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12일자 미주 중앙일보 오피니언 [기고] 칼럼《인생의 풍랑을 넘는 ‘호깅’과 ‘새깅’》필자 이보영 전 한진해운 미주본부장은 '파도타기' 묘법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지금처럼 해양과학이 발달하기 전까지 바다는 인류에게 오랜 기간 신비와 공포의 대상이었다. 푸른 하늘 아래 수평선과 잔잔한 코발트 색의 바다는 신비로운 대자연으로 느껴지지만, 비바람과 폭풍이 몰아칠 때 넘실거리는 거대한 파도는 엄청난 공포로 여겨졌다.
바다와 육지의 비율은 7대 3으로 바다가 육지보다 2배 이상 넓다. [바다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바다를 다 안다고 하는 사람도 없다.]
해양학자들은 바다는 기후, 지구 온도, 궁극적으로 모든 형태의 생명을 지속시키는 환경을 조성하지만 인류가 탐사를 통해 바다에 대해 알고 있는 정도는 겨우 10% 미만이라고 한다.
육지에서 보는 높은 산을 바다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산 같은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간다. 태풍이나 쓰나미, 해저 화산폭발, 계절풍 등에 따라 발생하는 파도는 보통 100m가 넘는 거대한 산을 겹겹이 이룬다.
역대 가장 큰 파도는 1958년 7월, 알래스카의 리투야 만(Lituya Bay)에서 발생했다. 당시 파도의 높이는 무려 520m였다.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380m이니 얼마나 높은 파도였는지 상상이 안 된다. 파도는 해저에서 발생한 지진(7.9리히터)으로 인근의 거대한 빙산이 바다로 낙하함으로 그 충격과 쓰나미가 겹쳐서 발생한 것이었다고 한다.
쇳덩어리의 무거운 대형 선박이 물 위에 뜨는 원리는 물이 떠 받치는 부력이 배의 중력보다 크기 때문이다. 선박은 철판과 보강재를 효율적으로 조립한 매우 복잡한 구조물이며, 이동하는 최대 구조물이기도 하다. 이동할 때 해면의 불규칙한 파도에 의해 횡동요(Rolling), 종동요(Pitching)로 기울어지기 때문에 배는 복원력을 갖추게 된다.
배는 항해를 할 때 수면 위의 상단 선체는 바람의 저항을 받고, 수면 아래로 잠긴 하단 선체는 파도의 저항을 받는다. 이런 저항을 되도록이면 적게 받기 위해 배는 앞쪽(船首)을 유선형으로 만든다. 돌고래가 거센 물결의 저항에도 고속으로 유영하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
배가 높은 삼각파도의 정점, 즉 파정(波頂, Crest)에 배의 중심이 걸치게 되면 파도의 부력에 의해 배의 허리 중심이 위로 휘어지게 되고, 배의 선수와 선미는 아래로 처지게 된다. 이런 현상이 돼지의 등모양처럼 위로 구부러졌다고 해서 호깅(Hogging)이라고 한다.
반대로 배가 두 개의 삼각파도 사이에 끼면, 즉 파저(波底)에 배의 중심이 걸치게 되면 선수와 선미는 각각 위로 올라가고 배의 중심 허리는 아래로 처지게 된다. 배의 중앙 부분이 축 늘어진 상태라고 해서 새깅(Sagging) 이라고 한다. 이렇게 선박은 파도를 넘을 때, 호깅과 새깅을 유연하게 반복적으로 작용하도록 만들어진다. 이 현상이 잘 유지되지 않으면 배는 허리가 부러져 침몰하고 만다.
인생 항로에도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불규칙 파도가 반복된다. 때로는 좌우로, 때로는 앞뒤로, 때로는 상하로 흔들리며 살아간다. 선박처럼 호깅과 새깅을 유연하게 적응해야 삶이 침몰하지 않을 것이다.
시대는 시간에 따라 변하고, 인생도 시간에 따라 계속 변한다. 내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느끼게 된다. 한결같은 내 고집과 경험만으로 부딪칠 것이 아니라 강약, 고저의 리듬으로 호깅과 새깅의 원리를 활용하면 인생의 풍랑을 잘 넘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2020년 4월 23일자 코스미안뉴스에 올린 우생의 항간세설 옮겨본다.
