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구 칼럼] 불청객

문경구

 

한시도 몸을 가만히 두지 않는 성격의 나는 말 그대로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몸이 쑤시냐는 말을 곧잘 듣곤 한다. 그 말은 움직일 수 있다는 건재함이란 애착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사실은 심하게 아팠던 지난 시간들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서일 뿐 나는 본디 보릿자루 형이다. 그런 나를 염려해 주고 가끔 핀잔을 주는 지인의 말도 그의 자신이 건강하다는 의미일 거라고 늘 생각한다.

 

자네도 참 못 말리는 사람이네. 은퇴했으니 먹고 사는데 걱정은 없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러면 된 것 아닌가, 무슨 큰 영화를 보겠다고 이것저것 바쁜 척을 해 대는가. 인생이란 자네가 계획한 것만큼 매사가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봄에 씨 뿌려 여름에 가꾸던 청춘이 엊그제 같고 가을에 추수하여 거두어들이는 재산도 꿈을 꾸어 내 버린 듯 덧없이 사라지는 게 아니던가. 밖에 눈이 쌓이기 시작하면 꼼짝달싹 못 하는 인생의 겨울을 살아야 하니 그때는 푹 쉬라는 뜻인 걸 모르겠는가. 이제는 배 따습고 신간 편하면 장땡이라는 말년 운을 즐기는데 도리가 아닌가. 그것이 바로 건강한 자연의 섭리이자 인생이라는 말이니 그것을 거역하지 마세. 마치 내가 하늘의 뜻을 거스르며 사는 죄인 같은 사람이네

 

이런 지인의 조언이 벌써 몇 번째인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오늘 그분의 말을 더 듣고 강하게 가슴에 새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간절한 기도를 한다. 팔순의 나이에도 쩌렁쩌렁하고 어느 한구석도 쉬워 보이지 않는 법전 같던 그 지인이 며칠 전에 심혈관 질환으로 쓰러져 아직 병원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생각에 잠겼었다. 완쾌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인가.

 

언제 다시 내게 더 많은 잔소리를 해줄 것인가 막연한 마음만이 간절했다. 그 지인이 꼭 집어 말하던 사계절 중에 하나의 섭리를 선택한 것이 병고를 만난 일인 것일까. 계절이 오고 갈 때마다 갖는 심한 우울증이 병을 가져다줄 것처럼 느끼는 나에게 지인은 풀 수 없는 문제를 던져 주었다.

 

매일 지인의 병세를 물을 때마다 대답은 들을수록 마음이 태산처럼 무겁다. 차도가 있긴 하나 뾰족한 희망이 없는가 보다. 지인에게 일어난 하루아침의 일은 갑자기 내가 겪는 일처럼 불안하게 느껴졌다. 그럴 때면 누구라도 의지하고 싶은 생각에 갑자기 친구의 건강이 궁금해진다. 밭에서 거둔 농작물을 교회 제단에 바치고 사람들과 나눈다는 행복한 소식을 전해 줄 때마다 그의 건강과 나의 건강을 물물교환하는 일로 위안을 갖곤 한다.

 

그 지인처럼 건강하던 사람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현실이 무섭다. 인터넷 영상에서 건강 뉴스를 보면서 느끼게 되는 그 불안과 우울함이 계절을 구분하지 않고 찾아든다.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 간 또 다른 환자가 하는 말은 자식들 힘들게 하지 않고 떠나기만을 소원한다고 했다. 가족이 있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아무도 힘들게 할 일이 없다는 것부터 큰 위안과 치료에 대한 교훈을 얻는다.

 

가족이 있어도 병마 앞에서는 아무도 손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병의 근원을 만드는 우울증을 피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위안을 그렇게 찾고 있다. 그 방법은 책장에 쓰여진 대로 다음 페이지 속에 적혀진 글을 찾는 일이 아닌 언젠가 받아들여야 할 병마를 겪는 사람들로부터 배우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병마로부터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나는 그렇게 찾는다.

 

혼자인 나를 우습게 보고 찾아오는 불청객부터 그렇다. 우울감이라고 불리는 그 불청객은 툭하면 끼어든다. 오늘 더 우울하게 하는 것은 멀쩡하게 인사를 나누던 그 지인에게 찾아온 병고 소식 때문인 것 같다. 어디를 가나 인생에게 찾아오는 가장 두려운 병마는. 한두 번에 끝날 일이 아닌 결국은 세상 끝으로 끌고 가는 불청객이다.

 

그 안하무인의 불청객을 잘 달래어 생로병사의 문제들을 수월하게 풀어가는 지혜를 찾을 수는 없는 것일까. 내일이란 어떻게 찾아올 거라는 것에 대한 큰 기대보다 어제처럼 오늘도 건강한 모습이었으면 하는 것이다. 암탉은 매일 알을 낳기 위해 하루에 한 번씩 생리한다고 한다. 매일 통증의 고통으로 사는 게 암탉이다. 심지어는 미진한 존재처럼 여기는 실험실의 생쥐도 그 병사를 피할 수 없다.

 

세상 모든 만물은 암탉의 고통처럼 이루어졌기에 밤이면 별들이 그렇게 빛나는가 보다. 그 우주 속에서 나를 병마로부터 지키는 성찰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커피를 마시고 난 빈 잔에 넋을 놓고 보는 이 순간 그 지인은 병마와 싸우고 있다. 어떤 거부라도 하고 싶은 이 순간에도 유리창 밖으로는 어제 시간과 꼭 맞춘 버스는 스쳐 지나간다. 그 버스에 앉은 내가 깊은 생각으로 내려야 할 운명의 정거장을 깜빡 잊고 놓쳐 버린 나를 생각해 본다.

 

다음 정거장에서도 내리지 못하고 되돌아오는 길을 영원히 되풀이하며 살 수는 없는 걸까. 되풀이가 된다 해도 꼭 한번은 내리는 수밖에 없다. 어느 정거장에서 내리든 내 손에 쥔 한 가지 건강 하나만큼은 절대로 버스에 두고 내리면 안 된다. 그것이 사는 날까지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간절함이라 하겠다.

차창 밖 자카렌다의 화려한 신비함도 암탉의 끊어낼 수 없는 생리의 아픔도 카페에서 내가 비운 커피잔도 모두가 나를 위한 소중한 존재들이다. 모두 내려놓아도 건강은 갖고 꼭 지켜내야 한다. 그러니까 그 일은 신을 타협시키는 일밖엔 없는 일이다.

 

생로병사의 이야기에서 잠시 떠나 낯선 도시로 가서 나를 기다려 줄 또 다른 모습의 풍경들을 만나면 마음이 새로워질 것 같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냐고 물으면 나의 건강한 운명을 위하여 타협하고 싶다고 도움을 청할 것이다.

 

 

[문경구]

화가

수필가

코스미안뉴스 칼럼니스트

문경구 kimurgin@hot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10.12 10:31 수정 2021.10.12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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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