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9일자 미주 뉴욕판 한국일보 오피니언 [나의 생각] 칼럼 '전두환·노태우 죽음, 역사란 무엇?' 필자
주동완 /코리안리서치센터 원장은 "역사란 ‘가정하지 않는 필연의 결과’라는 점을 인정해야 역사가 제대로 보인다" 며 "자기의 눈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는 똑같은 역사가 반복될 뿐이다. 그게 역사로부터 배워야 하는 교훈"이라고 칼럼 글을 맺고 있다.
'전두환·노태우 죽음, 역사란 무엇?'
한 달 사이에 두 전직 대통령이 죽음을 맞이했다. 그들은 갔지만 그들이 남긴 논쟁은 한국 사회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무엇보다 국가장으로 하느냐 마느냐, 조문을 가느냐 마느냐 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논쟁에서부터, 그들에 대한 평가를 두고 공과 과를 나누는 정치적 논쟁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파장을 남겼다. 이제는 역사가 된 이들에 대한 이러한 논쟁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생각을 하게 한다.
흔히 “역사는 ‘if’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역사에서 ‘만일 ~라면’이란 가정은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또 “역사에 ‘우연’이란 없다.”라고도 한다. 역사는 우연인 것처럼 보이는 필연적인 사건들이 조합된 것이라는 뜻이다.
옛날에 일어난 일을 시간이 한참 흐른 현재의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하필이면 그 때, 그 사람이 그런 일을 해야 했을까?’하고, 일어난 일만 보면 우연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벌어진 일의 이면에 있는 ‘그러한 이유와 그렇게 된 과정들’을 추적하여 살펴보면 그 일의 필연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역사를 보는 눈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레오폴트 폰 랑케 Leopold von Ranke (1795~1886)의 눈이다. 랑케는 역사를 엄밀한 사료 비판에 기초를 두어 근대 사학을 확립한 독일의 사학자다. 랑케는, 역사가는 “본래 그것이 어떻게 있었는가.”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실事實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역사가의 기본적인 자질’이라고 강조하였다. 그가 믿는 역사 서술은, 역사가의 개인적인 감정이나 가치 판단과 같은 주관성이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하여 랑케는 역사의 객관주의를 지켰다.
둘째는 이탈리아의 철학자 베네데토 크로체(Benedetto Croce, 1866~ 1952)의 눈이다.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다.”라고 하며 랑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크로체에게 있어서 역사는 책이나 기록 문서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 따르면 역사는 기록 문서를 역사가가 비판 해석하고 연구하여 어떻게 재생시키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즉, 역사가의 현재의 관심과 추구하는 바의 정신이 바로 역사라는 것이다.
셋째는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의 눈이다. 베버는 인간의 ‘사회적 행위’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베버의 사회적 행위란 어떤 행위가 단수 또는 복수의 행위자에 의해 생각된 ‘의미’에 따라 타인의 행동에 관계되며 그 경과에 있어서 타인의 행동에 지향되는 그러한 행위를 말한다. 즉,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인간의 행위는 이미 그 행위자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는 현재의 눈으로 과거를 해석하기 위하여 먼저 사실을 직시하고 찾는 노력과 함께 그 행위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역사를 보는 세 가지 눈 중 하나의 눈으로만 보는 사람에게는 자기 합리화, 증오, 왜곡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직시하고 해석하고 이해된 역사를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진정한 ‘용기’ 다. 자기의 눈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는 똑같은 역사가 반복될 뿐이다. 그게 역사로부터 배워야 하는 교훈이다.
<주동완 /코리안리서치센터 원장>
세상 만사가 겉으로 언뜻 보면 다 우연 같지만 큰 그림에서 보자면 필연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작은 그림이 운명이라면 큰 그림은 숙명일 것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작은 그림은 내가 그리는 것이라 해도 큰 그림은 나도 모르게 그려지는 것이 아닐까.
그의 나이 95세 때 왜 하루에 여섯 시간씩이나 아직도 악기연습을 하시느냐고 묻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 중 한 명으로 일컬어지는 스페인 태생 지휘자 겸 작곡가이기도 한 파불로 카잘스 Pablo Casals (1876-1973)의 대답은 이러했다.
"내 연주 실력을 늘려 향상시키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Because I think I’m making progress.”
영어로 '연습/실습이 완전完全/완벽完璧을 기한다. Practice Makes Perfect. 라 하는가 하면 이런 말들도 있다.
“작은 향상도 향상이다. Small progress is still progress.”
- Anonnymous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된다. Little by little becomes a lot.”
- Anonymous
“네 진도를 남과 비교하지 말라. 각자는 각자 대로 제 보조에 맞춰 제 길을 가는 거다. Don’t compare your progress to that of others. We need our own time to travel our own distance.” - Anonymous
“진척進陟 상황이란 현재 상황보다 좋아지게 하는 게 아니고 앞으로 성취될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Progress is not in enhancing what is, but in advancing toward what will be.”
- Khalil Gibran
“(사회적/문화적)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발전과 향상됨이 있을 수 없다. Without deviation from the norm, progress is not possible.”
