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도 일종 신체 단련이요, 운동이라는 것을 나는 어릴 적엔 몰랐었다. 다만 보행은 생존의 필수조건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지난 50~60년대의 중국 동북의 농촌은 교통이 매우 낙후했다. 나는 어린 시절을 한 자그마한 진에서 보냈는데 그때 그곳에는 기차를 내놓고는 기타 교통 수단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썩 먼 길을 내놓고는 거의 도보로 걸어 다녔다. 가까운 길도 걸어 다녔고 좀 먼 길도 걸어 다녔으며 땡볕 아래서도 걸어 다녔고 비바람이나 눈보라 속에서도 걸어 다녔다.
낮에도 걸어 다녔고 어두침침한 밤에도 걸어 다녔으며 평탄한 신작로도 걸어 다녔고 울퉁불퉁한 언덕길도 걸어 다녔다. 꼬불꼬불한 농로도 걸어 다녔고 가파른 산길도 걸어 다녔다. 혼자서도 걸어 다니고 둘이서도 걸어 다녔으며 무리를 지어 걸어 다니기도 했다. 때론 먼 길을 걷다 보면 다리쉼도 많이 해야 되고 때론 허기증이 나서 길옆에 누워 있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걷고 또 걸었다. 걸어 다니는 것은 나의 숙명이었다.
그때 우리가 먹는 것은 보잘것없었고 어떤 때는 배를 불리지 못하고 지어는 굶을 때도 있으며 입은 옷도 남루하고 지어는 살갗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잘 입고 잘 먹고 지어는 영양과잉이 된 지금의 애들보다 더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랐다.
그때 우리는 풍경구가 무엇인지 모르고 공원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걷는 속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맑고 잔잔한 개울물, 뭇새가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주는 수림, 뭇꽃이 만발하고 풀벌레들이 교향곡을 연주하는 무연한 들판은 모두 우리가 걸어가는 길가에 있었다.
걷기도 하나의 운동이요 신체 단련이라는 개념이 선 것은 내 나이 사십이 다 되어 현성(한국의 군 소재지에 해당됨)중학교에 와서 사업을 시작하고부터다. 비록 현성이긴 하지만 그래도 소도시라 교통이 편리하여 문만 나서면 버스요 택시요 하는 데다 길이 좋으니 자전거를 타고도 별로 멀지 않은 곳은 다녀올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 자가용 시대는 아니었지만, 학교에 승용차가 있으니 학교의 일로 외출할 때에는 거의 학교의 차를 타고 다녔다(정년퇴직 전까지 부교장으로 있었음). 그렇게 나는 힘을 덜 들이기 위해 차를 타고 다녔고 편안하기 위해 차를 타고 다녔으며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차를 타고 다녔다.
그러나 이미 어려서부터 걷기에 습관 된 나로서는 다리를 쉬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침마다 학교 운동장이나 집 근처에서 산책하며 거닐었고 저녁 후 학교에 나갈 일이 없을 때는 교외(郊外) 쪽으로 나가면서 산책하였다. 아침 산책하다 보면 신선한 아침 공기로 기분이 밝아지고 정신이 개운해지는가 하면 밥맛도 돌고 저녁 산책을 하다 보면 저녁 먹은 것이 소화도 잘되고 밤 숙면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날마다 견지하였는데 그것이 습관화되었다. 그러다가 10여 년 전부터 걷기운동이 대중화되면서부터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멀리 강변까지 왕복 10리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제일 좋은 운동이 보행이란 것은 오늘날의 보편적인 인식이다. 세계보건기구에서도 보행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운동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인류는 3백만 년의 진화를 걸쳐 원숭이로부터 인간으로 변했는데 인간의 신체 결구는 보행 진화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보행은 가장 간편하고 하기 쉬운 운동으로서 아무런 체육 도구도 필요치 않고 또 돈도 들일 필요도 없는 운동이다.