[항간세설] 우주 삼라만상 아니 나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어라
요즘 전 세계 온 인류 거의 모든 사람이 실업자로 전락했거나 재택근무 또는 자가격리로 ‘독방 감옥’ 신세가 된 처지에 우리 모두 깊이 되새겨 음미해볼 만한 말 한두 마디 인용해보리라.
“혼자 있을 때 외롭다면 너는 벗을 잘못 사귄 거다.
(If you’re lonely when you’re alone, you’re in bad company.)”
-프랑스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 1905-1980)
“혼자이거든 게으름 피우지 마라.
(If you are solitary, be not idle.)”
-영국 작가 새뮤엘 존슨(Samuel Johnson 1709-1784)
‘사랑은 아프다(Love hurts)’라고 한다. 누구든 뭣이든 사랑해 본 사람은 다 동의하리라. ‘아름다움은 슬픔이다(Beauty is sorrow)’란 말과 같은 뜻이리라. 더 좀 사랑할 수 없기에 가슴 아프고, 사라질 수밖에 없기에 너무도 슬프지 않을 수 없다.
몇 년 전 한국에서 ‘징비록’이 시청자들의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징계할 징(懲),’ ‘삼갈 비(毖),’ ‘기록할 록(錄)’은 시경(詩經) 소비편(小毖篇)의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 (豫基懲而毖役患)’는 구절에서 따온 책 이름이다. 이 책은 1592년 (선조25년)에서 1598년까지 7년에 걸쳤던 임진왜란의 원인과 전황을 도체찰사 겸 임진 지휘자였던 서애(西厓) 유성룡이 전쟁의 수난사를 생생하게 기록한 사료다. 그는 난(亂) 후 파직된 뒤 국난 극복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자기반성의 지침서로 이 글을 집필했다고 한다.
사초(史草)란 역사 편찬을 위해 기록해 놓은 자료들로 왕과 신하들의 선악을 낱낱이 기록하고 시비를 적은 것이기 때문에 필화(筆禍)의 위험이 따랐으리라.
2015년 중국 전한시대 역사가이자 ‘사기(史記)’의 저자인 사마천(司馬遷)의 눈으로 본 우리 한국 사회를 그린 ‘사마천 한국견문록’을 펴낸 이석연 전(前) 법제처장은 7월 22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마천에 주목한 이유로 사마천은 바른말을 한 죄로 궁형(宮刑)에 처해지는 기구한 자신의 처지에 빗대어서 올바른 사람이 승리하고 대접받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하면서도 노력하며 좌절하지 않은 사회적 약자, 민중들을 역사의 전면에 내세운 최초의 학자라고 평가하고 사기는 3,000년 간 중국 역사를 다뤘지만 인간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며 사기의 예가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여러 문제점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했다.
불교에서 ‘인생은 고해(苦海)’라고 한다. 세상살이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이 고해의 파도를 타는 사람이다. 하지만 비유가 아니고 문자 그대로 1970년대부터 평생토록 파도 타는 삶을 살아온 사람이 2015년 펴낸 책 ‘미개한 야만적인 나날들: 파도 타는 삶(Barbarian Days: A Surfing Life)’이 있다. 이 퓰리처상 (Pulitzer Prize) 수상의 개인적인 메뫄(memoir) 실록(實錄)의 저자 윌리엄 피네간(William Finnegan, 1952 - )은 그의 가족이 미국 캘리포니아주(州)에 살 때 어린 시절부터 파도타기 서핑(surfing)을 시작했고, 타기 신나는 큰 파도를 찾아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아, 아프리카, 남태평양 등 세계 각지로 파도 타러 다녔다. 그에게는 평생에 걸친 휴가가 아닌 순례 여정이었다.
닥치는 대로 아무 일이나 해가면서 숙식을 해결하고, 여가엔 어느 한 고물상에서 권당 1전(cent)씩 주고 구입한 수백 권의 지성 교양 잡지 ‘뉴요커(The New Yorker)’를 탐독하면서 여행을 계속했다. 이 잡지 뉴요커에 실린 글들을 읽으면서 다 잘 쓴 글들이지만 많은 글들이 ‘글을 위한 글,’ 다시 말해 글 장난 같이 느껴졌다며, 필자가 직접 체험하고 경험한 삶에서 우러난 것들이 아니고 수박 겉핥기식으로 그냥 ‘아는체하는 것’들이었다고 한다.