- Frank Zappa
“언제나 진행 중이도록 하라. Always be a work in progress.”
- Emily Lillian
“천천히 꾸준하게 나아가는 것이 날마다 핑계만 대는 것보다 낫다. Slow, steady progress is better than daily excuses.” Robin Sharma
“무사안일無事安逸은 전진前進의 적敵 이다. Comfort is the enemy of progress.” - P. T. Barnum
“뭘 하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Whatever you do you have to keep moving forward.” - Martin Luther King
“네가 더 앞으로 더 높이 더 넓게 더 깊어지기를 멈추는 순간 네 삶은 정체停滯된다. The moment a man ceases to progress, to grow higher, wider and deeper, then his life becomes stagnant.” - Orison S. Marden
최근 2021년 11월 7일자 코스미안뉴스에 올린 우생의 칼럼 글 우리 재음미再吟味해보리라.
[이태상 칼럼] '미지수未知數의 미학美學 The Aesthetics of Unknown/ Unknowable'
2021년 11월 2일자 미주판 한국일보 오피니언 [전문가 에세이] '세상사 다 이유가 있나?' 필자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는 "내 삶을 되돌아볼 때 예전에 일어났던 모든 일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이라 믿고 싶다. 즉 운명의 열쇠를 쥔 누군가의 힘, 그리고 나 자신이 쌓아올린 의지의 힘으로 살아온 것 같다"고 이렇게 적고 있다.
'세상사 다 이유가 있나?'
“세상사 다 이유가 있더라니까.” 주름진 눈가 사이로 가느다란 미소를 띠며 은퇴 동료의사가 말했다. “무슨 일인데?” 그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지 궁금하여 물었다. “근데 재미도 있더군.” 그는 내 물음에는 답하지 않고 지나가는 말로 대신한다. “자네, 또 그 인생결정론인가 그것 설파하는 거 아냐?” 나는 웃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에게 좀 귀찮은 일이 있었다. 어느 날 등기우편이 날아왔다. 법원 소환장으로, 그가 예전에 보았던 환자에 대해 증언하라는 통지였다. 문제는 그 환자를 본 지가 너무 오래돼 기억이 전혀 없는 것이었다. 다행히 변호사 사무실에서 환자기록을 첨부해왔다. 알아보니 환자가 강도 살인죄와 성폭력 죄로 복역 중 진범이 체포되어 감옥에서 풀려난 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한 케이스였다. 감옥에 있던 중 그는 옆집 노파의 지갑을 뺐고, 강간하고 죽인 나쁜 자식으로 알려져 다른 죄수들로부터 숱한 구타와 수모와 조롱을 받았다.
선서증언 Deposition 은 법정이 아닌 변호사 사무실에서 행해지지만 판사가 참석치 않은 것을 제외하곤 과정이 똑같다. 동료 의사는 소환 요구와 선서증언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화가 났었다. 그러나 내용을 알고 난 후 생각을 바꿨다. 환자를 도와주어야겠다는 연민의 정을 느꼈다. 일주일 동안 자신의 환자기록을 세세히 검토하며 잊어버렸던 정신과 지식을 찾아내고, 새로운 지식을 보충했다. 그리고 불쌍한 환자를 도와줄 기회를 마련해 준 이번 일이 우연히 일어난 게 아니라는 인생결정론을 그는 새삼 확인했다.
살면서 겪는 모든 일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다 이유가 있다. 눈에 확 보이는 분명한 이유는 아주 적고, 대부분 자신도 알아차릴 수 없는 무의식 속에 잠겨있다. 꿈의 해석과 자유 연상을 사용하는 정신분석을 통해 이를 찾아내야 한다는 게 프로이드의 정신결정론이다. 반면, 물리학은 세상 모든 일은 빅뱅으로 우주가 형성된 것처럼 원자들의 무작위 행동에 의해 우연히 일어날 뿐 무슨 이유나 목적이 없는 자연현상이라 잘라 말한다. 인류심리학자들은 정신결정론에 반기를 든다. 인간의 사고와 행동은 무의식이 지배하는 것이 아닌 주어진 현실의 상황과 환경에 적응하고 극복할 수 있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우연인가 필연인가의 논쟁은 종교와 과학, 운명과 자유의지, 유전과 환경, 불가항력과 범죄행위 등 삶의 여러 영역에 맞물려있는 문제다.
연어의 얘기를 해보자. 연어는 때가 되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간다. 가는 도중 숱한 죽음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헤엄을 계속한다. 만약 연어가 죽음의 위험을 알아차린다면 가지 않을까? 연어의 몸속에는 태어난 곳으로 가라고 누군가가 이미 프로그램을 해놓았기에 따를 수밖에 없다. 운명이고 숙명이다.
인간은 연어와 달라 지혜가 있어 위험을 알면 생각을 바꾸는 힘이 있다. 인간의 의지로 운명을 거스르는 그런 힘은 평상시에는 쉽게 생기지 않는다. 아주 심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릴 때 나타난다.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이 한 예다.
