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 칼럼] 다이옥신 삼겹살

김희봉

 

메디아는 희랍 신화에 나오는 마술사다. 그녀는 신출 기묘한 마술로 악령을 물리치고 남편을 영웅으로 만든 여장부였다. 또한 죽어가는 시아버지 피를 마술로 갈아 회춘시킨 효부이기도 했다. 그런데 성공한 남편은 배은망덕하게도 메디아를 버리고 왕녀에게 새 장가를 간다.

 

앙심을 품은 메디아는 새 신부에게 결혼 선물을 보낸다. 금은보석으로 장식된 가운이었다. 겉보기엔 화려하지만 이 망토를 입으면 독이 몸속으로 스며들어 서서히 죽게 되는 마술의 외투였다. 더 무서운 것은 왕녀뿐만 아니라 그녀의 몸속에 잉태될 태아까지도 같은 운명을 겪도록 마술을 건 점진살인(漸進殺人)의 드레스였다.

 

점진살인을 메디아의 가운으로 처음 정의한 사람은 레이철 카슨이었다. 그녀는 1962년 기념비적인 환경 서적, ‘침묵의 봄(Silent Spring)’을 썼다. 이 책에서 그녀는 DDT 같은 농약의 가공할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다. 당시 농약은 인간의 식량문제를 해결해 줄 기적의 화학제품으로 주목받을 때였다. 그러나 그녀는 농약이 먹이사슬을 통해 벌레와 새, 물고기, 결국 사람에게까지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것임을 예고했다. 엄청난 선견지명이었다. 지구는 화학약품으로 인해 점진살인 당하고 결국 침묵의 봄을 맞게 될 것이라 경고했다. 이 예견은 케네디 행정부에 농약 대책 위원회를 처음 만들게 했고, 미 환경운동의 효시가 된 것이다.

 

카슨의 경고 후 근 60년이 지난 지금, 그녀의 예언이 적중하고 있다. 지금 지구상에는 무려 13700만 종의 화학물질이 존재한다. 그리고 매일 수백 종의 새 화학제품들이 만들어진다. 이 합성물질들이 메디아의 가운에 묻은 독소처럼 인간들을 하루하루 조여오는 셈이다.

 

1999년 여름, 한국은 다이옥신(dioxin) 파동으로 난리가 났었다. 당시 한반도를 공포에 떨게 하던 두 잡신(雜神)이 여고괴담 처녀 귀신과 다이옥신이라 했던가? 벨기에에서 수입한 돼지 삼겹살에서 다이옥신이 검출돼 시판이 금지된 후 통상마찰까지 빚었다. 당시 없어서 못 먹던 삼겹살을 전 국민이 기피하는 다이옥신 비상이 걸렸는데 지금은 미국 소고기 광우병 괴담처럼 다 잊혀졌다.

 

그러나 다이옥신 공포는 괴담이 아니다. 색과 냄새가 없는 다이옥신은 청산가리의 1만 배나 되는 맹독성이다. 다이옥신 1g을 몸무게 100g인 쥐 1,000마리에 나눠 먹였더니 절반이 죽었다. 게다가 다이옥신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규정한 1등급 발암물질에 환경호르몬이다. 우리 몸에 들어가면, 세포 속 DNA에 침투해 남성호르몬을 감소시키고, 신경체계 파괴, 면역계 기능을 저하시키는 등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태아 때 소량의 다이옥신에 노출되면, 지능 부진, 불임 등의 질환이 성인이 될 때 나타나는 점진살인의 원흉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지구상에 다이옥신이 없는 데가 없다. 하늘, , 바다, . 음식물 어디든지 존재한다. 다이옥신은 플라스틱과 살충제를 태울 때 나온다. 요즘 지구상에 플라스틱 없는 곳이 어디 있는가. 이 때문에 소각장, 화학공장, 화장지 공장 부근의 농장이나 목초지가 다이옥신에 오염되면, 그 풀을 먹은 소나 돼지가 2차적으로 오염된다. 결국 먹이사슬의 맨 끝에 있는 인간들이 고농도 다이옥신 피해자가 되고 만다.

 

다이옥신은 지용성(脂溶性)이다. 그래서 쇠고기나 돼지고기의 비계에 붙는다. 다이옥신의 반감기가 30년임으로 한 세대 동안 없어지지 않는다. 최대 육류 수출국인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95, 뉴욕 대 조사팀은 육류 1g당 다이옥신 11.8pg (피코그램은 1조 분의 1g)을 검출했다. 세계보건기구 하루 다이옥신 섭취 허용량은 성인의 경우 60-240pg 정도. 고기를 매일 먹으면 몸에 해롭다는 결론이다.

 

다이옥신의 폐해가 남의 얘기가 아니다. 섭섭하지만 육류, 어패류 등에서 삼겹살 같은 지방을 떼내고 먹을 수밖에 없다. 또 플라스틱을 남용하는 습관도 달라져야 한다.

 

메디아의 가운은 아내의 호의를 저버린 남편에게 내린 벌이었다. 다이옥신 파동도 자연의 호의를 저버리고 눈앞의 이익을 위해 독성물질을 양산해낸 인간들에게 내린 벌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가장 큰 피해자가 아기와 노약자들이라는 데 있다. 마치 메디아 복수의 피해자가 아무것도 모르는 새 부인과 태아이듯이...

 

침묵의 봄은 이렇게 다이옥신 삼겹살로부터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김희봉]

서울대 공대 졸업

미네소타 대학원 졸업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캘리포니아 GF Natural Health(한의학 박사)

수필가, 버클리 문학협회장

1시와 정신 해외산문상수상

김희봉 danhbkimm@g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11.08 11:42 수정 2021.11.08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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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