고 나타난 날 보고 아연실색을 하였다. 일본 문화를 깊이 알려고 사무라이 전통 무술을 배우는 중이었다.
“당장, 보따릴 싸라. 너 칼잡이 문화를 배우려고 일본에 왔니?”
“일본 문화를 깊이 알려면 사무라이 무도를 배워야 한답니다.”
“못난 놈, 검술을 배워서 뭘 해? 일본에선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어. 당장 유럽이나 미국으로 가거라.”
아버진 내가 사무라이 무도에 열중하는 것을 보고 몹시 실망하셨다. 이렇게 일본에 있다간 좀스러운 인간이 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을 굳히고 미국으로 가서 큰 세상 물에서 놀라고 하였다. 처음부터 아버진 나의 일본 유학을 싫어했다. 세계적인 안목을 쌓으려면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서 공부해야 하는데 협소한 일본으로 왜 유학을 하느냐고 처음부터 불만스러운 감정을 노출하였다.
“아닙니다. 일본은 미국보다 선진적이고 실리적인 지식을 안겨 주는 나라입니다. 난 일본이 선진 대국이 된 정신문화를 배워 내 뜻을 이룰 것입니다.”
아버지를 설득시켰다. 그런데 일본에 와서 내 모습을 보고 몹시 실망하셨다.
“당장 짐을 싸래도.”
아버지는 너무 분노하였다. 그러나 나는 일본 무도에 매료되었고 일본의 정치문화에 호감을 갖고 있었다. 특히 개화기에 왕정복고를 주장하면서 개혁을 이루어 낸 메이지 정부의 통치 철학에 매료되어 있었다. 무서운 개혁을 이룩한 메이지 유신 문화가 부러웠다. 우리는 왜 그런 개혁을 못 했을까? 그 문화는 소수 엘리트가 서양을 보고 와서 이룩한 개혁이었고 그 정신적인 바탕 위에 일본은 부국이 되었다. 내가 일본을 연구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미소로 혼을 빼다.
고종을 앞세워 갑신정변(1884년)을 시도한 급진 개혁파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서광범, 홍영식 등에 의한 근대화 개혁은 민비와 대원군이 말아 먹었다. 시도는 좋았으나 조급했고 일본을 모델로 하려 했던 잘못이 있었다. 그보다 앞서서 대원군은 임오군란(1882년)이란 무모한 개혁을 놓고 청나라와 일본을 번갈아 끌어드린 민비와 대원군의 갈등이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일본에 제압당하였고 결국은 일본에 먹히는 우를 범했고 민비와 대원군이 고종의 개혁을 묵살하면서 일본의 명치유신 정부에 기회를 제공하여 정한론이 대두되어 조선은 망하고 말았다. 한국이 일본과 같은 개화와 개혁을 통하여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기회를 어설픈 개혁파의 반란이 실패 원인이 되었지만 위정자인 민비와 대원군이 막후에서 다툰 결과가 나라를 빼앗겼다.
아무튼, 일본이 문화를 연구하다가 일본의 모든 것에 매료되었고 특히 소설가가 된 후 일본은 다분히 환상적인 나라를 만들겠다는 꿈이 있었다. 그래서 일본의 문학에도 깊이 빠져 있었다. 세계적인 일본의 근대 소설가인 수세키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일본 근대 사상의 기조를 이루는 개혁 사상을 만들어주었다. 따라서 그들을 존경하며 그들의 문학작품을 탐독하였고 작가의 사회적 참여와 기여에 감동하여 작가들이 사명감으로 국가개혁에 동참했다.
명치 개혁의 근저를 이룬 일본 문학에 심취하면서 세기말에 일본이 성공적인 국가를 만든 배후에 그런 훌륭한 작가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대 시성인 키타하라 하쿠슈 와 그 문하생들의 역할은 대단했다. 그런데 나의 친일본적인 사고가 반일본의 사고로 변한 것은 갑신정변과 임오군란의 역사를 주도한 혁명가를 대했던 일본인의 두 얼굴이었다. 눈앞에선 간도 쓸개도 빼 줄 것 같으면서 돌아서선 남의 간을 도려내는 일본인의 이중인격을 알고부터였다.