우리의 삶은 우연과 필연이 함께 작용하는 이율배반적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삶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느냐는 지혜와 경험에 따라 우연과 필연의 저울추가 달라진다. 동료의사의 얘기를 들으며 내 삶을 되돌아볼 때 예전에 일어났던 모든 일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이라 믿고 싶다. 즉 운명의 열쇠를 쥔 누군가의 힘, 그리고 나 자신이 쌓아올린 의지의 힘으로 살아온 것 같다.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숙명과 운명에 대한 몇 사람의 말을 좀 우리 음미해보자.
“사랑을 찾았다가 잃어버리는 것, '이게 어쩌면 나의 숙명이야'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Maybe this is my fate, she thought, to find love and lose it.”
― Leigh Bardugo, Rule of Wolves
“계속 노력해 볼 의지력을 네가 상실할 때에만 실패를 맞게 된다... 장애물이 우리를 굴복시킨다면 패배가 숙명이 아닌 우리의 선택인 것이다. Failure only happens when you lose your willpower to continue trying...If we let the obstacles get the best of us then it was our choice to fail, not fate.”
― Lindsey Rietzsch, Successful Failures: Recognizing the Divine Role That Opposition Plays in Life's Quest for Success
“때로는 변화의 바람에 우리 자신을 맡길 때에라야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발견하게 된다. Sometimes we can only find our true direction when we let the wind of change carry us”
― Mimi Novic, Your Light Is The Key
“숙명이란 모든 일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일어난다고 믿기 위해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하는 말이다. Fate is a story people tell themselves so they can believe everything happens for a reason,"
― Alix E. Harrow, The Once and Future Witches
“인생은 우리를 헹가래치듯 하지만 우리로 하여금 이 지로역정地路歷程의 도道를 닦게 해주는 거다. Life picks us up and throws us around, but for the most part we’re aimed in the right direction where we can learn the lessons of our Earthwalk”
― Karl Wiggins, Wrong Planet - Searching for your Tribe
"난 운명이란 여신에 질렸다. 그녀를 탓하는 것도 이젠 지겹다. 잔인하게도 그녀는 우리 모두에게 무관심하고 종종 고약한 자들 편만 드는 것 같다. I'm tired of fate. Tired of hating her. She’s cruel to too many of us, she ignores most of us, and half the time she favors the unscrupulous."
― Garten Gevedon, Dorothy in the Land of Monsters
“순식간에 운명이 뒤집힐 수 있다. It takes only a moment for the destiny to flip over”
― Jyoti Arora, You Came Like Hope
“어떤 일은 자동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우리가 유도해야 한다. Some things do not come to us automatically; we must induce them to come our way.”
― Bangambiki Habyarimana, Book of Wisdom
“숙명이란 개념은 인류가 떨쳐버려야 한다. 앞으로 창조할 인간정신력을 비하, 폄훼하는 까닭에서다. The concept of destiny is something that humanity has to get rid of because it degrades the future-creator power of human mind!”
― Mehmet Murat ildan
“세상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제 자리를 찾아간다. Everything in the world ends up where it should be.”
― Arata Kanoh, Another Side: Earthbound
“우리가 우리 자신한테 무슨 짓을 하는지 기억해야 한다. 모든 게 자업자득이기 때문이다. We need to remember what we do to ourselves. And that all that happens to us is of our own device.”
― M.K. South, Of Our Own Device
“다른 사람들이 네 운명을 결정할 때까지 기다리든가 너 스스로 개척하든가다. 알아야 할 것은 다른 사람들이 네 앞날의 행복을 마련해주는 건 아주 드문 일이니 네가 알아서 준비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You can wait for others to decide your fate, or you can master your own destiny. Just know that others seldom have very much planned for your future happiness, so the do-it-yourself approach may just be your best bet.”
― Anthon St. Maarten
“네가 바라보지 않는 방향이 네가 놓치는 네 운명이다. 네가 모든 방향을 다 살피노라면 네가 모든 운명을 지배할 수 있다. The direction you don't look at is the fate you missed! If you look at every direction, you will rule every fate!”
― Mehmet Murat ildan
“아무도 아무 것도 시간낭비는 아니다. 우리가 찾는 걸 얻지 못해도 우리가 배워야 할 걸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Nothing and no one is a waste of time. If it doesn’t give us what we are looking for, it teaches us what we need to learn.”
― Mimi Novic, Essence Of Being
“여정은 오르기 전에 짜는 거다. The journey is mapped before we leave ~ 'Oceans Away”
― Mala Naidoo, Life's Seasons
“이 바보야! 앞으로 네 의지력과 재능으로 어떤 운명을 개척할 생각을 하는 대신 어떤 숙명이 널 기다리고 있는지를 계속 묻지 말거라. You keep asking what fate awaits you in the future instead of thinking of what fate you will draw for yourself in the future with your willpower and talents! You stupid!”
― Mehmet Murat ildan
“숙명/운명이 널 찾아오지는 않을 테니 네가 찾아 나서거나 창조해야 한다. Fate is not going to come looking for you. You are going to have to find or create it yourself.”