그 자신도 청소년 시절부터 글을 쓰고 싶었지만 이런 아는체하는 글을 쓴 사람들이 그의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어 출간된 그의 책 주인공은 세계 각지에서 그가 직접 타본 ‘파도들(waves)’ 이고 이 파도들을 그가 수백 개의 다른 앵글 각도의 시각으로 본대로, 온몸으로 부닥쳐 본대로 정확히 기록했을 뿐이란다. 그러자니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으나 그 짜릿짜릿한 스릴과 쾌감은 무엇하고도 비할 데가 없단다. 현재 68세인 그는 뉴요커 필진의 일원이면서 아직도 세계 각지로 서핑 다닌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미개하다는 어떤 야만인들은 개명했다는 자본주의자들보다 훨씬 더 인정(人情)이 많고 나눌 줄 안다, 단언컨대. (Some barbarians are excellent at sharing ㅡ better than capitalists, certainly.)”
이와는 달리 바다가 아닌 육지에서 서핑보드(surfing board) 대신 두 발로 파도가 아닌 바람을 타는 사람이 있다. 201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부터 뉴욕까지 5200km의 나 홀로 대륙횡단 마라톤 일기를 당시 미주판 중앙일보에 연재해온 강명구(당시 58세) 씨는 7월 23일자 23회를 끝으로 연재를 마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순간순간 밀려오는 외로움과 후회를 물리치면서 달리며 때론 육신의 영역을 넘어, 정신의 영역을 넘어, 신(神)의 영역 언저리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가는 곳마다 풍광이 다르고 사람 사는 인심이 다르고 대지에 흐르는 기(氣)가 다른 3,150마일 길을 달리면서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졌고 사색하고 자신을 위로하는 시간도 충분한 시간을 가졌다. 지금까지 달려온 길은 최고의 속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앞질러가야만 생존이 가능한 선착순의 길, 오로지 일등만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승자독식(勝者獨食)의 길이 아니다. 천천히 달리면서 주위의 많은 것들을 마음에 담는 수확의 길이었고, 나 자신을 위로하고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를 위로하는 길이었다. 그 길에는 편협한 이데올로기나 종교는 결코 없었다. 평화롭고 풍요로운 환경에서 끝없이 세상을 달리고픈 꿈이 피어났고 환경에 대한 뚜렷한 인식이 새겨졌다.
나 자신을 위해 처음으로 온전히 바쳐진 4개월의 고귀한 시간이었다. 새로운 자신과 떨리는 맞선자리였다. 나와 교제를 하면서 나는 결코 나약하지도 않고, 상상도 하지 못한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으로 완벽하게 통제력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이모작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탯줄이 필요했다. 하늘과 대지에 연결하는 탯줄을 스스로의 배꼽에 연결하여 모든 낡은 에너지를 방전시킨 자리를 채우고 싶었다. 그래서 꿈꾸고 상상하고 한 발짝 한 발짝 묵묵히 내디디면서 실행에 옮겼고 이제 드디어 대장정의 끝자락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대기의 냄새도 뭔가 친숙하다. 비록 몸은 난파선에서 구조된 사람처럼 야위었지만 강인한 생명의 의지로 충만하게 되었다.”
다음은 지난 2018년 12월 1일 연합뉴스 최재훈 기자가 파주에서 보도한 기사다.
1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는 평화통일을 기원하며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한 평화 마라토너 강명구(62) 씨 환영행사가 있었다. 강 씨는 지난해 9월 1일부터 남북평화통일을 염원하며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출발해 중앙아시아와 중국 등 16개국을 1년 2개월 동안 매일 40km씩 달렸다. 당초 북한을 통과해 귀국하려 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11월 15일 강원도 동해항으로 입국한 강씨는 DMZ를 따라 달려 이날 목적지인 임진각에 도착했다. 강 씨는 행사에서 “여러분과 함께 신의주를 넘어가서 다시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달리기를 하며 평양시민들과 손을 마주 잡고 달릴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염원한다”고 말했다.
강명구 씨에게 큰 박수를 보내면서, 파도를 타든 바람을 타든 구름을 타든 또는 무지개를 타든 우리 모두는 각자 대로 각자의 순례 여정에서 우주 삼라만상(森羅萬象), 아니 대우주(大宇宙)의 축소본(縮小本)인 소우주(小宇宙) 나 자신과 영원(永遠)의 축소본인 순간(瞬間)순간 대화(對話)하는 것이어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