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구 칼럼] 내가 지은 세상

문경구

 

여행하면서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하늘과 땅, 둘은 아주 특별한 사이 같다. 바람을 몰고 다니는 하늘이 그 기운을 잠시 내려놓으면 땅은 겸허히 감싸 안는 장관을 내게 보여준다. 서로 떨어져서는 그 의미가 없는 바늘과 실 같은 존재이다.

 

폭풍을 불러오고 땅에 부는 바람도 잠재우는 둘만의 나눔은 환상적이다. 자연이라는 재질을 바늘과 실로 어느 한쪽도 기울어짐이 없는 작품을 땅 위에 펼쳐 놓는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나는 여행을 할 때마다 그 하늘과 땅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캐내지 못해 안달하는 나만의 상상이 따로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거나 운전을 하며 느끼는 피곤함도 잊은 채 온갖 아름다운 풍경들에 취하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낯선 길에서의 타인을 만나는 인연을 갖기도 하고 발길이 멈춰선 자리에서 뜻밖에 접하면서 즐기는 음식의 절묘한 맛도 만끽해 가면서 그들만의 세상 여행으로 일상의 피로함을 잊는다.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풀며 나누게 되는 이야기도 평범한 일상의 여행 속 전부이다. 그러나 나는 마냥 평범하고 맹목적인 그런 여정에 맥을 놓고 기다리는 것이 싫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낮 동안의 여행만이 아닌 나만의 밤으로의 여행을 기대하는 일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세상에 갇혀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는 길로 떠나는 여행이다. 풀숲에서 울어대던 벌레들마저도 달과 별이 꺼버린 등불로 꼼짝할 수 없는 밤이다. 그런 밤을 위해 운 좋게도 비의 선물까지 내리기 시작한다면 창밖은 온통 어둠의 축재다.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창밖은 여행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 된다.

 

곧이어 칠흑 같은 밤을 위해 번개가 치기 시작하고 벼락이 땅으로 내려꽂히는 광경을 넓은 호텔 유리창 화면 속에서 보게 된다. 하늘과 땅의 만남을 보는 여행에서 가장 빛나는 우주의 신비로움이다. 나는 그 밤이 새기 전에 신을 접촉하는 영혼의 길을 찾아 떠나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혼탁했던 이쪽 세상을 벗어나 투명한 빛줄기를 따라 저쪽 세상으로 가는 길이다. 차분히 우주를 적시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는 여행은 그 밤이 마지막 밤이 된다고 해도 후회가 없다. 나는 어둠 속에서 잠들어 있던 나를 남겨두고 신의 세상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오감을 통해 묻혀있던 숱한 과거의 생각들을 가지고 어둠 속에서 펼쳐지는 다른 세상으로 잠시 다녀오는 것이다.

 

내가 지고 간 세상의 짊들을 모두 펼쳐 놓고 신의 심판을 받는 일이다. 언젠가는 계산해야 할 세상에서 진 빚을 정리하는 일이다. 아픈 몸에 걸쳤던 이승의 옷을 홀가분하게 벗고 저세상이란 본래의 내 자리를 찾아가서 만났던 인연들과 악연의 관계를 보고하고 심판을 받는다. 신의 결정에 따라 다음 세상으로의 처분을 기다리기 전에 먼저 지금이 몇 번째 나의 이 세상의 방문인지 묻고 싶다.

 

그리고 같은 죄로 다시 또 돌아와야 하는지도 묻고 싶다. 창조주에 가까이 다가가면 몇 번을 더 가야 할지 알려줄 것 같다. 등불 하나 없는 밤을 걸어서 도착한 우주에는 이 질문이 없이는 세상 그 어느 존재도 잉태되지 않는다. 이승에서 내가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위해 얼마만큼 나답게 살았는지를 고해성사하는 일이다.

 

그 이유 하나만 알게 된다면 다른 죄의 몫은 간단할 것 같다. 인간이기에 짓고 살아야 하는 죄의 몫을 위하여 나는 어둠을 철저히 의지해야 한다. 간절히 기도하는 이유도 떠나서 살 수 없는 인연과 악연 때문인 것 같다. 본디 어둠을 좋아하던 나는 어둠 속으로 떠나간 악연의 사람들도 만나야 한다. 다시는 악연을 짓지 말고 이승에 머물고 있을 때 어떤 고통도 참아내야 한다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인연과 악연은 바늘과 실로 땀땀이 지어낸 신의 작품인 것이다. 그 모든 인연의 밤을 따라 신에게 다가가서 내가 누구인가를 묻던 숱한 의문도 거기까지이다. 길지 않은 신과의 시간이 새벽 여명을 따라 떠나가고 나는 그 판결문을 들고 남은 세상의 시간을 위해 서둘러 돌아와야 한다.

 

그렇게 짜여진 다음 세상을 위한 나의 꿈같은 시나리오를 잠시 덮어 놓는다. 어젯밤 비바람에 쓸려간 지난날의 기억들은 어제의 몫이기에 잊기에 편하다. 오직 다음날을 맞으며 살아내야 할 남은 시간만이 소중하다. 혼자 걸어온 길에서 세상은 그 깨달음을 내게 주었다. 세상을 녹음으로 가득 채워놓던 여름이 떠나고 핼쑥한 가을 얼굴로 바라보는 세상도 어젯밤에 내가 찾았던 어둠의 세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잊고 기억하며 살아가는 이 세상이다. 나는 천둥과 번개가 어우러지는 자연 속에서 내 영혼을 쉬게 하는 여행 하는 밤이면 좋다. 나 스스로 찾아낸 그 밤에 얼마나 탐욕스러운 하루를 살았는지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은 반복할 수 없는 남은 시간을 위해서다. 밭을 갈아 씨를 뿌리기 위하여 땅 위에 모두를 내려놓는 농부의 모습이 이런 모습일 것 같다는 생각을 늘 한다.

 

농사를 위하여 비를 기다리는 농부도 하늘이라는 운명을 떠나 살 수 없다. 나는 명상의 씨앗을 뿌리며 영혼을 차분하게 정리하는 농부가 되기 위한 삶을 매일 꿈꾼다. 내가 지어 놓은 세상에서 갖게 되는 그 여행은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한 번쯤 떠나고 싶던 여행에서 나를 꿈꾸게 하는 삶의 이야기이다. 내가 지은 세상을 위해 하늘과 땅은 나에게 무언의 약속을 했다.



[문경구]

화가

수필가

코스미안뉴스 칼럼니스트

문경구 kimurgin@hot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10.19 10:50 수정 2021.10.1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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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