― R.J. Intindola
“이 날, 우린 우리 운명의 주인이다. 우리 앞에 놓은 과업은 우리 능력 밖의 것이 아니고, 우리가 감당 못할 것도 아니다. This day, we are masters of our fate; the task which has been set before us is not above our strengths; its pangs and toils are not beyond my endurance.”
― Winston S. Churchill
자, 이제, 지난 2019년 3월 3일자와 2020년 1월 6일 그리고 4월 27일자 코스미안뉴스에 올린 우생의 칼럼 글 셋우리 되새겨보리라.
[항간세설] '숙명이냐 운명이냐? Fate or Destiny?'
바꿀 수 있는 것이 운명이라면 바꿀 수 없는 것은 숙명이다. 운명 Destiny 이 작은 그림이라면 숙명 Fate 은 큰 틀이라 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어떤 종種으로 어느 시대 어느 지역 어떠한 환경에 어떤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는가가 숙명이라면 이 큰 틀 안에서 어떤 그림을 그리는가는 운명이라는 말이다. 운명運命의 운運이 운전할 운이고 숙명宿命의 숙宿이 잘 숙인 것이 그럴듯하다.
따지고 보면 틀이라는 것도 하나는 사실적이거나 현실적인 것이고 또 하나는 가공적이거나 가상적인 것이다. 문학적인 용어로는 논픽션과 픽션이, 컴퓨터 인터넷 용어로는 현실과 가상현실 및 증강현실이 되겠다. 전자는 우리가 생활하는 일상사라면 후자는 종교적이거나 이념적 사상, 문학과 예술 같은 것들이다. 자연적으로 주어진 틀이 있는가 하면 인위적으로 조작된 틀도 있다는 이야기다. 전자는 어쩔 수 없이 수용할 수밖에 없겠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그 틀 안에 갇혀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그 틀을 깨고 벗어날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고 보아야 한다.
그 한 예로 노예제도라는 틀을 깬 에이브러햄 링컨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영어로 복권이란 뜻의 로터리 lottery 의 앞 글자 ‘로트 lot’는 특정 집단이나 품목 내지 세트, 또는 땅 조각 대지, 한 몫 등을 의미하지만 어떤 사람의 숙명이나 운명을 뜻하기도 한다. 링컨이 남긴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어떤 여인이든 나와 운명을 같이하기로 결정한다면, 이 여인이 행복하고 만족하도록 내 능력껏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할 생각이다. 이 일에 실패하는 것보다 나를 더 비참하게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미 투 Me Too 운동에서 볼 수 있듯이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하고도 이를 참고 견디면 숙명이 될 것을 용감하게 고발하면 이 숙명을 운명으로 바꾸는 것이 된다.
또 한 예를 들면 부모의 생업을 이어받거나 부모가 원하는 직업 또는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이 숙명을 자초하는 것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추구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운명이든 숙명이든 본인이 행복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링컨이 남긴 또 다른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선행을 하면 내 기분이 좋고, 악행을 하면 내 기분이 나쁘다. 이것이 바로 내 종교다." 그리고 "네 미래를 점치는최선의 방법은 그 미래를 네가 창조하는 것이다."
'Fate or Destiny?'
If what can be changed is ‘destiny’, ‘fate’ must be what cannot be changed. If the destiny is the small picture, the fate must be the big frame. If how you happened to be born into a certain species, time and space, in the environmental setting, with your kind of DNA is your fate, then what picture you draw within the frame must be your destiny.
‘運命', the Chinese characters of destiny (‘운명’ in Korean), ‘運', the first character of which means ‘changeable/moveable’. ‘宿命’, the Chinese characters of fate (‘숙명’ in Korean), ‘宿', the first character of which means ‘to sleep over/settled’. ‘命', the same second Chinese character of both, means ‘the breath in the throat/the breath of life’.
As for the frame or box we are in, there are two different kinds, so separate from each other. One is factual and real and the other is all made-up and unnatural. They are non-fiction and fiction in literary terms, and reality, virtual reality and augmented reality in computer terms. If our daily lives are the former, all the other arbitrarily and artificially imposed and manipulated ideological thoughts, religious dogma, arts and literature must be the latter.
Like it or not, one has to accept the former as a given. But as to the matter of the latter, one has to decide whether to settle down in the box or get out of the frame, breaking every chain and throwing off all the shackles of slavery.
Let’s think of Abraham Lincoln.
Definition of lot in English by Oxford dictionaries is a particular group or set of people or things, an item or set of items, the making of a decision by random selection, especially by a method involving the choice of one from a number of pieces of folded paper, one of which has a concealed mark, a plot of land, or a person’s luck, situation, or destiny in life.
Among Lincoln quotes, there’s one about ‘casting one’s lot’:
“Whatever woman may cast her lot with mine, should any ever do so, it is my intention to do all in my power to make her happy and contented; and there is nothing I can imagine that would make me more unhappy than to fail in the effort.”
As we can see these days, a few courageous ladies are turning their ‘fates’ into their ‘destinies’ by joining the current worldwide '
#Me Too campaign', while the majority of victims are still suffering in the dark, with their fates are being fossilized in caves.