오늘날 걷기운동은 세계인의 보편적인 운동방식으로 되였는바 지금 북아메리카에서는 8천만 이상 사람들이 걷기운동에 참가하고 있으며 유럽에서는 걷기운동과 도보여행이 날로 현대인의 생활방식으로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걷기운동은 한국에서도 높은 열기를 띠고 있는데 내가 거처하고 있는 집 주위의 학교 운동장이나 공원들에는 저녁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도보코스를 따라 돌며 걷기운동을 하는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이른 새벽에도 걷기운동을 하는 노인들이 많은가 하면 휴일에는 낮에도 걷기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걷기는 육체를 건강한 상태로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걷기는 가장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운동이며, 취미다. 걸을 수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어쩌면 인간이 산다는 것은 바로 이 세상에서 걷기 위해서이리라. 인간은 두 다리로 걷기에 당당하게 걸을 수 있다. 달팽이나 거북이나 뱀처럼 배를 땅에 끌면서 괴상망측하게 기어 다닐 필요도 없고 개나 돼지처럼 네다리로 기어 다닐 필요도 없다.
이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하사한 특수한 은총이다. 인류의 존엄과 고귀함은 바로 두 다리로 걷는 데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오늘 인류는 걷는 것을 부담으로 시끄러움으로 여기고 있다. 기차를 타거나 자동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거나 오토바이를 타는 것으로 보행의 성질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물론 현대화 속도를 반대할 순 없다. 그러나 현대화 속도는 인류의 생명 질량을 담보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인간의 생명 질량에 해가 되는 속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걸음이 줄어들거나 지어 없어지는 것은 우리의 생명 질량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우린 차를 타는 것으로 시간은 절약하였지만 아름다운 사물과의 접촉시간을 줄였다. 우린 산과 멀어졌고 강과 멀어졌으며 들과 멀어졌다. 풀과도 멀어졌고 꽃과도 멀어졌으며 나무와도 멀어졌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될수록 가장 아름다운 사물과 가까이하고 그것과 친근해지며 감싸 안아야 한다. 전야나 초원이나 수림이나 강가나 호숫가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껏 감상하면서 거닌다거나 혹은 가까운 친구나 따뜻한 가족이나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천천히 거닐면서 오손도손 다정하게 얘기를 나눈다는 것은 과연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의 경지가 아니겠는가?
가끔은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하염없이 걸으며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주변의 풍경에 한번 넋을 놓아보자. 가끔은 막힘없는 구름처럼, 거침없는 바람처럼, 도시의 아파트 숲으로, 산과 들과 강으로 외진 늑대처럼 헤매고 걸어보자. 걸으며 보노라면 모든 것이 아름답다. 눈에 보이는 것마다 풍경이다. 길가의 나무 한 그루도, 풀 한 포기도, 꽃 한 송이도…. 걸으며 듣노라면 모든 것이 감미롭다. 새들의 지저귐 소리도, 풀벌레의 울음소리도, 돌돌돌 구르는 시냇물의 잔잔한 흐름소리도…
원래 사람은 걷는 동물이다. 그래서 생각의 리듬은 다리의 리듬에 잘 맞게 되어 있다. 걷기는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최선의 운동으로 두뇌 활동과도 관계가 있다. 그래서 걸으면 더 많은 생각이 더 잘 떠오르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역사에서 보여주는 산책과 위대한 지성인들이 보여준 성과물과 깊은 연관관계가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걸음을 잘 걷는 습관 한 가지가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또 누군가는 일이 막힐 때는 무조건 걸어보라고 한다. 걷다 보면 불필요한 생각은 떨어져 나가고 남에게 그 답을 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답을 알게 된다고. 비록 간단한 산책이라 하더라도 걷기는 오늘날 우리네 사회의 성급하고 초조한 생활을 헝클어놓는 온갖 근심 걱정들을 잠시 멈추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걷는다. 아침저녁으로 출퇴근길에 전철역까지 될수록 걷는다. 휴일에는 시내의 골목골목도 걸어서 누벼 보고 이 시장 저 시장을 돌며 눈요기도 하고 근처의 이 산 저 산에도 올라본다.
걸으라, 인생이란 바로 두 다리로 걷는 긴 여정이다. 무조건 걸으라, 그 길이 어떠하든지. 세상 사람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 앞에는 항상 평탄한 길만 있는 것도 아니요, 정해진 길만 있는 것도 아니다. 걷다가 힘들면 조금씩은 쉬었다 다시 걸으라. 우리의 인생은 한 구간 한 구간 차례차례 지나가야 하는 고행의 길이다.
[김춘식]
수필가
칼럼니스트
송화강수필상 수상
이메일 jinchunzhi2008@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