미소에 담긴 정한론
정한론의 본색은 유신헌법에서 노골화되었고 노골적인 정한론(1873년)은 조선의 식민지화였다. 그 시작은 조선의 황족을 일본의 천황 밑에 두는 작전이었다. 일개 대마도 도주의 자식을 황족으로 위장시켜 조선의 공주와 결혼시켜 덕혜옹주를 정신병자로 만들어 버리는 끝장 드라마를 연출하였다. 출세욕에 급급하여 반성 없는 소오 다케유키의 비인간적인 행동에 회의를 느끼면서 환상적인 일본 문화에 관한 환상이 깨지기 시작하였고 문화의 깊은 내막을 들여다보니 그들의 문화가 아무것도 없는 껍데기란 것을 알았다. 작고 섬세하게 교육으로 길들고 국가관이나 예의범절이 의식적으로 왜곡된 가식화한 교육으로 거짓을 진실로 만들고 그런 정신적 바탕 위에 모방과 왜곡과 변형으로 일관된 일본 정신문화 문물이 꾸며져 있음을 알았다.
그것은 껍질만 화려할 뿐 속살은 아무것도 없었다. 성급하고 저돌적이며 간사스럽고 극단적인 성격은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일본인의 이중적 본심이라는 것, 독창성이나 창의성은 전혀 없으면서 모방과 도용에 귀재라는 것, 무지한 섬사람들이 서양의 문물이 부러워서 오직 교육이란 기술로 위장된 모방의 철학을 갖고 있었다. 그 이중인격은 일본의 정한론자들이 펴서 한국을 속령 화하고 한민족 말살 정책에서 소매 속에 칼을 감추고 미소를 짓는 얼굴로 위협을 가하였다. 소매 끝에 칼날을 숨기고 꽃을 내미는 미소의 본심을 알면서 철저한 반일 사상을 갖게 된 것이다.
축소지향 속의 일본문화
이번 올림픽에서 세계 여론은 ‘일본은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생활면에서 중세를 사는 사람들이다.’라고 지적하고 비꼬았다. 사실 모든 것이 작다. 그런데 그것을 자랑하고 미화한다. 말과 행동과 생활이 다르다는 것이다. 일본인은 시기 질투심이 강하고 모방 창조기술이 뛰어난 민족이다. 그래서 어느 것이 일본 것인지 모른다. 그런 여러 가지 상황들이 나를 혼란 시켰다. 일본은 자기 문화가 없다. 일본 문화라고 하는 것은 실제가 아니고 가식으로 만들어낸 모방이 실제처럼 환상의 일본을 꾸려가고 있었다.
일등 선진국이라고 자청하는데 진정 그들에게서 선진국이란 주창이 민망스러울 정도로 편협하고 소규모다, 주거시설은 쪽방촌에 사는 것 같다. 게다가 교활하고 영리한 척 무지하고 잔꾀 많은 민족이라는 것이다. 동양적 예의범절이나 유교적 정신토대가 없는 섬 고양이 같은 교활함으로 하이 하이 답하는 인사말로 자기들만큼 도덕적이고 양심적이고 예의가 바른 민족이 없다는 가식과 가장으로 포장된 나라였다. 모든 것이 거짓과 가식으로 위장된 문화를 가지고 자기 것이라고 자랑하고 내세우는데 실속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그런 탐욕으로 점철된 시기와 남의 것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야만적인 침략 근성이 일본 정신이라는 것이다.
마침내 그것은 정한론으로 대두되어 우릴 괴롭힌 근대사를 만들었다. 일본에 와서 일본의 속살을 알기란 쉽지가 않다. 그것은 그들이 모든 것에 철저한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것을 알게 된 것은 축소지향의 진실과 소매 속에 숨긴 칼의 미소를 알게 된 뒤였다.
[김용필]
KBS 교육방송극작가
한국소설가협회 감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마포지부 회장
문공부 우수도서선정(화엄경)
한국소설작가상(대하소설-연해주 전5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