To cite another kind of example, sad to say, some young people choose their careers and even their spouses, dictated by their adulterated parents and societies, instead of carving out their destinies by their own choices.
Anyway, be it the fate or the destiny, if one has to be happy with oneself after all, it behooves us all to ponder what Lincoln had to say:
“When I do good I feel good, when I do bad I feel bad, that’s my religion.” And this too: “The best way to predict the future is to create it.”
[항간세설] '미지수 찾기'
매년 새해가 되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호기심이나 희망 또는 불안감에서 점쟁이를 찾는다.
미국의 유명한 점성술가 쉐이니 니콜라스 Chani Nicholas는 지난해 11월에 출간된 그녀의 최근 신간 ‘당신은 이를 위해 태어났어 : 근본적인 자아수용을 위한 점성술 You Were Born for This : Astrology for Radical Self-Acceptance’에서 ‘당신이 누구인가가 아니고 누가 될 수 있는가?’를 말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서양엔 이런 말이 있다. ‘당신이 누구, 무엇인지는 신神이 당신에게 준 선물이지만 당신이 누구, 무엇이 되는가는 당신이 신神에게 바치는 선물이다.’ 이는숙명 fate)이란 타고난 것이지만 운명 destiny은 당신이 개척한다는 뜻이리라.
누가 더 바보 일까. 어둠을 무서워하는 어린애와 빛을 두려워하는 어른 둘 사이에서. 때때로 사실이 거짓 꾸며낸 일보다 더 이상하다지만 성한 사람이 이상하게 미치는 것은 이상하게 미친 세상에 대한 아주 성한 반응이며 그 대응책이라고도 한다.그래서 거짓말 중의 거짓말은 자기 자신한테 하는 것이고 그것이 거짓말에 머물지 않고 거짓 삶으로 연장되기도 하나 보다.
그러나 우리 더 좀 생각해 볼 때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일까?
수학적인 공식으로 예를 들어보자. 1+1 =2로 당연한가 하면 1+1=11로 보일 수도 있다. 자주 반복되는 거짓말이 그 숨은 진실을 말해주는 참말이 되는가 하면 자질구레하게 섣불리 서투른 거짓말하지 않고 묵묵히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킴으로 엄청나게 더 큰 거짓말을 결과적으로 하게 되기도 한다.
사실을 왜곡하거나 생략 또는 부정하고 불신하며 망각하는 것도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추측,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 예측, 기대, 환상 등이 모두가 거짓말이라면 거짓말이다. 흔히 사람들은 사실보다 희망적이고, 환상적인 환멸의 비애를 맛볼 때는 보더라도, 배신의 쓰라린 상처를 입을 때는 입더라도, 사람은 머리로 생각하는 동물이라기보다 가슴으로 느끼면서 꿈과 믿음으로 숨 쉬고 사는 미신迷信의 산물産物인지 모를 일이다.
또 좀 생각해 보자. 세상에 그림자 없는 빛이 없듯이 실망하지 않을 기대란 없을 테고, 상처받지 않을 사랑도 없으리라. 하지만 사랑을 모르는 인형이, 고독을 모르는 동상이, 눈물을 모르는 조각이 되기보다 거짓을 외면한 진실을, 자연을 외면한 진리를 찾기보다, 차라리 모든 것의 가치와 아름다움 발견하는 알뜰살뜰한 사람이 되리라.
어둠, 거짓, 슬픔, 아픔, 실망, 절망, 회의, 배신, 이별도 살리고 고독도 살리리라. 추함도 천함도 잃음도 없음도 모두를 살리는 살림꾼이 되어보리.
[이태상의 항간세설] '새로운 코스미안 역사를 써보리라'
순간의 확대판이 영원이고 영원의 축소판이 순간이라면, 우리는 모두 순간에서 영원을 살고 있지 않나.
내가 태어나기 전 헤아릴 수 없는 무궁한 세월 동안 우주는 존재해 왔고, 또 내가 떠난 다음에도 우주는 영원토록 계속 존재하는 것이라면, 찰나 같은 나의 존재란 어떤 것일까?
나의 존재란 언제부터일까. 엄마 뱃속에 잉태된 그 순간부터 이거나 아빠의 정자로 생긴 때부터이거나, 또는 그 이전부터일까. 그리고 내 심장이 뛰기를 멈추거나 마지막 숨을 내쉬거나 의식을 잃는 순간, 그 언제 끝나는 것일까. 아니면 부모와 조상으로 한없이 거슬러 올라가고 또 자식과 후손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것일까. 불교나 힌두교에서 말하는 ‘윤회輪廻’가 아니라도.
뉴론 neurons 이란 정보를 전송하는 두뇌 속 세포들의 작용으로 우리는 보고 듣고 느끼며 생각하고 행동하기 등 모든 행위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 뉴론들 사이의 연결점들은 시냅시즈 synapses 라고 불리는데 여기에 기억들 memories 이 저장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시냅시즈들은 물론 뉴론들도 한없이 복잡 미묘한, 영원한 수수께기들이란다. 어디 그뿐인가. 시냅시즈와 뉴론들 숫자는 하늘의 별처럼 부지기수라 하지 않나. 다시 말해 한 사람의 두뇌 속에만도 광대무변廣大無邊의 무한한 우주가 있다는 얘기다.
