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구 칼럼] 낯선 손님

문경구

 

캘리포니아에 비가 오면 나도 모르게 잔잔한 괴성을 지르고 싶어진다. 봄 여름 가을 동안 길을 잃고 헤매다 겨울이 되어서야 겨우 찾아왔다고 창문 밖으로 소리를 친다. 나의 소년 시절에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던 것을 기억한다. 그 시절 가뭄이 비 같으면 못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세상이 떠내려갈 듯 비가 오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귀한 손님처럼 비를 맞이한다. 비도 세월을 따라 찾아오는가 보다. 빗물을 받아 고무신을 닦던 소박한 기억보다 더 아름다운 기억이 있을까.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는 겨울에 한두 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비가 내리는 날이 많다. 병아리 눈물 같은 비로 무엇을 할 수 있냐고 구박하면서도 자꾸 비의 낭만이 기다려진다.

 

한국에서처럼 소곤대며 내리는 봄비가 아니더라도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도 나는 좋아했었다. 계단 바닥에 딱 달라붙은 비 맞은 빠알간 단풍잎을 행여 밟을까 조심스럽기만 하던 나였다. 그런 다음 날에는 꼭 두 손을 호호 불며 학교로 가는 한국의 초겨울 풍경은 아마 지금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캘리포니아로 찾아오는 겨울비는 손님의 옷이 젖을세라 우산을 받쳐주며 맞이하고 싶다. 비처럼 낯선 이와 함께 사막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처럼 비를 보면 차분해진다. 이른 새벽 눈을 감은 채로 듣는 낯선 손님의 발자국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세상을 쓸어낼 듯 내리던 한국의 여름날 폭풍의 세월을 보내고 캘리포니아서 만나는 곱상한 겨울비의 손님은 편안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지는 손님이다.

 

방학 때 찾은 시골집 대청마루에 앉으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퍼부어 대던 비가 생각난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서 있던 초가집 처마 밑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아주 특별한 기억이다. 어른이 되어 도시를 떠나 자연을 느끼고 싶어 찾은 산사의 빗소리도 특별한 기억이다. 도심의 빌딩 벽으로 흘러내리는 빗물과는 전혀 다른 내면의 울림 같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나에게 비는 어디에서나 아름다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서 있는 전봇대 불빛 아래로 쏟아지는 빗줄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우울하던 모습 같았다. 비와 나는 유독 인연이 깊다. 어린시절에 갖고 놀던 장난감을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다른 아이들 역시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장난감이 없던 가난한 시절에도 비는 내렸다.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장난감 놀이였다.

 

길을 가다가 비를 만나면 머무를 곳은 처마 밑이 가장 유일했다. 비행기를 날리고 싶어 밖으로 뛰어나가면 무심한 비와 나 그리고 종이비행기가 내 인생에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벽에 그린 종이비행기가 언젠가 날아갈 거라는 꿈으로 그린 것이 예술의 시작이었다. 그 그림들을 마음에 잉태하고 빗속으로의 긴 여정을 시작했다.

 

종이비행기가 머물던 벽이라는 공간은 내 예술의 무대였으며 작업실이었다. 그것은 내리는 비 덕분이었다. 하늘로 날아가야 하는 종이비행기가 벽이라는 무대에 예술로 재탄생하는 공간이 되었다. 내면의 나를 찾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게 하는 선물을 가져다준 비의 고마움을 잊고 이젠 노안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다.

 

나의 기억 속에 내리는 비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를 이제 깨달았다. 트라우마처럼 빗소리가 잔디밭에 뿌려지면 나는 벌떡 일어나 빨랫줄에 걸린 옷들을 거두러 밖으로 뛰어가곤 한다. 그러면서 지난 기억 속에 있는 빗소리를 불러내 내 안에 숨겨진 또 다른 나를 만난다. 그 시절 비가 나를 찾아주지 않았다면 나는 무슨 낙으로 살았을지 모른다. 가난한 집 부엌에 놓인 쌀독같이 텅 빈 내 양식의 곳간을 무엇으로 채우며 살았을까.

 

사막에 차를 잠시 멈추고 먼 곳을 바라보면 한국에 내리던 비를 불러 모아 사막에 뿌리고 싶어진다. 지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어릴 적 양식의 곡간을 빗소리로 가득 채워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비가 내리는 날에는 간절한 마음으로 밖을 걷고 싶다. 잠시 빌려 쓸 빗방울조차도 옹색한 캘리포니아 비의 고마움을 그리고 싶어진다. 나의 어머니께서는 석 달 장마 속에도 개부심이 제일이라고 하셨다. 석 달을 두고 내리는 궂은 장마에도 참고 기다리면 맑게 갠 날이 있을거라는 뜻이라고 하셨다.

 

인내는 내게 정해진 몫이라고 하시던 말씀은 어머니와 함께 비를 나누며 살았던 모습들이다. “그림 쪼가리 같은 거 하면 늙은 말년이 빈곤하니 먹고 사는데 까딱없는 선생질 하는 게 최고다고 하시던 집안 어른들 호령에도 무엇이든 너 하고 싶은 것에 미치도록 해라고 하시던 어머님의 귓속 말씀이 늘 들린다. 갑자기 삶이 두려워질 때는 사막의 풀숲에 혼자 서서 그 말씀으로 가슴을 적신다.

 

사막 모래 속에서 발견된 물고기 화석을 보면서 생각했다. 세상에는 그 어느 것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해도 일억 년쯤 산이 바다가 되고 난 후가 되지 않을까 한다. 다시 그 바닷물이 모두 마를 때까지는 머물 수 있다는 말인가 보다. 평생을 물속에 살다 화석이 되어버린 물고기는 그래서 눈을 감지 못했을까.

 

살면서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었다는 의미일까. 그런 자신을 용서해 내지 못해서일까. 수억 년 전 물고기 화석에서 그런 의미들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린시절 멋진 장화와 우산을 가져올 부모를 기다리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내 자신을 향해 화를 내던 그때를 용서하기 싫었다. 구멍 난 신발로 살 부러진 우산을 들고 빗속을 걷게 되는 나를 용서하기 싫었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말씀처럼 내가 자제해야 했던 나의 운명인 것을 몰라서였다. 늘 낯설던 캘리포니아의 비는 내가 품고 살았던 비의 세상이다. 방송에서는 올겨울 가뭄을 점친다. 비를 찾아가는 여행길에서 낯선 손님을 만나 아픈 몸과 마음을 함께 치유하고 싶다.



[문경구]

화가

수필가

코스미안뉴스 칼럼니스트

문경구 kimurgin@hot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12.21 10:49 수정 2021.12.2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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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