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현재라는 찰나의 시간 속에만 존재한다.
- 석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말한다. “카르페 디엠!” 이 말은 ‘현재를 잡아라!’라는 뜻의 라틴어다.
현재를 잡아라! 현대인들의 ‘삶의 지표’가 된 것 같다. 하지만 현재를 잡는 게 그리 쉬울까? 흔히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으로 해석한다. 맞다. 하지만 ‘현재’가 어디에 있는데? ‘현재’라고 말하는 순간, 현재는 저만치 쏜살같이 날아가 버린다. 아무리 빨리 현재를 생각해도 생각하는 순간, 현재는 허공 속으로 흩어져 버린다.
우리는 오랫동안 과거-현재-미래로 흐르는 시간 속에 살아왔기에, 현재는 한순간에 과거, 미래가 되어 우리는 늘 쏜살같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만 존재해왔다. 그래서 이 세상은 항상 미끄럽다 현기증이 난다. 뒤뚱거리다 쓰러져 버릴 것만 같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를 잡은 경험’이 있다. 어릴 적,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경험이 있다. 시간도 사라지고, 공간도 사라지고 한순간에 새로운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세계는 ‘무릉도원’이었을 것이다. 한 번 나오면 다시는 갈 수 없는 세계. 우리에게 아득한 기억으로만 있는 세계이다. 그 세계에서는 오로지 현재만 존재한다. 과거, 미래는 사실 우리의 허상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럼 현재를 잡게 되면, 우리는 과거도 미래도 없이 살게 될까? 그렇지 않다. 과거와 미래는 현재 속에서 찬란히 빛날 것이다. 과거와 미래는 번개 같은 예감으로 우리에게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현재를 살며 동시에 과거와 미래에 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어릴 적 무릉도원을 쉽게 빠져 나와 집으로 돌아가고 잠을 자고 다음 날 밥을 먹고 학교에 가듯이. 그리곤 동시에 수시로 무릉도원을 드나들 듯이. 우리는 ‘현재를 말초적 감각으로 즐기는 쾌락주의자’나 ‘바쁘게 시간을 쪼개 정신없이 현재를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현재를 잡은 사람’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들은 절대로 현재에 머물 수 없다. 그들은 쏜살같이 흐르는 시간을 애써 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매 순간 밀려오는 현기증에 진저리를 칠 것이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그들은 ‘환상의 현재’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아,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
그리고 나, 이 미소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 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 파블로 네루다,《시(詩)》부분
현재를 잡는 것은 우리가 어릴 적 경험했듯이 살 떨리게 생생한 것이다. 우주 자체가 하나의 떨림이듯이. 우리는 우주 전체와 연결된 하나의 떨림이 되는 것이다. ‘영원한 찰나’가 되는 것이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 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