갓 태어났을 때부터 내가 나를 관찰할 수 없었지만 내 손자와 손녀만 보더라도 참으로 경이롭기 이를 데 없다. 외형의 외모만 보더라도 날이면 날마다 시시각각으로 그 모습이 달라지고 변해 가고 있음을 여실히 목격하게 된다.
어느 한 순간의 모습과 표정도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고 영원무궁토록 단 한 번뿐이라는 사실을 가슴 저리도록 아프게 절감切感한다.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 각자의 순간순간의 삶이 그렇지 않은가. 이 얼마나 한없이 슬프도록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이고 모습들인가. 영세무궁토록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들이고, 처음이자 마지막인 만남들이요 장면들이 아닌가.
진실로, 그러할진대, 아무리 좋아하고 아무리 사랑해도 한없이 끝없이 너무너무 부족하기만 한데, 우리가 어찌 한시인들 그 아무라도 무시하거나 미워하고 해칠 수 있으랴. 우리는 다 각자대로 순간에서 영원을 사는 것임에 틀림 없어라!
1973년에 출간된 이후 3천만 권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비상飛翔의 공포 Fear of Flying’의 저자인 미국 작가 에리카 종 Erica Jong (1942 - )의 그 속편續篇/續編 ‘죽음의 공포 Fear of Dying’가 2016년에 나왔다.
‘비상의 공포’를 두 단어로 요약한다면 ‘지퍼 없는 씹 zipless fuck’으로 ‘억제할 길 없는 욕망’ 이야기다. 여자라면 이런 상상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남자들은 ‘놀라 자빠질 것’이라는 홍보문구처럼 센세이셔널한 문제작으로 40여 개 국어로 번역 출판되었고, 여성의 성적性的 자아표현自我表現의 기폭제起爆劑가 됐다.
‘죽음의 공포’는 또 다른 금기사항禁忌事項인 노인老人들의 섹스를 다룬다. 이 속편 소설의 주인공은 60대 할머니이지만 ‘zipless. com’이란 쉽고 편한 섹스 사이트 casual-sex site를 통해 농濃익은 욕정慾情/欲情을 아무런 부담 없이 채워 즐긴다.
이 ‘죽음의 공포’ 책 커버엔 미국의 영화감독, 배우, 극작가 겸 음악가 우디 알렌 Woody Allen (1935 - )의 다음과 같은 추천의 글도 실렸다.
“난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그의 유명한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그가 죽을 때 그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아 그가 이 책을 읽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I was thinking of his famous quote, “I’m not afraid of dying;” I just don’t want to be there when it happens, so I thought he should read this.
‘비상의 공포’가 이 책을 읽은 독자들로 하여금 버스나 지하철 기차 옆 좌석에 앉은 참한 아가씨나 여인을 달리 쳐다보게 했듯이, ‘죽음의 공포’를 읽는 독자들도 할머니들을 달리 쳐다보게 될 것이라고 ‘비상의 공포’에서 문학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미국 작가 제니퍼 위너Jennifer Weiner (1970 - )는 말한다.
내가 청소년 시절 읽은 소설이 하나 있다. 저자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제목은 ‘인간발견人間發見’이었던 것 같다. 한 신부神父가 억제만 해오던 성性에 눈떠 파계破戒하고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발견하는 이야기였다.
그 후로 내가 1970년대 영국에 살 때 이웃에서 작은 식료품 가게를 하는 부부를 만났는데 남편은 아일랜드 사람으로 한국에서 신부神父로 18년을 근무하다 한국 수녀修女를 만나 신부와 수녀복을 벗고 아들딸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며 ‘인간적人間的’인 삶을 살고 있었다.
종교 특히 기독교에서 섹스를 불결不潔해 하며 치부시恥部視하고 또 여성을 제2의 성性으로 격하格下시킬 뿐만 아니라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선악과善惡果를 따먹는 원죄原罪를 짓도록 유혹誘惑해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한 ‘악녀惡女’ 이브로 원초적인 낙인烙印까지 찍지 않았는가.
그 후로 기독교 신자들은 물론 기독교의 종교적인 세뇌洗腦와 악영향惡影響을 받게 된 거의 모든 지구촌 사람들이 지상地上의 삶을 외면外面하다시피 하면서 ‘그림의 떡 Pie in the Sky’ 같은 천국행天國行에 목을 매 오고 있지 않은가.
얼마 전 한 드라마에서 나는 이런 대사臺詞를 듣고, 아, 참으로, 세상에 저렇게 ‘철든 사람도 있구나~!’ 쾌재快哉를 불렀다. 어려움에 부닥친 인물이 이번 생은 포기하고 다음 생을 기억하라는 친구의 권유에 “나는 이번 생에 행복할 거야. 다음 생은 필요 없어”라고 다짐하는 것이었다.
사람은 살기 위해서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잠을 자야 하듯이 섹스도 너무나 자연스런 인간 본능이요,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 (1856-1939)가 성욕性慾/性欲을 의미하는 리비도 libido가 삶의 원동력이라고 했다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삶의 엔진 engine 발동기發動機가 아닌가.
자동차에 비유해서 차가 오래돼도 달릴 때까지는 엔진이 작동作動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 몸의 엔진인 섹스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다면 섹스가 남자나 젊은이들의 전유물專有物일 수는 없다는 얘기다. 촛불의 심지가 다 타버릴 때 마지막으로 불꽃이 커지듯 황혼黃昏의 섹스도 마찬가지이리라.
‘지각知覺’이 ‘현실現實,’ 영어로는 ‘Perception is reality.’이라고 한다. 인물人物이고 사물事物이고 간에, 믿는 대로 보고 싶은 대로, 느끼는 마음의 인식작용認識作用을 일컫는 말인 것 같다.
몇 년 전 미연방수사국FBI은 싸구려 와인에 프랑스 명품 와인 라벨을 부착해 무려 130만 달러(약 15억 원)에 달하는 부당이득을 챙긴 범인을 검거했다. 그 당시 놀랍게도 세계적인 와인 전문가들조차 위조한 명품 라벨에 속아 와인 맛까지 명품으로 착각했다는 것이다.
1970년대 영국에 살 때 비영리 소비자보호 공익단체에서 명품 화장품들을 수거해 조사 분석한 보고서를 보니 바셀린 종류의 원료 이상 들어 있는 것이 없고, 향료를 포함해 재룟값은 얼마 안 되며 화려한 포장과 광고 선전비가 상품가격의 90% 이상을 차치한다는 거였다.
1980년대 미국 뉴저지주 오렌지시에서 잠시 가발 가게를 한 적이 있다. 당시 가발 개당 도매 구입 원가가 평균 7달러로 소매가는 21달러였다. 그런데 간혹 직업이 연예인이나 가수 같은 고객이 명품 가발을 찾으면서 21달러짜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제일 비싼 가발을 보여 달란다. 그러면 하는 수 없이 21달러짜리 가발이라도 ‘명품’이라며 그 열 배로 210달러를 받아야 손님이 만족스러워했다.
언젠가 한 여성과 허물없이 대화하는 중에 자기는 치과에 가서 ‘룻 커낼 root canal’ 같은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는 순간 최근 섹스하면서 느끼던 오르가슴orgasm을 떠올리면 견딜 만하더라고 했다.
그녀는 부언附言하기를 남녀 간에 첫사랑과 결혼까지 하게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많은 경우 마지못해 적당히 편의상 썩 내키지 않는 사람과도 결혼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비참해하면서 불행할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극단직인 예까지 드는 것이었다. 싫은 사람과 섹스를 하면서도 눈을 감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상상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삶의 목적은 삶을 살아보는 것, 최대한으로 최고로 한껏 기껏 맛보고 만끽滿喫하는 것, 새롭고 더 풍성豊盛한 경험을 두려움 없이 열성熱情껏 추구追求하는 것이다. The purpose of life is to live it, to taste experience to the utmost, to reach out eagerly and without fear for newer and richer experience.”
엘리노어 루즈벨트 Eleanor Roosevelt (1884-1962)의 말이다.
“삶이란 대담大膽)하게 모험冒險을 감행敢行하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Life is either a daring adventure or nothing at all.”
핼렌 켈러 Helen Keller (1880-1968)의 말이다.
젊어서 한때 서울 한복판에 내 자작自作 아호雅號 ‘해심海心’이란 이름으로 주점 대폿집을 차려 ‘해심주’와 ‘해심탕’으로 대인기를 끌면서 문전성시를 이뤘었다. 한 가지 희한한 사실은 수 많은 손님들이 ‘해심탕’을 안주로, ‘해심주’를 마시면서 잠시나마 실연失戀의 슬픔도, 삶의 고달픔도,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 다 털어 버리고 인생을 달관達觀하게 되노라고 비록 취중이지만 내게 거듭 증언하는 것이었다. 필시必是 이 ‘해심海心’이란 작명철학作名哲學 때문이었으리라.
후세 사람들이 성인군자聖人君子나 위인偉人이라고 숭상하는 인물들도 빛과 그림자처럼 좋고 나쁜 양면을 다 갖고 있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 Socrates (470 bce-399 bce)나 톨스토이(Leo Tolstoy (1828-1910)가 세상 사람들 보기에는 훌륭한 인물들이었을지는 몰라도 가족 특히 부인들에게는 형편없는 남자들이 아니었을까? 오죽하면 부인을 ‘악처惡妻’로 만들었을까. 새삼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란 말을 심사숙고深思熟考하게 된다.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한두 예를 들어보리라.
세 딸들이 다닌 영국의 명문 음악학교의 세계적으로 저명한 선생님 한 분이 제자들을 성추행해온 사실이 밝혀져 조사를 받아오던 중 자살했고 피해 학생 한 명도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국에서도 UC 버클리대 교수이자 그동안 70개의 외계 행성을 발견한 유명한 천문학자 제프리 마시 Geoffrey Marcy (1954 - )가 여학생들을 성희롱한 혐의로 사직했고, 미국 연예계의 대부代父로 만인의 칭송을 받아온 빌 코스비 Bill Cosby (1937 - )는 수많은 연예계 지망생들을 약물을 탄 음료수를 먹여가면서 성폭행을 일삼아온 사실이 60여 명 이상의 피해 여성들 증언으로 드러나 법의 심판을 통해 2018년 3년 내지 10년의 징역형을 받았다.
아, 그래서 자고自古로 겉이 화려하면 속이 빈약하다고 외화내빈外華內賓이라 하는 것이리라.
자, 이제, 우리 모두 내실內實)을 다져, 부질없이 밖에서 명품을 찾지 말고, 우리 각자 자신이 믿는 대로, 보고 싶은 대로, 바라고 원하는 대로, 각자가 스스로를 작명해서 단 하나뿐인 명품인물이 되어 명품인생을 살 때 우리 각자는 가짜가 아닌 진품眞品/珍品으로 전무후무前無後無하고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존재가 될 수 있으리.
몇 년 전 당시 현행 8개의 한국사 검인정교과서를 단일화하겠다는 정부방침으로 국회 내에서뿐만 아니라 외부에서까지 찬반 토론이 활발했고, 국정화에 반대하는 각계 성명이 잇달았었다. 도대체 역사란 무엇인가 우리 생각 좀 같이 해보리라.
“선생님, 역사란 무엇입니까?” 한 젊은 제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고 “역사란 믿을 수 없는 것일세.”라고 언론인 출신 작가 이병주(1921-1992)는 답했다고 한다. 그는 장편소설 ‘산하’의 제사題辭로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적었다. 역사歷史란 승자勝者의 기록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잘 보려면 그 배경背景과 이면의 사정事情을 살필 수 있는 심안心眼을 가져야 하리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Christopher Columbus (1451-1506)를 그 한 예로 들어보자. 미국에선 1934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Franklin D. Roosevelt (1882-1945) 대통령에 의하여 10월 12일이 콜럼버스 날 Columbus Day 미연방 공휴일로 정해졌다가 1971년 10월의 둘째 월요일로 변경되었다. 신대륙 발견 500주년을 기해 National Geographic 잡지가 ‘콜럼버스가 우리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콜럼버스를 보았다’라는 남아메리카 사람들의 시각視覺을 소개하면서 콜럼버스의 비판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콜럼버스가 남미대륙에 상륙한 이후 150년 동안 1억 명에 달하던 원주민들의 숫자가 30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며, 그들은 콜럼버스를 인류 역사상 최대의학살을 촉발한 침략자로 보게 되었다. 베네수엘라 Venezuela의 우고 차베스(Hugo Chavez 1954-2013) 대통령은 “10월 12일을 원주민 저항의 날로 바꾸라!”라는 대통령령을 내리기도 했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 인권센터에서는 콜럼버스를 ‘사상 최악의 인물’로 모의재판에 기소했는데, 배심원들은 12시간에 걸친 심리 끝에, 7개의 죄목인 노예범죄, 살인, 강제노동, 유괴, 폭행, 고문, 절도에 대해서 유죄라고 평결하였고, 재판장은 죄목 하나마다 50년씩 계산해서 통산 350년의 사회봉사활동을 콜럼버스에게 선고하였다. 이 같은 현상은 아직도 세계 도처에서 인종과 민족, 국가 간 그리고 개개인 사이에서도 사회 전반에 걸쳐 갑을 관계로 계속 반복되고 있지 않나. 흔히 속된 말로 ‘억울하면 출세하라’느니, 적자생존適者生存이니, 약육강식弱肉强食이니 하지 않는가.
아, 그래서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대종사는 “모든 사람에게 천만 가지 경전을 다 가르쳐 주고 천만 가지 선善을 장려하는 것이 급한 일이 아니라, 먼저 생멸生滅 없는 진리眞理와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진리를 믿고 깨닫게 하여 주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라고 했으리라.
이 ‘생멸 없는 진리’와 ‘인과응보의 진리’를 내가 한마디로 줄여 풀이하자면 ‘우리는 하나’라고 수 있지 않을까. 자연을 포함해서 내가 너를 위하면 곧 나를 위하는 게 되고, 내가 너를 다치게 하면 내가 다친다는 진실眞實말이다. 이것이 바로 코스미안 사상이며 현재 코로나바이러스로 명명백백明明白白해지고 있는 사실事實이 아닌가.
호기심에 가득 찬 아이들은 말끝마다 “왜 Why?”라고 묻는다. “네가 좋아야 나도 좋으니까,” 이것이 정답正答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어른들도 아이들처럼 “왜?”라고 묻고, 전쟁과 파괴의 카오스 Chaos 를 초래하는 대신 사랑과 평화의 코스모스 Cosmos 를 창조해가면서 밝고 아름다운 새로운 코스미안 역사를 써보리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